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24화 (125/254)

< 거대 기계용 -1- >

“오빠, 안 자?”

새미도 밖으로 나왔다.

수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이 안 와서.”

“너무 무리하지 마. 사실 저번이 운이 좋았던 거잖아. 어디서 또 S급 변이체 다섯 마리를 구하겠어?”

“그건 그래.”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돼. 스트레스 받지 마.”

“네 말이 맞아.”

손을 잡고 야영지를 거닐었다.

슬슬 천막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브종 시에서 붉고 푸른 빛 둘이 날아올랐다.

두 세라프.

뭔 일인가 싶어 하늘을 보자, 저 멀리서 비행형 기계 괴수 두 마리가 접근하는 게 보였다.

세라프들이 빨리 알아차린 탓에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쌩 날아오다 말고 급히 방향을 선회하여 달아났다. 세라프들은 그들을 적당히 추격한 뒤 브종 시로 돌아왔다.

실제로 부딪힌 게 아니고, 밤하늘에서 잠깐 동안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래서 원정팀 대부분은 세상 모르고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목이 예민한 엘프에게는 충분한 자극이었다.

마엘른이 눈살을 찌푸리며 밖으로 나왔다.

[기계 괴수들이 접근했던 겁니까?]

[예. 세라프들이 쫓아냈습니다.]

[이렇게 빈번하게 기계 괴수들이 나타나면 브종 시가 몰살당하는 것은 금방이겠습니다. 어쩌면 며칠 내로 바티오 시까지 밀릴 지도 모릅니다.]

마엘른이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사실 수한의 생각도 그와 같았다. 직접 와서 상황을 보니, 브종 시는 물론 바티오 시까지 밀려 세라프의 전당이 파괴당할 가능성이 컸다.

그 전에 수를 내던가, 아니면 지구로 귀환해야겠지.

수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생각이 떠오를 듯 말 듯했다.

그것만 잘 잡아채면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원정을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데……

“키잉!”

용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정신 감응도 아니고 육성으로.

뭔가 했더니 새미가 장난스럽게 용이를 잡아챈 것이다.

용이가 급히 몸을 뒤틀었다. 새미의 손을 벗어나 하늘 위로 몸을 날렸다.

새미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기계 괴수 시체 위로 올라갔다. 그 위에 서서 보란 듯이 홰를 쳤다.

[깜짝 놀랐잖아!]

“호호, 우리 용이, 놀랬어?”

새미가 깔깔 웃었다.

용이가 날개를 퍼덕거렸다. 약을 올려보려고 엉덩이를 흔들지만, 새미는 귀엽다며 웃기만 했다.

그걸 보면서, 수한은 문득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가브낙 행성.

피난민들을 데리고 이동할 때 어떻게 했더라?

기계 괴수를 움직였었지. 피난민들을 거기 잔뜩 태우고 수천 킬로미터를 횡단했더랬다.

당시에는 수한의 능력이 부족해서 단순히 탈것으로 써먹는 게 최선이었다. 마지막에는 간단한 공격 정도는 가능해졌지만, 별로 유용하진 않았고.

지금은 어떨까?

이시테에 의해 강제로 A급 정신 계열 능력을 가진 게 아니라, 본연의 능력이 A급이고 조종을 보조할 용이도 있는 지금이라면?

용이에겐 기본적으로 기계 장비와 융합하고 변형하여 통제하는 능력이 있다. S급일 때도 그랬는데, SS급이 된 지금은 어떨까?

드디어 퍼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맞춰졌다.

기계 괴수를 직접 조종해서 다른 기계 괴수를 사냥하는 것.

수한이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다만 아직 한 가지가 모자랐다.

동력핵.

원정팀이 확보한 기계 괴수 시체는 세라프 종족에게 동력핵이 적출된 상태였다. 그것만 가져와 수리를 하고, 용이와 수한이 기계 괴수를 장악하면 조종이 가능해지지 싶었다.

다음날 날이 밝는 대로 석구와 의논을 했다.

석구가 신중하게 얘기를 듣더니 그럴 듯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해봅시다. 일단 성공하면 가브낙 행성처럼 강력한 무기를 얻는 거 잖아요.”

“제가 세라프 종족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전 여기 남아 있겠습니다. 기계 괴수 조종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전제로, 뭔가 더 좋은 방법이 있나 생각해 보지요.”

새미, 마엘른만 데리고 브종 시로 들어갔다.

세라프들이 수한의 이야기를 듣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기계 괴수 조종이라……]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패한다 해도 손해날 것은 없습니다. 혹시 동력핵을 벌써 쓰신 건 아니지요?]

