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18화 (119/254)

< 검증 -1- >

그대로 남하했다.

땅 엘프들의 영역인 황금 평야를 지났다.

영원의 샘을 구경한 뒤, 차원문을 통해 왕관 도시로 이동했다.

적당히 구경을 하고 타이탄 공격대에 합류했다.

단체로 여섯 곳을 돌아보겠다고 했던 이들.

마지막으로 온 게 왕관 도시였다. 덕분에 수한은 그들 틈에 섞일 수가 있었다.

단 수한이나 새미는 몰라도, 마엘른은 타이탄 공격대 틈에 섞여 지구로 갈 수는 없었다. 마엘른은 수한과 계약을 맺은 거지, 타이탄 공격대와 계약을 맺은 게 아니니까. 나중에 수한이 필요한 행정적 처치를 해놓고 오게 해야 할 것이다.

마엘른은 알겠다고 답변했다.

[이 근처에 머물러 있겠소. 이곳에 내 친구가 있으니 언제든 편지를 받아볼 수 있을 거요.]

수한은 늦어도 열흘이 지나기 전에는 마엘른을 부르기로 했다.

미드가르드 행성은 지구와 시간이 동일하게 흐른다.

연수가 끝나면 다음 원정도 준비해야 하는데, 한 동안 무척 바쁘게 생겼다.

마엘른와 헤어졌다.

타이탄 공격대에서 잡아놓은 숙소로 돌아갔다.

벌써부터 귀환 준비가 한창이었다.

새미가 수한에게 기댔다.

“조금 아쉽지 않아?”

“아쉽긴 하다. 더 체류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뮤시아는 잘 지낼지 모르겠다.”

“잘 지내겠지. 별 일 없을 거야. 걱정 하지 마.”

“얼른 마엘른님이 크리맛실로 돌아갈 수 있게 되면 좋겠어.”

“그러게.”

어느덧 마지막 밤이 되었다.

영원의 샘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왕관 도시에 있던 전원이 모여 즐겁게 파티를 벌였다.

파티라고 해봐야 조용히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게 전부였다. 피곤하기도 했고, 외계 행성에 나와 있으니 자연히 몸가짐을 조심하게 되었다.

더구나 금방 끝이 났다.

수한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지구에서 출발할 때도 그랬지만, 지구로 귀환할 때도 가장 첫 조였다. 시간에 맞춰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세라프의 전당은 왕관 도시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마법 마차를 대규모로 대여했다. 걸어가기엔 좀 멀었기 때문이었다.

세라프의 전당에 도착한 뒤, 새미가 뒤를 돌아보았다.

“예방 접종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으면 좋을 텐데. 1달은 너무 짧았어.”

“어쩔 수 없지. 히메르아님도 세계수 가지를 안 준 거 보면 그런 게 흔하지는 않는 것 같아.”

“하긴 그래.”

드디어 지구로 돌아왔다.

주말을 보낸 후, 오랜만에 사옥으로 출근을 했다.

처음에는 업무 효율이 나오지 않았다. 공격대 전체가 붕 뜬 분위기였다.

그것도 며칠 남짓.

시간이 지나자 원래 분위기로 돌아갔다. 오히려 더 힘을 내고 있었다. 밀렸던 일도 싹 하고, 그 동안 변한 상황에 맞추어 새로운 원정 계획서가 쏟아졌다.

수한은 레벨 업 도우미를 확인했다.

320 레벨.

총 한 번 쏜 적이 없지만, 레벨이 꽤 오른 것이다.

더구나 지능과 직감도 1씩 상승했다. 기술은 오른 게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퍽 기꺼웠다.

한 가지 더.

연수를 다녀오고 며칠 만에 1668억 원이 모두 입금되었다.

자, 이것으로 뭘 해볼까?

S급 힘의 결정은 시간이 지나면 하나를 구할 수가 있다. 한민종 사장에게 받은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초능을 모두 AA급으로 올려볼까?

그게 좋겠다. 지금 수한은 보유한 초능을 모두 유용하게 쓰고 있으니까.

이때부터, 수한은 수호자 연맹을 문이 닳아 없어지도록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힘의 결정을 구입하고 흡수하는 한편, 마엘른의 입국 허가서를 얻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안면이 있는 김성민과 이세윤에게 부탁도 하고, 비서실장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1주일 정도가 걸렸다.

그때쯤에는 수한도 자신의 능력을 모두 정리했다.

[능력]

이름 : 이수한 나이 : 26  성별 : 남

신장 : 185cm 체중 : 88kg 상태 : 정상

종족 : 인간 진영 : 연합 행성 : 지구

레벨 : 320 계열 : 살육 계급 : 시민

근력 26 체력 30 민첩 24 재주 26 감각 28

초능 322 지능 26 직감 27 의지 30 위엄 30

여유 점수 : 0 경험치 : 11%

[초능]

++++ 특급 속성 부여 : 총알 120.

