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08화 (109/254)

< 몰디브 -1- >

2번째 해외여행이다.

기내식을 몇 번이나 먹어가며 하늘 위를 질주했다.

새미가 수한을 톡톡 건드렸다.

“오빠! 저기 봐!”

“저기가 몰디브야?”

“바다 좀 봐. 진짜 예쁘다!”

“그러게.”

저 멀리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한 섬들이 보였다.

하늘 위에서 보기에도, 바다가 무척 아름다웠다. 에메랄드 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황홀하게 빛이 났다.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

둘 다 AA급 이능력자라 잠깐 소란이 일어났다.

그것도 잠시. 무기를 돌려받은 뒤 무장을 갖췄다. 저번 유럽 여행에서의 경험도 있고 해서, 둘 다 적당히 무장한 상태였다. 수한은 권총 두 자루에 단검, 마법 소총까지 가지고 다녔다.

둘이 예약한 리조트는 몰디브 말레 공항이 위치한 섬과 다른 섬에 있었다. 거기까지 가려면 수상비행기에 탑승해야 했다.

리조트 데스크에 물어보니 수상비행기가 출발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고 했다. 2층 라운지에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으라던가.

라운지에는 간단한 음식과 음료들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계속 먹은 참이라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수한과 새미는 커피만 한 잔씩 받아 마셨다.

새미가 발을 동동 굴렀다.

“얼른 체크인 했으면 좋겠다.”

“30분 지나면 출발한다니까, 1시간 뒤에는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비행기로 30분 정도 걸린댔지?”

“응. 엄청 시끄럽다던데?”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데,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창가에 앉은 백인 커플.

그들이 둘을 보고 있었다.

이능력자였다.

둘 다 상당한 미남미녀인데, 남자는 상앗빛 단검 몇 자루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여자는 가녀린 몸에 철갑이 붙은 청동색 보호복을 입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 백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둘에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혹시 대한민국의 이수한씨와 윤새미씨 아닙니까?”

프랑스 억양이 섞인 영어.

수한과 새미는 그들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맞습니다만, 누구세요?”

“반갑습니다. 에펠 공격대의 엔조 뒤랑이라고 합니다.”

“끌로에 쁘띠라고 해요. 엔조와 같은 공격대 소속이에요.”

에펠 공격대라?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공격대라면 누구나 루브르 공격대를 꼽는다. 그 외에 카베르네 공격대와 부르고뉴 공격대도 유명했다. 에펠 공격대는 수한의 머릿속에 없었다.

남자가 씨익 웃었다.

“이제 갓 출범한 공격대입니다. 잘 모르실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실례지만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둘 다 A급 이능력자라고 했다. 이들도 최근에 가브낙 행성에 다녀와서, 휴양 차 몰디브에 왔다는 것이다.

남자가 둘을 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올해 초, 도버 해협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요.”

“그때 변이체에게 공격당했던 배에 제 여동생이 타고 있었습니다. 두 분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요. 감사인사를 하고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때 그 일이 이렇게 연결되나?

수한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저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었어도 기꺼이 도왔을 거예요.”

“어쨌든 두 분에게 감사의 뜻으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수한과 새미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눈을 마주친 후, 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오늘 저녁은 예약을 해놓아서 안 되고, 내일이나 모레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마침 수상비행기 출발 시간이 되었다.

내일을 기약하고 프랑스 인들과 헤어졌다.

라운지에서 차가운 생수 두 병과 작은 귀마개를 받고 수상비행기에 올랐다.

작았다. 16인승이라 그런지, 버스보다 작은 것 같았다.

비행기에 타자 프로펠러 소리가 세차게 귀청을 때렸다. 이륙을 시작하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귀마개를 귀에다 꽂았는데도, 청각이 예민한 터라 머리가 쾅쾅 울렸다.

반면 새미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꺄악! 오빠! 저기 봐! 산호초야!”

쪽빛 맑은 바다에, 점점이 옥색 산호초들이 보였다.

수상비행기의 비행 고도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래서 경치를 구경하기가 더 좋았다.

