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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커맨더-126화 (127/254)

< 분전 >

타격 순간, 허리띠가 빛을 뿜었다. 투명한 방어막이 넘실거리며 일어났다.

기계용 조종석에서도 공기 방울들이 뭉클뭉클 솟았다. 만약을 대비해 설치했던 장치 중의 하나였다.

방어막과 공기 방울 모두,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게 수한의 목숨을 구했다.

“쿨럭!”

수한은 피를 토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시무시한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다.

아무리 충격을 줄였다고 해도 피해가 엄청났던 것이다.

의식을 추스르며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발사해!]

타타타타탕!

기계용이 나동그라지면서도 총을 쏘았다.

불꽃이 폭죽처럼 터졌다.

천공 속성이 아니라 분화 속성을 부여한 참이었다.

총알의 비가 곰 기계 괴수를 두들겼다. 방어막이 곳곳에서 사라지면서, 총알이 송곳처럼 곰의 몸에 틀어박혔다.

꽈과과광!

폭음이 연거푸 터졌다.

곰의 금속 장갑에 박힌 뒤, 총알이 맹렬하게 폭발했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시뻘건 화염이 솟구치며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래서 분화(噴火) 속성.

천공 속성보다 관통력은 약해도, 파괴력은 훨씬 강했다.

“구우웅!”

곰 기계 괴수가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피해가 컸다.

금속 장갑이 떨어져 나가며 그 안의 부품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심지어 동력핵이 발하는 빛도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공격하면 쓰러뜨릴 수 있겠다.

그러나 곰 기계 괴수도 무작정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몸을 회전시키며 기계용을 들이받았다.

기계용과 비교하여 1.5배 정도 크고 2배 정도 무거운 몸.

피해가 엄청났다.

굉음이 터졌다.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얻어맞은 부위는 아예 움푹 파였다.

섬뜩한 통증이 전신을 관통했다. 번갯불에 맞은 것 같았다. 하마터면 정신을 놓칠 뻔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곰이 기계용을 올라탔다.

완전히 깔아뭉갠 채 마구 두드렸다. 기계용이 반항하며 총을 마구 쏘아대지만, 늘어나느니 얕은 상처뿐이었다. 더 강력한 공격력이 필요했다.

‘죽는다.’

맹렬한 위기감이 수한을 머리를 쳤다.

곰은 기계용의 가슴 부위를 맹렬히 때리고 있었다. 동력핵이 거기 있으니, 그곳이 약점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때마다 전해지는 충격이 수한의 몸에 계속 누적되었다. 외상도 심하고, 장기도 만신창이로 변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입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방법이 없었다.

초능 점수는 이미 특급 속성 부여에 부여한 참이다. 기술 점수는 넘쳐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잠깐!

기술 점수라고?

지금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술이 하나 있지 않나.

탑승.

노르헤임 행성에서 드워프들과 어울릴 때 생겼던 기술.

탈것에는 모두 적용되는 기술이었다. 지금도 수한은 기계용에 탑승한 상태이니, 이걸 올리면 돌파구가 보이지 싶었다.

탑승 기술을 50까지 올렸다.

군체 의식으로 기계용을 직접 조종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용이가 주, 수한이 보조였는데 역할을 바꾼 것이다.

기계용이 수한이 조종하는 대로 기꺼이 몸을 움직였다.

콰직!

곰의 목 하나를 물었다.

강철로 된 이빨이 곰의 목에 치명상을 입혔다. 입 안에 숨겨진 광선포까지 쏴 버리자, 강한 빛줄기가 곰의 목에 구멍을 하나 뻥 뚫었다.

갑작스런 반격에 곰이 주춤 물러났다.

수한은 기계용의 몸을 뒤집었다.

회전하는 힘까지 더해 꼬리로 곰을 힘껏 후려쳤다. 전력을 다한 공격에, 곰이 세게 얻어맞고는 또 뒤로 물러났다.

절호의 기회.

네 개의 발로 힘껏 땅을 박찼다. 기계용의 몸에 있는 추진장치란 추진장치는 몽땅 사용했다. 기계용이 총알처럼 곰의 반대쪽을 향해 튀어나갔다.

곰이 성을 내며 기계용을 덮쳤다.

그 순간, 수한은 기계용에게 한 가지를 지시했다.

꼬리가 잘렸다.

도마뱀을 보는 것 같았다.

위기의 때, 꼬리만 잘라놓고 본체는 멀찍이 도망친 것이다.

