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39화 (140/254)

< 헤븐 행성 -1- >

세라프들의 본거지라는 헤븐 행성.

일반인들은 평생 한 번 가보기도 힘들었다. 종족 연합에 속한 행성 중 가장 까다롭게 입성 허가를 내기 때문이었다.

미드가르드 보다 아름답고, 아틀란티스 보다 신비하다는 헤븐 행성.

하크라에 있는 세라프의 전당을 이용해 편지를 보냈다.

출입증을 첨부한 상태였다. 머지않아 답변이 왔다.

사흘 뒤 차원문을 통과하라는 것.

새미가 잔뜩 들떴다.

[우리 진짜 헤븐 행성에도 가는 거야?]

[그렇다니까.]

[그럼 천공성이랑 안개 계곡, 황금 바다도 볼 수 있는 거지?]

[모르겠어. 경매장만 들어갈 수 있는 거면 거기까진 못 가잖아. 차원 경매장은 날개 요새에 있으니까.]

[그래도 가봤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그래.]

하크라에서 머물며 사흘을 보냈다.

이미 몇 번 방문했던 곳이지만 지금도 신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금방 흘렀다.

헤븐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는데, 세라프의 전당을 관리하던 드워프가 목적지를 듣고 해연히 놀랐다.

[헤븐으로 가신다고?]

[예. 그렇게 됐습니다.]

[허어, 우리 도시에선 영주님 말고는 헤븐에는 가본 드워프가 없었는데……]

신기한 듯 일행을 쳐다보며 문을 열어주었다.

ATV째 안으로 들어갔다.

붉은 빛이 일행을 뒤덮었다.

“흠!”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원래는 상당한 어지럼증이 동반되곤 했는데,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니 확연히 맑고 따스한 공기가 느껴졌다.

아르텔라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여긴 하나도 안 어지럽네요?]

자동차를 타든 기차를 타든 곧잘 멀미를 했는데, 이번엔 괜찮았던 것이다.

세라프의 전당 밖으로 나왔다.

“우와!”

새미가 탄성을 질렀다.

상상도 못했던 광경이 펼쳐졌다.

세라프들이 단체로 날아다녔다. 성화 속의 천사들이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가 하면 커다란 구체들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세라프들이 거길 들락날락했다. 중세 유럽의 성처럼 생긴 것들도 하늘 위를 부유하고, 온갖 환수들이 거리를 거닐었다.

수한은 그들을 보고 전율했다.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졌다.

하나하나가 최소 SS급 이상의 이능력자.

이들 중 몇 명만 출격해도 서울 정도는 쑥대밭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세라프 종족이 동맹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일단 움직이자.”

“어디로 가야 돼?”

“표지판 보고 따라가면 될 것 같아. 저쪽이 경매장이래.”

도로 곳곳에 표지판이 있어 경매장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도로는 넓은데 이용하는 이가 없어 속도를 쌩생 낼 수 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을 구경하며 달렸다.

지상에는 이계인들을 위한 시설들이 대부분이었다. 세라프 종족은 아예 땅으로 내려오지도 않았다. 목이 말라 음료수를 마셔도 하늘 위의 카페에서 마셨다.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경매장에 도착했다.

경매는 24시간 열리고 있었다. 출입증만 있으면 언제든 입장이 가능했다.

경매장에 접근하자 보라색 마법 생명체가 앞을 막았다.

SF 영화 속의 로봇처럼 생겼다. 수정을 깎아 놓은 듯한 몸체에, 아르텔라가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였다.

청명한 목소리가 울렸다.

[출입증을 보여주세요.]

돌려받은 출입증을 내밀었다.

마법 생명체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모든 세상의 모든 물건을 찾아볼 수 있는 차원 경매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에서는 교통수단을 탈 수 없으니, 도우미에게 맡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경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무섭게 도우미 한 명이 다가왔다.

박쥐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흑진주 같은 눈이 검은 비단 같은 머리칼과 잘 어울렸다.

서큐버스 종족.

도우미가 빙긋 웃으며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선 차 타시면 안 돼요. 저한테 맡겨주세요.]

[대금으로 지불할 힘의 결정을 싣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머, 그래요? 그럼 환전소를 들리셔야겠네요. 그럼 힘의 결정이랑 귀중품만 꺼내세요. 잘못 운전했다가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요?]

자질구레한 것은 빼고 힘의 결정을 담은 이동 금고만 꺼냈다. 그러자 주변에서 고블린들이 달려들어 이동 금고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설마 이걸 훔쳐가지는 않겠지.

금고를 주자 고블린 몇이 그걸 받아들었다. 그리고 일행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서큐버스 도우미가 일행을 안내했다.

환전소를 들렀다.

수한과 새미가 가져온 것을 합치면 정확히 1조 원 어치 힘의 결정.

