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06화 (107/254)

< 300 레벨 -2- >

소파에 앉아 잠시 쉰 후, 새미를 데리고 수호자 연맹을 나왔다. 새미의 차에 타고 집에 데려다 주었다. 침대에 눕히자, 기다렸다는 듯 잠에 빠져든다.

수한은 잠든 새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워낙 고생을 한 탓에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미모가 진주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잘 자.”

귓가에 속삭이고, 뺨에 입술을 맞췄다.

수호자 연맹으로 돌아가 차를 가져왔다. 집으로 갈까 하다가, 동생들에게 전화를 해서 며칠 안 들어갈 거라고 얘기했다.

새미는 언제 깨어날까?

체력이 강한 수한도 하루 가까이 자고 일어났다. 새미도 그 정도는 걸릴 것이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 왔다.

냉장고를 열어 안을 봤더니 냉동식품과 즉석식품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외국에 있고, 새미 혼자 살아서 그런지 대충 때울 때가 많은 듯했다.

초월자의 눈을 활성화시켜 침실을 가끔 살폈다.

새미는 아직 깨어날 것 같지 않았다. 간단히 밥을 차려 먹었다.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 안으로 들어가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다.

새벽 4시나 됐을까.

새미의 정신이 표층으로 떠오르는 게 보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깨어날 것 같았다.

식재료를 이용해 김치찌개를 끓였다. 새미가 평소에 좋아하던대로 얼큰하게 만들었다. 돼지고기를 탁탁 잘라 넣고, 청양 고추도 잘라서 좀 뿌렸다.

새미가 깨어날 때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으응……”

신음을 흘리며, 새미가 눈을 떴다.

수한은 새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잤어?”

“응. 오빠 집에 안 갔네?”

“너 일어나는 거 보고 가려고 그랬지. 배 고프지? 밥 먹자.”

수한은 작은 상에 아침을 차려 가져왔다.

새미가 눈을 빛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흰 밥에 얼큰한 김치찌개, 시금치 데침, 콩나물 무침, 버섯 볶음, 수한이 가져다 놓은 나박김치에 겉절이까지 정말 푸짐했다.

“맛있겠다! 이거 오빠가 다 한 거야?”

“그럼. 자기 배고플 것 같아서 만들었지.”

“고마워, 오빠.”

새미가 생긋 웃었다.

숟가락을 들어 김치찌개를 푹 떴다. 그것을 입에 가져가 오물거리더니 눈을 크게 뜬다.

“맛있다!”

“그래?”

“오빠도 먹어. 오빠도 배고프겠다.”

둘은 식사를 마쳤다.

밥을 먹자 새미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렇게 자고도 아직 모자란 모양이었다.

“더 자. 아직 피곤할 거야.”

“설거지 하고 잘게.”

“내가 할 테니까 그냥 자.”

“에이, 요리도 시키고 설거지도 시킬 수는 없잖아? 내가 할게.”

새미가 부득불 우겨가며 설거지를 했다.

둘은 서로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이능 인증을 받았는데, 역시 AA급이 나왔다. A급이 되고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여기저기서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승급한 것은 둘만이 아니었다.

가브낙 행성에서 유입된 전리품이 엄청 많았다. 힘의 결정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덕분에 많은 이능력자들이 승급했는데, 그 중에는 수한과 인연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한민종, 갈태수.

민종은 염원하던 SS급 이능력자가 되었다. 태수도 S급으로 승급했다. SS급 이능력자도 있고 S급 이상의 이능력자가 두 자리수가 되었으니, 대한민국도 이제 이능력자 강국이라고 할 만 했다.

“축하드립니다.”

“오, 이 대리님. 윤 주임님. 두 분도 AA급이 됐다면서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하하. 우리 공격대에 겹경사가 생겼네요. 특수 원정 2팀 팀장님도 AA급이 되셨다는데, 이러다 그랜드 공격대도 뛰어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민종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S급이 된 것을 자랑도 할 겸, 타이탄 공격대의 중진들을 모조리 모았다.

이능력자는 AA급 이상만, 간부들은 부장 이상만.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서른 명은 훌쩍 넘는 것 같았다.

즐비하게 늘어선 뷔페 음식을 즐기며, 삼삼오오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우는 건 수한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새미와 단 둘이서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는데, 민종이 와인잔을 들고 다가왔다. 잠시 후에는 최 이사도 합류해서, 졸지에 둘이 앉은 자리가 가장 주목을 받게 되었다.

민종이 둘을 보며 말했다.

“솔직히 두 분에겐 기대가 큽니다.”

“그렇습니까?”

“예. 이 대리님과 윤 주임님이야말로 S급으로 승급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들이니까요. 두 분 중 한 분만 S급이 되어도 우리 공격대에 SS급이 1명, S급이 3명이나 되는 거 아닙니까? 두 분 다 승급하시면, S급이 4명이 되고요.”

“하하, 아직은 먼 얘기입니다.”

“그렇게 먼 얘기는 아닐 걸요?”

와인만 홀짝이던 최 이사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민종이 최 이사를 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러자 최 이사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 공격대 내부에서 진행되는 게 있는 걸까?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수한도 이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섰고, 알아야 될 일이라면 곧 알려줄 테니까.

민종과 최 이사가 여기 앉아 있어서일까. 간부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언뜻 보아도 이사급은 다 이 탁자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을 보며, 민종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 우리 공격대 임원들이 다 모여 있네요. 자, 한 가지 물어봅시다. 이번에 우리 공격대는 많은 것을 얻었는데, 앞으로 뭘 해야 10위권 정도가 아니라 그랜드 공격대와 천룡 공격대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시작은 파티였지만, 모인 사람들이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방책이 쏟아졌다.

