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52화 (153/254)

< 손님맞이 >

수한을 찾아온 드워프는 두 명.

토프레 가문에서 한 명, 막시무스 가문에서 한 명이었다.

저번에 갔을 때 몇 날 며칠을 총알을 만들어 주고 왔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나 보다.

수한은 넌지시 질문을 했다.

[목표하신 것은 이루셨습니까?]

드워프들이 머리를 긁적였다.

[방향은 잘 잡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더 필요하다네. 아마 세계검 정도의 물건이 나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거야. 한 일이 년 정도?]

[겨우 그거요?]

[처음 종족 연합에 가입했을 때부터 우리의 목표였으니까. 특히 자네 도움이 컸지.]

수한은 드워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새로 이사한 집이다.

강남에 있는 2층짜리 고급 단독 주택이었다. 돈이 꽤 들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새미와 함께 살던 아르텔라와 라오그뉴도 이곳으로 옮겨 왔다. 아예 새미가 머물 방도 하나 만들었다. 마엘른도 자기 방을 얻어서 말은 안 해도 기분이 좋은 기색을 보였다.

드워프들이 수한의 허리에 걸린 쌍권총을 곁눈질했다.

[그래, 저번에 가져간 총은 써 봤나?]

[성능이 굉장하던데요. 역시 노르헤임 드워프의 솜씨가 종족 연합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일룸! 카일룸은 어땠나?]

[글쎄요. 제가 쓰는 게 아니라서요. 하지만 마엘른님이 매일 같이 카일룸을 손질하는 것으로 봐선 마음에 꽤 드신 것 같았습니다.]

[흐흐흐, 당연한 소리지. 나도 카일룸을 만드는데 거들었지만, 그놈은 정말 화끈하게 나왔거든! 우리 막시무스 가문의 자랑 중 하나지!]

드워프들의 이름은 각각 드빌과 뉴팩이라고 했다.

드빌은 토프레 가문, 뉴팩은 막시무스 가문이었다.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자, 마침 수한의 집에 와 있던 새미가 둘을 보고 반가워했다.

“어머, 오랜만이에요. 잘 계셨어요?”

[오호, 지구인 처자로군. 통역 기능 장비를 구한 거요?]

[언제 한 번 우리 행성에 놀러 오시구려. 이번에 다이아몬드 광맥을 발견했는데, 그걸로 괜찮은 반지라도 하나 만들어 드리리다.]

“호호, 말씀이라도 고마워요.”

운전 학원에서 라오그뉴도 돌아왔다.

요즘은 그래도 사고를 덜 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라오그뉴의 본체에 서울 시민들이 익숙해졌다. 라오그뉴가 본체를 뽐내며 지나가면, 가까이 와선 사진을 찍곤 했다.

라오그뉴가 드워프들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노르헤임 행성의 드워프들이라고? 특이하게 생겼구나.]

[그대는 누구요?]

[나? 긍지 높은 은사자 갈레옹과 고귀한 밤표범 아조떼의 딸, 라오그뉴라고 한다.]

처음 대면이라 그런지 라오그뉴가 짐짓 위엄 있는 모습을 보였다.

드워프들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졌다.

풍기는 분위기를 보나, 은은히 흘러나오는 기파를 보나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한은 라오그뉴를 드워프들에게 소개했다.

[쥬페르 행성의 사자신이십니다. 모험을 하고 싶다고 절 따라 오셨지요.]

[사자신!]

[쥬페르 행성이라면 신들이 지상을 걸어 다닌다는 곳 말인가? 음식과 술이 아주 맛있다고 하던데……]

대충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드워프들이 가져온 짐을 풀어놓았다. 개인적인 물건은 옷가지 몇 개가 전부고, 나머지는 몽땅 탄환 상자였다.

[여기에 속성 부여를 하면 됩니까?]

[부탁하네.]

정말 많았다.

상자별로 속성 부여를 하는데, 상자 1개씩 속성 부여를 할 때마다 머리가 핑 돌았다.

[이거 상자 1개에 총알이 몇 개나 들어가는 겁니까?]

