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22화 (123/254)

< 질라 행성 -1- >

질라 행성도 새롭게 발견된 행성 중의 하나이다.

가브낙 행성과 같았다.

그런데 막 질라 행성에 들어섰을 때의 첫 느낌은, 가브낙 행성에 큰 차이가 있었다.

“이히히히!”

“으하하!”

세라프의 전당으로 들어선 순간,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일단 밖으로 나갔다.

타이탄 공격대의 특수 원정 1팀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들이 수한과 새미, 마엘른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이 차장님! 여깁니다!”

“훈장은 잘 받고 오셨어요?”

“마엘른님도 영국 다녀오셨구나!”

“윤 차장님! 이쪽으로 오세요!”

그들에게 합류했다.

도착한 곳은 상당히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문명은 지구의 르네상스 시기 유럽과 비슷한 것 같았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과 어깨가 강조된 옷을 입은 남자들이 쌍쌍이 돌아다녔다.

지구인과 비슷하게 생긴 종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딱 하나, 눈동자가 흡사 파충류의 것처럼 세로로 길쭉한 타원형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타이탄 원정대를 자꾸 힐끔거렸다. 복식도 다르고 눈도 다르니, 이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본 듯했다.

“축제라도 열렸나 본데요?”

수한이 질라 행성인들을 보고 말했다.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졌다. 광대들이 춤을 추며 돌아다니고, 행인들이 그걸 보고 박수를 치며 웃었다.

기계 괴수가 침략하여 전쟁 중이라고 보기는 힘든 광경.

석구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이상하네요. 다른 도시는 거의 폐허 수준이라서 여기로 온 건데, 어째 분위기가 묘한데요?”

현재 질라 행성에 건설된 세라프의 전당은 총 11개.

그 중 4개는 기계 괴수에게 박살이 났고, 4개는 소재한 도시를 두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3개가 그나마 안전한 도시에 위치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축제 분위기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문명 수준이 낙후되어 다른 곳의 사정을 모르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먼저 상황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세라프의 전당 관리인에게 정신 계열 이능으로 말을 걸었는데, 관리인은 부들부들 떨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강제로 정신을 탐색할 수도 없으니 그쯤 하고 접어두었다.

원정대는 세라프의 전당 옆에 있는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C급 정신 계열 이능력자들과 수한, 그들을 호위할 사람 몇 명만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한은 굳이 누굴 데려갈 것 없이 혼자 움직였다. 새미는 원정대와 함께 쉬게 하고, 마엘른에게도 새미의 호위를 부탁했다.

[나도 같이 가!]

용이만 수한을 따라왔다.

수한이 향한 곳은 도시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였다.

멀리서 보기에는 이곳이 관청이나 궁전 정도 되어 보였는데, 가까이 와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냥 부자들 저택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헛걸음을 할 수는 없지.

개중 가장 큰 저택에 다가갔다. 흉갑과 철제 투구, 미늘창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이 수한을 경계했다.

“%$#$^$#@#!?”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수한은 두 손을 벌리며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지구인과 비슷한 종족이라 그런지 몸짓이 통하는 것 같았다. 경비병들의 경계심이 옅어졌다.

조심스럽게 군체 의식을 발현했다.

[안녕하십니까?]

[으헉! 뭐야?]

[귀신이다!]

반응을 보니, 질라 행성도 이능 역사가 일천한 모양이다.

수한은 부드럽게 놀란 경비병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정신 계열 이능이에요. 여러분 종족도 세라프 종족에게 힘의 결정과 이능 각성에 대해 들었지요? 지금은 생소하겠지만, 몇 년만 지나도 익숙해질 겁니다.]

경비병들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눈빛만으로 의사 전달을 하려는데, 자기 생각이 고스란히 서로에게 전달되었다.

저 놈 뭐냐, 미친 놈 아니냐, 쫓아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

자기들이 생각을 해놓고도 다른 경비병 생각을 읽고 연거푸 놀랐다. 급기야 자기 뺨을 꼬집어 보기까지 한다.

처음 세라프 종족과 접촉했을 때의 지구인들이 보였던 반응을 보는 것 같았다.

수한은 짧게 쓴웃음을 머금었다.

경비병들이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수한을 주시했다.

[그래, 이계인이 여기엔 무슨 일입니까?]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 도시에 있는 세라프의 전당은 누가 관리합니까? 관리인은 대답을 해주지 않던데요.]

[그건 왜 묻는 겁니까?]

[직접 찾아 뵈려고 합니다. 세라프의 전당 관리자야말로, 도시에서 가장 유력한 분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 말에 경비병들은 떨떠름한 눈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좀 더 늙어 보이는 경비병이 대답했다.

[폴리온 거리의 티스 댁에서 세라프의 전당을 관리합니다. 의회에서 티스 댁을 지명했거든요.]

[의회? 이곳은 공화정 체제인가 보죠?]

[그렇습니다만……]

수한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최대한 정보를 알아냈다.

