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42화 (143/254)

< 이수한 이사 -2- >

거의 사장실만큼 넓고 화려한 공간.

수한은 유리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았다.

한강이 바로 내려다보였다. 수면에 태양빛이 반사되어, 맑은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예쁘다. 그치?”

“그러게. S급 이능력자가 된 보람이 있는 걸?”

“우리도 나중에 이런 곳에 사옥 멋있게 하나 짓자.”

“그래야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소리였다.

이사로서의 업무는 별 것이 없었다.

수한과 새미 모두 전투 이사이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일은 경영 담당 이사들이 거의 알아서 했다.

그래도 얻는 것이 있었다.

임원진 회의에 참석하면서, 공격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게 되었다.

각종 기밀을 열람할 수 있게 된 것은 덤.

수한은 타이탄의 전산망에 오가는 서류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대략적인 공격대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새미가 투정을 부렸다.

“이사 되니까 너무 심심하다. 특수 원정팀에 있을 때는 그래도 할 일이 있었는데, 이사 되곤 할 일이 없어졌어.”

“자기도 서류 좀 봐. 미리 익숙해지면 좋잖아.”

“서류 보는 건 영 익숙하지가 않아서……”

“아니면 집에서 쉬어도 되잖아. 꼭 출근할 필요는 없어.”

“에이, 그래도 출근은 해야지.”

전투 이사는 원정만 따박따박 따라가서 변이체나 기계 괴수를 잡는데 참여하기만 해도 된다. 전투부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할까.

수한은 특수 원정팀들이 올린 서류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대부분 새로 발견된 행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위험하긴 하지만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크니까. 가브낙 행성이나 질라 행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요테 행성, 크람 행성, 브루아 행성이라……’

선택권은 수한에게 있었다.

세 행성 원정 계획 모두 기계용의 참전을 전제로 하고 짜여진 계획이었다.

‘기요테 행성이 나으려나?’

셋 중에선 기요테 행성이 가장 무난해 보였다.

크람 행성은 너무 위험하고, 브루아 행성에는 진출한 외계 종족이 상당히 많았다. 반면 기요테 행성은 가브낙 행성이나 질라 행성이랑 비슷한 상태였다.

기요테 행성은 특수 원정 1팀에서 상정한 계획의 목표.

역시 석구라고 할까.

수한의 구미에 맞는 행성을 선택해서 올린 것이다.

내용은 간단했다.

기계용을 이용해 기요테 행성을 쓸고 다니자는 것.

특수 원정 1팀에 더하여 전투과 중 1개, 지원과 중 2개가 동행한다. 그리고 공격대 자산 중 기계 괴수 시체 1마리 분량과 동력핵 하나를 가져가기로 했다.

대박이 확정된 셈.

수한은 석구에게 슬쩍 기요테 행성으로 갈 생각이라고 언질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마주치는 1팀 팀원들이 수한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며칠 안 남았네요!”

“하하, 그때 뵙겠습니다.”

그런데 순탄하게 사냥을 할 운명은 아니었나 보다.

세부 계획을 다듬고 준비를 시작하려는 시점이었다.

출근하기가 무섭게 사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이 이사님, 출근하셨습니까?]

한민종 사장이었다.

[예, 출근했습니다.]

[혹시 윤 이사님도 같이 출근했습니까?]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잘 됐습니다. 얼른 사장실로 오세요. 큰 일 났습니다.]

큰 일이라니?

수한은 새미와 함께 바로 사장실로 갔다. 세 개의 건물이 연결되어 있어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타이탄 공격대의 임원진이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얼른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무슨 일입니까?”

다른 이사들도 영문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민종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총 13분이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열두 분밖에 안 보이십니다.”

“어, 그러고 보니……”

“펠롱 이사님이 안 보이시네요?”

수한이 한 마디를 했다.

타이탄 공격대원 중 유일한 외계인.

그 말을 듣고 이사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고향에 가신 겁니까?”

“장기 휴가를 받아서 쥬페르 행성에 가셨습니다. 원래 2달 정도 쉬고 돌아오기로 하셨는데, 서면으로 우리 타이탄 공격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본인의 모국에 기계 괴수들이 공격해 왔답니다. 그걸 방어하느라 몸을 뺄 형편이 안 된다고 합니다. 아울러 우리 공격대에도 참전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을 했습니다.”

“허……”

이사들이 입을 벌렸다.

민종이 펠롱 이사가 보낸 편지를 이사들에게 돌렸다.

대한민국에서 생활한지 3년이 넘어서인지 한국어를 곧잘 했다. 저번에 가브낙 행성에서 수한과 이야기 했을 때는 세라프 어를 사용했지만, 편지는 한국어로 써져 있어 다들 읽을 수 있었다.

수한은 편지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쥬페르 행성도 이번에 대대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그나마 그곳은 신들이 있어 잘 방어하는 편이라고 했는데, 페롱 이사의 고국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최 이사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그런데 페롱 이사의 모국이면, 저번에 백호 공격대가 원정 갔던 곳 아닙니까? 국명이 아마, 미르수즈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아, 맞습니다. 대형 기계 괴수 잡으러 갔다가 혼쭐이 났지요.”

“세라프 종족도 몇 명 있다고 들었는데 실패했다고요? 세라프 두 명에서 세 명만 있어도 대형 기계 괴수는 무난히 잡는다고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백호 공격대가 과욕을 부린 모양입니다. 세라프 종족을 배제하고, 현지 신들을 섭외해서 단독 작전에 나섰는데 실패하고 말았지요. 그나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경미에게도 들은 내용이다.

형제신과 함께 싸우기로 했는데, 그 둘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무산되었다나?

그 여파가 여기까지 미치고 있었다.

