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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커맨더-112화 (113/254)

< 연수 첫 날 -1- >

엘프들은 본래 폐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자기 혈족끼리만 모여 살고, 자기네 영역에서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미드가르드 행성의 엘프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기계 괴수들이 공격해 오면서 바뀌었다.

제국과 세라프 종족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이계의 문물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관광 산업 육성도 그 중의 하나였다.

특히 활동적인 엘프들이 그것을 주도 했다.

태양 엘프나, 바람 엘프 등등.

타이탄 원정대가 도착한 곳은 공중 도시 히미아실.

미드가르드 행성의 북반구, 대수림에 위치한 도시였다. 세계수가 가까이 있어서 날이 맑으면 세계수의 윗부분이 보이곤 했다.

“후아!”

새미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공기가 무척 맑았다.

아직 세라프의 전당 안인데도, 오염된 지구의 공기와는 비교를 불허했다.

전신의 탁한 기운이 몽땅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자, 얼른 밖으로 나갑시다. 곧 다음 조가 도착할 겁니다.”

민종이 대원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커다란 나무 위였다.

다른 행성에서는 보통 돌로 세라프의 전당을 짓는데, 이곳에서는 큰 나무 안을 파내어 세라프의 전당으로 삼았다. 나무의 크기가 반경 수백 미터는 족히 되니 가능한 일이었다.

이 나무 말고도 주변에 나무들이 가득했다.

지구의 고층 건물처럼 높고 두툼한 나무.

도시는 그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무 윗부분의 안을 파내어 건물로 삼은 것이다. 괜히 공중 도시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나무들은 가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날빤지처럼 넓고 평평해서 걸어다니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겉보기에는 불안하지만 실은 매우 안전했다. 바람의 정령들이 날아다니다가 혹시 누군가 떨어지면 바로 구해주기 때문이었다.

수한은 새미의 손을 잡고 세라프의 전당 밖을 거닐었다.

새미가 한쪽을 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세계수다!”

거대한 나무였다.

아주 컸다. 버섯처럼 두툼한데, 그 끝이 구름을 꿰뚫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영험함이 느껴졌다. 주변에는 학과 비슷한 새들이 날아다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세계수를 한참 동안 보다가 발을 옮겼다.

엘프들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영화나 만화 속에서 보던 대로, 늘씬한 키에 아름다운 얼굴, 뾰족한 귀가 인상적이었다.

새미가 수한에게 속삭였다.

“엘프들 진짜 예쁘다. 그지?”

“내 눈엔 자기가 더 예뻐 보이는 걸?”

“진짜?”

“그럼!”

나무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도시를 돌아보았다.

이곳으로 오기 전 주의사항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다. 지도도 한 장씩 받았다. 해가 지기 전까지만 합류 지점으로 가면 된다.

비늘 갑옷과 얇은 검, 작은 활로 무장한 엘프들이 지구인들을 경계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관광 목적으로 오는 지구인들이 가끔 사고를 치기 때문이었다.

특히 칼로 나무에 대고 ‘누구 다녀감!’이라고 새겨 놓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데, 그 경우에는 즉시 지구로 추방되었다.

“저기 봐, 정령이야!”

둘은 못 박힌 듯 제 자리에 멈춰 섰다.

흰 빛 무리들이 나무 가지 사이를 노닐고 있었다.

언뜻언뜻 어린아이 얼굴 같은 게 비쳤다. 녀석들이 둘 근처를 지나갔는데, 까르르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새미가 눈을 반짝였다.

“귀엽다!”

“우리나라에 정령 소환하는 이능력자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응. 백호 공격대에 있대. AA급 이능력자라던데? 휴가 때만 되면 여기로 여행 온다는데?”

“엘프들한테 정령술 배우나 보다.”

“가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대. 정령들의 영향을 받나 봐.”

“정령 소환도 소환 계열이니까.”

얼마간 걷다 보니, 웬 노랫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저절로 거기에 이끌렸다.

엘프 몇 명이 얇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산새들과 사슴, 토끼 같은 작은 동물들이 주변에 몰려들어 노래를 감상했다.