질라 행성의 종족, 국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등.

그렇게 하여 이 도시, 바티오가 축제를 벌이는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듣고 보니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

바티오는 도시 국가이고, 인접한 제국 크롱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

그런 크롱의 수도인 크로시아가 며칠 전 기계 괴수의 공격을 받았다. 크롱은 질라 행성에서는 강대국이지만, 무장은 구식 대포와 화승총이 고작이었다. 당연히 쑥대밭이 되었다.

지금 바티오에서 열리는 축제는 그걸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외계인에게 같은 행성인이 몰살당했는데 축제를 벌여?

하긴 지구인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대전쟁 당시, 전부는 아니었어도 일부는 이웃나라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분위기가 분명 있었으니까.

더욱이 크롱 제국과 바티오는 종족이 아예 달랐다. 바티오 시민들에게 있어, 소문만 무성한 기계 괴수보다는 크롱 제국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적당히 현재 상황을 파악한 뒤, 물어물어 폴리온 거리로 자리를 옮겼다.

고풍스러운 저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의외였다.

아까 경비병들에게선 폴리온 거리와 티스 댁을 얕잡아 보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허름한 곳이겠거니 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품격이 느껴졌다.

오히려 아까 거리보다 격이 더 높다고 할까.

여기도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는데, 사슬 갑옷을 입고 검을 한 자루 차고 있었다.

그들에게 접근하자 서늘한 기세가 수한을 압박한다.

아까 경비병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접촉했다.

[반갑습니다. 지구에서 온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혹시 티스 댁이 어디입니까?]

[티스 댁? 바로 이곳이오만, 우리 주군의 저택을 왜 찾는 거요?]

[세라프의 전당을 관리하신다고 하셔서 여러 가지를 여쭙고 싶어서 왔습니다. 연통을 넣어주시겠습니다.]

[좋소. 방문 요청서를 주시오. 집사님께 전해 드리리다.]

[방문 요청서요? 뜻이 안 통할 텐데요?]

[아…… 내가 당황했나 보오. 잠시만 기다리시오. 집사님을 모셔오겠소.]

곧 집사라는 사람이 나왔다.

머리칼을 몽땅 뒤로 빗어 넘긴 남자였다.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는데,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려 참 보기 묘했다.

집사는 수한을 보더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신을 연결한 뒤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허어, 주군께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로 이계인이라니…… 그래, 물어볼 게 있어서 오셨다고요?]

[예.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주군께선 출타 중이십니다. 소주군께서는 검술 연마 중인데, 조금 있으면 쉬러 나오실 겁니다. 소주군께 면담 신청을 하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저를 따라 오십시오.]

집사가 한 걸음 앞서 수한을 안내했다.

아직 시간이 좀 있는 모양이었다. 저택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가문의 역사와 도시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바티오는 원래 이 근방을 지배하던 왕정 국가의 수도였다.

그러던 것이 혁명이 일어나면서 도시 국가 체제로 갈기갈기 찢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티오 시의 3대 공작가 중 하나였던 티스 가문이 쇠락하게 되었다던가.

“@#[email protected]$%!”

활달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평상복을 입은 채였다. 방금 씻었는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집사와 소년이 서로를 보며 몇 마디 말을 했다. 나이 차이와는 다르게, 집사는 시종일관 공손한 기색이었다. 소년은 짐짓 근엄한 얼굴로 집사의 말을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접실의 소파에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눴다.

[지구에서 오셨다고요?]

[예. 세라프의 전당을 통과해서 막 도착했는데, 이 행성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계 괴수들이 어디 가면 많은지, 대륙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느 곳이 안전하고 위험한지 알고 싶습니다.]

[음, 그렇습니까? 왜 이계인이 우리 대륙에 관심을 가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야 간단하죠.]

수한은 가볍게 웃었다.

변이체의 심장과 기계 괴수의 동력핵, 그리고 힘의 결정에 대한 개념을 소년의 머리에 집어넣었다. 소년이 가볍게 신음을 흘리더니 머리를 휘저었다.

약간은 질린 듯한 눈으로 수한을 본다.

[뭔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이 있으면 아무나 붙잡고 머릿속을 읽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특기가 다른데, 전 그렇게 모든 기억을 읽어내는 재주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런 식으로 기억을 읽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상대가 백치가 될 수도 있어요.]

[그렇습니까?]

소년은 순순히 수한이 요구한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정보 전달은 간단했다.

수한이 했던 것처럼, 머릿속으로 생각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수한이 알아서 정보를 알아갔다.

대신 소년도 몇 가지 정보를 요구했다.

세라프 종족이나 종족 연합, 그리고 힘의 결정과 이능에 대한 것들.

지구에서는 상식이 되었지만 이곳 질라 행성에서는 소수만 알고 있는 정보였다. 쓰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이익을 볼 수도 있었다.

정보 교환 후, 소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능을 각성하면 산도 무너뜨리고, 바다도 가를 수 있는 겁니까?]

