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50화 (151/254)

< 복귀 -2- [6권 끝] >

“이 이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이사님의 행동을 잘 반추해봐야겠습니다.”

페롱이 머리를 끄덕이며 새미의 말을 받았다.

수도에 도착했다.

라오그뉴가 동행했기 때문에 바로 세라프의 전당을 이용할 수 있었다.

세라프의 전당으로 들어가기 전, 수한은 라오그뉴에게 몇 가지 주의를 주었다.

지구에서 지켜야 할 것들.

주로 교통안전이나 여러 안전 수칙에 관한 게 많았다.

라오그뉴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라오그뉴는 덤프 트럭에 치여도 무사할 테니까.

걱정되는 것은 운전자들.

라오그뉴는 살아 돌아다니는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지구 문물에 무지하니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자세히 주의할 점을 알려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다 기억했어. 잔소리 좀 그만해.]

영 건성이다.

수한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몇 번이나 당부했다. 라오그뉴가 진저리를 치고 나서야 그만 두었다.

몇 시간 뒤, 차원을 넘었다.

정확히 아흐레만이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어느새 지구에 도착해 있었다.

세라프의 전당 안이야 지구나 쥬페르 행성이나 차이가 없지만, 허파로 들어오는 공기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인간형으로 변해 있던 라오그뉴가 코를 킁킁 거렸다.

[여기가 지구야? 듣던 대로 공기가 안 좋네.]

[괜찮겠습니까?]

[아 나야 괜찮아. 칠채 옥좌의 정기를 괜히 타고난 게 아니거든. 얼른 밖으로 나가자!]

아주 신이 났다. 벌써부터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경영 담당 이사 중 하나가 마중을 나왔다. 뒤에 선 페롱 이사와 라오그뉴를 확인하더니, 수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 이사님,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 동안 별 일은 없었지요?”

“예. 조용합니다. 그나저나 라오그뉴님이시라고요?”

“예. 쥬페르 행성의 사자신이십니다. 정신 감응이 가능하시니까 그냥 대화하셔도 됩니다.”

“그래요? 안녕하십니까, 타이탄 공격대의 양영경 이사라고 합니다.]

[반가워. 라오그뉴라고 부르면 돼.]

SUV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벌써 6월.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여의도는 대한민국 최대의 인구 밀집 지대.

고층 건물들이 즐비했다. 하나같이 유리에 감싸여 있었다. 덕분에 태양광을 반사시키며 현란하게 빛이 났다.

그걸 본 라오그뉴가 잔뜩 흥분했다.

[우와! 굉장한데? 세상에, 신계의 하늘 궁전보다 큰 건물들이 엄청나게 많아!]

라오그뉴가 갑자기 뛰쳐나갔다.

빠아앙!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경적을 울렸다.

인도를 한 달음에 넘어 8차선 차로로 뛰어든 까닭이었다. 자동차가 간신히 멈추더니, 운전자가 욕설을 퍼부었다.

“너 뭐야! 죽고 싶어?”

[뭐야? 감히 누구에게?]

태어나서 처음 욕을 들은 라오그뉴가 발작하려고 했다.

수한이 얼른 제지했다.

[라오그뉴님, 첫날부터 사고 치시려고 그러십니까? 오기 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지구는 지켜야 할 규칙이 많다고요. 앞으로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데 벌써부터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시죠?]

[끄응!]

[자,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거기는 차도에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고요.]

[그래, 알았어.]

라오그뉴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운전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폴짝 뛰어 뒤로 물러났다.

공중에서 한 번 재주를 넘자, 운전자가 눈을 크게 떴다. 사자신인 것은 몰라도 고위 이능력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긴 아까는 일단 욕부터 하고 봤지만, 옷만 봐도 특이한 형태의 갑옷을 입고 있으니 연상할 수 있는 게 뻔했다.

짐짓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르는데, 이미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조, 조심해. 알았어?”

눈치를 한 번 살피고는 차를 쌩 달려 벗어난다.

수한은 라오그뉴의 팔을 붙들고 SUV로 돌아왔다.

라오그뉴가 씩씩 거리자, 새미가 라오그뉴의 손을 잡고 진정시켰다.

