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30화 (131/254)

< 용신의 무녀 >

소환 계열 이능력자가 근처에 있는 모양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신안을 사용하고 좌우를 확인했다. 이능력자를 찾으려는 생각에서였는데, 뜻밖에도 전혀 의외의 곳에 이능력자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피난민들 사이의 마차.

이능력자가 저들을 보호하고 있는 걸까?

신안을 더욱 강화해서 살폈다. 진실의 렌즈까지 가동되며, 마차를 가볍게 투과했다.

마차 안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이 두 눈에 담겼다.

지구인으로 치면 20대 초반이나 될까 싶은 나이.

크롱 제국의 기미크 종족이었다. 옅은 청색 피부와 머리 양쪽에 난 두 개의 뿔, 엉덩이 사이 뭉툭한 꼬리가 인상 깊었다.

수한은 내심 깜짝 놀랐다.

B급 이능력자였다.

힘의 결정을 쓴 것도 아니니, 자연 각성자이면서 B급.

더구나 미약하게 외능 계열의 이능도 가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구어어엉!”

소환수가 또 길게 울부짖었다.

왜 저러나 했더니 용이를 발견한 것 같았다.

날개를 휘저어 용이를 향해 날아왔다. 뭘 하나 보자고 용이를 가만히 있게 했더니, 용이의 코앞까지 날아와 날개를 펄럭였다.

용이가 꽤액 하고 입을 벌렸다.

[넌 뭐니?]

[……]

모호한 느낌이 전해졌다.

용 모양 소환수의 주인, 마차 안의 여인도 용이를 발견했다. 뭔가 대답을 하려는데, 정신 계열 이능이 없으니 쉽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여인을 보자 갈등이 되었다.

무려 B급 이능력자였다.

살아남기만 하면 향후 질라 행성을 주도하는 강력한 이능력자가 될 것이다.

더구나 이들도 브종 시를 향해 가는 듯하니, 동행하면 서로 도움이 되겠지.

‘도와주는 게 낫겠다.’

잠시 생각한 후, 결정을 내렸다.

수한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다. 해가 떨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그피난민들과 마주했다.

피난민들이 수한을 경계하여 무기를 들이댔다.

“$#%#&@!”

“^%@*&*&!”

수한은 그들 앞에 섰다.

여태 상공을 날던 용이가 천천히 내려왔다. 날개를 접고 수한의 어깨에 앉자, 피난민들의 눈이 용이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의 눈에 뚜렷한 경악의 빛이 스쳤다. 어떤 이는 무기를 내리고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수한은 피난민들에게 군체 의식으로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히익!]

[괴물이다!]

피난민들이 기겁하는 게 느껴졌다.

익숙해진 반응이었다. 호의적인 감정을 전달하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지구 출신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크롱 제국인들이시지요?]

[그, 그렇다만 너는 누구냐!]

[여러분들의 기준에서는 이계인입니다.]

[뭐라고?]

눈치를 보아하니 아예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해야할까 고민하는데, 마차의 문이 열렸다.

안에 타고 있던 여인이 밖으로 나왔다.

여인은 수한을 쳐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수한이 아니라 어깨 위에 앉은 용이를 주시했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용신이시어! 당신의 자손들을 구원하소서!]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냐?

눈치를 보던 피난민들도 무기를 던져 버리고 엎드렸다. 저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외침을 토하는 게, 죽었다 살아난 아비를 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수한은 금방 사태를 파악했다.

크롱 제국인들이 믿는 용신과 용이가 외형적으로 닮은 모양이었다.

수한은 군체 의식으로 단호한 감정을 실어보냈다.

[저는 당신들이 말하는 용신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구 태생이고, 여기 용이는 헤븐 행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용신의 우리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군체 의식으로 연결된 상태라, 강한 부정이 직접적으로 전해졌다.

피난민들이 흔들리는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여인이 머리를 들었다.

[정말, 정말 아니신가요?]

[아니다.]

여인의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이 맺혔다.

그 자리에 엎드린 채, 망연한 얼굴로 수한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수한은 혀를 한 번 차고 여인을 일으켰다. 주위의 피난민들도 어물쩡 하나둘 일어났다.

일으켜 세우긴 했는데, 여인의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다.

수한은 넌지시 질문했다.

[어디로 가던 중이었습니까?]

[느주브 반도로 가라는 계시를 들었습니다. 그곳으로 가면 구원이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계시?