[1만 발은 들어갈 걸?]

[어쩐지, 힘이 많이 든다 했습니다.]

상자 세 개를 처리하자 벌써부터 숨이 막혔다.

수한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거 며칠 나눠서 해야겠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다 하려고 했다간 골병들겠어요.]

[그러시게. 우리야 급할 거 없으니까 천천히 해도 상관없어.]

[빨리 돌아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괜찮다네. 자네에게 공급 받아야 할 총알이 많아서 우리가 눌러앉기로 했거든.]

[아, 그렇습니까?]

[우리의 노동력도 자네에게 총알 대가로 지불하는 것 중에 하나라네. 마음껏 부려주게. 잠만 재워주고, 밥이랑 맥주만 제공하면 우리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선 무슨 일이든 해주지.]

[나는 마법 대장장이이고, 여기 이 친구는 기계 공학자라네. 우린 전투 능력은 없지만 자네에게 유용한 물건들을 만들어 줄 수가 있어. 뭐든지 말만 하게. 지구인들이 깜짝 놀랄 물건을 만들어 주지.]

수한은 노르헤임 행성에서 드워프들과 작별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양 손 무겁게 올 테니 박대하지 말라고 했지.

그 수준이 아니다.

아예 몸을 통째로 맡겨 버렸다.

그것도 토프레 가문의 강점인 기계 공학자와 막시무스 가문의 강점인 마법 대장장이로.

원정에서는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연구부에 놔두면 알아서 자기 일을 할 것이다. 어쩌면 원정 다니는 사람들보다 더 큰 이문을 뽑아낼 지도 몰랐다.

수한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환영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딱히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서, 여러분이 계실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뭐, 천천히 하게. 그때까지 우리는 맥주나 마시고 놀 테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남는 방에 드워프들을 묵게 했다.

공구가 아무 것도 없으니 좀 그랬다. 조만간 소일거리라도 하게 몇 가지를 사주기로 했다. 노르헤임 행성에서 쓰던 수준의 것은 구하기 힘들어도, 적당한 수준의 것은 가능할 터였다.

드워프들까지 합류하자, 수한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것으로 수한에게 의탁한 이들은 총 다섯.

타이탄 공격대와의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수한이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최근에 몇 명이서 외계 행성을 몇 군데 다녀왔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 경험을 잘 살리면, 소규모로라도 공격대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의도에 사무실 하나 사놓을까?”

“갑자기 웬 사무실?”

수한의 말에 새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타이탄 공격대랑 계약 기간 얼마 안 남았잖아. 계약 끝나면 공격대 만들 건데, 그러려면 사무실이라도 하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무실도 공격대 요건에 들어가?”

“내가 알아보니까 공격대 법인은 조건이 좀 까다롭더라. C급 이상 이능력자가 최소 5명이 있어야 되고, 자본금도 10억은 있어야 되고, 사무실도 필요해.”

“복잡하다.”

“법인 설립 절차는 미현씨한테 맡기려고. 내가 진행해 봐야 삽질만 할 테니까.”

“하긴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좋지.”

전투력 자체는 지금도 크게 모자라지 않다. 수한과 새미, 라오그뉴와 마엘른만 해도 어지간한 공격대는 찜 쪄 먹을 테니까.

문제는 전투 외적인 부분.

기껏 변이체 시체든 기계 괴수 시체든 가져와도 창고에 쌓아두기만 할 거면 무슨 소용 있나. 그걸 팔아야 돈이 되지.

더구나 그냥 팔면 손해가 심하다. 가공해서 파는 게 이문이 크다. 변이체 심장만 해도 힘의 결정으로 가공하는 순간 그 가격이 몇 배는 훌쩍 뛰지 않나.

가공이야 드워프들에게 맡긴다고 쳐도, 그걸 누가 가지고 나가서 팔까?

수한이? 새미가? 아니면 드워프들이?

전투부의 뼈대는 완성되었으니, 기타 부서들을 맡을 사람이 필요했다.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다행히 모두 시간이 된다고 했다. 굳이 밖에서 만날 것 없이, 집들이를 겸하여 그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이야, 집 좋다! 저번 주에 이사했다고?”

