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 작전 -2- >
마엘른의 거취.
마엘른은 수한을 호위하기 위해 유인조에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다른 이들은 마엘른이 구출조에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한 것이다.
“마엘른님은 공격 능력과 방어 능력 모두 뛰어나고, 민첩한데다 감각도 예민한 분입니다. 잠입이나 요인 경호에 최적화된 셈이죠.”
“저도 마엘른님이 구출조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긴 수한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수한은 기계용에 계속 타고 있을 테니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은 적었다. 이번 용이는 중형 기계 괴수를 변형시킨 것이라서 다른 기계 괴수들에게 잘 밀리지 않을 테고.
그 얘기를 하자, 처음에는 마엘른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수한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
수한은 마엘른을 좋은 말로 설득했다. 한동안 설득한 다음에야 마엘른이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눈 뒤, 바로 작전을 시작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수한은 기계용을 일으켰다.
기이이잉.
전신의 관절이 움직이며 묘한 소리가 났다.
크로시아와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그래도 기계 괴수나 기계용의 무기가 충분히 닿는 거리였다. 일격에 끝장낼 수는 없으니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뿐.
[준비 됐다.]
[시작하세요.]
세라프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모두 자기 자리에 잘 숨어 있었다. ATV에 탑승한 사람도 많았다. 오크들은 진작 코뿔소에게 주술을 걸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지 오래였다.
수한은 기계용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멀리 기계 괴수들이 보였다.
그 중 대형 기계 괴수에게 시선을 맞췄다.
말을 닮은 하체에, 인간을 닮은 상체를 가진 기계 괴수. 거대한 창을 들고 있는데, 창끝에 타오르는 듯한 불꽃이 형성되어 있었다.
저 창에 걸리면 방어막이건 뭐건 다 아작이 날 것이다.
기계용이 입을 벌렸다.
광선포의 출력이 급격히 올라갔다. 파란색 강렬한 빛이 광선포 끝에 맺히자, 기계 괴수들이 그것을 감지하고 머리를 들었다.
쭈앙!
강렬한 빛줄기가 뻗어나갔다.
대형 기계 괴수가 반응했다.
방어막에 힘을 집중시키자, 광선포가 간단히 막혔다. 애초에 원거리 공격이 강한 종류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부우웅!”
기계 괴수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방어막을 두드리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원거리에서 몇 번 공격을 날리더니, 쿵쾅대며 쫓아오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중형 기계 괴수 1마리와 소형 기계 괴수 3마리. 황궁 안에 있는 세라프를 의식하고 그만큼 남은 것이다.
수한은 기계용의 몸을 돌렸다.
네 발로 빠르게 달렸다. 음속까지 발휘하여, 미리 정해 두었던 산 위로 올라갔다.
난데없는 횡액에 산의 동물들이 몸살을 앓았다. 새들이 까맣게 하늘로 날아오르고, 놀란 길짐승들이 나무 틈에서 뛰쳐나왔다.
기계 괴수들이 그 뒤를 쫓았다.
원거리 공격이 날아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부 방어막에 차단당했다. 피해가 클 것 같으면 몸을 날려 피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근접전으로 결판을 봐야 했다.
수한은 앞쪽의 골짜기를 눈여겨보았다.
두 세라프가 숨어 있는 곳.
그곳으로 질주했다.
수한이 탄 기계용이 골짜기를 통과하기 무섭게, 기계 괴수들이 계곡에 접어들었다.
[지금!]
벼락과도 같은 호통 소리가 들렸다.
땅속에 숨어 있던 피르니아와 헤이시가 지표면을 뚫고 뛰쳐나왔다. 자기들 머리 위를 지나는 기계 괴수를 비호처럼 덮쳤다.
완벽히 은신한 상태에서 가한 일격.
기계 괴수 2마리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동력핵이 있는 흉부에 상처를 입어, 움직임이 상당히 둔해진 것이다.
그러나 기계 괴수들의 전력이 여전히 우위에 있었다.
쌔액!
세라프들을 향해 대형 기계 괴수가 창을 휘둘렀다.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황급히 피했다. 한두 번만 더 추가 공격을 했으면 기계 괴수 두 마리를 완전히 침묵시켰을 텐데, 아쉬운 대목이었다.
기계 괴수들이 정지했다.
광선포와 주포를 쏘아대고, 미사일을 새까맣게 날렸다. 어떤 기계 괴수는 일종의 중력장을 형성시켜 세라프들을 잡으려고 했다.
세라프들이 여기서 잡히면 만사가 끝.
