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35화 (136/254)

< 계시 >

질라 행성에서 보낸 두 달.

많은 것을 얻었다.

레벨은 360까지 상승했고, 모든 능력치가 1에서 2 정도 올랐다. 위엄은 특히 상승폭이 커서, 4나 올라갔다.

그럴 만도 했다.

참 다양한 경험을 했으니까.

특히 피난민들을 이끌고, 일곱 세력을 중재하여 드라코 협회를 출범시킨 게 컸다.

그러는 와중에 무리 통솔과 분쟁 조정 기술도 모두 9가 되었다. 수한의 목표가 본인 이름으로 공격대를 만드는 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무척 중요한 대목이었다.

외계 취식과 외계 야영도 15까지 상승했다. 1달 간 조난당한 여파였다.

“돌아가자.”

“응.”

ATV에 올랐다.

아직 세 요새 도시에는 세라프의 전당이 없었다. 차원문을 이용하려면 바티오까지 가야 했다.

ATV의 시동을 걸었다.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원정대의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익룡 형상, 약간 투명한 형태.

아르텔라의 소환수였다.

그 위에서 아르텔라가 가볍게 뛰어내렸다.

원정대 앞에 서더니,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지금 떠나세요?]

말은 크롱 제국어로 하지만, 머릿속에서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아르텔라의 이능 중 하나였다.

본인의 말을 어떤 종족에게나 자유자재로 이해시키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예. 저희도 집에 가야지요.]

수한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르텔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따라갈 수 없을까요?]

[예?]

[용신님이 계시를 내리셨어요. 당신의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가 수한님을 도와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수한은 당황한 눈으로 아르텔라를 보았다.

용신의 성지?

아마도 기계 괴수들에게 점령당한 대륙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르텔라가 수한을 돕는다고 해서 그 대륙을 수복할 수가 있을까?

쥘베르의 말을 생각하면 용신은 실재하는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이런 계시를 내렸는지 모르겠다.

수한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아르텔라가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려요. 터전을 잃은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끄응.]

수한은 앓는 소리를 냈다.

상황을 주시하던 새미가 다가왔다.

아르텔라를 보듬으며 일으켜 세웠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네. 제가 수한님을 도우면 3년 내로 성지를 회복할 거라고 하셨어요.]

눈치를 보아하니, 그 계시를 철석같이 믿는 모양이었다.

수한은 고민에 빠졌다.

아르텔라는 A급 소환 계열 이능력자. 거기에 C급 외능 계열 이능도 가지고 있다. 시작이 이 정도이니, 차후 S급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영입한다면 큰 도움이 될 터.

다만 걸리는 것은 용신의 존재였다.

어째서 계시까지 내려가며 아르텔라를 수한에게 붙이려는 걸까?

신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예지 능력이라도 있어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했나?

새미가 수한을 돌아보았다.

“오빠, 어떻게 할 거야?”

아르텔라가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용신 클로아가 어떤 존재인 줄은 모르지만, 최소한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점은 확실했다. 아르텔라를 구해줬을 뿐 아니라, 그의 자손이라는 크롱 제국인과 느주브 반도인 모두 멸종당하는 것을 막았으니까.

수한은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같이 가지요.]

아르텔라의 얼굴이 화악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반드시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아르텔라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번에 바로 데려가기는 힘들었다.

마엘른을 지구로 데려갈 때 그랬던 것처럼, 처리해야 할 행정적 절차가 남아 있었다. 더구나 지구의 미생물에 저항한 예방 접종을 받는 것도 필요했다.

행적적 절차는 별 게 아닌데, 예방 접종이 문제였다.

고민 끝에 쥘베르에게 도움을 받았다.

직접 지구와 헤븐으로 편지를 보내 행정적인 절차를 끝내주었다. 아르텔라에게 강력한 축복도 걸었다. 최소 몇 달 동안은 외계의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약 6개월 정도.

그 시간이 지나면 해제된다고 했다.

[그 전에 세계수의 가지든, 아니면 절대생존 능력이 있는 이능 장비를 마련해 주셔야 할 거예요.]

쥘베르가 수한의 가슴에 달린 장신구를 말했다.

수한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원정대는 먼저 출발한 상태였다.

수한도 ATV를 타고 귀로를 서둘렀다.

밀루에서 바티오까지 거리는 약 이틀.

수한은 거의 쉬지 않고 빠르게 달렸다. 음속까지 사용하여 달리자, 하루가 지나지 않아 원정대를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바티오에 도착했다.

