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51화 (152/254)

< 사자 소동 >

민종은 라오그뉴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간단한 심사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페롱 이사님을 믿지만, 말만 믿고 계약을 치를 수는 없으니까요.”

[좋아. 뭘 하면 되지?]

라오그뉴의 심사는 마엘른 때와는 다르게 민종이 직접 상대하지 않았다.

실기시험장에서 장애물을 피해 뛰는 속도를 측정한다거나, 콘크리트 구조물에 주먹을 날리게 했다. 라오그뉴가 본체로 현현한 상태에서 기관총을 갈기고, 심지어 휴대용 미사일도 쏘았다.

라오그뉴가 깔깔 웃었다.

[안마가 시원한데? 더 세게 두드려 봐!]

심사 끝에, 패롱 이사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으로 판명 되었다.

게다가 라오그뉴에게는 한 가지 능력이 더 있었다.

부활.

하루에 1번 뿐이긴 하지만, 죽는 즉시 그 자리에서 원상태로 부활한다. 일선에서 공격을 받아내야 하는 강체 계열 이능으로는 거의 최고봉이라 할 만 했다.

자연히 SS급 이능력자 대우를 받게 되었다.

인사부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SS급 이능력자? 연봉과 배당을 얼마나 책정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요.”

“그랜드 공격대와 천룡 공격대는 어떻게 했는데요?”

“둘 다 공동 경영입니다. 사장이 두 명이에요.”

“흠, 이거 난감하네요.”

민종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라오그뉴가 한가롭게 꼬리를 살랑거렸다.

[적당히 줘. 지구 돈 줘 봤자, 나한텐 별로 쓸모없어.]

“라오그뉴님은 보물 같은 것에는 관심 없나 봅니다. 미루스님이랑 르익님은 이것저것 모으셨던데.”

[에이, 보물에 관심 없는 신이 어디 있어? 모험도 하고 보물도 모을 수 있으면 좋지.]

“그럼 돈을 되도록 많이 받는 게 좋을 겁니다. 저는 헤븐 행성 차원 경매장을 이용 가능하니까, 지구에서 힘의 결정을 구매해서 거기 가져가면 진귀한 보물들을 구입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 그럼 좀 후하게 줘.]

라오그뉴가 눈을 빛냈다.

인사부장이 책상에다 대고 손가락 끝을 두드렸다.

“흠, 그럼 이 이사님께 준해서 결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랑 비슷하게요?”

“예. 수한씨는 기계 괴수 조종 능력이 있으니 그것까지 감안하면 두 분이 거의 비슷할 것 같습니다.”

연봉 200억, 배당 2000몫, 매출의 5%.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좀 모자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사부장이 입을 열어 뭐라고 하려는데, 라오그뉴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뭐, 그 정도로 하자.]

“더 많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됐어. 너도 그렇게 받는다며. 원정 한 번 다녀와서 S급 보물 하나가 생기는 정도면 충분해.]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지금 계약서를 작성할까요?”

인사부장이 냉큼 끼어들었다.

조건을 더 올려주고 싶었지만, 라오그뉴가 귀찮다는 기색을 전신에서 풍기고 있었다.

별 수 없이 그 조건에 동의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다음 원정을 언제 참가할 수 있을지 물었다.

인사부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김 팀장님한테 듣기로는 예정대로 출발한답니다. 아마 다음주 정도일 겁니다.”

[좋아, 좋아. 따라온 보람이 있는데?]

라오그뉴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수한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쥬페르 행성에서 최대한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자신 때문에 원정 시작이 늦어지기라도 했으면 사람들을 볼 낯이 없었을 것이다.

라오그뉴가 길게 하품을 했다. 그러더니 나른한 목소리로 묻는다.

[슬슬 졸린데, 집에는 언제 돌아가는 거냐? 내가 누울 공간 정도는 있겠지?]

이사를 해야겠다.

지금 수한이 사는 집은 막 이능력자가 되었을 때 샀던 집이었다. 세 형제만 살려고 샀기 때문에, 사실 꽤 비좁았다. 명한이 군대를 가서 그럭저럭 살고 있는 거지, 수한과 기한, 마엘른과 아르텔라, 라오그뉴까지 하면 너무 북적거린다.

적당히 계약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한이 마침 집에 있었다.

“아, 형! 왔어? 다친 데는 없지?”

“그럼. 그 동안 별 일은 없었고?”

“응. 명한이 형이 편지 좀 보내라고 전화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일 없었어.”

“하긴 군대 있으면 편지가 그립지. 그러고 보니 너도 영장 나올 때 되지 않았냐? 21살이니까 입대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 난 지원해서 가려고.”

“어디로 가게?”

“카투사! 9월 중순에 접수 받는다고 하니까, 그때 지원할 거야. 합격하면 2학기 마치고 휴학해야지. 12월이나 1월에 입대할 수 있대.

“그래, 잘 됐으면 좋겠다.”

기한은 세라프 어문 학과이고, SPT 5급 이상이면 카투사 지원이 가능했다.

영어, 중국어보다 더 유용하게 쓰이는 세라프 어.

