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27화 (128/254)

< 유인 작전 -1- >

격전이 지나가고 뒷정리를 했다.

세라프들이 당연하다는 듯 동력핵을 모두 가져가려고 했는데, 수한이 제동을 걸었다.

곰 기계 괴수의 시체를 온전히 넘겨달라는 것.

이유는 간단했다.

이걸로 새로운 거대 기계용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야 앞으로 기계 괴수들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논리였다.

세라프들이 자기들끼리 의논을 하더니 거기에 동의했다.

[좋다. 네 뜻에 따르겠다.]

[좋아요. 대신 앞으로도 많은 활약을 부탁합니다.]

남은 것은 소형 기계 괴수의 시체 2개.

오크 원정대와 종류별로 1개씩 나눠 가졌다. 타이탄 원정팀에 비하면 별로 활약을 못한 참이라, 그것만으로도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고맙소. 위대한 전사들이어. 그대들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리오.]

[아닙니다. 여러분도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한은 세계수의 열매를 복용해서 몸이 쌩쌩했다. 그런데 용이는 그렇지가 않았다.

눈을 감고 몸을 둥글게 말더니 아예 의식이 끊겼다. 군체 의식으로 연결도 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세라프들에게 문의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깨어날 거라고 했다.

어차피 당장 활동을 재개할 수는 없었다. 마엘른은 물론, 원정팀 중 부상을 입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지구로 호송해야 할 환자도 있었다.

용이와 융합했던 기계 괴수는 더 써먹을 수가 없었다. 전투의 여파로 대부분의 부품이 뭉개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동력핵은 세라프들이 도로 가져갔고, 그나마 온전한 것만 몇 개 건졌다.

“저흰 바티오에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부상자와 기계 괴수 부품을 실은 ATV들이 남동쪽으로 달렸다.

지구로 부상자들을 보내고 돌아오려면 최소 사나흘은 걸릴 것이다. 그 동안 용이가 깨어나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한편, 마엘른의 상태를 살폈다.

전신에 붕대를 감아 놓았다. 약은 쓸 수가 없었다. 종족 자체가 다르니, 마엘른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야 했다.

세계수의 열매를 쓰려고 했는데, 마엘른이 스스로 거부했다.

[괜찮겠습니까?]

[걱정 마시오.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요. 이 정도의 부상에 귀한 세계수의 열매를 쓸 수는 없소.]

피를 몇 번이나 토한 것치고는 얼굴색이 괜찮았다. 알고 보니 오크들에게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오크 전래의 주술이 효과를 발휘한 것.

수한은 곰 기계 괴수와 싸우느라 보지 못했지만 오크들도 제법 활약을 했다. 특히 폭주시킨 코뿔소로 기계 괴수를 들이받으면 코뿔소의 몸에 새겨진 문양이 옮겨가 기계 괴수를 속박했다. 그 덕에 늑대 두 마리를 더 빨리 잡은 것이다.

오크들이 원정팀의 부상자들을 치료해주었다. 경상자들만 치료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금방 호전되었다.

“이거 다른 분들도 지구로 보내지 말고 치료를 받을 걸 그랬네요.”

“다른 종족이라 안 되는 줄 알았죠.”

그러는 사이, 현재 상태를 점검했다.

기계 괴수 사냥으로 얻은 경험치가 크긴 컸다.

무려 10레벨이나 올랐다. 거기다 근력, 민첩, 재주가 1씩 상승했다. 기계용에 직접 타고 전투를 벌인 영향이 큰 것 같았다.

기술도 하나 생겼다.

제작 항목, 기계용 제작.

사실 만들긴 용이가 만들었는데, 조종석과 총에 참견을 좀 했더니 이런 기술이 생성된 듯했다.

앞으로 유용하게 써먹을 기술이었다. 기술 점수를 여기에 더 부여했다. 정확히 26점이 남아 있었는데, 기계용 제작 기술을 20 레벨로 맞췄다.

하루 뒤 용이가 깨어났다.

수한을 보더니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렸다.

[배고파, 밥 줘!]

수한은 자신의 힘을 용이에게 주입했다.

예전보다 용이의 용량이 커졌다. 수한이 힘을 모두 부었는데도 절반도 차지 않은 것 같았다. 결국 휴식과 주입을 몇 번 반복하자 용이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용이를 데리고 브종 시 앞 벌판으로 나왔다.

“아, 수한씨!”