“예. 식구가 늘어서요.”

“나도 뉴스 봤어. 엘프에 드워프, 사자신까지 있다며?”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사자신은 진짜 놀랬어. 난 또 무슨 S급 이능력자가 변신한 줄 알았거든.”

“축하합니다! 정말 부럽네요. 저도 서울 노른자위 땅에 이런 단독 주택 하나 마련하는 게 꿈입니다. 현실은 강남은커녕 강북에 아파트 하나 사기도 힘드니…… 어휴.”

“열심히 일하다 보면 가능할 겁니다.”

알바트로스 신입사원 연수에서 만났던 네 명.

최동휴, 방유미, 권준, 정지훈.

각자 분야가 달랐다. 영업부, 정보부, 가공부, 연구부에 포진되어 있었다.

수한은 타이탄 공격대로 옮겨온 지난 1년 동안 가끔 그들을 만나곤 했다. 네 명 모두 알바트로스에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진급도 하고 연봉도 올려 받았다.

집들이라고 네 명 모두 양 손에 뭔가를 바리바리 가져왔다.

휴지, 음료수, 향초, 아기 기저귀……

응? 기저귀?

이걸 왜 가져왔느냐고 묻자, 권준이 두 눈을 끔뻑였다.

“신혼 집 아니었어요? 전 두 분이 결혼하시는 줄 알았는데……”

“하하, 아직은 아닙니다.”

수한은 오랜만에 요리 솜씨를 발휘했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려냈다. 고추장으로 버무린 육회는 물론, 각종 전, 제육볶음과 산낙지 탕탕이, 숭어회와 광어회, 달짝지근한 소갈비 찜, 담백한 재첩국, 잡채, 갖가지 나물에 간장게장과 양념게장까지 내놓자 넷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걸 수한씨가 했다고요?”

“맙소사, 저보다 요리 훨씬 더 잘 하시네요?”

“으아, 난 할 줄 아는 게 라면 끓이는 것 밖에 없는데……”

“요리 잘 하는 남자가 대세라고는 들었는데, 너도 그럴 줄은 몰랐다. 도대체 못 하는 게 뭐냐?”

손님들이 아귀처럼 음식에 달려들었다.

드워프들이 벌써부터 음식을 아예 목구멍에 들이붓고 있었다. 갈비찜과 육회를 맛보더니, 연신 엄지를 치켜 올렸다. 생맥주를 아예 통으로 사왔는데, 벌써 통 하나가 작살난 뒤였다.

라오그뉴도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드워프들을 능가했다. 처음에는 육류에만 손이 가더니, 나중에는 전 종류를 퍼먹었다. 수한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전들이 삽시간에 바닥났다.

마엘른은 나물 몇 가지에 간장만 살짝 쳐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아르텔라는 회 종류만 몇 점 집어먹고 말았다. 그러면서 라오그뉴와 드워프들을 구경하는데, 그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수한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인원은 12명이지만, 인원수대로만 준비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라오그뉴와 드워프를 생각하고 30인분을 준비했는데, 그것도 동이 날 것 같았다.

기한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배에 다 들어가요?”

[내 본체를 생각해 봐라. 이걸로도 부족해. 그냥 내가 혼자 다 먹었으면 좋겠어.]

“다음부터는 아예 출장 뷔페를 불러야겠습니다.”

[그건 또 뭐냐?]

“나중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상을 치웠다.

설거지는 내일 아침에 가사 도우미가 와서 처리할 터였다. 손님들을 대접하는 의미에서 요리는 수한이 직접 했지만, 설거지까지 할 시간은 없었으니까.

널찍한 거실에 모두들 둘러앉았다.

동휴가 대표격으로 수한에게 질문했다.

“눈치를 보니까 우리한테 뭔가 부탁할 게 있는 것 같은데, 뭔데 이렇게 밑밥을 까는 거야? 시원하게 말을 해봐. 궁금하다.”

“부탁이 아니라, 네 분께 제안을 하나 하려고요.”