평화롭고도 가슴이 따스해지는 광경.

수한과 새미는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노래를 들었다.

한참 후 노래가 끝났다. 엘프들이 동물들에게 손을 흔들다가 둘을 발견했다.

“$%^##$&@#$?”

영롱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엘프 어.

당연히 못 알아들었다.

[알아듣게 말 좀 해 봐!]

용이가 항의하듯 울부짖었다.

엘프들이 용이를 보고 눈을 빛냈다.

[특이한 아이네요. 지구에서 태어난 건가요?]

[지구에 기계 생명체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이번에는 세라프 어다.

수한이 끼어들었다.

[지구 태생은 아닙니다. 세라프 종족에게 받은 겁니다.]

[세라프 종족에게요?]

엘프들도 용이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을 내밀자, 용이가 수한을 쳐다보았다.

수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때서야 날갯짓을 해 손가락 위로 올라갔다. 엘프들이 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골골골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작은 금관을 쓴 여성 엘프가 말했다.

[겉은 기계인데, 속은 일종의 마법 생명체 같네요.]

[그렇습니까?]

[네. 신기하네요. 일종의 씨앗과 같은 힘이 느껴져요. 한참 성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조만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어요.]

[눈에 띄는 변화요?]

[네.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럴 거라는 느낌이 드네요.]

수한은 초월자의 눈으로 용이를 살펴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용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수한을 마주보았다.

엘프의 말이 맞았다.

용이의 내부에 뭔가 영글고 있었다.

싹튼 씨앗이 줄기를 뻗고, 그 끝에 봉우리가 맺힌 단계라고 할까. 언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지 몰랐다.

[세계수에 한 번 가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세계수요?]

[네. 세계수는 가까이 가기만 해도 모든 생명을 북돋우고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건 마법 생명체도 마찬가지에요.]

[세계수는 이계인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니었습니까?]

[특별한 경우에는 개방해 주기도 해요. 관문 도시 크리맛실로 가보세요. 그곳의 영주는 융통성이 있으니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도움 말씀 감사합니다.]

수한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엘프들이 이만 가보겠다고 했다. 용이를 향해 손을 흔들자, 용이가 길게 울음을 터뜨린 후 수한의 어깨로 날아왔다.

새미가 용이의 뺨을 손톱으로 긁었다.

“으휴, 엘프들이 그렇게 좋았어?”

[걔들한테 좋은 냄새가 났어! 또 맡고 싶어!]

엘프들의 말을 머릿속에 담아둔 뒤, 집결 장소로 향했다.

집결 장소는 아래쪽에 있었다.

나무 안의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반딧불 같은 벌레들이 안을 날아다녀서 어둡지 않았다.

도시 아래에는 상업 구역이 조성되어 있었다. 지구인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했다. 엘프들은 상행위보다는 집단 생산, 집단 분배를 선호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푸른 참나무 여관으로 오랬지?”

“응. 3천 명이 거기서 다 모인다던데.”

“규모가 큰가 봐.”

“그러게. 호텔 정도 되려나?”

푸른 참나무 여관은 도시 외곽에 있었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여관으로 썼다. 나무 자체가 커서, 거의 63 빌딩 크기는 되어 보였다. 이 정도면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명도 수용할 수 있겠다.

다른 타이탄 공격대원들이 여관으로 걷고 있었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며 걸어갔다.

여관 안으로 들어서자, 키가 유독 작은 엘프들이 경쾌하게 인사를 했다.

[푸른 참나무 여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구에서 오신 분들이네요?]

[타이탄 공격대 소속이시면 저를 따라오세요!]

엘프는 엘픈데, 위에서 만났던 숲 엘프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경쾌함이 묻어나왔다.

기껏해야 허리까지 오는 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개구쟁이 보는 듯한 인상.

바람 엘프라고 하던가.

그 중 한 명을 따라 움직였다. 커다란 연회장이 나왔다. 다들 엘프 도시를 구경하고 있는지, 먼저 도착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둘이 자리에 앉자, 대기하고 있던 바람 엘프들이 달려왔다.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을 탁자 위에 깔고, 호박빛 액체가 든 잔도 내려놓았다.