클로아라는 용신이 정말 있는지도 모르겠다. 느주브 반도라는 지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면.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습니다. 느주브 반도로 가야 해요. 그곳은 기계 괴수들이 모두 잡혀서, 많이 안전해졌습니다.]

사실 확신할 수는 없었다.

원래 그곳을 지키던 피니르아와 헤이시가 죽었으니까. 크로시아를 지키고 있다는 쥘베르가 합류했을지 모르지만, 기계 괴수들이 추격했다면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브종 시를 지나 느주브 반도의 바티오까지 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걸 이야기하자, 여인이 수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투명한 눈 깊이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수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제 마음을 읽으시려는 겁니까? 무례한 짓은 그만 두시죠. 그런 짓을 했다간 칼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칼날처럼 번뜩이는 적의에 여인이 크게 당황했다.

우여곡절 끝에 동행하기로 했다.

용이의 역할이 컸다.

피난민들은 경계심은 버리지 않았지만, 적의를 비치지는 않았다. 수한과 용이를 두려워하면서도 자기들을 어떻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여인이 수한에게 조심스럽게 인사를 했다.

[저는 아르텔라라고 합니다. 용신 클로아님의 무녀로, 퀴미니 지방에서 클로아님에 대해 포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구 행성에서 온 타이탄 공격대 소속 AA급 이능력자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이 녀석은 용이라고 부르세요.]

수한은 마차에 아르텔라와 함께 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한은 아르텔라에게 질라 행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반대로 세라프 종족과 종족 연합, 그리고 제국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한참을 이동하다가, 아르텔라가 손짓을 했다.

“#%$#&[email protected]#.”

크롱 제국어로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하니, 피난민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인근 구덩이 사이로 들어가 숨었다.

아르텔라가 작은 신상을 꺼내더니, 그걸 마차 위에 놓았다. 아르텔라가 그걸 보며 뭐라고 기도를 올리자, 신상으로부터 기이한 힘이 뿜어졌다.

탐지되는 것을 방해하는 능력.

저 멀리 기계 괴수가 지나갔다. 거리도 멀고, 신상이 뿜어내는 힘도 있어서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 가지 재미 있는 점은, 신상의 형태였다.

용이와 비슷했다.

그래서 수한과 용이를 보고 용신 어쩌고 그랬나 보다.

피난민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떠들더니, 수레 곡식 주머니를 꺼냈다. 가장 먼저 아르텔라에게 바치자, 아르텔라도 주머니 하나를 수한에게 내밀었다.

[전 괜찮습니다.]

불에 익혀 먹어도 모자랄 판에, 생식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손사레를 치며 고사했다.

구덩이 밖으로 나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차례 난리를 겪어서인지 피난민들이 더 지친 기색을 보였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사기를 올려줄 필요가 있었다.

“끼에엑!”

마침 새 몇 마리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총을 쏘아 그것들을 잡았다.

천둥 소리가 울리자 피난민들이 움찔 놀랐다. 잠깐 무리를 이탈해서 새를 가지고 돌아왔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웃으며 새를 내밀자, 피난민들이 눈치를 보며 받아들었다.

불을 피웠다.

피난민 중 한 노인이 재주를 부렸다. 흙으로 화덕을 높이 쌓자, 바깥으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된 것이다. 그게 신기해서 수한도 유심히 화덕을 살펴 보았다.

중년 여인 한 명이 근처에서 풀 몇 개를 뜯어왔다. 그걸 불에 넣자, 누린내 하나 나지 않는 먹음직스런 새 구이가 완성되었다.

오랜만에 음식 다운 음식을 본 피난민들의 얼굴에 활기가 감돌았다. 아르텔라도 딱딱하던 얼굴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수한은 그들 틈에 섞여 새 구이를 뜯었다.

제법 크기가 큰 새였다. 덕분에 수한과 피난민들이 포식하고도 조금 남았다.

“$#%#^@!#!”

“#$(***&^!”

새 구이를 나눠먹어서일까.

수한을 보는 피난민들의 얼굴에 호의가 깃들었다. 아직도 어색해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최소한 무서워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들 덕에 이동하는 게 더 편해졌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식사 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더 이상 누린내가 나는 고기나 지나치게 떫고 신 열매를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재료만 구해오면, 피난민들이 알아서 요리를 했다.

“크아앙!”

가끔 변이체가 접근해올 때가 있었다.