“라오그뉴님,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라오그뉴님이야 자동차에 치여도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지구인은 차에 치이면 즉사해요. 그것 때문에 저렇게 과민반응을 하는 거니까, 고귀한 분 답게 대범하게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끄응, 알았다. 약한 종족이니 어쩔 수 없지.]

새미는 어린애 다루듯 라오그뉴를 달랬다.

라오그뉴가 좀 진정하자, SUV를 탄 채 타이탄 공격대 사옥으로 움직였다.

물론 병원은 들렀다.

모두 다 병원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비를 갖고 있지만, 감염성을 가진 병원균이 묻어 있다가 퍼져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최소한 검사는 받아야 했다.

라오그뉴가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였다.

[이 건물은 뭐야? 왜 지구인들이 저런 포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거지? 아까 거리에서 보니까 예쁜 옷들도 많더만!]

새미가 병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라오그뉴는 자기 식대로 이해했다.

[아항, 대형 치료소구나? 내 영지에도 저런 걸 가져가면 좋겠다. 그런데 왜 이렇게 큰 건물이 필요해? 그냥 천막 몇 개 늘어놓으면 되지.]

“이 병원은 5천 병상 규모에요. 그래서 이렇게 큰 거예요.”

[병상?]

“환자 침대요. 거동 못하는 환자를 5천 명까지 수용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지요.”

[지구는 인구가 많긴 많구나……]

발전한 기술, 차원문의 존재, 공격대들의 입주로 인해 5천 병상 규모의 병원이 들어선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2천 병상도 어려웠겠지.

수한과 새미가 검사를 받는 사이, 라오그뉴가 주변을 쉬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이내 병원에 대한 흥미를 잃고 용이를 귀찮게 했다.

꼬리로 찰싹 후려치자, 용이가 성질을 냈다.

[아, 그만 해! 잠 좀 자자!]

SUV를 운전했던 게 좀 피곤했나 보다.

나중에는 아예 때리든 말든 눈을 감아 버렸다. 라오그뉴 보고 들으라는 건지 코고는 소리까지 냈다.

[어휴, 심심해.]

마엘른과 페롱 이사, 아르텔라를 건드려 보지만, 한 명은 진중한 성격이고 한 명은 신이라면 껌뻑 죽는 쥬페르 행성인이다. 아르텔라도 용신의 무녀라 그런지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무료함을 느끼며 병원 복도에 드러누웠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라오그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수한이 보다 못해 한 마디를 했다.

[라오그뉴님. 차라리 사자로 변해 있으세요. 크게 하진 마시고, 작게요.]

[그럴까?]

라오그뉴가 드러누운 채 몸을 뒤틀었다.

일곱 가지 빛깔이 뿜어지더니 라오그뉴의 몸이 더욱 작아졌다. 사바나의 사자처럼 변신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고양이처럼 변했다.

본체를 수십 분의 일로 줄여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몸은 하얗고 갈기는 까맸다. 두 눈에선 아름다운 무지갯빛이 반짝였다. 관절을 보호하는 갑옷이 꼭 아기 장난감을 보는 듯했다.

간호사들이 라오그뉴를 보고 눈을 빛냈다.

“어머, 귀여워라!”

“세상에, 누구 고양이야? 너무 예쁘다!”

“병원에는 반려동물 출입금집니다! 보호자분! 얼른 데려가세요!”

수한은 속으로 아차 했다.

주변의 반응을 본 라오그뉴가 인간 형태로 돌아왔다.

[쳇! 변한 보람이 없네.]

다행히 수한과 새미의 검사는 오래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얼른 일행을 데리고 타이탄 공격대로 돌아갔다.

라오그뉴가 쫑알거리는 것을 새미가 일일이 다 받아주었다. 신과 인간이 아니라, 꼭 큰 언니와 막내 동생이 노닥거리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수한은 일행과 함께 사장실로 직행했다.

한민종 사장이 업무를 보면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영 이사를 포함한 일곱 명이 들어서자, 민종은 모니터를 노려보다 말고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 이사님, 윤 이사님.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페롱 이사님은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페롱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어쩔 수가 없었지요. 불가항력이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다음부터는 미리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휴가 잘 보내고 계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가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거 귀한 손님을 모셔놓고 변죽만 울렸네요. 라오그뉴님이라고 하셨지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쪽에 앉으세요.”

