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34화 (135/254)

< 드라코 협회 >

제국의 무기라고?

수한의 눈이 커졌다.

다시 말해서, 레벨 업 도우미라는 얘기 아닌가.

조심스럽게 수정을 받아들었다.

수정에 저절로 금이 갔다.

팍 하고 부스러지더니, 그 안에 봉인되어 있던 글자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글자들은 허공을 얼마 동안 부유했다.

그러다 수한의 왼쪽 손목에 설치된 레벨 업 도우미를 감지했다.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주춤거리다가 천천히 손목에 가까워졌다.

이윽고 수한의 손목 위로 내려앉았다.

손목 위에 글자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한 문양 수십 개가 생겼다. 문양이 계속해서 변화하더니, 금세 안정화되며 수한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종의 레벨 업 도우미 흡수 완료.]

[레벨 10 상승.]

[모든 능력치 1 상승.]

[초능 여유 점수 10 확보.]

[병사 계급으로 진급.]

저번에 레벨 업 도우미를 흡수했을 때와 별다를 게 없다.

기껏해야 시민 계급에서 병사 계급으로 오른 것 정도.

내심 실망스러움을 느낄 때, 이 글자들이 사라지며 새로운 글자가 나타났다.

[현재 흡수한 레벨 업 도우미는 8익급입니다. 현상금이 걸려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전자 정보를 기록합니다.]

8익급이라는 얘기가 또 나왔다.

그런데 현상금?

안타깝지만 수한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제국으로 찾아가 현상금을 달라고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왜 현상금이 붙지?

자기들끼리도 싸우고 있는 걸까?

수한이 그 얘기를 하자, 쥘베르가 잠깐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하신 게 맞습니다. 우리가 밝혀낸 바로는 제국은 최소한 수십 개 이상의 세력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전쟁을 벌이느라, 우리를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고 있지요. 만약 통일된 집단이었다면 우린 진작 다 멸망당했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입맛이 썼다.

쥘베르가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했다.

[제국의 무기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조만간 제 선배님 중 한 분이 찾아가실 겁니다. 저도 궁금한 게 많지만, 그대에게 질문을 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대도 궁금한 게 많을 텐데, 제 선배님이 찾아오면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8익급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는데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뭐 상관 없었다.

수한도 대충 눈치는 챘으니까.

레벨 업 도우미로 개발할 수 있는 초능 8개.

아마도 이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2익급이면 초능 2개를 개발할 수 있고, 4익급이면 4개를 개발할 수 있겠지.

쥘베르는 다른 물건 두 개도 수한에게 건넸다.

시계와 목걸이.

상당히 화려한 물건이었다.

시계는 손목에 차는 형태였다. 재질을 알 수 없는 까만 줄이 달려 있고, 몸통은 금색과 은색이 어우러져 화려하게 빛났다. 시계 안의 숫자가 세라프 문자로 적혀 있는데, 숫자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듯 무척 아름다웠다.

목걸이는 밤하늘의 별 모양을 했다. 흡사 은하수를 깎아놓은 듯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뒤쪽이 살짝 찐득거리는 게 어디에 붙여도 잘 붙을 것 같았다.

둘 다 전설 등급.

열두 천사의 축복, 우주 모험가의 별.

쥘베르가 설명을 해주었다.

[시계에 보면 초침, 분침, 시침 말고 침이 하나가 더 있어요. 그걸 각 천사에 맞추면 해당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답니다. 그 침이 천사를 가리키는 동안은 계속 유지되니까, 유용하게 쓰실 수 있을 거예요. 또, 그대는 이능 증폭 계열의 이능을 하나 가지고 있죠? 그걸 시계에 부여하면 선택한 축복이 주위 반경 10

미터에 영향을 미쳐요. 효과가 조금 약해지지만, 유용하게 쓰길 바랄게요. 그리고 목걸이는 절대 생존 기능이 붙어 있어요.]

둘 다 굉장히 좋은 거다.

과연 전설 등급, S급 장비라고 할까.

수한은 감사하며 두 물건을 받아들었다. 그 자리에서 시계와 목걸이를 찼다.

쥘베르가 한 마디를 더했다.

[원래는 S급 힘의 결정을 주려다가 요새 구하기 쉬워진 것 같아서 이것들을 선택했어요. 혹시 정 구하기 힘들면 제게 편지를 보내세요. 제가 도움을 드릴 테니.]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수한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할 얘기는 다했다. 기분 좋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피난민 마을로 돌아왔는데, 해야 할 일이 한 가득이었다.

기계용으로 마을 건설에 도움도 주고, 원정팀과 함께 부지런히 변이체 사냥도 했다. 힘의 결정 추출을 시작해야 하니, 재료로 써먹을 변이체 심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모은 심장을 힘의 결정 추출 장치에 집어넣었다.

지구에서 만든 추출 장치보다 확실히 간편했다. 네모난 상자처럼 생긴 추출 장치가 빛을 뿜더니, 이내 선명한 빛이 뿜어졌다.