환전소에서는 그걸 감정하더니 마법 금화 300개를 주었다.

마엘른도 가져온 게 있었다. 그건 마법 금화 70개로 환전했다. 온 김에 이능 장비를 사는 게 좋을 거라고 수한이 조언한 까닭이었다.

금화를 받은 다음 경매장 중앙으로 이동했다. 경매장에서 힘의 결정이 가장 많은 양이 거래되기 때문에, 제일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콜로세움 같은 원형 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구조였다. 둥근 형태에, 중앙에는 높은 단상이 있었다. 그 단상을 중심으로 하여 계란처럼 생긴 구조물이 빽빽하게 들이찼다.

[함께 들어가실 건가요? 아니면 따로따로?]

[같이 쓰겠습니다.]

[네, 이쪽으로 오세요.]

개중 크기가 큰 구조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딘가의 상황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홀로그램이 공기방울처럼 떠다녔다. 현재 이곳에서 경매 중인 물건의 상세 정보는 물론, 다른 경매장에서 경매 중인 물건의 정보가 홀로그램을 통해 보였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경매장을 이용하다 보니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안에 들어가자 사용법이 저절로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정신 계열 이능의 응용.

군체 의식으로 서로의 정신을 묶은 채, 등장하는 힘의 결정을 구경했다.

대부분 S급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SS급이 보였다. 그나마 기정 결정이 많아서, 생각보다 인기는 없었다. SSS급부터는 아예 유통되질 않았다.

“비싸다……”

새미가 중얼거렸다.

S급 힘의 결정은 대부분 마법 금화 100개 수준에서 낙찰 되고 있었다.

딱 3개를 사면 끝나게 생겼다.

그 중 1개는 새미의 차지.

그렇다면 수한은 2개를 선택해야 한다.

투시 계열 힘의 결정은 타이탄 공격대에서 받기로 했으니 변조, 신속, 의지, 정신, 구현 계열 중에서 택해야겠지.

고민 끝에 변조 계열과 신속 계열을 골랐다.

정신 계열도 고민을 했지만, 기계용에 탑승하면 일신의 무력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렇게 두 가지를 선택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싼 거 사자. 그래야 흡수 보조제도 사가지.”

미드가르드 행성에서 받은 세계수 잎이 아직 남아 있다. 기왕이면 이런 것과 비슷한 흡수 보조제를 몇 개 더 살 생각이었다. 비싸긴 하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면 각성 성공 확률이 확연히 올라가니까.

수한은 눈을 부릅뜨고 홀로그램을 노려보았다.

경매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물건이 올라오고 낙찰되는 게 굉장히 빨랐다. 수백만 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서, 어어 하다간 입찰도 한 번 못해보게 생겼다.

수한은 변조 계열과 구현 계열 S급 힘의 결정에 각각 금화 90개를 입찰해 보았다.

실패했다.

다른 누군가가 더 높은 금액을 부른 것이다.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그 항목을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실패한 물건에 대해서는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았다. 낙찰 받았을 때만 물건 가격의 5%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을 실패하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도우미 한 명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식사 준비해드릴까요?]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됐나 보다.

적당히 요기가 될 것을 갖다 달라고 했다. 서큐버스 도우미가 일행의 구성을 살피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수레에 따뜻한 음식을 가득 가져왔다. 혹시 추가 비용을 내야 되나 싶어 물어보니, 출입증에 포함되어 있다며 미소를 짓는다.

“오빠, 밥부터 먹고 하자.”

“그래.”

“이거 봐, 김치찌개랑 된장찌개야! 비빔밥도 있어?”

“각 행성 토속 음식을 제공하나 봐. 이건 미드가르드에서 대접 받았던 과일들이야.”

“이 고기는 뭘까? 좀 괴상하게 생겼는데.”

도우미가 가져온 수레의 음식 중, 도마뱀을 구워놓은 듯한 고기 요리가 있었다.

꽤 심하게 누린내가 났다.

저걸 누가 먹을까 싶은데, 옆에서 맹렬한 눈빛이 느껴졌다.

아르텔라.

눈이 이글거리는 게 접시를 확 찢어버릴 것 같았다. 잠자코 접시를 아르텔라에게 밀어주었다.

맛은 그냥 그랬다. 여느 한식당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맛이었다.

하지만 수한은 맛있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미국이나 영국도 아니고, 자그마치 헤븐 행성에서 먹는 한식이었다. 지구를 떠난지 벌써 열흘이 넘어가다 보니,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 참 각별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경매에 참여했다.

몇 번 더 실패한 후 서서히 감을 잡았다.

1개만 입찰하는 게 아니라 몇 개를 동시에 입찰하는 게 중요했다. 10개 정도 입찰해 버리면 한두 개를 건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낙찰 받은 것을 취소하려면 5% 수수료만 물면 된다. 마법 금화 90개의 5%면 딱 4.5개니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문어발처럼 마구 입찰하기 시작했다.

