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05화 (106/254)

< 300 레벨 -1- >

레벨만 오른 줄 아나?

가브낙 행성에서 얻은 것은 정말 많았다.

우선 근력, 체력, 민첩, 재주, 감각이 1씩 올랐다. 지능과 직감은 2, 의지와 위엄은 3이 상승했다. 작전 계획과 전투 지휘 기술이 슬금슬금 상승하여 각각 32, 33이 되었다.

그리고 레벨 업 도우미.

타이탄 공격대는 1달 동안 추가로 3마리의 대형 기계 괴수를 잡았다. 그 중 1마리에서 제국인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이번에도 레벨 업 도우미를 흡수했다. 자연히 저번처럼 여러 보상을 받았다.

모든 능력치 1, 10레벨, 여유 초능 점수 10.

이번에는 계급이 상승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시민 계급에서 머물러 있었다.

한편 백호 공격대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3개의 공격대가 연합하여 대형 기계 괴수를 사냥했다. 피해가 상당하긴 했지만 사냥에는 성공했는데, 그곳에서도 제국인 시체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장 먼저 시체에게 다가갔던 지원 요원의 왼쪽 손목에서 불이 일어나더니, 그만 전신을 불살라 버렸다는 것이다.

왼쪽 손목.

그것도 레벨 업 도우미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보안 기능에 걸려 공격당한 게 아닐까?

수한은 그냥 레벨 업 도우미가 정착했었는데, 도대체 뭐가 다른지 모를 일이었다.

세라프의 전당 밖으로 나왔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10월 초순.

떠날 때는 여름이었는데, 돌아와 보니 가을 중반이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새미도 그랬는지 두 팔을 벌리고 지구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두 달 넘게 외계 행성에 있다 온 참이라 모두 병원부터 갔다. 검사를 받고, 건강하다고 판명된 사람들만 집으로 돌아갔다.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셔서 푹 쉬세요. 앞으로 최소 1달은 특별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민종이 원정에 참가했던 사람들 모두와 악수를 나눴다.

수한도 악수를 하고 새미와 함께 차에 탔다.

그 동안 타이탄 공격대 주차장에 세워두었는데, 공격대에서 잘 관리해준 모양이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시동도 잘 걸렸다.

“오빠는 휴가 동안 뭐할 거야?”

“글쎄. 여행이라도 갈까? 자기는 시간 어때?”

“나도 특별한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래도 먼저 며칠 푹 쉬기로 했다. 허름한 숙소에서 두 달을 보낸 뒤라, 침대 생각이 간절했다.

새미를 집에 데려다 주고, 수한도 집에 돌아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한은 욕조에 물을 받고 목욕을 했다. 그러고 난 뒤 침대에 몸을 묻었다.

스마트폰을 켰다.

원정 다녀온 사이, 전리품 배당금도 입금이 되었다.

엄청났다.

450억 원.

저번에 변이체들 전리품만 정산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았다. 과연 기계 괴수라고 할까.

하지만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많이 벌긴 했는데, 힘의 결정을 살 생각을 하니 아찔했던 것이다.

AA급 힘의 결정 시세는 평균적으로 300억 원.

거기다 6번째 초능 진화에 쓸 힘의 결정을 산다고 생각해 보라. E급부터 A급까지 다 사려면 144억 원이 필요하다.

그래도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번 원정 배당금도 막대할 테니까. 워낙 사람이 많이 갔던 터라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수백억 정도는 넘지 싶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수한이 기여한 게 엄청나지 않나.

모르긴 몰라도 포상 명목으로 떨어질 게 엄청날 것이다. 돈이든 현물이든, 입이 떡 벌어지겠지.

그런 거 없이 계약서대로만 하면 누가 공격대에 붙어 있겠나. 계약 파기하고 뛰쳐 나가 다른 공격대에 들어갈 테지.

누워서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는데, 기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형 왔어?”

현관에 놔둔 수한의 신발을 본 모양.

“응. 방금 왔지.”

추리닝만 입은 채 밖으로 나갔다.

웬 예쁜 여학생이 기한의 옆에 서 있었다. 수한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숙인다.

수한은 여학생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세요?”

“형, 내 여자 친구야. 인사해.”

