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10화 (111/254)

< 몰디브 -3- >

다른 이능력자가 투명화한 채 접근했다. 수한의 뒤로 돌아와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는데, 수한은 그걸 초월자의 눈으로 다 보고 있었다. 벽을 돌아 막 총만 내밀 때,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듯 손만 뻗어 놈의 손을 박살내 주었다.

그걸 본 테러범들이 술렁였다.

자기들 중 강한 축에 속하는 이능력자 둘이 간단히 제압되었기 때문이다.

수한은 권총을 쏴대며 전진했다.

테러범들이 밀렸다. 몇 번 응전하다가, 아예 벽을 뚫고 맞추는 신기까지 발휘하자 인질들이 잡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공항 구조가 복잡한 탓에 테러범 전원을 제압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열 명 이하로 줄여놓았으니 선전한 것이다.

이제 수한의 눈앞에 남은 테러범은 9명.

AA급 정신 계열 이능력자 하나, C급 이능력자 셋, 나머지는 모두 용병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몰디브의 모든 통신을 교란한 AA급 정신 계열 이능력자.

그 자가 수한의 정신을 제압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스운 노릇이었다.

아무리 수한이 세뇌는 못하다 해도 A급 정신 계열 초능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방어하는 거라면, 충분히 자웅을 겨뤄 볼 만 했다.

더구나 이 AA급 정신 계열 이능력자의 주특기는 사람의 정신을 제압하는 게 아니었다. 전자 기기 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한은 무난하게 정신 방어에 성공했다.

‘재미있는 걸 보여주지.’

수한은 스스로에게 박명을 걸었다.

집단 의식이 강화되었다.

용이와 자신의 의식을 연결했다. 살짝 명령을 내려, 방을 조금 돌아가게 했다. 그래서 방구석에 있는, 평소 같으면 잘 주목하지 않을 작은 창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작다고는 하지만 성인 한 명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의 창.

그러면서 본인은 정문으로 다가갔다. 용이가 가는 곳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그곳에 시선을 줬다간, 본인의 등이 고스란히 노출되게 된다.

용이가 먼저 돌입했다.

와장창! 탕탕탕!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다들 속았다.

수한은 정확히 그 순간 문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용이를 보고 당황한 테러범들이 수한을 돌아보았다. 놈들의 얼굴에 뚜렷하게 당황한 빛이 어렸다.

수한은 권총을 난사했다.

드워프 제 권총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마비 속성을 실은 총알이 정확히 테러범들의 팔다리에 직격했다. 9명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순식간이었다.

용이가 유리창을 깬 시점부터 겨우 1초 이내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꺄아아악!”

피를 본 인질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수한은 우선 테러범들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이능력자들을 기절시킨 후 강력한 정신 공격도 가했다. 얼마 가진 않겠지만, 당분간은 이능을 쓰지 못할 것이다.

정신 계열 이능력자는 여차하면 죽일 각오를 하고 총알을 박아 넣었다.

복부에서 피가 튀었다.

지근거리에서 당한 총격이었다. 이능력자의 집중력이 흩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정신 공격을 가하자 아예 기절해버렸다.

총상이 심하니 당분간 이능을 발휘하기도 힘들 것이다. 몇 달은 자리보전하면서 치료를 받아야겠지.

인질들이 벌벌 떨며 수한을 쳐다보았다.

수한은 그들 중 메리 공주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메리 공주님, 저 기억하십니까?”

푸른 눈동자가 수한의 얼굴을 더듬었다.

“예전에 도버 해협 사건으로 대통령궁에서 뵌 적이 있지요? 그때 이걸 받았습니다.”

등에 메고 있던 소총을 끌러 보여주었다.

실내에서 쓰기에는 위력이 너무 강해 권총만 사용했던 것이다. 자칫 인질들까지 총상을 입혀서는 안 되니까.

메리 공주가 그 총을 알아보았다. 그때 일은 메리 공주에게 있어서도 무척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아, 미스터 리? 기억해요. 도버 해협의 영웅이잖아요!”

“도버 해협의 영웅?”

“세잔 호를 구한 사람이잖아! TV에서 봤어!”

다른 인질들도 수한을 알아봤나 보다. 굳었던 얼굴을 펴며 탄성을 질렀다.

수한은 그들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주었다.

집단 의식을 활용해 새미의 정신에 접속했다. 새미가 그걸 느끼고 수한에게 속삭였다.

[우리는 끝냈어. 거긴 어떻게 됐어?]

