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갑 변형 -2- >
머리가 분리되며 안의 구성물이 주물주물 형체를 바꾸었다. 네 개의 다리는 물론 날개까지 몸통에서 떨어져 나왔다. 앞다리는 사람의 팔 모양으로 바뀌고, 뒷다리는 다리 모양이 되었다. 정교한 형태의 장갑과 신발도 생겼다.
도마뱀 체형이던 몸이 자꾸 증식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에 빈 공간이 생겼다. 일종의 갑옷이었다. 가슴 갑옷과 등 갑옷이 분리되고, 제멋대로 허공을 날아다녔다.
수한은 입을 벌렸다.
용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훤히 보였다.
저런 것도 가능했나?
조각난 용이의 몸이 수한에게 날아왔다.
수한은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가슴 갑옷과 등 갑옷이 앞뒤에서 수한을 감쌌다. 철컥, 소리와 함께 두 갑옷이 단단히 결합되었다. 미리 수한에게 맞춘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았다.
팔과 다리 갑옷이 차례로 날아왔다. 장갑과 신발도 저절로 착용되었다. 날개가 수한의 등에 와서 붙고, 마지막으로 용머리 모양의 투구가 수한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철컥, 철컥, 기이이잉.
각 부위가 서로를 빈틈없이 감쌌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 부분을 더듬었다.
용머리 투구가 완벽히 수한의 얼굴과 머리를 가렸다. 눈 부위가 일치해서 시야에 제한이 없고, 긴 주둥이가 경사지게 내려가며 수한의 코와 입을 보호했다.
금속으로 전신을 감쌌지만, 호흡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외부와 내부를 완벽히 차단해서 방어력이 몇 배는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성공이다!]
용이가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이 수한을 보며 깜짝 놀랐다. 갑자기 못 보던 갑옷을 차려 입으니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걸로 뭘 할 수 있는 거지?
수한이 그런 의문을 갖자, 용이가 경쾌하게 대답했다.
[이런 게 가능해!]
[어어?]
용이가 수한이 들고 있던 아바돈을 빼앗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기 꼬리에다 대고 융합시켰다. 긴 꼬리가 아바돈을 휘감자, 둘이 하나가 되며 꼬리 끝에 총구가 생겼다.
허리춤에 매여 있던 풀고르와 녹스를 팔뚝 윗부분에 융합했다. 겉에서 보기에는 원통형 총구를 덧붙인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한 수한이 혀를 내둘렀다.
[맙소사, 이거 굉장한데?]
[당연하지!]
용이가 으스댔다.
세 총이 융합되면서 위력이 대폭 상승했다. 막강한 방어력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점은 그게 아니었다.
기동력.
날개를 이용해 비행할 수 있었다. 그것도 세라프 날개 전투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였다.
수한의 계산에 따르면 갑옷을 입은 상태에서 초음속 초능을 발현할 경우 음속 비행도 가능했다.
인간의 몸으로 그런 짓을 벌였다간 큰일 나겠지만, 그에 따른 충격은 갑옷이 다 막아줄 테고.
[좋아, 한 번 시험해 보자.]
수한은 날개를 펼쳤다. 초음속 초능을 발현하여, 급가속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수한은 기계 괴수를 스쳐지나가며 두 손과 꼬리를 겨눴다.
광선 무리가 기계 괴수에게 쏟아졌다.
모두 다른 속성이 조합되어 있었다.
광명과 암흑, 폭발과 분화, 천공과 파멸.
빛과 어둠이 동시에 터졌다. 서로 반발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뜯어먹었다. 기계 괴수의 몸 곳곳에서 맹렬한 폭발이 일며 금속 장갑이 뜯겨 나갔다. 가슴 부위에서는 시꺼먼 회오리가 일어나 공간 자체를 집어 삼켰다.
단순히 S급 이능력자라고 보기에는 생각하기 힘든 위력. 기계 괴수의 가슴 장갑이 순식간에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이대로 놔두면 금세 무장 해제 당할 터.
부우웅!
아무렇게나 휘두른 도리깨가 우연찮게도 수한에게 날아들었다.
[위험해!]
[알고 있어.]
수한은 이미 그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투시 계열 S급 초능, 절대자의 눈을 통해 미리 예지했기 때문이다.
날개를 휘저어 몸을 뒤집었다. 도리깨가 청광을 뿌리며 수한의 눈앞을 스쳤다.
덕택에 기계 괴수의 가슴 부위가 훤하니 열렸다.
수한은 그 앞을 비행하며 공격을 꽂아 넣었다.