거대급 기계 괴수를 잡자, 적극적인 홍보로 고위 이능력자들을 영입하자, 기존의 이능력자들에게 공격대 차원에서 힘의 결정을 줘서 승급을 시키자 등등.

수한은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걸 의식했는지, 민종이 수한에게 물었다.

“이 대리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다른 분들 의견에 찬성합니다. 다만 지금은 내실을 다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원정 직후라, 알게 모르게 피로도가 쌓여 있으니까요. 내실을 먼저 다진 후 공격대 규모를 확장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한은 그냥 원론적인 얘기만 했다.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곧 개발될 6번째 초능과, 옆에 앉은 새미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민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지요. 석 달이나 원정을 다녀온 뒤니, 다들 힘들 겁니다. 새로 승급한 분들도 많아서 적응 기간이 필요하고요. 그래서 말인데, 미드가르드 행성으로 단체 연수를 갈 생각입니다.”

“단체 연수요?”

새미가 눈을 반짝였다.

미드가르드 행성.

흔히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판타지 세상이었다.

푸른 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녹색 숲이 우거진 세계.

특히 그곳에 사는 엘프들이 유명했다. 미모도 미모지만,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각종 이능 물품 생산에서는 종족 연합 중 최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관광지로도 유명했다. 헤븐, 바스티아와 더불어 세 손가락 안에 꼽았다.

민종이 씩 웃었다.

“이번 원정에서 공격대가 돈을 많이 벌었으니, 사기 진작 차원에서 연수를 다녀올 생각입니다. 엘프들이랑 계약을 맺어서 이능 운용에 대해서도 배우고요.”

“멋진 생각이시네요.”

“대찬성입니다!”

“미드가르드 행성 연수라니…… 부부 동반은 안 될까요?”

“하하하. 그건 안 됩니다.”

분위기가 대번에 화기애애해졌다.

정해지진 않았지만 일정은 약 3주 정도.

행성 전체를 돌아보는 건 어차피 불가능했다. 그래도 두 군데는 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세계수와 영원의 샘.

숲 엘프와 샘 엘프가 신성시하는 곳이었다. 가까이서 보기만 해도, 그 영험함에 이능이 저절로 활성화된다던가. 심지어 이능 적성이 상승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별 휴가가 끝나고, 1주일 정도 준비해서 바로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 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겠지.

“연수 다녀오고 나면 예전보다 몇 배로 더 굴릴 겁니다. 각오해두세요.”

“하하하, 기대하겠습니다.”

“공격대를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겠습니다!”

민종이 농담을 던지자, 다른 이들도 농담으로 받아쳤다.

경영 담당 이사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장님. 그럼 원정에 참가했던 부서만 가는 겁니까? 아니면 공격대 전체가 가는 겁니까?”

“당연히 공격대 전체가 가야지요. 누군 가고, 누군 안 가면 감정만 상합니다.”

“하하하, 그렇지요?”

“대신 원정 뒤처리는 빨리 끝내 주세요. 일을 마친 다음 연수를 가야 속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브낙 행성에서 우리 공격대에 특별히 기여했던 분들에게 포상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될지는 모두들 아시죠? 장담하는데, 그 분들은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민종이 수한에게 눈짓을 했다.

수한은 가만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뭐 S급 힘의 결정이라도 주려나?

내심 기대가 되었다. 민종도 화끈하다면 화끈한 인물이니, 대충 아무거나 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번에 돈을 많이 쓸 모양이다.

이번 원정에서 봤듯이, 타이탄 공격대는 전투 요원만 1천이 넘어간다. 그 외에 사무와 잡무에 종사하는 직원들을 합치면 3천명은 되었다. 그들이 차원문을 넘는데만 막대한 비용이 들 터였다.

하긴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대를 운영하려면 이런 것도 필요하겠지.

수한은 민종이 보여주는 모습을 잘 기억해 두었다.

파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끼리끼리 2차를 갔지만, 수한은 관심이 없었다. 새미를 껴안고 밖으로 나왔다.

새미가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른 휴가 끝났으면 좋겠다.”

“난 그래도 휴가 더 길었으면 좋겠는데.”

“응? 왜? 엘프들 보고 싶지 않아?”

“자기랑 둘이 있는 시간이 짧아지잖아.”

“아휴, 진짜.”

새미가 애교스럽게 수한의 손등을 꼬집었다.

수한은 하하 웃었다.

뜻하지 않게 미드가르드 행성에 연수를 가게 되었지만, 아직도 3주는 넘게 남은 휴가를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둘이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저번에는 유럽 여행을 갖다 왔으니, 이번에는 북미나 남미 쪽으로 갖다오는 게 좋지 싶었다.

“그냥 쉬다 올까?”

“아, 휴양지 같은 거?”

“아니면 크루즈 여행도 좋고.”

“고민 되네.”

의논 끝에 몰디브나 괌, 하와이 같이 휴양지를 여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귄지 1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 계속 원정을 다녔더니 피로가 쌓인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 AA급 이능력자가 되면서 몸이 말도 못하게 안 좋았다.

1주일 일정으로 몰디브에 다녀오기로 했다.

새미가 신을 냈다. 수한을 끌고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비키니도 사고, 온갖 여행 물품을 샀다.

덕분에 수한은 아주 녹초가 되었다.

집단 의식을 최고로 발휘하며 기계 괴수를 잡았을 때보다 더 힘든 것 같았다. 쇼핑이 이렇게 힘든 건 줄은 미처 몰랐다.

지친 몸을 끌고 돌아왔는데, 어째 집의 분위기가 묘했다.

동생들이 모여 있었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수한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 분위기가 안 좋다.

명한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한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참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묻자, 명한이 울상을 지었다.

“형!”

“왜 그래?”

“나 영장 나왔어.”

“뭐?”

“다음 달에 군대 가야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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