[정신 계열 이능력자는 잡았어. 구현 계열 이능력자는 항구에 있는데, 그대로 탈출할 것 같아.]

[그냥 보낼 거야?]

[아니. 저격할 거야.]

이미 용이를 보냈다.

인질들이 붙잡혀 있는 공항 건물부터 구현 계열 이능력자가 있는 곳까지는 약 1.4킬로미터.

수한이 충분히 저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손에 든 것은 지구의 어떤 저격총보다 정확도가 높은 노르헤임제 마법 소총. 거기다 수한의 원거리 저격 기술은 시모 하이하가 되살아오지 않는 한 대적할 자가 얼마 없다.

테러범들은 이미 상황이 그른 것을 알고 달아나려고 했다. 검게 칠한 작은 배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수한은 단검의 은신 기능을 활성화한 채 건물의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용이를 통해 목표를 확인했다.

마법 소총을 겨누고, 초월자의 눈을 극도로 활성화했다.

먼 거리, 깨알보다 작은 테러범들의 몸이 크게 확대되었다. 집중력을 최고로 올리자, 눈앞에서 그들을 보는 듯 복면 사이 눈가의 주름살 하나까지 판별할 수 있었다.

배가 출발하기 직전 방아쇠를 당겼다.

둔중한 충격이 수한의 몸을 진동시켰다.

총알이 성난 호랑이처럼 총구를 뛰쳐나갔다. 먼 거리를 비행하여, 한 남자의 가슴에 꽂혔다.

번쩍!

투명한 방어막이 일어났다.

기습을 대비하여 차고 다니던 팔찌가 빛을 뿜은 것이다.

그러나 천공 속성이 걸린 공격이었다. S급 변이체의 방어막이라 해도 견딜 수 없었다. 단박에 방어막을 쳐부수고 가슴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푸학!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남자의 목숨이 끊겼다.

제압이 가능하다면 마비 속성을 날렸을 터.

불가능했다. 배에 시동이 걸렸으니까. 마비 속성을 꽂아 봤자 동료들과 함께 도망칠 것이다.

AA급 구현 계열 이능력자는 테러범 중에서도 핵심.

몰디브에 가해진 대부분의 피해가 그 자에게서 비롯되었다. 죽은 시민들도 그 자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 다른 자는 다 놓쳐도, 이 작자만은 놓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주변 테러범들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뭔가 행동을 취하려고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두 번째 공격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폭발 속성.

총알이 배에 박혔다. 굉음이 터지며 파편이 테러범과 배를 동시에 찢어놓았다. 배의 연료통에 불이 붙어, 이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수한은 소총을 거뒀다.

아직 잔존한 일당이 몇 있었다. 그들이 배를 타고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강력한 이능력자는 보이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몰디브 당국에 맡겨도 충분할 것이다.

“퉤!”

수한은 침을 뱉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수한이 테러범을 저격하는 사이, 다른 세 명도 도착했다.

셋은 제압당한 테러범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도 잠시, 안으로 들어와 인질들을 챙겼다.

“모두 괜찮아요?”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수한이 정신 계열 이능력자를 제압하여, 통신이 재개된 상태였다.

스마트폰을 꺼내 몰디브 측에 현재 상황을 전달했다.

중간에 이능력자들이 깨어나려고 해서 수한이 다시 손을 썼다. 되게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다. 이능력자들이 신음을 뱉으며 다시 기절했다.

몰디브 군인들이 조심스럽게 공항을 향해 접근했다.

총을 겨눈 채 방 안까지 들어왔다. 수한은 적의가 없다는 뜻으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장교 하나가 긴장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요.”

수한은 여권과 이능력자 등록증을 내밀었다.

장교가 이능력자 등록증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려 AA급 이능력자.

몰디브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있어도 전부 외국으로 나갔고, C급 이능력자 정도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테러범들에게 형편없이 당한 것이다.

장교는 다른 이능력자들의 신분도 확인했다.

그런 다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여러분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따라오시겠습니까? 조사할 것이 있습니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들이 이능력자들과 인질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수한이 제압한 테러범들은 대부분 상처가 심각해서, 일단 지혈부터 하느라 부산을 피웠다.

수한은 정신 계열 이능력자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어차피 상처가 심해서 이능을 발휘하기도 힘들 테지만.

소방차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물을 뿌려 불을 진화했다. 그때마다 시커먼 연기가 뭉클거리며 솟구쳤다.

