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53화 (154/254)

< 기요테 행성 -1- >

제국은 전방위적으로 종족 연합을 압박했다.

그리하여 멸망한 행성도 있고, 수성에 성공한 행성도 있었다. 물론 아직도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곳도 존재했다.

기요테 행성도 그 중 하나.

어떤 대륙은 기계 괴수들을 모두 멸절시켰고, 어떤 대륙은 반대로 원주민들이 멸망했다. 기계 괴수들이 차지한 지역이 절반, 종족 연합이 수복한 지역이 절반 정도 되었다.

수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타이탄 원정대가 도착한 것은 기요테 행성의 최전선에 위치한 도시 아르프.

기계 괴수들이 왕왕 관찰되는 곳이었다. 이 도시에는 세라프 종족이 없지만, 인근의 작은 요새에 한 명이 머무르고 있었다.

“분위기가 안 좋네.”

새미가 입술을 달싹였다.

가브낙 행성과 질라 행성도 그랬지만, 이곳은 특히 심했다.

거적데기 한 장 덮어쓰고 누워 있는 피난민들에게서, 짙은 절망의 기운이 느껴졌다.

황동색 피부에 머리칼은 없고, 귀가 길게 늘어져 바닥에 끌리는 종족.

타이탄 원정대가 그들 사이를 지나가지만, 피난민들은 퀭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

와장창!

격한 목소리와 함께,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피난민들끼리 싸움이 붙었다.

자세히 보니 작은 쥐 같은 동물 때문이었다. 우연히 피난민 하나가 그 동물을 잡았는데, 그걸 빼앗으려고 다른 피난민이 우격다짐을 벌인 것이다.

어딜 맞았는지, 피난민이 쓰러진 채 다시 일어서질 못했다.

수한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불쌍하지만 개인을 도와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서 기계 괴수들을 사냥하여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었다.

“텔마 행성인들이 여길 관리하고 있다고 했지요?”

수한은 석구에게 물었다.

“예. 지금 상황을 보니 아예 방치하다시피 한 것 같습니다. 심각하네요.”

석구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텔마 행성인은 머리가 두 개, 다리가 일곱 개인 종족이었다. 육체적인 능력은 보잘 것 없는데, 종족 전체가 염력을 다룰 수 있어 상당히 강력했다.

강력한 전투력, 탐욕스럽고 잔인한 성정.

텔마 행성인은 그렇게 요약할 수가 있었다. 피난민들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 그냥 방치한 듯했다.

어차피 원정대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피난민들을 외면하며 지나쳤다.

도시 외곽에 커다란 야영지가 보였다.

야영지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못 해도 수만은 되는 것 같았다. 가브낙 행성에 파병 갔던 대한민국 공격대와 국군을 합친 수와 비슷했다.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곳곳에서 기계 괴수를 해체하고, 변이체 시체를 한쪽으로 실어 날랐다. 그러면 세라프의 전당까지 그걸 가져가 자기네 행성으로 보냈다.

수한은 석구와 함께 야영지로 다가갔다. 방탄 SUV를 타고 접근하자, 병사들이 SUV를 주시했다.

[누구냐?]

[지구 출신, 타이탄 공격대 소속 S급 이능력자 이수한입니다. 이곳의 책임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 말에 다소 얕보는 기색이던 병사들이 움찔했다.

S급 이능력자.

수만을 넘는 텔마 행성 군대에서도 S급 이능력자는 드물었다. 겨우 대여섯 명 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다른 행성 출신이라도 홀대할 수는 없었다.

당장 말투부터 달라졌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병사가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면담 허가는 금방 떨어졌다. 다른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야영지 중앙으로 향했다.

텔마 행성인들이 수한과 석구를 힐끔거렸다.

종족 전체가 염력을 쓸 줄 아는 종족이라 그런지 최하가 D급 이능력자는 되어 보였다. 가끔 A급, B급도 끼어 있었다. 그들도 수한의 등급을 눈치 챘는지 웅성거렸다.

야영지 중앙에는 커다랗고 화려한 천막이 있었다.

병사는 그곳으로 둘을 안내했다.

천막으로 들어가자 안에 앉아있던 자가 둘을 맞이했다.

[오, 반갑소이다. 지구에서 오셨다고?]

다른 텔마 행성인들보다 덩치가 1.5배는 컸다. 한 손에는 수정을 깎아 만든 지팡이를 들고, 몸에는 보석으로 장식한 흉갑을 입었다.

수한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S급 이능력자 이수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A급 이능력자 김석구입니다.]

[군단 사령관 뮈휘뷔취요.]

뮈휘뷔취?

많은 행성을 다녀봤지만, 이름 참 괴상하다.