반면 상당한 더위와 소음이 둘을 괴롭혔다. 30분이 아니라 1시간을 타라고 했으면 차라리 다른 곳을 갔을 것이다.

예약한 리조트에 도착했다.

섬 두 개가 통째로 리조트였다. 목조 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꼭 바다 위에 리조트가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체크인을 하고 객실로 들어갔다.

새미가 침대로 몸을 던졌다.

“침대 완전 좋아!”

수한도 새미의 옆에 누웠다.

슬쩍 새미를 껴안자, 새미는 앙탈을 부리면서도 수한에게 안겼다.

둘이 머무는 객실은 독채 형식이었다. 기둥으로 고정시켜 놓았는데, 아랫부분이 마치 작은 배를 보는 것 같았다. 개인 자쿠지가 딸려 있고, 객실의 문만 열고 나가면 바다가 바로 펼쳐졌다.

몸을 씻고 밖으로 나갔다.

스노클링을 즐기고, 눈부신 백사장을 거닐었다.

저녁에는 리조트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수중 레스토랑.

음식의 맛도 좋았지만, 바다 속 산호와 물고기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각별했다. 천장과 벽이 아치형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 수중 생물이 몽땅 보이는 것이다.

더구나 식사시간에 맞춰서 물고기 먹이를 뿌리는지,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잔뜩 몰려왔다.

덕분에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는지 어떤지도 몰랐다. 기계적으로 음식을 먹으며, 물고기들을 구경하기 바빴다.

“오길 잘 했다!”

새미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수한도 즐거웠다.

지친 심신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피로가 쫙 풀렸다. 가슴 위에 얹혀 있던 뭔가가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다음날 저녁에는 프랑스 인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둘 다 유머 감각도 있고 말을 참 잘 했다. 식사하는 동안 꽤 재미있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다음날에는 같이 스노클링을 하기도 했다.

나흘 째 날이 되었다.

벌써 일정의 절반 이상이 지나간 것이다.

경비행기를 타고 몰디브의 자연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기상이 심상치가 않았다.

쿠르르르릉.

먹구름이 몰려왔다.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아침에는 그냥 구름만 낀 정도였는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자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새미가 발을 동동 굴렀다.

“오늘 비행기 타기로 했는데, 어떻게 해?”

“비행기는 못 뜨겠다.”

레스토랑에서 우산을 빌려 객실로 돌아왔다.

비가 오니 정말 할 게 없었다.

바다로 들어가기도 그렇고, 자쿠지는 야외에 있고, 비 내리는 바다를 구경하는 것도 한두 시간이니……

[나랑 놀자!]

계속 소외되던 용이가 이때다 하고 울부짖었다.

새미가 녀석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용이가 장난스럽게 새미의 손가락 끝을 물었다.

마침 원반을 가져온 참이었다.

새미가 창밖으로 원반을 날렸다. 용이가 비에 젖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원반을 물어왔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잠시였다.

후우우웅!

바람이 거칠게 불면서, 원반던지기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객실 전체가 덜컹거렸다. 바람이 부는 정도가 아니라,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새미가 불안한 눈빛을 했다.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지 마. 아직 며칠 남았잖아. 금방 그칠 거야.”

수한은 새미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그때였다.

격렬한 진동이 객실을 뒤흔들었다.

침대가 부서질 듯 흔들렸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유리잔이 떨어져 요란하게 깨졌다. 수한과 새미 사이에서 눈을 감고 있던 용이가 놀라 울부짖었다.

“뭐야? 뭐야?”

“일단 일어나!”

수한은 급히 새미를 일으켰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지진이라도 일어난 걸까?

최대한 빨리 옷을 입고 무장을 갖췄다. 밖으로 뛰쳐나가자, 다른 객실의 투숙객들도 밖으로 나와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이 입을 벌리고 멍하니 한쪽 하늘을 보고 있었다.

뭐가 있는 거지?

무심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늘이 번쩍거렸다.

북동쪽 저 높은 곳에서, 짙푸른 광채가 간헐적으로 날카로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번개?

아니다.

번개라면 이렇게 파랄 리가 없으니까.

새미가 수한의 팔을 잡아끌었다.

“오빠, 저거……”

“맞아. 이능력자야.”