++++ 신안 80.

++++ 음속 70.

++++ 성좌 60.

++++ 군체 의식 100.

+++ 벼락불 40.

[400] [500]

여유 점수 : 50.

초월자의 눈은 신안이, 아음속은 음속이, 박명은 성좌로, 집단 의식은 군체 의식이 되었다. 전기 충격은 전기 화살과 뇌전 생성을 거쳐 벼락불로 진화했다.

거의 다 같은 계통으로 진화시켰는데, 박명만 조금 달랐다. 이젠 단일 대상이 아닌 여러 대상에게 동시에 거는 게 가능해졌다.

이능 인증까지 받은 후, 수한은 기분 좋게 웃었다.

조만간 있을 연봉 협상이 기대되었다.

한편, 모든 사전 정지 작업이 끝나고 마엘른이 도착했다.

소지한 물건은 검 한 자루와 작은 물건 몇 개가 전부였다. 엘프들은 몸도 가벼워서, 생각보다 차원문을 넘는데 큰 비용이 들지는 않았다.

수한이 마엘른을 맞이했다.

[지구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잘 계셨지요?]

[그대가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이곳이 지구요? 듣던 대로 공기가 굉장히 탁하오. 정령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소이다.]

마엘른은 미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미드가르드 행성에서는 내내 물처럼 담담하던 자였다. 이렇게 얼굴을 찡그리는 것은 처음 본다.

수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지구는 종족 연합에서도 가장 환경이 오염된 곳이니까요. 그나마 지금은 좀 나아진 겁니다. 예전에는 더 심각했어요.]

[이게 나아진 거라……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라프의 전당을 나섰다.

대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안 그래도 외계인을 보기 힘든 곳이 대한민국이었다. 상주하는 인원은 대한민국 정부와 타이탄 공격대, 수호자 연맹을 다 합쳐도 10명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엘프가 여의도 한복판을 활보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스마트폰이 반짝였다. 아예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보였다.

마엘른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무슨 사람이 이리 많소?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요? 날 염탐하는 듯한 느낌이 드오만.]

절정의 검사답게 감각이 예리했다.

수한은 내심 감탄하면서 스마트폰과 카메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마엘른이 발끈했지만, 수한이 진정시키자 수그러들었다.

대신 불평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이상한 행성이오. 남의 허락도 없이 영상을 찍다니!]

고층 건물에 대해선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마엘른이 살던 대수림도 그만한 크기의 나무는 많았다. 세계수는 오히려 더 압도적이었다. 생경한 얼굴로 고층 건물을 보긴 했어도, 그저 그뿐이었다.

차에 태웠다.

안전 벨트 메는 법을 가르쳐 준 뒤 시동을 걸었다. 차가 출발하자 신기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왕관 도시에서 쓰이는 마법 마차와 비슷한 것 같소.]

[그렇습니까?]

[내 친구의 집에서 머물 때 몇 번 얻어 탄 적이 있소. 그때의 느낌과 비슷하오. 예전에는 유니콘 마차를 썼는데, 요즘에는 유니콘이 줄고 있어 마법 마차로 대체하고 있다고 들었소.]

[신기하네요.]

도로로 나왔다.

각양각색의 자동차가 도로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세단, 쿠페, 헤치백, 왜건, SUV, 트럭, 밴, 픽업트럭, 리무진, 컨버터블 등등.

담담하던 마엘른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무슨 마법 마차가 이렇게 많소?]

[주요 교통 수단이라서요. 저희는 도보로 이동하는 건 무척 느려서, 대부분 자동차로 이동합니다. 기차나 비행기를 탈 때도 많고요.]

[기차? 아, 들어본 적이 있소. 노르헤임 행성에서 그걸 주로 쓴다고 하더이다.]

[맞습니다. 언제 타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는데, 굳이 기계에 타고 싶진 않소이다. 차라리 검치호 같은 동물이 있으면 길들이는 게 낫겠소. 자랑 같지만, 나는 동물들과 교감하는데도 자신이 있소.]

[하하, 힘들 겁니다.]

차라리 면허증을 따서 차를 몰고 다니는 게 낫지.

수한은 느리게 도로를 탔다. 오늘따라 차가 막혔다.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거의 1시간을 걸려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심심하지는 않았다.

조수석에 탄 마엘른이 주변을 돌아보며 질문 세례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황금 같은 주말.

기한은 밖에 나가 있을 만도 한데 모두 집에 있었다. 심지어 제 여자 친구까지 부른 상태였다. 이미 마엘른와 안면이 있는 새미는 말할 것도 없었고.