사령관말고도 다른 텔마 행성인들이 앉아 있었다.

어딘가의 영주나 군주, S급 이능력자 등 텔마 행성 군대의 수뇌부들.

통성명을 한 뒤 협조를 부탁했다.

세라프의 전당을 자유롭게 이용하게 해달라는 것.

당연하다.

용이를 이용하면 소형 기계 괴수를 어렵지 않게 때려잡을 수 있었다. 라오그뉴까지 합세하면 더욱 그렇다. 이번 원정의 목표는 변이체 같은 게 아닌, 기계 괴수 10마리를 잡는 거였다.

사령관이 난색을 표했다.

[그건 불가능하오. 우리 군대가 쓰기도 모자라니까. 보급품을 가져오고 전리품을 보내는데 하루 24시간을 다 써도 모자라오.]

[그렇다면 하루에 일정 시간이라도 배분해주시기 바랍니다.]

[좋소. 어차피 해가 지면 우리 군대는 휴식을 취하니까 그때 쓰도록 하시오.]

정확한 시간을 협의했다.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그 동안은 세라프의 전당을 타이탄 원정대가 온전히 쓸 수 있었다. 대신 타이탄 원정대가 전당을 관리해야 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협의 후 텔마 행성인들이 쓰기로 했다.

기왕이면 낮에 사용하려고 했지만, 도시를 텔마 행성 군대가 지키고 있으니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3시간이면 나쁘지 않다.

나중에 다른 행성에서 오더라도 우선권을 인정받기로 한 거니까.

도시의 상황에 대해 듣는데, 텔마 행성인들이 텃세를 부렸다. 근처에 있는 기계 괴수는 자기들이 사냥할 테니 잡지 말라는 것이다.

수한이 한 번 뒤집을까 생각했는데 석구가 말렸다. 자기가 직접 세라프 어로 중재하더니, 구역을 정했다.

아르프 시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뾰족한 돌산이 하나 있다. 그곳을 넘어가서 기계 괴수를 잡기로 했다.

가브낙 행성이나 질라 행성에선 선발대 입장이어서 마음대로 잡으면 됐는데, 기요테 행성은 후발 주자로 온 것이라 처지가 달랐다.

하긴 텔마 행성인들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주변 정리 다 해놓고 과실만 따먹으면 되는데 다른 종족이 숟가락을 올리는 것을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협의를 끝내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수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기계 괴수를 많이 잡아도 문제가 되겠습니다.”

“예. 돌아가는 것을 보니 어떤 명목으로든 빼앗으려고 할 게 분명합니다. 미리 대비를 해야겠습니다.”

“수가 너무 차이가 나니 문제네요. 이 근처에 다른 세라프의 전당은 없습니까?”

“최소한 수천 킬로미터는 가야 합니다.”

“고민을 좀 해봐야겠네요. 일단 돌산으로 이동합시다.”

원정대는 세라프의 전당 근처 공터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들과 함께 텔마 행성인들이 지정해 준 돌산을 향해 달렸다.

전선이 형성되어 있는 곳.

세라프 종족이 있는 요새에선 꽤 멀어지고, 기계 괴수들에 의해 멸망한 내륙으로 들어가는 방향이었다.

이동하면서 용이를 이용해 주변을 정찰했다.

바로 인근에 기계 괴수들이 몇 보였다.

이미 몇 차례 격전이 있었나 보다.

전투의 흔적이 역력했다. 광선포가 파괴당해 있는가 하면, 다리 몇 개가 분질러졌다. 거대한 집게발이 반쯤 쪼개져 한참 수리 중인 녀석도 있었다.

아마 저래서 잡지 말라고 했나 보다.

그들을 멀리 지나쳐 돌산으로 이동했다.

황량한 벌판에 송곳 같은 돌산이 외로이 서 있었다. 차를 끌고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아서, 그 아래에 진지를 설치했다. 대신 돌산 위에 작은 초소를 만들고 그곳에서 사방을 감시하기로 했다.

수한은 돌산 너머로 용이를 날려 보냈다.

높은 곳에서 살펴보니, 온전한 상태의 기계 괴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마리만 있는 것도 있고, 몇 마리가 몰려다니는 것도 있었다. 돌산에서 더 이동하지 않는 범위에서 잡을 수 있는 것은 총 여섯 마리 정도였다.

주요 인사들을 모아놓고 회의에 들어갔다.

“급선무는 용이와 융합할 기계 괴수를 확보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아예 기계용을 만들어 가져오는 방안을 상정했다. 그런데 라오그뉴가 합류하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라오그뉴 혼자 소형 기계 괴수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한과 새미, 마엘른과 아르텔라가 더해지면 안정적인 사냥도 가능했고.