수한은 몸을 돌렸다. 기계용이 가지고 있는 모든 화력을 개방했다. 광선포와 미사일을 쏘는 한편, 미리 제작해 놓았던 기관총을 갈겼다.
계곡 전체에 연막이 어지럽게 피어올랐다. 더구나 기계 괴수 6마리 전부에게 실명을 걸었다. 그 바람에 기계 괴수들이 조그마한 세라프를 포착하지 못하고 부산을 떨었다.
기계 벌레도 날렸다. 시꺼먼 구름 같은 게 기계 괴수들의 관절에 달라붙었다. 그 덕에 움직임이 확연히 느려졌다.
[얼른 나오세요,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세라프들이 계곡을 빠져나왔다.
기계 괴수들은 그것도 모르고 광선포를 사방으로 날려댔다. 몇 분이 지난 다음에야 세라프들이 도망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시 기계용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막 계곡을 벗어나려는 때, 두 번째 함정을 발동했다.
종족 특유의 기법으로 은신하고 있던 오크들이 전신이 붉게 물든 코뿔소를 내보낸 것이다.
“꾸어어엉!”
“쿠오오!”
코뿔소들이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돌진했다.
기계 괴수들이 한 번 코뿔소들을 보았다. 그러더니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무시하고 용이를 추격했다.
완벽한 실수.
코뿔소들이 기세 좋게 기계 괴수들을 들이받았다.
전신에서 빛나던 붉은 광채가 기계 괴수들에게 옮겨갔다. 주술적인 힘이 기계 괴수들의 전자 장치를 교란시켜, 잠깐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번씩 들이받은 코뿔소들이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몸을 돌려 부리나케 도망쳤다.
[공격!]
도망치던 셋이 몸을 반전시켰다. 피르니아만 자신 있게 돌진하고, 헤이시와 수한은 원거리에서 공격했다.
숨어 있던 이능력자들도 나섰다.
새미가 두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세상이 어두워지더니, 번개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미 유도 속성을 꽂아놓은 상황.
목표는 중형 기계 괴수였다. 피르니아도 하얗게 빛나는 그 녀석에게 돌격했다.
세라프 둘, 용이, 그리고 수십 명의 고위 이능력자들.
그들의 공격이 집중되었다.
방어막은 이미 중화된 상태. 금속 장갑이 허무하게 노출되었다. 모든 원거리 공격이 빨려 들어갔다.
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폭음이 터졌다.
광량한 충격파가 대지를 휩쓸었다.
수한은 신안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역시 기계 괴수는 기계 괴수.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이 한 방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벌써 오크들의 주술이 풀리고 있었다.
수한은 마비 속성과 중화 속성 총알을 비처럼 뿌렸다. 그러면서 이능력자들의 정신에 대고 소리쳤다.
[후퇴하세요! 곧 기계 괴수들이 깨어납니다!]
이능력자들이 썰물처럼 빠졌다.
마비가 풀릴 때쯤 또 연막 속성과 실명 속성을 활용했다. 피르니아도 욕심 부리지 않고 제때 후퇴했다.
이쯤 되자 기계 괴수들도 함부로 추격해 오지 못했다.
아까처럼 빠르게 달리지 않고 속도를 늦췄다. 땅거죽을 몽땅 뒤집어엎겠다는 듯 광선포를 땅에 난사하며 다가왔다. 수한도 굳이 빨리 도망치지 않고 그들을 마주 본 채 천천히 물러났다.
한편, 황궁으로 잠입 중인 마엘른와 군체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엘른이 수한에게 속삭였다.
[황궁을 지키던 기계 괴수들이 모두 떠났소.]
[전부 다요?]
[그렇소. 네 마리 모두 그대가 있는 곳을 향하고 있소. 조심하시오.]
[이런, 알겠습니다. 저흰 시간을 끌 테니까 놈들이 모두 자리를 벗어나면 바로 황궁으로 들어가세요.]
[알겠소.]
기계 괴수들끼리 통신을 주고받은 모양이다.
수한은 얼른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렸다.
세라프들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기계 괴수들만 없으면 쥘베르님이 금방 자리를 벗어나실 겁니다.]
[이제 끝입니까?]
[아뇨. 쥘베르님이 보호하던 크롱 제국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이 근처는 마땅한 곳이 없으니, 브종 시가 좋겠습니다.]
[기계 괴수들은요?]
[따돌려야 합니다. 아니면 다 잡던가요.]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어떻게든 도망쳐야 했다.
수한은 즉석에서 한 가지 계획을 짜냈다.
기계 괴수들이 빠르긴 하지만, 하늘을 나는 것보다는 덜했다. 두 세라프와 수한만이라면, 충분히 탈출할 수가 있었다.