소식을 접한 세 공작 가문에서 수한을 초청했다. 하지만 수한은 단칼에 거절했다. 집이 너무나 그리웠기 때문이다.

세라프의 전당에 들어서자, 붉은 빛이 수한과 새미를 비롯한 원정대를 감쌌다.

[어머!]

아르텔라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충분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놀랐나 보다. 다행히 조금 어지러워할 뿐, 특별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라프의 전당 밖으로 나왔다.

타이탄 공격대 이사 중 한 명이 원정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모두 잘 돌아오셨습니다. 이 차장님! 큰 일을 겪으셨다면서요? 건강해 보이니 다행입니다.”

이사가 수한을 껴안았다.

수한이 생환했다는 소식은 진작 지구에 알렸다. 그로부터 2주가 더 지난 시점이니, 깔루 행성에서 돌아왔던 때처럼 극적인 반응은 없었다.

이후 원정대의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건강한 상태라 이사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아르텔라를 눈 여겨 보았다.

“이 분이 쥘베르님이 말씀하신 무녀분입니까?”

“예. 질르 행성의 용신이 계시를 내렸다고 하네요.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미래에 이 차장님이 질라 행성에 다시 원정을 가서 대륙을 수복하는 거 아닙니까?”

“에이, 설마요.”

“하하, 그냥 해본 소립니다.”

수한은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번 원정 배당금은 통장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

7천억 원.

수한은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 눈을 비볐다.

현실감이 없는 수치였다.

인사부장과의 연봉 협상에서, 옵션을 걸었던 게 큰 역할을 했다.

기계 괴수를 잡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 해당 기계 괴수가 가진 가치의 5%를 받기로 했던 옵션.

수한이 기계용을 타고 잡은 것 중 타이탄 공격대 몫은 대형 1마리와 소형 1마리였다. 이 중 기계용으로 변환시켰던 대형 기계 괴수는 잃어버렸지만, 소형 1마리는 건졌다. 또 동력핵이 없는 기계 괴수 시체도 기계용으로 변형시켜 가져온 게 있고.

비록 세라프 종족이 넘겨준 기계 괴수들은 5%를 받지 못했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워낙 돈을 많이 벌어 이거 혹시 꿈이 아닌지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보았다.

중간에 낙오하지 않았다면 더 벌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S급 힘의 결정이 얼마나 하더라?’

원래는 없어서 못 구하는 물건.

하지만 최근에는 공급이 꽤 원활했다. 잘 하면 2천억에서 3천억 정도로 살 수도 있었다.

타이탄 공격대에서 받을 것도 있으니 S급 능력 3개를 갖출 수도 있는 셈이다.

수한은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S급 이능력자가 되면 충분히 공격대를 창설할 수 있었다. 그 이름만 보고도 이능력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얼마 안 남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웃고 있는 수한을 본 의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수한님, 꽤 오래 입원을 하셔야겠습니다.”

“예?”

“아니, 이 상태가 되도록 뭘 하다 오신 겁니까? 최소 두 달 동안은 병원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주치의가 수한의 상태를 확인하곤 하품을 폭폭 쉬었다.

입원하자마자 각종 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수한이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자, 의사가 흰색 태블릿 PC를 들어 수한에게 보여주었다.

“외계 행성에서 돌아오셨다고 하셨는데, 상태가 심각합니다. 폐에 구멍이 뚫렸어요.”

“예?”

“여기 사진 보면 하얗게 점 같은 것이 보이지요? 이게 외계 기생충입니다. 오른쪽 폐에 아주 드글드글해요. 이수한님은 지금 호흡기 증상을 주로 호소하시는데, 다른 게 아니라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실 폐에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위장관에도 많이 보입니다. 그나마 이수한님이 강건하신 분이라 이 정도 증

상으로 그친 거예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진작 피를 토하고 죽었을 거라나.

쥘베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가 건 축복이 기생충의 활동을 억제한 모양이다. 대신 번식을 막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게 지구의 검사에서 저렇게 모습을 드러낸 거겠지.

병원을 따라온 기한이 걱정 섞인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나을 수는 있는 거죠?”

“일반인이었으면 반드시 후유증이 남았을 겁니다. 하지만 AA급 이능력자이시니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정 안 되면 생명의 열매나 회복의 샘물을 구해서 드시면 되요.”

어쨌든 꼼짝 못하고 병원에 있어야 할 판이었다.