10개, 20개씩 입찰했다.

그리하여 힘의 결정 5개를 낙찰 받는데 성공했다.

구현 계열 2개, 변조 계열 1개, 신속 계열 2개.

2개는 취소했다. 도합 마법 금화 279개가 들었지만, 충분히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있었다.

마엘른도 적당한 물건을 샀다.

가벼운 옷, 방어막 생성 기능이 담긴 조끼, 공간 도약 신발, 상처 치료용 팔찌 등등.

S급을 살 돈은 안 되었다. 그래도 AA급 장비를 몇 개 사는 것은 가능했다.

도우미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수레를 끌고 왔다.

마법 상자 여러 개가 담겨 있었다.

도우미들은 일행 앞에서 마법 상자를 개봉했다. 그러자 힘의 결정들과 이능 장비들이이 눈부신 빛을 뿜었다.

[우와!]

아르텔라가 넋을 잃고 힘의 결정을 바라보았다.

수한은 인수 확인증에 사인을 했다.

도우미가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경매장 내에 힘의 결정을 흡수할 곳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밤이 된 것 같은데 호텔 이용이 가능합니까?]

[예. 호텔에도 밀실이 있으니 그곳에서 흡수하시면 됩니다.]

수한은 몇 가지 물건을 더 샀다.

우선 이계 생존 능력이 붙은 A급 반지.

아르텔라를 위한 거였다. 이런 종류의 물건이 있어야 안전하게 지구에 체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힘의 결정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흡수하게 도와주는 물건들도 샀다. 이것들도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가져온 금액이 거의 다 동이 났다.

역시 이능 장비가 비싸기는 비싸다.

그나마 경매장 출입증을 받아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서 힘의 결정을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도우미의 안내에 따라 호텔에 방을 잡았다.

호텔보다는 콘도에 가까웠다. 아파트처럼 큰 거실에 방이 몇 개 딸려 있었다. 구속구가 설치된 밀실이 구석에 있어, 거기서 힘의 결정을 흡수해도 될 것 같았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도우미가 절을 하고 물러나갔다.

“오빠 바로 흡수하려고?”

“응. 하나에 수천억이 넘는 걸 갖고 있으면 불안하잖아. 지구로 돌아가기 전에 흡수할 거야.”

“위험하지 않을까?”

“그래서 더 그래. 지구에서 흡수하는 것보다 여기서 흡수하는 게 안전하잖아.”

“맞아, 그렇겠다.”

헤븐 행성은 모든 면에서 지구보다 더 발전되어 있다. 의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구에선 힘의 결정을 흡수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지만, 헤븐 행성에선 그럴 일이 없었다.

새미도 수한의 말에 혹한 표정을 지었다.

AA급 힘의 결정을 한두 개 더 흡수해서 성공 확률을 높인 다음 도전할 생각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여기서 흡수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도 흡수해볼까? 별로 자신은 없는데……”

“구름 깃털이랑 심해의 진주도 샀잖아. 세계수 잎사귀랑 줄기로 짠 옷까지 쓰면 AA급 힘의 결정 흡수할 때보다 오히려 더 쉽게 끝낼 수 있을 거야.”

“알았어. 나도 한 번 해볼게.”

시간을 오래 끌지 않았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수한이 먼저 밀실로 들어갔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바닥에 몇 가지 물건을 늘어놓은 상태였다.

구름처럼 몽실거리는 깃털, 살아있는 것처럼 박동하는 까만 진주, 천처럼 넓게 펼쳐진 세계수의 잎, 세계수의 줄기를 얽어 짠 옷.

깃털을 불에 태웠다. 진주를 입에 물었다. 옷을 입고 넓은 잎 위에 누웠다.

힘의 결정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여전히 고통은 무시무시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이 수한을 덮쳤다.

그래도 견딜 만 했다.

저번에 AA급 힘의 결정을 흡수할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때는 정말로 죽을 것 같았지만, 한 번 경험이 있어서 참아내는데 성공했다.

“하아, 하아, 하아.”

수한은 숨을 몰아쉬었다.

우선 초능창을 확인했다. 만물 변환 점수 299점이 생긴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점수를 몽땅 특급 속성 부여에 사용했다.

그러자 4차 진화가 가능해졌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속성 부여 : 발사체, 속성 중첩, 조합 속성탄.

뭘 선택할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속성 부여 : 발사체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계용을 탔을 때를 생각해 보라.

내부를 변형시켜 총을 쏠 수도 있지만, 기계용의 주무기는 어디까지나 광선포와 미사일이다.

광선포에다가 속성을 부여하고 쏘아 댄다?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