[등급에 따라 다르지요. 이제 갓 각성한 F급은 없는 것보다 좀 나은 수준이에요. S급 정도는 되어야 그게 가능해질 겁니다.]

[놀랍네요.]

[앞으로 더 놀라운 일들이 생길 겁니다. 이미 새로운 시대가 열렸어요. 잘 적응하시지 않으면 뒤쳐질 수도 있습니다.]

[충고 감사드립니다.]

정보 교환은 만족스러웠다.

정교하게 제작된 지도도 한 장 받았다. 바티오 주위의 지도는 물론, 대륙 전도, 세계 전도까지 해서 모두 여섯 장이었다. 대륙 전도까지는 거의 정확하다는데, 세계 전도는 정확도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했다.

질라 행성의 대륙은 총 일곱 개.

바티오는 그 중 가장 큰 대륙 남동쪽의 반도에 있었다. 공교롭게도, 파괴당한 도시들 대부분이 같은 대륙에 존재했다.

수한의 눈이 복잡해졌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파괴된 도시가 같은 대륙에 있다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 괴수들이 공격해온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사냥하기에는 좋다. 대신 그만큼 위험했다.

가브낙 행성과 다르게 데리고 다닐 S급 변이체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지도를 잘 갈무리하고 세라프의 전당으로 돌아갔다.

C급 정신 계열 이능력자인 임여울 주임과 홍시예 주임은 먼저 돌아와 있었다. 지금 바티오에 축제가 벌어진 이유를 설명해주는지, 크롱 제국이니 크로시아니 하는 말을 하는 중이었다.

석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희한하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웃 나라가 망했다는데 축제를 벌이더니……”

“외계인이잖아요.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아, 이 차장님!”

“이 차장님도 오셨네요. 뭐 알아온 것 있어요?”

얘기 중이던 원정대가 수한을 발견했다.

마엘른이 말없이 수한의 뒤로 와서 섰다. 호위하겠다는 뜻 같았다.

수한은 챙겨온 지도를 꺼내들었다.

원정대가 수한의 주변으로 몰려왔다.

소년에게서 얻은 정보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사람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네요.”

“우리 단독으로 기계 괴수를 잡을 수는 없겠죠?”

“어휴, 당연한 말씀을.”

“일단 근처에 있을 세라프 종족을 찾는 게 급선무에요. 그래야 가브낙 행성처럼 변이체를 제압해서 데리고 다니든 아니면 다른 수를 쓰든 하죠.”

“바티오의 협력을 얻을 수는 없을까요?”

“기대하기 힘들어요. 문명 수준도 낮고, 이능에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반드시 세라프 종족과 협력을 해야겠습니다.”

한참 그렇게 논의를 할 때였다.

세라프의 전당 꼭대기에서 붉은 빛이 번뜩였다.

누군가 차원 이동을 해오는 듯했다.

원정대는 공터 구석으로 물러났다. 혹시 친분 있는 공격대일까 싶어서 세라프의 전당을 향해 눈을 빛냈다.

붉은 빛이 그쳤다.

문이 열리며, 마흔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처음 보는 종족이다.

녹색 피부에 까만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코는 들창코여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키는 지구인보다 조금 작은데 전신이 우락부락한 근육질이었다.

“오크?”

석구가 무심코 종족의 이름을 불렀다.

오크들이 거기에 반응했다.

코를 벌름이더니, 원정대 코앞까지 다가와 묻는다.

[인간들이로군. 우리에게 볼 일이 있나?]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의외의 장소에서 오크 종족을 봐서 놀란 것뿐입니다.]

[그런가? 좋다. 우리에게 볼 일이 없다면 좀 비켜주겠나.]

원정대가 자리를 내주자 오크들은 그 사이를 지나갔다.

쌍뿔이 달린 코뿔소를 끌고 있었다. 쌍코뿔소들이 원정대를 보며 입맛을 다시자, 커다란 입 안에 빼곡한 송곳니들이 언뜻 보였다.

겉으로 봐선 지구의 코뿔소와 비슷한데, 실은 육식동물이었던 것이다.

석구가 지도를 보며 말했다.

“일단 북서쪽으로 갑시다. 기계 괴수는 대개 육지로 이동하니까, 대륙으로 가면 세라프 종족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모두 ATV에 올라탔다.

바티오의 도로는 잘 정비된 편이었다. 그 길을 따라 달렸다. 보행자와 마차, 수레가 혼재되어 있어 속도가 느린 것만 빼면 다 좋았다.

북서쪽 성문을 향해 이동하는데, 누군가 원정대를 불렀다.

“%#@#@%!!”

질라 행성 언어라 처음에는 부르는 줄 어쩐 줄도 몰랐다. 상당히 가까워진 다음에야 원정대를 부르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까 티스 가문의 저택 문 앞을 지키던 경비병이었다. 몸에 털 대신 비늘이 난, 말과 비슷하게 생긴 탈것을 타고 원정대를 쫓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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