원래 피난민들은 변이체가 오든 기계 괴수가 오든 신상을 이용해 숨었다. 아르텔라가 소환수를 통해 그들을 보고 숨자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한이 합류한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용이를 하늘에 띄웠다. 아르텔라가 경고를 하면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기계 괴수면 구석에 숨고, 아니면 수한이 나섰다. 가까이 갈 것도 없이 멀리서 총알만 날렸다.

그렇게 죽인 변이체 중에는 B급도 꽤 있었다. 심장만 도려내어 가져갈 수 있어도 좋을 텐데, 차단막도 하나 없으니 상상만 하고 끝냈다.

그렇게 1주일 정도가 지났다.

처음에는 느리디 느린 속도였지만, 그 만큼 시간이 지나자 피난민들의 발걸음에 힘이 붙었다.

수한이 사냥을 계속했던 게 컸다.

영양이 보충되고, 변이체에게서 안전을 확보했다. 기계 괴수만 피하면 만사형통이었다.

자연히 피난민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반면 수한의 얼굴에는 어둑한 그림자가 깃들어 있었다.

조난 당한지 벌써 1달이 지났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흘러도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피난민들을 재촉했다.

[조금 더 빨리 갑시다.]

[예, 더 서두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크로시아로부터 꽤 멀어져서 그런지 기계 괴수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변이체는 수한이 해결하면 되니 쭉쭉 이동했다. 이제 하루에 40 킬로미터씩은 움직이고 있었다. 앞으로 1주일 정도만 더 가면 브종 시에 도착할 듯했다.

중간에 다른 피난민도 만났다.

다들 헐벗고 굶주려 있었다.

그나마 순순히 무리에 합류하는 이들은 양반이었다. 매복하고 있다가 화살을 겨누고 식량을 요구하는 무리도 많았다.

수한은 도적들을 가차 없이 쫓아냈다.

동정심 때문에 이들을 돕는 게 아니었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앞날을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돕는 거였다.

당연히 도적들까지 도와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남동쪽을 향해 계속 걷는데, 수한이 이끄는 무리의 수가 점점 불어났다. 처음에는 기껏 수십이었는데, 이젠 거의 1천에 육박하는 대규모 무리가 되었다.

그러자 범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폭행, 강간, 살인 같은 강력 범죄.

피난민들은 범죄를 저지른 자를 수한에게 데려왔다. 현재 수한의 무력이 이 무리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수한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저 자가 너를 강간하고 폭행했다는 거냐?]

[예. 사악한 범죄자에게 용신의 분노를 내려주십시오!]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원독 어린 눈빛을 했다.

남자가 항변했다.

[저 계집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다 거짓말입니다! 제가 사냥한 뿔토끼를 받는 대신 한 번 자기로 했으면서, 뿔토끼를 받으니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절 사기꾼 취급하면서 내쫓으려고 했단 말입니다!]

[거짓말입니다.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여자가 악을 썼다.

수한은 잠자코 둘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진실을 얘기하고 있었다. 남자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아르텔라가 옆에서 속삭였다.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네요.]

남자의 정신 깊숙한 곳에 시커먼 어둠이 일렁였다.

원래 강력범죄와 인연이 깊은 족속인 듯했다.

수한은 남자를 추방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끝냈다.

본인이 외계인이 아니고 크롱 제국인이었다면 추방 정도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태형, 혹은 사형까지 고려를 했겠지. 하지만 수한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이었다. 직접적인 처벌을 하는 것은 좀 난처한 처지였다.

차라리 이렇게 흑과 백이 확연히 구분되는 사건은 처리하기가 쉬웠다.

문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호한 사건들.

별별 사건이 다 일어났다. 그때마다 수한은 머리를 싸맸다.

기껏해야 1천 명 정도의 무리. 그들을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브종 시까지만 데려가면 수한의 일이 끝난다. 그런데도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지 몰랐다.

대신 수한도 얻은 게 있었다.

기술이 새로 생긴 것이다.

집단 항목.

무리 통솔, 분쟁 조정.

기술 점수를 대부분 써버린 뒤라 이 기술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두 기술이 생긴 다음에는 확연히 나아졌다. 피난민 무리를 더 잘 다스릴 수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브종 시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거 이상하다.

아르텔라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수한을 돌아보았다.

[이곳이 안전한 곳인가요?]

수한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불과 수십 일 전만 해도 기계 괴수들의 공격을 잘 방어해냈던 곳이다. 피난민들이 모여 들어 북적거렸고, 치안이 살아 있어 도시 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냐?

브종 시가 있던 자리.

이젠 아무 것도 없었다.

시꺼멓게 무너진 폐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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