성공.

E급 힘의 결정이 나왔다.

강체 계열이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피난민 중 한 명을 불렀다. 이능 적성 검사에서 강체 계열 적성이 가장 높고, 종합 적성도 30%를 넘는 남자였다.

힘의 결정을 흡수시켰다.

고통이 심한지 남자가 몸부림을 쳤다. 미리 묶어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건장한 남자 몇 명이 더 달라붙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남자가 눈을 떴다.

[괜찮습니까?]

[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남자가 뭔가 어색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주먹을 꽉 쥔다.

주먹에서 황동색 빛이 번져 나왔다. 빛이 파도처럼 물결치며 남자의 팔을 뒤덮었다.

성공이었다.

“굿! 아주 좋습니다.”

“이제 다 됐네요!”

“아직은 자기 역할을 못하겠죠?”

“최소한 C급은 되어야 합니다. 이제 겨우 E급이에요.”

E급 이능은 그렇게 강하지가 않다.

지금 눈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지금은 갑옷 하나 껴입는 게 훨씬 효율이 좋았다.

그러나 C급 정도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소한 철갑 하나 두른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칼이나 화살은 가볍게 막아내고, 화승총도 막아낼 수가 있었다.

보고 있던 피난민들이 고무적인 표정을 지었다.

무력한 자의 설움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이들이었다.

평화로울 때는 귀족들에게 억압을 받고, 기계 괴수에게 공격을 당한 뒤에는 매일 같이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무력을 갖출 방법이 생긴 것이다.

다음으로 얻은 힘의 결정은 구현 계열.

이번에는 크롱 제국 황실의 황손이 앞으로 나섰다.

성공했다.

황손이 두 손으로 불꽃을 만들었다. 한쪽으로 날리자 폭음이 터지며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것을 확인한 황손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제는 내 세상이라는 듯한 얼굴.

뭐, 착각은 자유니까.

수한은 계속 힘의 결정을 추출했다. E급 힘의 결정을 모두 소모하여 이능력자들을 각성시켰다.

이날 하루에만 총 100명이 각성했다.

그 중에는 아르텔라도 있었다.

이미 B급 이능을 가지고 있으니 안전하게 가자고 B급 힘의 결정을 흡수시킨 참이었다. 그랬더니 엉뚱하게도 A급 소환 계열과 C급 외능 계열 이능이 튀어나왔다.

아쉬운 점은 자주 썼다가는 외계의 존재에게 오염되는 계열이라는 것 정도.

그런데 쥘베르의 의견은 달랐다.

[용신 클로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어쩐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아르텔라가 힘을 빌리는 대상은 본인과 혈통이 닿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초자연적인 존재요?]

[예. 사실 저도 크로시아에 있을 때 어떤 존재의 기척을 느꼈는데, 그 존재의 기운이 아르텔라가 발현하는 이능에서 느껴집니다. 그게 용신 클로아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는 몰라도 아르텔라가 이능을 발현한다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힘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

니까요.]

대단하다.

소환 계열과 외능 계열은 치러야 하는 대가가 큰 대신 매우 강력했다. 동급보다 반 등급 앞선다고 보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그걸 제한 없이 쓴다는 건 정말이지 무시무시했다.

한편, 힘의 결정 흡수에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들은 모두 앓아누웠다. 후유증이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수한은 새미에게 물어보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이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겠지?”

“응! 그런데 우두머리가 없어서 걱정이야.”

“아르텔라님이 해주면 좋을 텐데 안 된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지 뭐. 남의 행성 정치까지 우리가 개입할 수는 없지 않겠어?”

“하긴 그래.”

이제 마무리만 적당히 지어주면 된다.

이능력자들에게 기계의 조작법을 알려주었다. 모두 세라프 언어로 조작해야 하지만, 단어 수십 개 익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모두들 금방 익숙해졌다.

다음날에는 이들이 서툰 솜씨로 기계를 조작했다. 힘의 결정이 잘 추출되었고, 각성한 이들의 이능 인증까지 끝냈다.

수한은 질라 행성 이능력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지금까지 각성한 사람은 총 120여 명.

피난민 출신이 가장 많았다. 70명 정도 되었다.

크롱 제국 황실에 속한 이가 10여 명, 바티오 공작 가문과 세 영주들에게 속한 게 합쳐서 20명은 넘어갔다.

황제가 벌써 손을 쓰고 있었다. 피난민 출신 이능력자들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손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벌써 1/3은 마음이 넘어갔다.

그렇게 피난민 출신 이능력자들이 전부 황제에게 가 버리면 곤란하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거니까.

수한은 그걸 막기 위해 한 이능력자를 만났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가장 처음으로 이능 각성에 성공한 이능력자.

거력 계열이고, D급 힘의 결정을 흡수하는데 성공했다. 이능 적성 검사나 이능 인증에서 나타나는 지표도 좋았다. 지금 각성한 이능력자 중 아르텔라를 제외하고는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들 중 하나였다.