작은 배를 타고 말레 섬으로 이동했다. 말레 섬에 내린 뒤 얼마간 걷자, 하얀색의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몰디브의 대통령 궁, 티무게.

그 앞을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평소에는 관광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녔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따라오십시오.”

장교가 대통령 궁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뜻 모르는 괴성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서류더미를 들고 뛰는 사람도 여럿 보였다. 군인들이 대통령 궁 안에도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었다.

소식을 들은 대통령이 급히 뛰쳐나왔다.

“인질들이 구출됐다고요?”

“예, 대통령님!”

장교가 빠르게 설명을 했다.

영어가 아니라 디베히어를 사용해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설명을 들은 대통령의 눈이 커졌다.

놀란 표정으로 수한을 비롯한 네 이능력자를 보더니, 감사 인사를 했다.

“네 분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우리 몰디브의 영웅이자 영원한 친구입니다.”

그 날부터, 수한과 새미는 몰디브 측으로부터 귀빈 대우를 받았다.

대통령이 매일 같이 둘을 초청했다. 만찬도 베풀고, 연회도 열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메리 공주 보호를 위해 근위대니 이능력자니 하는 이들도 와서 그들과 교분을 맺을 수 있었다.

기자 회견도 하고, 몰디브 대통령에게서 무슨 감사패도 수여받고……

슬슬 지겨웠다.

유명해지는 게 싫은 건 아니다. 수한도 그렇고 새미도 그렇고, 둘 다 명예욕이 있었다. 하지만 기껏 둘이서 쉬러 왔는데, 이렇게 불려 다니는 것은 마뜩치가 않았다.

리조트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대통령이 그러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리고 안내인을 붙여주어 몰디브의 온갖 아름다운 광경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비가 그쳐서 관광을 즐기는데 문제가 없었다. 결국 말레 섬에 눌러앉아 시간을 보냈다.

몰디브에서 있었던 일은 금방 전 세계로 알려졌다.

예전에는 이능력자들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테러를 벌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하지만 수호자 연맹의 통제력이 강화된 뒤로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게 몇 년 만의 대규모 테러인지 몰랐다.

스마트폰에 불이 났다.

[형!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대리님, 이번에도 한 건 하셨던데요?]

[KBS의 김경지 기자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요, 혹시 시간이 어떠신가요?]

인터뷰는 모조리 거절했다.

수십 명의 기자들 앞에서 기자 회견을 한 것으로 충분했으니까. 할 말은 그 때 다 했다.

어느덧 돌아갈 날이 되었다.

몰디브 대통령과 작별 인사를 하고 대통령 궁을 나서려는데, 그때까지 대통령 궁에 머물러 있던 메리 공주가 둘을 향해 다가왔다.

“저번에는 감사했어요.”

“뭘요. 받은 게 있으니 그 값은 해야죠.”

수한은 등에 멘 마법 소총을 툭 쳤다.

메리 공주가 그걸 보고 쿡 웃었다.

며칠 대통령 궁에서 같이 있어서 그런지 사이가 꽤 가까워졌다. 이 정도 격의 없는 농담 정도는 해도 좋았다.

메리 공주가 푸른 눈으로 수한과 새미를 보았다.

“오늘 가신다고 했죠?”

“예. 지금 나가야 늦지 않게 비행기에 탈 것 같습니다.”

“아쉽네요. 더 오래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 만날 일이 있겠지요.”

“하긴, 본국에서 여러분에게 KBE와 DBE 수여를 생각하고 있다고 해요. 몇 달 뒤면 또 볼 수도 있겠네요.”

KBE(대영제국 기사 훈장), DBE(대영제국 데임 훈장).

수한과 새미는 잘 모르지만, 영국 왕실에서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 중 거의 최고 등급에 해당했다. 쉽게 수여하지도 않을 뿐더러, 일단 받고 나면 크나큰 명예가 뒤따른다.

둘이 멀뚱멀뚱 서 있자, 메리 공주가 빙긋 웃었다.

나중에 런던 버킹엄 궁전에서 보게 됐을 때도 저렇게 무덤덤하게 서 있을지 기대가 된 것이다.

“그럼 나중에 봐요. 조심해서 귀국하고요.”

“공주님도 몸조심 하세요.”

작별하고 대통령 궁을 나섰다.

군인들이 호위해 주었다. 작은 배에 타 공항으로 간 뒤, 대한민국 인천 행 비행기에 올랐다.

군인들이 경례를 하며 둘을 배웅했다.

비행기가 굉음을 터뜨리며 이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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