[남겨놓았다. 하긴 기계용이 그대에게 있으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잘 해 보아라. 우리도 그대를 응원하겠다.]

세라프들은 수한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피니르아는 만약을 대비해 브종 시에 남았다. 헤이시가 수한을 따라 야영지로 왔다.

기계 괴수 시체는 야영지 중앙에 쌓아놓은 상태.

ATV에 실으면서 조각조각 해체했었는데, 지금은 원형에 가깝게 배열해 놓았다. 조립한 것은 아니고, 살짝 덧대 놓은 것에 불과했다.

피니르아가 동력핵을 꺼냈다.

흉부의 뻥 뚫린 구멍에 그걸 집어넣었다. 그 위에 손을 얹고 나직이 주문을 외웠다.

피니르아의 하얀 손에서 하늘빛 광채가 뽀얗게 일어났다.

빛이 동력핵으로 스며들었다. 희미한 빛을 뿜던 동력핵이 나직이 진동을 일으켰다. 새어나오는 빛이 점차 강해지더니, 이내 기계 괴수의 몸 전체를 장악했다.

다음으로 기계 괴수의 머리쪽으로 다가갔다.

주먹을 들더니 머리를 가볍게 쳤다. 순간 청색의 번개가 기계 괴수의 전신을 관통했다.

피니르아가 수한에게 말했다.

[기계 괴수의 인공지능을 완전히 초기화했어요. 이제 한번 시도해보세요.]

수한은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용이에게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했다. 용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계 괴수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기이잉, 기잉.

그 작은 몸에서 묘한 기계음이 들렸다.

용이는 갈라진 틈을 통해 기계 괴수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뭘 하는지 자꾸 기이한 소음이 들렸다.

이윽고 기계 괴수가 변형되기 시작했다.

은빛이던 몸이 까맣게 물들었다. 몸 전체에 용의 비늘 같은 문양이 떠올랐다. 수십 조각으로 토막 났던 부품들이 저절로 맞춰지며 조립되기 시작했다.

수한은 그것을 보고 씩 웃었다.

생각대로 된 것이다.

피니르아가 인상적이라는 듯 기계 괴수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대에게 원형 기계용을 맡겼을 때, 사실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모든 우려가 불식되는 것 같습니다. 대단합니다.]

[아직은 모르지요. 기계 괴수를 장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운용만 가능해져도 됩니다. 여러분이 도시를 지켜주면,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기계 괴수에게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피니르아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용이가 기계 괴수를 장악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오전이 다 지나 해가 하늘 높이 떠오르도록 기계 괴수의 몸에서 기계음이 울리고 있었다.

반면 많은 것이 변했다.

겉에 아예 비늘이 생겼다. 원래는 없던 4개의 다리가 생기고, 새의 머리는 용의 것으로 바뀌었다. 날개도 깃털 대신 피막을 덮어씌운 것처럼 변모했다.

서양에서 말하는 드래곤.

영락없이 그 형상이었다. 용이의 평소 모습을 크게 확대시키면 저 모습이지 싶었다.

“크아앙!”

장악이 끝나자, 거대 기계용이 크게 울부짖었다.

소형 비행형 기계 괴수를 기반으로 하여 탄생한 기계용.

위압감이 상당했다. 전신이 시커매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입에는 광선포가 숨겨져 있고, 날개에 미사일 발사대가 달려 있었다. 배에는 폭탄이 저장되어 있어 공중 폭격도 가능했다.

원정팀이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대단하네요!”

“진짜 성공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 기계용, 알고 보니 엄청난데요?”

과연 절대 등급이라고 할까.

기계용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어째 좀 부실하다. 네 개의 다리로 지탱하여 일어서는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잘 되는 거냐?]

[아직 통제 능력이 부족해. 이건 너무 커!]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기계용에게 성좌를 걸어주었다. 흰 빛이 허공을 타고 날아가 기계용의 머리를 맞췄다.

그러자 움직임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날갯짓을 하자, 비행용 엔진이 가동되며 가볍게 허공에 뜨기까지 했다.

용이가 수한의 정신에다 대고 재잘거렸다.

[우와, 이거 좋다! 계속 써 줘!]

[그래, 알았어.]

성좌는 계속해서 사용하면 끊이지 않게 이어나갈 수 있었다. 질라 행성에 있는 동안은 수한이 기계용의 등에 계속 타야 할 듯했다.

용이도 수한의 그런 생각을 읽었다. 아예 자기 머릿속을 개조하더니, 이마 안쪽에 수한이 앉을 수 있게 좌석을 배치했다.

[창문도 만들어. 개방할 수 있게 하면 더 좋겠다. 그래야 내가 도와주고 그러지.]