“아, 그래? 반갑습니다. 기한이 형 이수한이에요.”

“안녕하세요. 박지영이라고 해요.”

“아, 그때 말했던 분인가 보구나.”

수한은 석 달 전 기억을 더듬었다.

명한이 그랬었다. 기한이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아마 그 사람이지 싶었다.

그런데 기한이 어째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형, 난 다시 나가 볼게. 뭣 좀 가지러 온 거라서.”

“그래. 알았어.”

기한은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쏙 나왔다. 지영을 데리고 금방 밖으로 나간다.

수한은 피식 웃어 버렸다.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밥도 안 먹고 나가는 걸 보니 무얼 하러 왔는지 뻔했다. 수한이 있는 게 불편해서 밖으로 나가는 게 훤히 들여다 보였다.

수한은 간단히 치킨과 생맥주를 시켜 먹었다. 천국의 맛이 따로 없었다.

뉴스를 계속 봤는데, 3개월 동안 별 일은 없는 듯했다.

바다에서는 여전히 변이체들이 활개를 쳤지만 대부분 토벌당한 뒤였다. 지금도 각국의 해군들이 차원의 틈이 열린 곳을 순찰하며 변이체들을 사냥했다.

평화를 되찾은 것.

다만 가브낙 행성으로의 대규모 파병이 화제가 되어 있었다. 거기서 쏟아져온 막대한 전리품도 그렇고, 낙베일 대륙을 지키는 기계 괴수에 대한 내용도 보였다.

왕급 기계 괴수, 루비 아이.

수한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런 괴물이 지구에 나타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구를 떠나 있던 두 달 사이,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수한은 뉴스를 보다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메리 공주.

눈부신 금발의 미녀가 뭔가 말을 하는 중이었다.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고, 말하는 속도가 빠른 게 제법 흥분한 것 같았다.

[이번 테러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우호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국은 이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며……]

테러?

가브낙 행성에 다녀온 사이 유럽에서는 뭔가 일이 벌어졌나 보다.

TV에서는 그 일에 대해 더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프랑스에 체류하던 영국 왕실 가족에 대한 공격이 있었고, 성공적으로 막아냈다고만 했다.

죄다 가브낙 행성 이야기뿐이었다.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만, 수한처럼 잘 아는 사람이 이건 무슨 소설 쓰나 싶었다.

결국 예능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했다.

밤늦게 명한과 기한이 들어왔다.

“형 왔네? 이번엔 진짜 오래 걸렸다. 편지라도 보내지 그랬어.”

“바빠서 어쩔 수 없었어.”

수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변이체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수한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계속 지휘 장갑차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나중에는 좀 한가해졌지만, 그때는 수한도 사냥을 다니기 시작해서 시간을 내기 힘들었다.

지구로 같이 올 생각이 없냐고 제의했지만, 기계 괴수가 없다는 소리에 거절했던 녀석들. 앞으로 다시 보게 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키이잉!”

용이가 고개를 내밀고 울었다.

이 녀석도 원정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계속 눈을 감고 있더니 이제야 눈을 떴다.

기한이 귀엽다는 눈으로 용이를 보았다.

“너도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키잉!”

용이가 반갑다고 둘의 무릎을 자기 앞팔로 건드렸다.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캔맥주로 조촐한 귀환 기념 파티를 벌였다.

마침 뉴스에서 타이탄 공격대의 대형 기계 괴수 공략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황금색 거인도 거인이지만, 기계 형태의 변이체 다섯 마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저것들은 어떻게 길들인 거야?”

“운이 좋았지.”

수한은 느긋한 어조로 다섯 변이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참 파란만장한 얘기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살짝만 삐끗했어도 지금 같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을 터였다. 선택도 잘 했고, 운도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들이 혀를 내둘렀다.

“진짜 소설이 따로 없다.”

“형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장편 소설 나오겠는데?”

“하하하.”

다음날, 수한은 수호자 연맹에 방문했다.

AA급 변조 계열 힘의 결정을 구입해서 흡수한 것이다.

지독하게 힘들었다.

AA급 힘의 결정 흡수는 24시간이 걸렸다. 자칫 정신을 잃을 뻔 했는데 간신히 견뎠다. 그랬다간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흡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남들은 여기서 또 성공과 실패가 갈리지만 수한에겐 그런 게 없었다. 무조건 점수로 환산이 되니까.