덩치가 큰 남자지만, 수한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당연하다.

수한과 같이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다. 수한이 부리는 기계용을 타고 왔고, 강력한 변이체들을 천둥벼락으로 해치우는 광경도 목격했다.

아무리 자신이 이능력자가 되었어도 그런 위력은 꿈도 못 꿨다. 예전에도 두려웠지만, 이능력자가 된 지금은 더 두려웠다.

수한은 남자를 담담히 쳐다보았다.

덩치에 맞지 않게 겁이 많지만, 그래도 장점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을 끔찍이 생각한다는 것.

타고난 완력이 있어 수한과 만나기 전에도 무리의 대장 노릇을 했다. 머리는 좋지 못해도,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 자기 무리를 잘 꾸려나가고 있었다.

이 정도 재능을 가진 게 이 남자 혼자는 아니지만, 지나치게 권력 지향적이거나 폭력적인 자가 많았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느니, 이 남자를 선택하는 게 나을 것이다.

[예. 트라이벌님이라고 하셨지요?]

[어이쿠, 사자님! 그냥 이놈 저놈 하십시오. 전 흙이나 파먹던 미천한 놈입니다요!]

트라이벌은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수한은 혀를 찼다.

[일어나세요. 질라 행성에서 처음으로 각성한 사람인데, 이렇게 쉽게 무릎을 꿇으면 어떻게 합니까?]

[하, 하지만……]

[당장 일어나세요.]

트라이벌이 쭈뼛쭈뼛 일어났다.

수한은 강하게 사념을 전달했다.

[앞으로 누구 앞에서든 다시는 무릎을 꿇지 마세요. 그게 설령 제국의 황제 앞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예!]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누구 앞에서든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됩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예!]

대답은 잘했다.

수한은 트라이벌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능력자만의 모임을 만들라는 것.

외압으로부터 이능력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초국가적 단체.

지구의 수호자 연맹과 같았다.

수호자 연맹도 처음 시작은 조촐했다. 겨우 수십 명의 이능력자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그러던 게 지금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굳이 트라이벌을 피난민 대표로 국한 지을 필요가 없었다. 이능력자 단체의 발기인으로 내세우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일단 단체가 생기면 그 단체에 생명이 생긴다.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능력자가 늘어날 테고, 그들이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기존 세력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이능력자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열리겠지.

트라이벌은 거기까진 몰랐다. 하지만 앞으로의 자신이 지금까지의 자신과는 다르리라는 사실은 잘 알았다.

자연히 배에 힘이 들어갔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날 바로, 트라이벌이 이능력자들을 소집했다.

대부분은 뉘 집 개가 짖느냐는 태도로 반응했다. 그러다 수한이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부리나케 모여들었다.

이능력자 단체 창설은 어렵지 않았다.

질라 행성인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조합, 혹은 협회.

최근 수십 년 사이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느주브 반도를 중심으로 그와 같은 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특히 유명한 게 바티오의 상인 조합이었다. 느주브 반도를 지배하던 왕정을 전복시키고, 지금과 같은 도시 연합 상태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까.

자연히 크롱 제국의 황실은 우려를 표했지만 대세는 이미 굳어져 있었다. 트라이벌에게만 모든 걸 맡기지 않고, 세 영주 가문과 세 공작 가문을 만나 사전 정지 작업을 끝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드라코 협회.

크롱 제국인과 느주브 반도인, 그리고 다른 종족들 대부분이 용신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용신을 지구에서 뭐라고 하냐고 묻기에 다양한 단어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 중 드라코의 어감이 마음에 든다며 자기네 단체 이름으로 써먹은 것이다.

“이제 다 된 것 같아.”

수한은 새미에게 그렇게 말했다.

새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이들도 잘 살 것 같아. 고생했어, 오빠.”

“고생은.”

지구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원정팀은 진작 귀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한이 운용하던 기계용도 해체해서 지구로 보냈다. 무게만 차지하고 쓸모가 없는 잡철만 좀 남았다.

잡철을 어찌할까 하다가 피난민 마을로 가져갔다.

이제는 드라코 마을이라 불리는 곳.

잡철을 드라코 마을 중앙에 놓은 후, 용이를 이용하여 변형시켰다. 순식간에 근사한 강철용상이 완성되었다.

용상이 완성되자 피난민 일부는 놀라고 일부는 감격하여 무릎을 꿇었다. 크롱 제국인은 물론, 느주브 반도인까지 용신 클로아를 숭배한다더니 생각 외로 파급력이 컸다.

아르텔라가 홀린 듯한 눈으로 용상을 쳐다보았다.

한 발짝, 두 발짝 앞으로 나섰다.

용상을 우러러 보더니, 땅에 쓰러지듯 절을 했다.

그것을 보니 묘한 감흥이 일었다.

수십 년 쯤 뒤에 이곳에 오면,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지 궁금했다.

귀환 준비를 서둘렀다.

벌써 두 달이 훌쩍 넘은 상태.

집이 그리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