계획을 군체 의식으로 공유하자, 모두 알았다는 뜻을 전했다.
[놈들이 옵니다!]
네 마리의 기계 괴수가 저 멀리서 보였다.
퇴로 방향.
앞과 뒤에서 일행을 감싸 포위하려는 의도였다.
그것을 눈치 챈 즉시 한쪽으로 내뺐다. 세라프들도 기계용 근처에서 날갯짓을 했다. 기계 괴수들이 괴성을 지르며 기계용을 쫓아왔다.
이능력자들과 오크들은 반대쪽으로 달렸다. 기계 괴수들은 그들을 본체만체 하고 기계용과 세라프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추격전을 벌이며, 브종 시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산을 몇 개나 넘었다. 강도 건넜다.
그나마 비행형 기계 괴수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진작 따라잡혔을 것이다.
수한은 슬슬 몸이 지치는 것을 느꼈다.
그럴 만도 했다.
성좌와 음속, 두 개의 능력을 계속해서 발휘하고 있었다. 가끔은 속성 부여로 쫓아오는 기계 괴수들에게 마비 속성을 걸기도 했다. 기계용의 탑승감도 좋지는 않아서, 달릴 때마다 충격이 머리끝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괜찮나?]
피르니아가 묻자, 수한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한계가 다가오는 것도 사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두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구출에 성공했소. 이제 브종 시로 이동하겠소이다.]
구출조에 포함된 마엘른.
수한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습니다. 저도 탈출하겠습니다.]
수한은 용이의 몸을 돌렸다.
일시에 화력을 개방하여 쏘아대자 기계 괴수들이 멈칫했다. 자기들도 속도를 줄이더니 광선포와 미사일 같은 것을 마구 발사했다.
수한은 연막과 실명으로 기계 괴수들의 눈을 가렸다. 이젠 익숙해진 까닭에 불과 몇 초 만에 벗어났지만, 아주 잠깐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수한은 세라프들에게 정중히 말했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걱정마라.]
용이의 머리를 변형시켰다.
머리에 난 뿔이 펼쳐지며, 마치 비행기의 날개 같은 형상을 만들었다. 가슴 부위에 있던 동력핵이 자리를 옮겼다. 머리와 목이 분리되며, 숨겨져 있던 추진 장치가 드러났다.
추진 장치가 거세게 불을 뿜었다.
몸통은 버려두고, 하늘 위로 날렵하게 날아올랐다. 탐지장치로 그것을 포착한 기계 괴수들이 원거리 공격을 날렸지만, 수한은 그걸 다 꿰뚫어 보고 요리조리 피했다.
[위험해!]
그런데 헤이시가 갑자기 경고를 날렸다.
뭔가 싶어 뒤쪽을 확인한 수한의 눈이 커졌다.
켄타우로스를 닮은 대형 기계 괴수.
놈이 창을 뒤로 당기고 있었다. 전신에서 푸른 섬광이 튀더니, 벼락처럼 창을 던졌다.
청색 광선이 하늘을 관통했다.
대형 기계 괴수의 투창 자세를 확인한 순간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 청색 광선도 일직선으로 날아오다 말고 궤도가 홱 꺾였다. 비록 몸체를 맞추진 못했어도 오른쪽 날개를 아예 갈아버렸다.
“크윽!”
수한은 신음을 삼켰다.
창에 깃든 힘이 비행체를 뒤흔들었다. 수한도 타격을 입었다. 간신히 정신을 잃는 것은 면했지만, 비행체가 균형을 잃고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심해라!]
세라프들이 도와주었다.
비행체의 몸을 잡고 지탱해주었다. 그러자 비행체가 겨우 균형을 되찾았다. 위험을 감지한 용이가 복구 작업에 들어가서, 아쉽게나마 투박한 날개를 만들었다.
좌우 균형을 조정하자 비행이 가능해졌다. 수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용이가 수한에게 경고했다.
[동력핵에 과부하가 걸렸어. 곧 정지할 거야! 재기동하려면 시간이 걸려!]
[뭐?]
잠깐 당황했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세라프에게 얹혀 날아가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쿵쿵 대는 소리가 귀청을 파고들었다.
던졌던 창을 회수한 대형 기계 괴수.
놈이 비행체를 노리고 달려오고 있었다.
[피해!]
세라프들이 고함을 질렀다.
기계 괴수가 팔을 뒤로 당겼다.
창이 시퍼런 빛을 뿜었다.
팔을 휘두르자, 창이 세상을 관통했다.
“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