[알았어.]

직접 들어가본 뒤, 몇 가지를 지시했다.

그러자 용이는 수한의 요구대로 척척 공간을 변형시켰다. 전투기 조종석과 비슷하면서도, 소총을 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 완성되었다.

내친 김에 다른 팀원들이 들어갈 공간도 만들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능력자들은 머리와 목 쪽에, 아닌 사람들은 배에 태웠다.

“이거 좋은데요?”

“이번 원정도 대박입니다!”

리웨르와 다른 질라 행성인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계 괴수의 존재만으로도 무시무시한데, 그걸 즉석에서 변형시켜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내부에 탄 채 전투를 했다간 공격 받으면 곤죽이 될 테니 탑승한 채 전투를 하긴 힘들어도,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기동력이 훨씬 더 좋아지니까.

반면 수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기계용도 훌륭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용아, 벼락불.”

수한의 말에, 기계용이 입에 벌리더니 허공에 벼락을 뿜었다. 강맹한 번개가 명중한 땅 주위를 시꺼멓게 그을렸다.

광선포도 쏠 수 있고, 미사일도 발사할 수 있다. 거기다 수한의 초능까지 더해지니, 가히 전천후 전투 병기라 할 만 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속성 부여를 쓸 수가 없다는 것.

수한의 속성 부여는 아직 총알로만 발현이 가능하다. 1번 더 진화를 하여 발사체까지 확장시킨다면 모를까, 지금은 기계용이 가진 무기로 발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수한의 머릿속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생각을 전달 받은 용이가 기계용을 변형시켰다.

드워프제 마법 소총을 견본으로 했다.

수한이 신안으로 그 구조를 보자, 용이가 구조를 고스란히 복사했다. 마법적인 힘이 빠지긴 하지만, 모자라는 것은 기존 기계 괴수에게 쓰인 개념으로 채웠다.

이윽고 기계용의 전신에 총신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못해도 수백 개.

총알도 만들어 잔뜩 장전해 놓았다. 이제 기계용으로도 속성 부여를 쓸 수가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내부에 숨어 있다가 명령을 내리면 튀어나오는 물건들.

이것으로 거대 기계용이 완성되었다.

본인의 무력에도 신경을 썼다.

초능 점수를 모두 속성 부여에 사용했다.

그러자 특급 속성 부여의 다섯 속성 중 파멸을 제외한 천공, 중화, 즉사, 분화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계용을 통해 시범으로 사용했다.

막대한 힘이 소모되었다. 난사했다간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지치게 생겼다. 아무래도 전투 도중에 상태를 봐서 점사해야 할 것 같았다.

기계용이 완성되니 모두들 자신감이 붙었다. 아예 브종 시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수한은 새미와 함께 용이에 탔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지원 요원 중 소수만 ATV를 끌고 용이의 뒤를 따랐다.

브종 시에 접근하자 난리가 났다.

뿌우웅! 뿌우우우!

여기저기서 나팔 소리가 울렸다. 병사들이 무구를 갖추고 성벽 위로 올라왔다.

기계용 때문이었다.

아마도 기계 괴수 중 하나로 착각한 모양.

수한은 용이에게 머리를 개방할 것을 지시했다. 뿔이 난 머리가 두 갈래로 갈라지자, 수한은 그 사이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병사들이 당황한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수한이 손을 흔들자, 붉고 푸른 빛과 함께 두 세라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공했구나!]

[훌륭합니다. 전투 능력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가볍게 대련을 해보도록 하자.]

피르니아가 검을 빼어들었다.

수한을 제외하곤 모두 기계용에서 내렸다. 기계용이 날개를 펄럭여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브종 시에 피해가 갈 수 있으니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피르니아가 적색 검을 기계용에게 겨눴다.

[시작하겠다.]

적색 불꽃이 으르릉대며 쏟아졌다.

기계용이 힘껏 날개를 쳐냈다. 몸이 꺾이다시피 하며 피르니아의 공격을 피했다. 입을 벌려 피르니아를 향해 광선포를 쏘아댔다.

피르니아는 정신 없이 기계용을 공격했다.

기계용이 확연히 밀렸다. 광선포와 미사일을 총동원하지만 피르니아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마음먹고 싸우면 10분 이내에 결판이 날 듯했다.

피르니아가 냉정하게 평가했다.

[소형 기계 괴수와 1대 1은 힘들겠지만, 시간은 충분히 끌 수 있겠다.]

[저희 원정팀이 더해지면 어떻겠습니까?]

[호오……]

피르니아가 두 눈을 빛냈다.

[알 수가 없다. 50대 50, 장담하기가 힘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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