수한을 발견한 지원 요원이 손을 흔들었다.

벌판에 원정팀의 야영지가 있었다.

원래는 브종 시에 묵어도 되지만, 기계 괴수 시체를 지키기 위해 외따로 떨어져 나온 것이다.

무려 두 마리.

수한은 그 웅장한 자태를 보고 씨익 웃었다.

지원 요원도 수한의 마음을 짐작하고 미소를 지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가브낙 행성보다 더 대박이에요.”

“그러게 말입니다.”

“게다가 저 용이, 지구로 가져갈 수도 있는 거잖습니까? 다른 행성도 가능하고요.”

“돈이 많이 든다는 것만 빼면 가능하죠.”

“키잉!”

자기 얘기를 하는 줄 알았는지, 용이가 의기양양하게 울음소리를 냈다. 수한은 녀석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어 주었다.

수한은 용이를 들고 기계 괴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새미가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냈다.

“기계용 만들려고?”

“응. 이번에는 곰으로 만들어 보려고 해.”

“곰으로? 그럼 못 나는 거 아냐?”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아.”

대신 근접 전투 능력은 엄청나게 상승하겠지.

예전 같았으면 용이의 처리 능력이 부족해서 중형 기계 괴수를 변형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에 수한의 힘을 빨아들이는 것을 보니, 충분히 가능할 듯했다.

지원 요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비행 능력을 포기하는 건 좀 아깝지 않습니까? 여차하면 바티오까지 도망칠 수도 있는데요.”

“한 번에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으니까요. 갈아 끼울 생각입니다.”

“갈아 끼운다니요?”

“미리 변형시켜 놓고, 상황에 따라서 조종하면 되지요. 비행 능력이 필요할 때는 비행 능력이 있는 걸 쓰고, 전투에 들어갈 때는 중형 기계 괴수에서 변형시킨 걸 쓰면 되니까요.”

처음 써먹었던 기계 괴수가 거의 금속 무더기만 남긴 했지만, 용이의 변형 능력을 이용하면 어떻게 되지 싶었다.

그런데 수한의 구상은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곰 기계 괴수를 변형시키려고 시도했는데, 용이가 기계 괴수를 변형시키다 말고 뻗어버린 것이다.

[이거 너무 커!]

수한도 달라붙었다.

용이에게 계속 힘을 주입했다. 성좌도 걸었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변형을 완료할 수 있었다.

수한의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탓에, 더 정교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특히 머리 부분의 조종석에 공을 들였다. 단순히 비상 탈출만 가능한 게 아니라, 유사시 머리 부분만 분리해 장거리 비행도 가능하게 했다.

기관총도 사방에 배치했다. 첫 번째 기계용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들이었다. 미리 총알에 속성 부여해 놓아서, 이제 총알이 부족할 일은 없을 터였다.

용이 혼자 기계 괴수를 조종할 수는 없었다. 수한이 같이 타야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군체 의식으로 수한이 직접 조종해야 전투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무려 중형 기계 괴수인데.

수한과 용이가 합쳐져 세라프 한 명 분을 하는 것이다.

덕분에 다른 기계 괴수 변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용이는 지금 변형시킨 기계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추가로 변형시켰다가 전투에서 힘을 못 쓰면 큰일이었다.

재정비 시간.

수한은 기계용 조종을 연습했다.

탑승 기술 덕에 수한이 직접 조종하면 괜찮게 움직였다. 상당히 민첩했고, 광선포나 기계 벌레도 사용할 수 있었다.

바티오로 갔던 지원 요원들이 돌아왔다. 부상자들도 모두 나았다. 세라프들도 재충전을 끝냈는지, 생생한 얼굴을 하고 원정팀을 방문했다.

[크로시아를 수복하려고 한다.]

크로시아는 이 대륙을 지배하는 크롱 제국의 수도였다.

수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크로시아를요? 거긴 이미 폐허가 됐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 단장님이 그곳에 고립되어 있다. 크롱 제국의 황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그 분을 구하면 질라 행성을 정상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천천히 전진했다.

여기 모인 세 종족 중에서는 오크들의 이동 속도가 가장 느렸다. 그들의 속도에 맞췄다. 급할 것 없이 주위를 경계하며 나아갔다.

세라프 중 한 명이 계속 정찰을 했다.

얼마 전 습격해 왔던 기계 괴수들 말고는 뭐가 없는 것 같았다. 변이체들만 우글거렸다. 개중에는 B급 이상의 고위 변이체도 있어 보이는 대로 사냥을 했다.