“제안?”

넷이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무슨 제안일지 대충 짐작을 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예상했던 제안이 수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제가 곧 타이탄 공격대와 계약이 끝나는 건 알고 계시죠? 계약 연장 없이, 이번에 제 공격대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사실 막막합니다. 전투 인원이야 지금 있는 인원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데, 일반 사원 노릇을 할 사람이 부족하거든요.”

“아하, 혹시 우리들을 영입하려는 거야?”

“가능하다면요. 대우는 섭섭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가야지! 알바트로스도 요즘 잘 나가지만, 우리도 더 큰 물에서 놀고 싶다고!”

동휴가 생각도 하지 않고 승낙했다.

오히려 수한이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더 생각해 보지 않으셔도 됩니까?”

“하하, 아침에 네가 전화했을 때부터 이 얘기를 할 거라고 예상했어. 솔직히 네가 공격대 만들기만 하면 타이탄 공격대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잖아? 기회가 왔는데 당연히 잡아야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이야.”

“동휴 형 말이 맞아. 알바트로스에 남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것보다는 네 공격대 창립 멤버가 되는 게 훨씬 매력적이야.”

“이제부터는 이름 부르지도 못하겠다. 사장님이라고 해야겠어!”

“에이, 그냥 편하게 대해주세요. 예의는 공식석상에서나 차리면 되지요.”

“하하, 그럴까?”

공격대 설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명 모두 알바트로스와의 계약이 6월까지였다. 모두들 승진이 예정되어 있지만, 수한의 제안을 받아들여 알바트로스와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 시작은 여의도의 오피스텔 몇 채로부터.

따로 사옥이 있는 게 아니니 처음에는 위탁 판매를 하기로 했다. 그거야 수호자 연맹에 맡길 수도 있고, 아니면 타이탄이나 알바트로스에 약간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형식을 취해도 될 터였다.

권준이 눈을 번뜩였다.

“그래도 딱 하나, 힘의 결정 추출 장치는 갖춰야 됩니다.”

“그거 보통 얼마나 하죠?”

“기왕이면 지구 말고 헤븐에서 생산된 게 좋습니다. 추출 성공 확률이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변이체 심장 같은 경우, 힘의 결정 추출이 실패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지구산 추출 장치는 실패 가능성이 꽤 높았다. 반면 헤븐 행성산은 달랐다. 지구산과 비교하면 효율이 2배 가까이 좋았다. 더구나 1개를 추출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훨씬 더 빨랐다.

문제는 세라프 종족이 힘의 결정 추출 장치를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것.

힘의 결정 추출 장치를 구입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 허가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차선은 뭡니까?”

“아틀란티스의 추출 장치도 유명합니다. 아니면 리셰르아 행성이나 스투브 행성도 유명하고요.”

“으음, 나중에 헤븐 행성 가서 구해보든지 해야겠네요. 지금 당장은 어쩔 방법이 없겠습니다.”

수한은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받았다.

그 중 몇 개는 드워프들을 통해 구매가 가능했다. 사정 얘기를 했더니, 드워프들이 흔쾌히 구해주겠다고 했다.

미현은 수한의 의뢰로 괜찮은 오피스텔을 구하고 있었다. 몇 채를 산 뒤 용도 변경하여 공격대 사무실로 써먹을 생각이었다.

“원정이 1달 정도는 걸리겠죠? 그 사이 일을 끝내놓을 수 있을 거예요. 돈 많이 벌어오세요. 아주버님이 이번 원정에서 버는 게 공격대 종잣돈이 될 거예요.”

“하하, 알겠습니다.”

원정 날짜가 다가왔다.

목적지는 기요테 행성.

수한 일행과 특수 원정 1팀, 그리고 전투 3과와 지원 4과, 5과가 참가하는 상당히 규모가 큰 원정이었다.

거의 80명에 육박하는 규모.

공격대 설립은 온전히 미현에게 맡겼다. 원정을 다녀오고 나면 기본적인 것은 끝이 났을 터였다.

2017년 4월 24일.

공격대원으로서의 마지막 원정을 떠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