AA급 힘의 결정을 흡수해서 얻은 만물 변환 점수는 180점.

4차 진화가 완료되었다.

이번에 수한이 선택한 것은 특급 속성 부여 : 총알.

레벨이 오르면 다섯 가지 속성을 추가로 사용하게 된다.

천공, 중화, 즉사, 분화, 파멸.

다만 수한의 특급 속성 부여 레벨이 아직 120 정도여서 앞의 두 가지 속성 밖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요즘 들어 공격력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것으로 상당히 보충된 셈이다. 가브낙 행성에서 모은 초능 점수를 쓰면 파멸까진 힘들어도 즉사와 분화까진 사용할 수가 있고.

“좋아.”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집에 돌아가 죽은 듯이 잠을 잤다. 하루를 내리 잔 다음에야 정신이 들었다.

아직도 여섯 번째 초능 개발은 끝이 나지 않고 있었다.

하긴 개발을 거듭할수록 필요 기간이 2배씩 늘어난다. 이번에는 32일이 걸릴 터였다. 2주 전에 초능 300을 찍었으니, 앞으로 2주는 더 지나야 한다는 것.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심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는데, 새미에게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오빠 잘 자고 있어? 나도 AA등급 힘의 결정 흡수 시작할 거야. AA급 돼서 만나자!]

어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통화를 했었다.

아직 흡수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얘기하더니, 수한이 자는 사이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AA급 힘의 결정을 흡수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더구나 새미에게는 레벨 업 도우미도 없지 않나. 흡수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능이 강화된다고 확신하기도 어려웠다. 가능성은 기껏해야 반반 정도였다.

얼른 옷을 입었다.

문자가 온 시간을 보니 20시간 전.

서너 시간만 지나면 힘의 결정 흡수가 끝이 난다. 그때까지 수호자 연맹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실패했어도 좋다.

부디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다. 간절히 그것만을 기원했다.

기계용에게 자동차 조종을 시켰다. 수한의 급한 마음을 눈치 챘는지, 평소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수호자 연맹에 도착했다.

차원 백화점의 밀실들 앞을 서성이자, 근처를 지키던 수호자가 수한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제 여자 친구가 힘의 결정을 흡수하고 있어서요.”

“예. 그렇습니까? 행운을 빕니다.”

수한은 새미가 어디 들어있는지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런 걸 대답해 줄 리가 없으니까.

밀실들 앞에는 소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완전히 탈진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 거기 앉아 좀 쉬라는 것이다. 수한은 그 중 하나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새미가 있는 밀실 안으로 들어가 새미의 상태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수한은 눈을 가볍게 감았다. 소파에 깊이 몸을 묻었다. 전신을 이완시키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렸다.

사람들이 주변을 지나갔다. 수한에게 이상한 시선을 던졌다. 문이 몇 번 열리고, 밀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문 열리는 소리가 하나 들렸다.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닌데, 유독 천둥처럼 크게 수한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눈을 떴다.

초췌한 얼굴의 새미가 놀란 눈으로 수한을 보고 있었다.

“새미야! 괜찮아?”

“집에 있는 거 아니었어?”

“자기 문자 보고 바로 왔어. 아픈 덴 없어?”

“응. 난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말은 그렇게 해도 계속 비틀거렸다. 수한은 얼른 새미를 부축해서 소파에 앉혔다.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난 땀을 닦아주었다. 샤워를 하고 나왔지만, 그새 식은땀이 배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새미를 들여다보자 새미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붉어졌다. 그게 귀여워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콧등에다 대고 입술을 맞췄다.

새미가 눈을 흘겼다.

“에이, 진짜.”

“하하하. 흡수는 잘 됐어?”

수한은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새미는 말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손가락 끝에서 작은 전깃불이 뛰쳐나왔다. 길쭉하게 길어지더니, 수한과 새미를 둥글게 감쌌다. 빙글빙글 돌다가 다시 갈라지고 합쳐지는 게, 꼭 에어쇼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수한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성공했구나! 축하해!”

“고마워.”

새미의 얼굴에도 미소가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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