새미나 다른 원정대원들은 괜찮았다. 외계 음식을 먹지 않고, 전투 식량만 먹는 등 철저하게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2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하면 될 거라고 했다.

마엘른은 검사하지 못했지만, 본인 스스로가 느끼기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수한은 마엘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돌아오고 나서 바로 검을 구하려고 했는데 일이 좀 틀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굳이 검을 구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한 입으로 두 말할 수는 없지요. 꼭 좋은 검을 구해드리겠습니다.]

아르텔라는 새미의 병실에서 머물렀다. 그래도 여자라 수한과 같은 방을 쓰기는 좀 꺼림칙했던 것이다.

병원에만 있으려니 답답함을 느꼈다.

할 일이 많지 않나.

S급으로 승급도 해야 하고, 노르헤임 행성에 가서 검도 구해야 하고, 아르텔라가 쓸 세계수의 가지나 그에 준하는 물건도 마련해야 하고, 마엘른처럼 타이탄 공격대와 계약도 체결해야 하고……

정말 뭐가 많았다.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치료 받는 것에 집중해야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2주는 금방 지났다.

새미가 퇴원하기 직전, 뜻하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알바트로스 신입사원 연수 동기들.

영업부의 최동휴, 정보부의 방유미, 가공부의 권준, 연구부의 정지훈.

원정이 활발해져서 요즘 꽤 바쁠 텐데, 정말 뜻밖이었다.

수한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모두들 여기엔 어쩐 일이십니까?”

“수한씨와 새미씨가 입원했다고 해서 왔지요.”

“바쁘실 텐데요.”

“흐흐, 요즘은 그래도 좀 숨통이 트였습니다. 슬슬 제국의 공세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거든요.”

“그렇습니까?”

“예. 새롭게 열리는 차원문도 없고, 추가로 발견되는 행성도 없어요. 이젠 조금씩 정리되는 분위기입니다. 뭐, 상황이 안 좋은 곳은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만.”

수한은 다섯에게 자리를 권했다.

때마침 새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섯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어머, 오셨어요?”

“오랜만입니다, 새미씨!”

“잘 지내셨죠?”

새미를 따라 아르텔라도 들어왔다.

아르텔라는 무감정한 눈으로 다섯을 한 번 쳐다보았다.

이목구비는 지구인과 비슷하지만, 피부는 청색이고 파충류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뿔과 꼬리까지 있으니, 다섯이 아르텔라를 보고 흠칫 놀랐다.

타이탄 공격대의 이사는 아르텔라를 보고도 아무 감정을 비치지 않았지만, 이 다섯 명은 경험이 부족하긴 부족한 듯했다.

유미가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르텔라는 가볍게 답례를 하고 한쪽에 앉았다.

유미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수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질라 행성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아르텔라는 그리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수한과 새미 정도에게만 살갑게 대했다. 다른 사람들은 냉랭하게 대하거나 아예 무시하기 일쑤였다.

서로 인사만 한 뒤, 마엘른까지 해서 9명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알바트로스의 소식을 들었다.

갈태수 사장에 이어 배현애 이사도 S급 이능력자가 되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공격대에서도 S급 이능력자가 속속 나타나고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대한민국에는 S급 이능력자가 9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15명이 넘었다고 했다. 조만간 20명을 넘을 거란 예측도 나왔다.

더구나 기쁜 일이 있었다.

다섯 명 모두 내년에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수한은 솔직하게 감탄을 했다.

“아니, 알바트로스에 취직하신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승진이에요?”

“원래 공격대는 승진이 빨라요. 이직이 잦거든요.”

“그래도요.”

동기들이 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보니 가슴 한편이 따스해졌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신안 때문에 의식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생각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곤 했다. 수한이 잘 나가고 있으니 질투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순수하게 기뻐하며, 건승을 기원해 주었다.

지금만 아니라 나중에도 함께 가도 좋을 사람들.

이윽고 새미가 퇴원했다.

특수 원정 1팀은 특별 휴가에 들어갔다. 최소 1달 정도는 휴식을 취할 터였다.

수한은 시계 바늘을 12가지 축복 중 회복에 맞춰놓고 몸이 회복되길 기다렸다.

그러다 병원 입원 3주가 지난 시점, 병원에 이능력자들이 무더기로 입원하는 것을 보았다.

외계 행성으로 대규모 원정을 떠났던 공격대 중 하나.

중형 기계 괴수 사냥에 실패하고, 부상자가 대거 발생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