바람 엘프가 둘을 보고 말했다.

[미드가르드 특산 과일과 차에요. 완전 정화된 것들이니 여러분이 드셔도 괜찮아요. 한 번 맛보시면, 미드가르드의 매력에 푹 빠지실 거예요!]

[혹시 뭐 시키실 일이 있으면 탁자 위의 종을 흔드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바람 엘프가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물러났다.

새미가 과일을 톡톡 건드렸다.

“이거 먹어도 돼?”

“정화했대. 먹어도 돼.”

수한이 먼저 과일 하나를 집어들었다.

녹색의 바나나처럼 생긴 과일이었다. 껍질은 없다시피 했다. 가볍게 깨물자, 상큼한 과즙이 입 안 가득 번졌다.

새콤한 사과 같기도 하고, 달콤한 배 같기도 했다.

수한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새미도 수한을 따라 과일을 집어들었다. 한 번 깨물어 맛을 보더니, 얼굴 가득 웃음이 번진다.

“이거 맛있다!”

“이것도 먹어 봐. 수박 같은 맛이 나.”

“그래?”

수한은 앵두처럼 생긴 열매를 가리켰다.

과일들 모두 맛이 있었다. 마침 배가 고프던 참이라 후닥닥 먹어치웠다. 차까지 마시자 적당한 포만감이 들었다.

둘이 과일을 다 먹었을 때쯤 다른 사람들도 도착했다.

10개조로 나뉘어서 오는 것이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둘은 기다리다 지쳐 상업 구역을 한 번 구경하고 왔다.

해가 지자 뷔페식으로 음식이 차려졌다.

채식 위주였지만, 지구의 콩고기와 비슷한 식감의 요리는 있었다. 맛도 좋았다. 밥과 김치가 없는 게 아쉽긴 했지만 기분 좋게 식사를 즐겼다.

모두 도착하고 식사도 끝나자, 타이탄 공격대의 홍보부장이 연회장 앞에 설치된 단상으로 올라갔다.

“모두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예!”

“얼굴이 다들 좋아보이시네요. 자, 이제부터 4주 간의 연수 일정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저번 가브낙 행성 원정 결과 보고입니다.”

홍보부장이 손을 휘저었다.

커다란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가브낙 행성에서 타이탄 공격대가 잡은 기계 괴수들이었다. 총 13마리에 달하는 기계 괴수들이 늠름한 모습을 드러냈다.

홍보부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번에 우리 공격대가 잡은 기계 괴수는 총 13마리입니다. 짬짬이 잡은 변이체들까지 하면 셀 수가 없지요. 그 결과, 추정 매출 30조 원을 이번 원정으로 벌어들였습니다.”

“30조!”

“우와! 대단한데?”

“30조면 짜장면으로 몇 그릇이야?”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수한은 총무부 직원에게 들었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도 많았나 보다.

홍보부장이 연이어 말했다.

“우리 공격대가 생긴 이래 최고의 매출입니다. 덕분에 사장님께서 공격대 전체에 특별 상여금 1000%를 약속하셨습니다!”

“우아아!”

“사장님 만세!”

포상 이야기가 나오자 일반 사원들이 열광했다.

수한도 기분 좋게 웃었다.

배당금에 비교하면 별 것 아니지만, 상여금 1000%면 수한에게도 작은 돈은 아니었으니까.

홍보부장이 자연스럽게 민종을 단상 위로 데려왔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배는 부르고, 상여금까지 약속 받은 참이었다. 없던 애사심도 마구마구 솟구칠 터였다.

민종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박수가 그쳤다.

민종은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을 한 번 쭉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금 홍보부장님이 말한 것처럼, 우리 원정대는 이번 가브낙 행성 원정에서 전대미문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모두 여러분이 열과 성을 다해 헌신해주신 덕분입니다. 해서, 4주 간의 미드가르드 행성 연수와 특별 상여금을 준비했습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사장님 최고!”

짝짝짝짝!

적절한 추임새와 함께 또 박수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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