카투사가 일반 병사보다는 훨씬 낫다.

수한은 잘 해보라고 기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른 사람들이 수한을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라오그뉴가 집을 둘러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좁은데? 발도 못 뻗겠어!]

기한이 라오그뉴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생김새는 한국인 같은데, 머리 위의 귀나 엉덩이에 달린 꼬리, 무지갯빛 눈동자가 이상했다.

라오그뉴가 턱을 들어올렸다.

[뭘 보는 거냐?]

“아, 저기…… 누구세요? 지구인은 아니시죠?”

[당연하지. 내가 지구인 같으냐?]

“쥬페르 행성의 신 중에 한 분이셔. 라오그뉴님이라고, 사자신이시지.”

수한이 라오그뉴를 소개했다.

기한이 눈을 크게 떴다.

“신? 진짜 신?”

“아, 우리가 말하는 전지전능한 신은 아냐. 세라프 종족에 가까운 것 같아. SS급 능력을 두 개나 가지고 계시거든.”

“SS급? 우와!”

기한이 입을 떡 벌렸다.

방이 3개뿐인 집이라, 일행이 모두 거주할 수는 없었다.

별 수 없이 새미의 집도 쓰기로 했다. 아르텔라와 라오그뉴는 새미의 집에서 머물고, 마엘른만 수한의 집에서 살기로 결정을 내렸다.

저녁에는 조촐하게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라오그뉴는 삼겹살 쌈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혼자 20인분이나 먹어치웠다.

다음날, 수한은 타이탄 공격대로 출근했다.

널브러져 TV를 보고 있던 라오그뉴가 따라붙었다.

잠은 새미의 집에서 잤지만, 아침이 되자마자 수한의 집에 놀러와 소파를 차지했던 것이다.

[어디 가는 거냐?]

“공격대에 가봐야지요. 가기 전에 원정 계획서는 좀 봐야 하니까.”

[그래? 나도 같이 가자.]

“가셔도 별로 할 게 없을 텐데요?”

[이 좁은 곳에 있는 게 더 답답해.]

수한은 차를 몰고 타이탄 공격대 사옥으로 향했다.

용이는 쥬페르 행성에 다녀온 뒤 계속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수한이 직접 운전했다. 라오그뉴가 조수석에 앉은 채 발을 까딱거렸다.

[이 마차 내가 몰아보면 안 돼?]

“그럼 면허증부터 따서야 합니다.”

[면허증? 시험 보라는 얘기지? 귀찮은데.]

“그러다 사람 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면허증은 금방 따니까 한 번 배워보세요. 그러면 타이탄 공격대에서 라오그뉴님 전용 자동차도 하나 나올 겁니다.”

[맞아. 그런다고 했지? 좋아. 그 면허증 따는 방법 좀 자세히 가르쳐 줘.]

수한은 운전 학원과 운전면허 시험에 대한 내용을 군체 의식으로 전달했다.

라오그뉴가 흥흥 거리며 그 개념을 받아들였다.

[뭐가 이리 복잡해? 어쨌든 학원 등록하고, 시험 3개 보면 된다 이거지?]

“직접 해보면 쉬울 겁니다. 어렵지 않아요.”

[알겠다. 어? 강철 새다!]

라오그뉴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뭔가 해서 보니 비행기 한 대가 서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김포 공항이나 인천 공항으로 가는 듯했다.

수한은 기겁을 했다.

“라오그뉴님! 머리 내밀지 마요! 위험해요!”

[뭐가? 하나도 안 위험한데?]

“아니, 라오그뉴님 말고 주변 차들이 위험하다고요!”

주위 차들이 머리를 쑥 내민 라오그뉴에게 놀라 경적을 빵빵 울리고 있었다. 수한의 바로 오른쪽에서 주행하던 차는 한 번 크게 휘청거리더니 겨우 중심을 잡았다.

라오그뉴가 혀를 차며 창문을 닫았다.

[지구인들은 너무 소심한 것 같다. 왜 이리 사소한 것에 깜짝깜짝 놀라는 줄 모르겠어.]

“그야 까딱 잘못하면 사람이 죽으니까요. 쥬페르 행성과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라오그뉴에게 교통 법규를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엘른은 금방 적응했는데, 라오그뉴는 두려움이 없어서 그런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공격대 사옥에 도착했다.

수한이 향한 곳은 특수 원정 1팀이었다. 기요테 행성 원정에 대해 조율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석구가 수한을 맞이했다.

“이 이사님! 어서 오세요. 신수가 훤하십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원정 계획서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예, 준비해 뒀습니다.”

수한은 원정 계획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하아암.]

라오그뉴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나 건물들 구경이라도 하고 올게. 어려운 이야기는 너희들끼리 해.]

“사고 치지 마세요.”

[걱정 마. 사람들 안 다치게 할 테니까.]

수한은 마주 앉은 석구에게 눈짓을 했다.

석구가 수한의 뜻을 눈치 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대리 한 명을 불러 라오그뉴를 따라가게 했다.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석구와 본격적으로 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요테 행성에서 어느 도시로 진입할지, 어떤 외계 종족들이 먼저 진입해서 싸우고 있는지 등등.