들어보니 대형 기계 괴수가 상당히 강력한 듯했다. 현재 인근에는 세라프 두 명이 있는데, 그 둘만으로는 대형 기계 괴수가 더 진군하지 못하게 막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덩달아 휴가를 나간 페롱 이사도 거기 가세했다.

당연하다.

자기 고향이 바로 근처였고, 자신의 여동생이 기계 괴수가 머물러 있는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와 결혼했으니까.

수한은 민종을 보았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민종이 두 손에 턱을 굈다.

“고민 중입니다. 저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 되어서 여러분을 부른 겁니다.”

“쥬페르 행성에는 기계 괴수가 몇 마리나 있는 겁니까?”

“얼마 안 됩니다. 지금은 거의 다 토벌해서 기껏해야 10마리 정도? 쥬페르 행성의 신들이 나서서 거의 다 잡았다고 하네요.”

“도대체 그 신들은 어떤 존재입니까?”

“대부분은 동물신이고, 인간신과 식물신도 얼마 있다고 합니다. 이능력자로 따지면 최하 S급에서 강하면 SS급도 있다고 합니다. 몇몇은 SSS급이라고 하는데, 그런 이들은 신계에 있어서 직접적인 무력을 투사할 수는 없답니다.”

“허, 별세계네요.”

“신기한 행성이 다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게, 신들마다 영토 관념이 확실한가 봅니다. 자기 영토에서 벌어진 일은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네요. 하필 원수지간인 형제신의 영토 가운데에서 기계 괴수가 출현해서, 다른 신들이 끼어들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페롱 이사는 어엿한 타이탄 공격대 소속.

위험에 처해 있으면 가서 구해야 했다. 단순히 도의적인 측면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계약서에 아예 명시된 사항이었다.

계약서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당시 확실하게 일을 하기 위해 세라프 종족의 직인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걸 무시했다가 세라프 종족이 저주라도 내리면 어떻게 하나.

수한은 그 소리를 듣고 입맛을 다셨다.

“도와줘야 겠는데요? 계약서대로 해야지 어쩌겠어요.”

“끙, 만에 하나 암살당하거나 납치될지도 몰라서 넣는 항목인데, 설마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몰랐습니다.”

“난감하네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대형 기계 괴수를 잡아버립시다. 우리 공격대 전력이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습니까?”

이사 하나가 호기롭게 소리쳤다.

수한이 생각하기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가브낙 행성에서도 다섯 변이체와 함께 대형 기계 괴수를 잡는데 성공하지 않았다.

쥬페르 행성에는 다섯 변이체가 없지만, 대신 한층 강해진 수한과 용이가 있었다. 여기에 SS급 이능력자가 된 민종이 더해지면 대형 기계 괴수도 잡는 게 가능하다.

“수지타산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경영 담당 이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도 경험했듯, 대형 기계 괴수를 잡으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수한이 쓸 기계용의 재료까지 옮겨야 하니 더욱 그러했다.

대형 기계 괴수이니 손해는 보지 않겠지만, 이익이 생각보다 적을 가능성이 컸다.

무엇보다 이번 원정의 핵심인 수한의 발이 묶이는 셈 아닌가.

새로 발견된 행성에 원정을 보내면 대박을 터뜨릴 게 분명한데, 쥬페르 행성에 가는 것은 그것보단 확실히 훨씬 이익이 적겠지.

간단히 말해서 기회비용이 엄청난 것이다.

“곤란하네요. 금방 원정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최대한 빨리 기계 괴수를 잡는 수밖에 없지요.”

“맞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준비에도 시간이 걸리고, 이동에도 시간이 걸려요. 기계 괴수가 위치한 곳은 세라프의 전당에서 꽤 거리가 먼 곳입니다.”

기간을 계산해 보았다.

준비부터 귀환까지, 적어도 1달 가까운 시간이 소요될 거라는 예상이 나왔다.

임원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민종이 고심어린 기색을 비쳤다.

“차라리 이 이사님은 예정대로 다른 행성에 원정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 혼자서는 대형 기계 괴수를 잡기 힘들지만, 세라프들과 합류하면 가능할 겁니다.”

“그러면 동력핵은 세라프들에게 줘야 되는데요?”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요.”

공격대의 존재 목적은 이윤을 내는 것.

수한을 통해 이윤을 내고, 민종을 통해 페롱 이사를 구원한다.

이게 최선이었다.

수한은 머리를 굴렸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그런데 거기 형제신들은 왜 싸운 거랍니까?”

“저희도 모릅니다. 그냥 원수 사이라고만 들었어요.”

수한은 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지금 원정 행성을 낙점하더라도 출발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최소한 1주, 길면 열흘 정도.

그 동안 쥬페르 행성에 다녀오면 어떨까? 타이탄 공격대만으로 대형 기계 괴수를 잡을 수는 없어도, 현지의 신들과 협력한다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수한을 비롯하여 몇 명만 건너가서 대형 기계 괴수를 잡는데 성공한다면, 그 이익은 실로 막대할 터.

현지의 신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준다고 해도 그러했다.

“제가 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 이사님이요?”

“원정 가시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열흘 예정으로 다녀오는 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원정 시작하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할 테니까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일단 제가 가서 상황을 보지요. 대규모 원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 하시지요.”

그렇게 수한이 나서게 되었다.

동행하는 것은 새미와 마엘른, 그리고 아르텔라.

준비는 금방 끝났다.

쥬페르 행성으로 갈 네 명 모두 생존 계열 물품을 소지하고 있다는 게 컸다. 예방 접종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쥬페르 행성에 대해 펠롱 이사에게 얻은 정보가 많아서 별도로 계획서를 작성할 필요도 없었다.

사장실에서의 회의가 있던 날 바로, 넷을 태운 방탄 SUV가 차원문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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