덕분에 곰의 공격은 꼬리만 때리고 말았다. 그 커다란 꼬리가 두 토막이 나긴 했지만, 본체가 직격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

“구우웅!”

곰이 직립하여 선 채 기계용을 겨낭했다.

어깨가 열리더니 광선포 수십 문이 드러났다. 뜨거운 빛줄기가 기계용의 뒤를 쫓았다.

저 정도는 견딜 만 하다.

방어막에 힘을 집중시켜 막아냈다. 방어막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래도 이미 거리를 벌린 이상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기계용은 안전해졌다.

문제는 수한에게 발생했다.

“쿨럭!”

긴장이 풀리자 정신이 흐릿해졌다.

부상이 너무 심각했다.

기계용과의 연결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몸을 더듬었다.

미드가르드 행성에서 얻어온 세계수의 열매를 먹으려는 거였다.

그런데 안 된다.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두 팔의 뼈가 몇 조각으로 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기계용이 크게 땅을 딛는 순간, 그 충격으로 그만 기계용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말았다.

성좌가 강제적으로 취소되며 기계용이 곤두박질쳤다. 하늘을 날다 말고 땅바닥에 쑤셔박히자, 전신의 관절이 일제히 아우성을 쳤다.

“크아앙!”

소리를 지르며 일어서려 하지만 불가능했다.

이미 한계 상황.

누적된 피해로 더 이상 기동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수한에게 도움을 받지도 못하는 바에야.

곰도 그것을 눈치챘다.

무감정한 얼굴을 한 채 조금씩 조금씩 다가왔다.

쿠웅, 쿠웅, 하는 대지의 울림이 기계용의 골조 속까지 파고들었다. 수한은 맑은 선홍색 피를 토했다.

수한이 속성을 부여했던 총알도 바닥났다.

기계용이 입을 벌려 광선포를 쏘았다. 미사일도 날렸다.

소용 없는 짓.

곰이 또 검은 구름 같은 벌레들을 사출했다. 그것들이 곰의 전면을 가로막았다. 광선포는 산란시키고 미사일은 직접 몸으로 막아 터뜨렸다.

몸이 온전하다면 벼락불이라도 쏴댈 텐데.

수한은 좌석에 앉은 채 안전벨트를 멨다.

그냥 죽어줄 수는 없지.

용이에게 속삭였다.

[준비해.]

[응!]

이내 곰이 돌진했다.

그 큰 몸이 순식간에 확대되었다.

수한은 있는 힘껏 부르짖었다.

[지금!]

기계용의 머리와 목이 분리되었다.

머리에 달린 추진장치가 거세게 불을 뿜었다. 짜부라지는 듯한 압박감과 함께, 기계용의 머리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꽝!

곰이 기계용의 몸통을 들이받았다.

가슴 부위의 금속 장갑이 산산히 깨졌다. 동력핵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곰이 그걸 움켜쥐고 빼내자, 그때까지 살아 움직이던 기계용의 몸이 움직임을 정지했다.

곰에게선 도망쳤지만, 수한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기계용의 머리에 따로 동력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충전된 힘을 사용해야 하니, 기껏해야 2분에서 3분 정도 나는 게 고작이었다.

“오빠!”

[위험하오!]

새미와 마엘른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기계용의 머리가 한쪽에 착지했다. 피해가 커서 시꺼먼 연기가 물씬 피어오르고 있었다. 심지어 창문도 열리지 않았다.

마엘른이 검을 들어 창문을 잘라냈다. 수한을 끌어냈는데, 상태가 좋지가 않다.

“세상에!”

새미가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전신이 피범벅이다.

팔과 다리가 기묘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허연 뼈가 살을 뚫고 허공으로 삐져나왔다.

숨이 붙어 있는 게 용할 지경.

마엘른이 새미를 일깨웠다.

[열매, 열매를 먹이시오!]

“뭐라고요?”

“열매!”

마엘른이 한국어로 말하자, 그제야 생각이 세계수의 열매에 미쳤다. 허겁지겁 품을 뒤져 세계수의 열매를 꺼냈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는 기적의 성약.

새미가 그걸 수한에게 먹였다. 계속 피를 토해내서 먹지를 못하자, 아예 씹어서 입을 맞춰 흘려보냈다.

원래의 작은 크기로 돌아온 용이가 수한의 옆에 내려앉았다.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주변을 서성이면서, 수한에게 죽지 말라고 울먹였다.

마엘른이 고개를 돌렸다.

쿵, 쿵, 쿵.

땅이 울렸다.

곰이 다가오고 있었다.