시체실을 공간은 아깝지만, 심장만 가져가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쌓이는 심장만 해도 꽤 많았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수한은 마엘른을 찾아갔다.

다른 부상자들은 다 나았는데, 마엘른 혼자 회복이 느렸다.

그럴 만도 했다.

광선포를 정면으로 몇 번이나 맞았으니까. 다른 부상자들은 기껏해야 파편에 맞은 게 고작이었다.

마엘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면 다 나을 겁니다. 다음 전투에도 참가할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번에는 감사했습니다. 마엘른님 덕분에 변을 당하는 것을 면했습니다.]

[그대에게 봉사하기로 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검이 부러졌다고 들었습니다.]

[제 실력이 모자란 탓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계 괴수를 단신으로 몇 분이나 붙잡으시다니, 누가 있어 그런 위업을 또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지구로 돌아가는 대로, 마엘른님께 좋은 검을 한 자루 마련해드리겠습니다.]

[그래주시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수한의 말에 마엘른이 반색을 했다.

좋은 검이라……

과연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원 백화점에 가볼까?

아니면 외계 도검 장인들에게 맡겨도 좋을 것이다. 마침 수한이 인연을 맺은 곳이 있으니까.

노르헤임 행성.

총으로 유명하지만, 검과 창도 이름이 높았다. 그곳에 마엘른을 데리고 가면 좋은 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가격.

얼마나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이 정도는 수한이 사줘야 하지 않겠나. 목숨을 걸고 수한을 구해주었는데.

일단 아쉬운 대로 쓸 검이 필요했다.

마침 패잔병 무리를 만났다.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무리라 브종 시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검 몇 자루를 얻었다. 엘프식 검과는 다른 형태이지만, 마엘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1주일 동안 쉬지 않고 이동했다.

폐허가 된 도시 몇 개를 지나쳤다. 변이체는 많은데 기계 괴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부 대륙 곳곳으로 퍼진 모양이었다.

마침내 크로시아에 도착했다.

크로시아는 드넓은 평원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다. 덕분에 멀리서도 잘 보였다.

수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거의 폐허가 되었는데, 크로시아 중앙만 멀쩡했다.

크롱 제국의 황궁.

둥근 돔 형식의 지붕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버섯과도 같은 탑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상아로 만든 듯한 하얀 성벽이 황궁을 감쌌다.

유독 특징적인 게 하나 보였다.

황금빛 방어막.

황궁 중앙에서 도도한 금색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게 우산처럼 황궁 전체를 뒤덮었다. 기계 괴수들이 그 위를 간헐적으로 두드리지만, 방어막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기계 괴수가 많네.”

“그러게.”

무려 10기가 넘었다.

대형 1마리, 중형 2마리, 소형 7마리.

세라프들이 왜 자신들과 동행해서 천천히 가나 했더니, 기계 괴수가 너무 많아서 그랬나 보다.

수한은 머리를 굴려 보았다.

답이 안 나온다.

대형 기계 괴수만 해도 피르니아와 헤이시가 힘을 합쳐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중형 2마리와 소형 7마리가 남는데, 아무리 거대 기계용이 있어도 중형 1마리를 상대하는 게 고작이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제 돈을 쓸어 담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세라프들이 수한에게 다가왔다.

[고립된 이들을 구해야 합니다.]

[기계 괴수를 다 잡을 필요는 없고요?]

[잡으면 좋지만, 가능하겠습니까?]

[힘들죠. 그런데 세라프 분만 구하는 게 아니고 원주민들까지 같이 구하는 겁니까?]

[예.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음…… 알겠습니다.]

저번 가브낙 행성에서 만났던 베르나와 이시테도 행성인들을 구해야 한다고 하더니, 뭔가 목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알았다고 하고 석구와 의논을 했다.

석구가 혀를 찼다.

“민간인들까지 빼내야 된다니 어려운 주문을 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생각을 해봅시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가 않았다.

하늘로 날아들다가는 당장 기계 괴수들에게 걸릴 것이다. 땅굴을 파도 마찬가지. 기계 괴수들의 탐지 장치는 빛 정보나 소리 정보에만 의존하지 않으니까.

결국 원정대를 둘로 나누기로 했다.

유인조와 구출조.

수한은 기계용에 타야 하니 유인조가 되었다. 세라프들도 유인조에 합류시키기로 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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