따라서 현지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기계용을 들고 차원문을 지나려면 막대한 자원이 소모되니까.

“적당한 시체는 없었습니까?”

“예. 텔마 행성인들이 가져간 모양입니다. 전투의 흔적은 몇 군데 발견했는데, 금속 무더기까지 싹 긁어간 모양입니다.”

“결국 한 마리는 잡아야겠습니다.”

“그렇지요. 마침 따로 떨어져 있는 놈이 하나 있습니다. 게 형태의 기계 괴수인데, 그놈부터 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힘을 쓸 때가 된 것 같은데?]

“하하, 라오그뉴님을 믿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계 괴수 공격에 나서는 것은 수한 일행이 전부.

여기에 석구만 데리고 나왔다. 나머지 원정대원들은 모두 돌산의 진지를 지키게 한 것이다.

석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 인원으로 괜찮겠습니까?”

“충분합니다. 사실 라오그뉴님만 해도 소형 기계 괴수 정도는 잡을 수 있는 걸요.”

“다른 기계 괴수가 공격해오면 어떻게 합니까?”

“도망쳐야죠.”

거리가 먼 까닭에 다른 기계 괴수가 공격할 가능성은 적었다. 설령 공격해오더라도 도망치는 것은 가능했다. 라오그뉴도 있고, 수한의 아음속 초능도 있으니까.

기계 괴수가 어슬렁거리는 곳에 도착했다.

수한은 얼굴을 찌푸렸다.

게처럼 생긴 기계 괴수의 발밑에 시체가 깔려 있었다. 아르프 시로 가던 피난민 무리 같은데, 남녀노소 말할 것 없이 비참하게 널브러진 상태였다.

생존자는 없었다.

어떤 자가 인공지능을 저 따위로 만든 걸까.

일일이 밟아 죽인 모양이었다. 시체가 하나같이 처참했다.

수한이 라오그뉴를 보고 말했다.

“라오그뉴님. 앞장 서 주세요. 저희가 지원하겠습니다.”

[알았다.]

“새미야, 내가 유도 속성 걸면 전력으로 공격해. 무슨 말인지 알지?”

“많이 해봤잖아. 걱정 마.”

“마엘른님은 처음에는 새미를 지켜주시다가, 직접 판단하셔서 움직이세요. 공격하셔도 좋고 계속 호위를 해주셔도 좋습니다.”

“알겠소.”

[아르텔라님은 소환수들을 이용해서 기계 괴수의 움직임을 방해해주세요. 굳이 직접 공격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 그렇게 할게요.]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에겐 한국어로, 그렇지 않으면 초월 의식으로 지시했다.

석구가 옆에서 보다가 물었다.

“이사님, 전 뭘 하면 되겠습니까?”

“여차하면 도망가야 하니까 SUV 시동을 걸고 대기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일일이 지시를 한 후, 용이를 변형시켰다.

용갑 형태.

수한의 모습이 용 모양 갑옷을 입은 것처럼 변모했다. 권총은 양쪽 손목 위에 부착되고, 아바돈은 꼬리와 결합했다.

라오그뉴가 먼저 SUV의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몸을 한 번 뒤집더니, 사자 형태로 변신했다. 본체는 아니고 지구의 사자들과 비슷한 크기였다.

라오그뉴가 빠르게 기계 괴수에게 접근했다.

수한도 몸을 날렸다.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수한이 화살처럼 하늘을 날았다.

둘은 금세 기계 괴수의 지근거리에 도달했다.

[어흥!]

라오그뉴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와 함께 무지갯빛 폭풍이 몰아치더니, 라오그뉴가 거대한 사자로 변했다.

기계 괴수의 눈이 번뜩였다.

푸른빛이 쭉 뿜어지더니, 라오그뉴를 한 번 쭉 훑었다.

척 보기에도 위협적인 존재.

기계 괴수가 완전히 몸을 돌렸다.

집게발을 크게 벌리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광선포 수십 문이 드러났다.

광선포들이 일제히 빛을 뿌렸다.

시퍼런 광선들이 비처럼 쏘아졌다.

목표는 라오그뉴.

라오그뉴가 울부짖으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기계 괴수가 집게발을 들어 다시 조준한 뒤 발사했다. 허공으로 푸른 빛줄기가 빗발치니, 이번에는 피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 순간, 라오그뉴가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다.

거인이 있어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라오그뉴의 몸이 땅으로 내리꽂혔다. 덕분에 기계 괴수의 공격은 모조리 빗나가 버렸다.

그 순간, 수한이 상공에 뜬 채 기계 괴수에게 총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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