피르니아가 늑대 한 마리를 처리하고 다른 늑대를 잡는 중이었다. 조금만 시간을 끌어주면 수한이 금방 부활할 것이다.

마엘른이 새미를 보며 말했다.

“도망!”

그러더니 제비처럼 몸을 날렸다.

검에 시퍼런 기운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그 기운이 안개처럼 흘러내려 마엘른의 전신을 감쌌다.

곰 기계 괴수의 냉혹한 눈이 마엘른을 내려다보았다.

어깨가 열리며 차가운 빛줄기가 꽂혔다.

마엘른는 그걸 몽땅 피했다. 잽싸게 몸을 놀리며 곰에게 접근했다. 피하기 힘들 것 같으면 검에 기운을 집중시키며 쳐냈다.

기계 괴수와 비교하면 개미처럼 작아 보이는 마엘른.

곰이 발을 들어 마엘른을 밟으려고 했다. 마엘른는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했다. 오히려 곰의 발목 쪽을 검으로 한 번 가격했다.

효과는 없다.

그런데 자꾸 알짱대니 신경쓰이는 모양이었다. 곰이 자리에 멈추어 발로 땅을 마구 짓밟았다.

마엘른이 벌어준 천금 같은 시간.

새미는 수한을 안아들었다.

정신을 잃고 있었다. 꽉 껴안은 후 발을 굴렀다. 미드가르드 연수를 가서 받은 신발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새미의 몸이 가볍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수한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부러진 팔다리가 저절로 맞춰졌다. 백지장처럼 새하얗던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끊어질 듯 미약하던 숨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마엘른이 위험에 처했다.

사실 혼자서 곰 기계 괴수를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처음에는 잘 피했지만 곰이 검은 구름을 토해내자 확연히 느려졌다. 본인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힘을 분산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광선포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말았다.

“커헉!”

검으로 방어는 했지만 광선포에 담긴 힘이 너무나 컸다.

검이 단번에 두 동강이 났다.

꼭 거인이 후려갈긴 것 같았다. 마엘른의 몸이 붕 떠서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몇 번이나 구른 끝에야 부러진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일어났다.

마엘른의 눈이 수한을 향했다.

아직 치료중이었다. 더 시간을 끌어야 한다.

검을 움켜쥔 채 돌진했다.

광선포를 피하고 또 피했다.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다시 광선포에 직격당했지만, 오뚜기처럼 몸을 일으켜 곰의 시선을 붙들었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새미까지 끼어들었다. 접근하지는 않고 멀찍이 번개만 떨어뜨렸다. 그것만으로도 마엘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시간이 지났다.

겨우 5분.

하지만 마엘른와 새미에겐 억겁과도 같이 긴 시간이었다. 마엘른는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고, 새미도 뒷일 생각하지 않고 이능을 쏟아낸 까닭에 거의 탈진 상태에 빠졌다.

더 이상은 한계였다.

마엘른는 더 버티지 못하고 후퇴했다. 새미가 번개를 뿌려 마엘른을 지원했다.

새미는 수한을 돌아보았다.

정광이 번뜩이는 눈과 새미의 눈이 마주쳤다.

“아!”

새미가 탄성을 질렀다.

수한이 가볍게 미소지었다.

“고생했어.”

“오빠 괜찮아? 지금 일어난 거야?”

“응. 이제 다 끝났어.”

수한은 전장의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벌어진 격전, 그리고 늑대들과 피르니아와의 전투.

거의 끝나간다.

새는 모두 죽었고, 남은 늑대 한 마리도 막 목이 떨어졌다. 피르니아가 가슴 부위로 움직여 검으로 동력핵을 도려냈다.

수한은 마법 소총을 곰에게 겨누었다.

비록 거대 기계용은 기동이 정지되었지만, 수한에겐 속성 부여 능력이 남아 있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순전히 시간을 끌기 위한 공격.

실명 속성과 마비 속성의 조합이었다.

방어막은 격전 끝에 모두 분쇄된 상태. 두 가지 속성을 담은 총알이 곰의 머리에 박혔다.

기계 괴수의 탐지 장치가 일순 기능을 정지했다. 동력 장치도 멈추며 잠깐 마비되었다. 비록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고, 금방 기능이 재개되었지만 수한이 탄창 3개를 몽땅 연사했다는 게 문제였다.

황금 같은 시간이 덧없이 흘러갔다.

[수고했다.]

[이제 저희가 맡겠습니다.]

하늘과 땅으로 갈라져 기계 괴수들을 상대했던 두 명의 세라프.

그들이 도착했다.

그것으로 전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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