최소한 A급, 어쩌면 AA급의 구현 계열 이능력자.

변이체가 나타난 걸까?

지구에 나타났던 차원의 틈을 봉인하고 벌써 반 년. 거의 변이체들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닌 걸지도 모르겠다.

“다들 TV 좀 봐요! 말레가 테러 당하고 있데요!”

“뭐라고요?”

수한은 얼른 객실로 들어갔다.

TV를 켜자, 며칠 전 들렀던 말레 국제공항이 나왔다.

수신 상태가 불량한지 화면이 줄이 죽죽 그어졌다. 그래도 공항이 현재 공격당하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청색 광선이 내리꽂힌다.

폭음이 터졌다. 건물이 무너지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놀란 시민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언뜻, 거대한 갑옷을 입은 자가 보였다.

몰디브 군이 총을 쏘아대지만 소용이 없었다. 황동색 광채를 한 번 발하자 모조리 튕겨나갔다.

화면이 몰디브 군을 향했다.

어딘가에서 총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급히 장애물 뒤에 숨어보지만, 하늘에서 푸른 광채가 내리꽂혔다. 그 빛이 장애물과 군인을 동시에 베어 버렸다.

이능력자들이 몰디브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오빠, 어떻게 하지?”

“일단 수호자 연맹에 상황을 알아보자.”

스마트폰을 꺼냈다.

로밍을 신청해 놓고 왔으니 원래는 통화가 가능해야 된다.

하지만 안 됐다. 신호 자체가 잡히지 않았다.

수한과 새미 말고 모두 마찬가지였다. 스마트폰은 물론, 모든 통신 수단이 끊겼다. 심지어 유선 전화와 위성 전화도 안 되었다.

조금 있으니 TV까지 끊겼다. 라디오도 그랬다. 섬 안팎의 모든 통신 수단이 차단된 것이다.

거의 전쟁 수준.

이능력자 몇 명이 아니라, 상당히 큰 규모의 단체가 개입된 모양이었다.

낭패였다.

이 근처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집단 의식으로 SOS를 보낼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 정도로 친한 사람은 전부 수천 킬로미터 거리의 대한민국에 있었다.

한 수백 킬로미터 정도만 되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었다.

“오빠 정신 이능으로 어떻게 안 돼?”

새미도 그 생각을 했는지 묻는다.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멀어. 말레까지라면 모를까 대한민국까지 정신 감응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야겠다.”

“어떻게?”

“요 녀석을 써먹어야지.”

수한은 용이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응? 나?]

용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수한은 용이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불안한 표정을 짓고 서성이고 있었다.

엔조와 끌로에가 수한에게 다가왔다.

“혹시 지금 상황에 대해 아시는 것 있습니까? 저희는 내일 가봐야 하는데 큰일 났습니다.”

“내일이요? 내일은 힘들 텐데요.”

“하,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습니다.”

수한은 용이를 날렸다.

충분히 쉬면서 힘을 보충한 상태였다. 용이가 경쾌하게 날아올랐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북동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게 뭡니까?”

“제 비밀무기입니다.”

수한은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집단 의식으로 연결된 상태.

용이가 보는 장면들이 수한의 머릿속으로 전달되었다.

거뭇한 밤바다.

아직도 하늘에 번쩍이는 푸른 섬광.

두려움에 떨며 말레부터 도망치는 물고기들까지.

한편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누구의 짓일까 하고.

몰디브는 휴양지로 유명했지, 특별히 분쟁이 있는 지역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몰디브에 중요한 사람이 와 있다면 어떨까?

납치하거나 억류하는데 성공했을 때,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 말고는 특별한 이유를 생각하기 힘들었다.

용이가 말레에 도착했다.

몰디브에서 가장 큰 섬이자 수도, 국제공항이 있어 교통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었다.

시내는 온전했다. 그러나 겨우 1킬로미터 떨어진 말레 공항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수한은 이를 갈았다.

피해를 입은 것은 군대와 경찰만이 아니다.

테러에 휘말린 시민들의 시체가 몇 보였다. 다행히 많진 않지만, 이능력자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시켰다는 생각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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