[알았어.]

민종이 책상 위에 대고 손을 저었다.

비서가 쟁반에 찻잔과 술잔, 그리고 위스키 한 병을 담아 가져왔다.

위스키?

엘프 차가 아니라?

가만 보니 라오그뉴에게는 위스키를 얼음도 섞지 않은 채 그냥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모두 엘프 차를 주었다.

라오그뉴가 위스키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캬! 이거 맛있는데?]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차를 마시며, 수한은 쥬페르 행성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미 세라프의 전당을 통해 보고서를 보낸 참이지만, 문서로만 읽는 것과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것은 그 맛이 다른 법이다.

민종이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수한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자란 부분은 새미가 보충을 했다. 라오그뉴도 위스키를 물처럼 마시며 양념을 쳤다.

민종이 박수를 쳤다.

“역시 대단합니다. 뭐든지 이 이사님만 보내면 해결이 되네요. 솔직히 처음 편지를 봤을 땐 속이 갑갑했는데, 이 이사님 뜻에 따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찬이십니다.”

“그건 그렇고, 라오그뉴님도 이 이사님에게 의탁하는 겁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허어……”

마엘른 때와 동일하다는 말에, 민종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올해 6월까지는 라오그뉴님도 우리 공격대 용병으로 계시는 겁니까?”

[그러기로 했어. 저 인간도 6월까지만 여기 있는 다며? 그 다음에는 빠진다고 하니까 나도 그때 같이 빠질 거야. 저 인간을 따라다니면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거든!]

“음, 그렇다면 마엘른님의 계약서에 준해서 계약을 해야 되겠는데, 라오그뉴님의 능력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나? 당연히 우주 최강이지!]

“아니, 그게 아니라……”

라오그뉴가 으스대며 하는 말에, 민종의 얼굴이 흔들렸다.

수한은 그저 쓰게 웃었다.

페롱이 옆에서 보충 설명을 했다.

“라오그뉴님은 대략 3가지 계열의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세라프 식으로 따지면 거력 계열과 신속 계열은 SS급, 강체 계열은 S급 정도 될 겁니다.”

“뭐라고요?”

민종이 눈을 부릅떴다.

그만하면 SS급 이능력자인 민종 보다 더 강하다. 거력 계열 또한 SS급을 찍었다면 맞상대해 볼 만 하지만, 민종의 거력 계열 이능은 아직 S급에 머물러 있으니까.

‘이거……’

새삼스럽게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만능 재주꾼인 수한.

폭발적인 공격력이 장점인 새미.

날렵한 검술의 대가 마엘른.

기계 괴수를 조종할 수 있는 용이.

제한 없이 소환 계열과 외능 계열 이능을 쓰는 아르텔라.

일선에서 날뛸 수 있는 사자신 라오그뉴.

이들만으로도 어지간한 공격대 전력을 훨씬 상회했다.

최근 대한민국 공격대 상위 5위 안으로 들어온 알바트로스 공격대 보다 수한 일행이 더 강하지 않을까?

아니, 타이탄 공격대를 제외하곤 이들을 상대할 공격대가 없겠다.

대한민국 2위라고 일컬어지는 백호 공격대?

그들도 장담하기가 힘들다. 용이가 융합할 기계 괴수가 없다면 모를까, 소형 기계 괴수 한 마리만 있어도 오히려 일행의 승률이 더 높았다.

민종이 입맛을 다셨다.

“무시무시하네요. 올 7월이 기대됩니다. 준비 잘 하시면 지구 최고의 공격대가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수한은 씩 웃었다.

아직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 있었다.

순식간에 타이탄 공격대를 따라잡고, 그랜드 공격대와 천룡 공격대를 넘어 종족 연합 전체에 이름을 떨치는 게 목표.

가능하겠냐고?

글쎄.

그게 가능할지 어떨지는, 타이탄 공격대에서의 마지막 원정을 통해 판가름 날 터였다.

[6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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