적어도 수백 발의 광선이 기계 괴수를 두드렸다. 검은 기운이 공간을 침탈하고,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죽음의 힘이 동력핵으로 파고들었다.
기계 괴수가 크게 휘청거렸다.
가슴 부위는 너덜너덜해진지 오래였다. 방어막은 완전히 박살났고, 안쪽에서는 동력핵이 발하는 빛이 흘러나왔다.
[훌륭해!]
라오그뉴가 감탄하며 기계 괴수에게 돌진했다.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기계 괴수가 도리깨를 세차게 휘둘렀다.
도리깨가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라오그뉴는 스스로의 몸을 축소해서 그것을 피했다. 허공을 딛으며 몸을 가속하더니, 원래 크기로 돌아갔다. 그리고 기계 괴수의 가슴을 향해 앞발을 쭉 뻗었다.
콰직!
누더기가 된 금속 장갑이 그대로 박살났다.
라오그뉴가 앞발로 동력핵을 움켜쥐었다. 단번에 동력핵을 뽑아내자, 기계 괴수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정지했다.
쿠웅!
기계 괴수가 서서히 옆으로 넘어갔다.
마엘른이 이미 다리 두 개를 무력화시킨 상태. 동력핵이 살아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균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전투가 끝난 것이다.
[좋았어! 정말 재미있는 전투였어!]
라오그뉴가 싱글싱글 웃었다.
수한은 그 옆으로 내려앉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생각보다는 쉬웠네요.]
[신들이 셋이나 동원됐어. 이 정도는 잡을 수 있어야지. 칠채 옥좌가 없었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았잖아? 아저씨들 재현 능력은 무시무시하단 말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두 늑대신이 도리깨에 맞은 게 합치면 10번이 훌쩍 넘어갔다. 그 말은 곧, 기계 괴수가 파멸의 도리깨에 10번 이상 맞은 효과를 냈다는 뜻이다.
그 쯤 되면 아무리 대형 기계 괴수라도 버틸 수 없다. 더구나 라오그뉴가 연타를 먹이고, 수한과 새미도 계속 공격을 날렸으니……
[그런데 저게 뭐지?]
라오그뉴가 호기심 어린 눈을 빛냈다.
방금 동력핵을 도려낸 곳, 바로 그 뒤에 커다란 공간이 하나 보였다.
수한은 금방 그 정체를 알아보았다.
예전에 본 적이 있으니까.
기계 괴수의 조종실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도 꽤 컸다. 둥그런 구형이고, 중앙부의 높이 솟은 곳에 의자가 위치했다.
의자에는 누군가 앉아 있었다.
[저 놈은 뭐야?]
라오그뉴가 크기를 줄여 일반적인 사자처럼 되더니 성큼성큼 걸어갔다.
수한은 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후방에 있던 세라프들이 급히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라오그뉴가 조종실 안으로 들어가는 게 훨씬 더 빨랐다.
라오그뉴가 의자에 앉아 있는 존재를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죽었네?]
[그렇습니까?]
수한은 시체를 살폈다.
들은 대로, 지구인과 똑같은 육체다.
심장은 멎어 있었다. 숨도 쉬지 않았다. 반면 몸이 아직 따뜻해서, 목숨이 끊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세라프들이 조종실 안으로 들어왔다.
[왜 이렇게 성급하십니까? 공격이라도 당하면 어쩌시려고요?]
셀레이나가 꾸짖자, 라오그뉴가 머리를 늘어뜨렸다.
[아니 난 뭔가 이상한 게 보여서……]
[제국인 시체 말입니까?]
[제국인? 아, 저게 제국인이야? 아빠한테 듣기는 했는데 정말로 볼 줄은 몰랐어!]
라오그뉴는 시체를 흔들었다.
그 와중에, 수한은 제국인의 시체 왼쪽 손목에서 글자 무더기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글자 무더기가 몇 번 휘청거리다가 저절로 수한의 왼쪽 손목으로 스며들었다.
레벨 업 도우미가 흡수되는 것이다.
수한은 슬쩍 자신의 손목을 확인했다.
예전과 같았다.
레벨 10 상승, 모든 능력치 1 상승, 초능 여유 점수 10 확보.
다른 것은 딱 하나.
사관 계급으로 올라섰다는 것.
세라프들의 시선도 수한의 왼쪽 손목을 향했다. 굳이 내색하지는 않고, 제국인 시체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냈다.
[그건 태워버리죠. 꼴도 보기 싫습니다.]
[그러자.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한데?]
[뭐가 말입니까?]