“기요테 행성의 아르프 시로 진입할 생각인데, 걱정인 것은 텔마 행성인들이 아르프 시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텔마 행성인이요? 그 종족은 평판이 안 좋던데요.”

“예. 오죽하면 지구인보다 탐욕스러운 종족으로 꼽히겠습니까? 그래도 다른 도시보다는 사정이 더 좋습니다. 근처에 노려볼 기계 괴수도 많고요.”

“하긴 그렇지요.”

탐욕스럽고, 잔인하기로 이름 높은 텔마 행성인 말고는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어 보였다.

정확히 언제 원정을 떠날 것인지 의논할 때였다.

갑자기 사옥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처음에는 좀 웅성거리는 정도더니, 나중에는 비명 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수한은 반사적으로 허리에 찬 권총을 움켜쥐었다.

석구도 단검을 꺼내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죠?”

“누가 공격해 온 걸까요? 그럴 리가 없는데……”

혹시 하는 생각이 수한의 머릿속을 스쳤다.

심심하다며 사옥 구경을 나선 라오그뉴.

그 어린 신이 뭔가 사고를 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수한의 앞에 앉아 있던 석구가 입을 크게 벌렸다.

“저, 저, 저!”

수한의 뒤에 대고 손가락을 가리킨다.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커다란 사자가 보였다.

쥬페르 행성에서 보았던 라오그뉴의 본체. 그 집채 만 한 사자가 폴짝 폴짝 뛰며 타이탄의 세 쌍둥이 건물을 올라가고 있었다.

재주도 좋았다. 그 큰 덩치가 유리창을 박차는데도 유리 한 장 깨지는 게 없었다. 대신 업무에 열중하던 공격대 사원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수한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이고 골치야.”

석구가 묘한 얼굴을 했다.

“방금 그게 라오그뉴님입니까?”

“맞습니다.”

“신이라더니, 하는 짓은 영락없는 새끼 고양이네요?”

“어린 신이라고는 들었는데, 생각보다 더 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악한 신이 아닌 게 어딥니까.”

“그야 그렇습니다만. 잠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수한은 라오그뉴의 위치를 확인했다.

라오그뉴는 타이탄 공격대 사옥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지상의 사람들과 자동차를 흥미롭게 구경하다가, 방송국 헬기 한 대가 접근하자 그것에 눈독을 들였다.

옥상의 문을 열고 나간 뒤, 라오그뉴를 불렀다.

“라오그뉴님! 거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도시 구경해. 높으니까 좋다.]

수한은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방송국 헬기에서 누군가 카메라를 내밀었다. 그것을 들이대자, 라오그뉴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수한은 천천히 라오그뉴에게 다가갔다.

이미 정부나 수호자 연맹에는 허가를 받았지만, 라오그뉴의 존재가 대한민국 전체에 알려지게 생겼다. 기사 거리도 없던 참이니 모든 뉴스 채널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겠지.

더구나 지상의 시민들도 타이탄 공격대 사옥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까 타이탄 사옥을 뛰어오르던 게 여의도 전역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라오그뉴가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다행이었다. 더구나 나타난 장소도 타이탄 공격대 사옥이니, 시민들은 누군가 고위 이능력자가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한은 라오그뉴를 데리고 내려왔다.

방송국 헬기에 타보고 싶다고 했지만, 그건 겨우 말렸다. 하늘 위에서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몰랐으니까.

‘어떻게 한다?’

본체로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주의를 주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본체에 대해 자부심이 강해서, 왜 본체로 돌아가면 안 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수한은 포기하고 하나만 당부했다.

“그러면 사람들 놀래키지는 마세요. 빨리 달리지 말고, 천천히 걸어 다니세요. 아셨지요?”

[그래, 알았어. 천천히 다닐게.]

원정 준비도 하고, 이사도 하고, 라오그뉴가 일으키는 사고 뒷수습도 하며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

중간에 밀실을 빌려 르익에게 받은 S급 힘의 결정을 흡수했다. 저번에 넉넉하게 사온 흡수 보조제를 쓴 탓에, 어렵지 않게 흡수하는데 성공했다.

그에 따라 군체 의식이 초월 의식으로 진화했다.

기능만 놓고 보면 비슷하지만 성능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심지어 통신 능력도 강해졌다. 이제 지구 반대편 정도에 있는 사람과도 정신 감응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비록 힘은 많이 소모하겠지만.

내친 김에 구현 계열 AA급 힘의 결정도 하나 사서 흡수했다. 벼락불을 우레 일격으로 진화시킨 것이다. 비록 속성 부여만은 못 해도, 상당한 공격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렇게 원정 시작을 겨우 이틀 앞둔 시점.

손님 둘이 수한을 찾아왔다.

[여! 잘 지냈나?]

[아니, 여기엔 어쩐 일이십니까?]

[자네 총알 좀 받아가려고 왔지. 저번에 자네가 줬던 총알들, 벌써 바닥이 났거든.]

노르헤임의 드워프들.

그들이 수한을 방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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