둘이 들어오자 모두들 열렬히 환영했다.

“어서오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지내요!”

“으으, 어쩌다 우리 형한테 속아서 노예 계약을 맺으셨어요? 연봉도 못 받고, 무료 봉사가 뭔가요!”

“얌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해줬거든? 그리고 연봉이나 배당도 다 챙겨줄 거야!”

“헤헤, 장난이야.”

세라프 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수한밖에 없었다. 기한은 세라프 어문 학과에서 1년을 공부를 했지만, 아직 회화에는 서툴렀던 것이다.

자연히 수한을 중심으로 얘기를 했다.

음식을 아주 바리바리 차렸다. 기한은 요리에는 소질이 없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기한의 여자 친구와 새미가 합심해 요리를 한 모양이었다.

대부분은 채소 요리.

육식을 싫어하는 숲 엘프의 식성을 따른 것 같았다. 고기 비슷한 요리가 있어도 대개 콩고기였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미현이 집에서 가져왔다며 오래된 매실주를 땄는데, 뜻밖에도 마엘른은 매실주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시큼하면서도 그윽한 향이 좋소. 깊은 맛은 떨어지지만 나름대로의 흥취가 있소이다.]

알고 보니 마엘른은 상당한 술꾼이었다.

새미가 시장에서 샀다며 큰 플라스틱 통에 매실주를 담아 가져왔다. 5리터짜리 큰 통인데, 마엘른 혼자 절반을 비워버렸다. 도수도 높은 거여서, 다들 괴물 보듯 마엘른을 보았다.

그러고도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말고는 멀쩡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엘프는 원래 저래?”

“드워프는 술꾼이라는 얘길 많이 들었지만, 엘프도 그런 줄은 몰랐어.”

“엘프도 원래는 술이 약해. 이 분이 특이한 거지.”

수한은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마엘른이 익혔다는 숲 엘프 전래의 검법.

그 검법이 무협 소설에서 나오는 무공과 비슷한 것 같았다. 신체의 저항력을 크게 강화시켜서, 독한 술을 물마시듯 마셔도 괜찮게 해주는 모양이지.

홀짝홀짝 술을 마시던 기한이 먼저 나가떨어졌다. 새미를 비롯한 두 여인도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몸을 건들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마셨다간 주정을 부리게 생겼다.

“자, 이제 그만 마시죠. 다들 너무 마셨어요.”

“딸꾹! 마엘른님한테 궁금한 게 많았는데……”

“어차피 3년은 여기서 살 겁니다. 나중에라도 와서 물어봐요. 자, 이제 치웁시다.”

수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 못 차리는 기한은 작은 방에 던져 넣었다. 여자들은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엘른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게 보였다.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원래 그렇게 술을 좋아하십니까?]

[아뇨. 한두 잔 마시는 건 좋아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오늘따라 술이 마시고 싶습니다.]

[그럴 때가 있지요.]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 속이 좋을 리 없었다.

고향에서 추방된 신세 아닌가. 가족을 위해 외계 행성으로 오긴 했지만, 앞으로 잘 될 거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수한은 큰 잔에 매실주를 가득 부어 권했다.

[다 잘 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야지요.]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다.

진작 세계수 나무 반지를 준 참이었다. 이렇게 술과 음식을 즐겨도 감염될 염려는 없었다.

다음날부터, 마엘른은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세라프 어는 지구인에겐 너무 어려운 언어였다. 다른 종족들은 조금만 배워도 곧잘 하는데, 지구인은 그렇지가 않았다. 미드가르드 엘프 어를 아는 이는 아예 없다시피 하니,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마엘른이 한국어를 배워야 했다.

숲 엘프는 기본적인 지능도 뛰어나고, 언어에 대해서도 능통한 종족이었다. 덕분에 빠르게 한국어를 습득했다.

그 사이, 수한은 타이탄 공격대와 한 가지 거래를 했다.

앞으로 마엘른은 수한이 나가는 원정을 따라 나가게 된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타이탄 공격대에 적을 두어야 했다.

“그래서 무슨 등급입니까?”

인사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수한의 설명만으로는 마엘른이 어느 정도 무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능 인증 결과가 있으면 간단한데, 마엘른은 이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인증을 받을 수 없었다.

“제가 알기로는 S급 이능력자에 준합니다. 미드가르드 행성에서는 S급 이능력자를 이긴 적도 있다고 합니다.”

“으음. 저는 대리님을 믿지만 구두로만 평가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질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대리님이 그걸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고요.”

“그야 그렇지요.”

“간단하게라도 검증을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인사부장의 주장대로 되었다.

검증 장소는 타이탄의 실기 시험장.

수한은 마엘른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다. 마엘른은 담담한 기색으로 그걸 듣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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