[시체가 좀 가벼운 것 같아.]
제국인이 마른 체형이라 그런가 보다.
수한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라오그뉴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이 시체, 좀 이상한데? 방금 죽은 건 확실한데, 진작부터 죽어 있었던 것 같아.]
[진작부터 죽어 있었다니요?]
[뭐라고 해야 할까……]
[가사 상태라고 하는 게 옳겠지요.]
[맞아, 가사 상태!]
셀레이나의 말에 라오그뉴가 박수를 쳤다.
가사 상태라고?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절대자의 눈으로 제국인 시체를 들여다보았다.
그 말이 옳았다.
신체의 장기들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최소한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만 수행할 정도였다.
라미즈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국은 가사 상태의 이능력자들을 기계 괴수에 태워 보내곤 한다. 기계 괴수를 조종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이 하는 거라곤 자신의 이능으로 기계 괴수를 강화시키는 역할이 다니까. 그나마 효율이 나쁠 때가 많다. 간혹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자도 있다만, 많지는 않다.]
[그건 몰랐습니다.]
[그럴 것이다. 굳이 알리지 않았으니까.]
기계 괴수를 제대로 써먹으려면 실력 있는 조종사를 투여하는 게 낫다. 하지만 헤븐 행성에서 마니엘라에게 들은 것처럼, 제국의 목적이 종족 연합의 사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수한은 제국인의 시체를 돌아보았다.
과연 저 자는 생전에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렇게 가사 상태가 되어 기계 괴수의 안에 들어 있었던 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수한은 제국인의 시체를 밖으로 끌어냈다. 옷을 비롯한 모든 물건을 취한 뒤, 총을 쏘아 시체를 불살랐다.
새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빠, 그건 왜?”
왜 재수 없게 제국인의 물건을 챙기냐는 것 같았다.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제국 물건이잖아. 예전에 알바트로스 있을 때 기억 안 나? 이걸 복제해서 전투복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B급 장비는 됐었어. 이건 원본이니까, 훨씬 더 낫겠지.”
“그래도 좀 그렇기는 해.”
“어쩌겠어. 같이 없애버리기는 아까운 걸.”
수한은 꿋꿋하게 전리품을 챙겼다.
두 세라프는 이만 가보겠다고 했다. 그 동안 시간을 너무 지체해서, 빨리 헤븐 행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동력핵은요?]
수한이 묻자, 둘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대에 대한 우리의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해라.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그대의 활약 덕분에 피해 없이 우리의 임무를 완성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번 전투에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는데 몫을 주장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부디 유용하게 쓰시기 바랍니다.]
두 세라프가 날개를 펼쳐 떠나갔다.
수한은 둘이 멀어지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형제신이 수한에게 다가왔다.
[이제 약속을 지켜야지?]
[아, 칠채 옥좌 말씀이시죠? 가져가세요.]
칠채 옥좌는 아까 형제신이 펼쳐 놓았던 곳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미루스와 르익은 그걸 동시에 집어 들었다.
온갖 감정이 그들의 눈에서 휘몰아쳤다.
[5백년 만인가……]
[참으로 길었다.]
[앞으로 다시는 이걸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래, 그래야지. 지난 오욕의 세월을 다시는 겪을 수 없으니까.]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감상에 젖어 있다가, 수한에게 다가와 사의를 표했다.
[그대에게 감사한다.]
[그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칠채 옥좌를 되찾기는커녕 기계 괴수들에게 내 신민들이 학살당했을 것이다. 그대의 도움에 감사를 표한다.]
[말로만?]
여태 듣고만 있던 라오그뉴가 끼어들었다.
[음? 뭐라고?]
[아저씨들은 화해도 하고 칠채 옥좌도 얻었잖아. 모아놓은 보물 중에 뭐라도 좀 줘야 되는 거 아냐? 그냥 이대로 입을 씻으려는 건 아니겠지?]
형제신이 수한과 라오그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
[어린 사자의 말이 맞다. 우릴 위해서 이렇게 일을 해주었는데, 그냥 넘어가는 것은 도리가 아냐.]
[어떻게 할까?]
[보물 창고에서 적당한 물건을 가져다주자.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좋아, 지구인. 여기서 잠깐 기다려라.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멋진 보물들을 네게 주마.]
두 늑대신이 자기들의 거처로 몸을 날렸다.
보물이라?
수한도 굳이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과연 신들의 보물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때였다.
인간형으로 변한 라오그뉴가 수한의 옆으로 다가왔다.
라오그뉴의 눈이 위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우리끼리 이야기를 좀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