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요테 행성 -2- >
집중 사격을 가했다.
풀고르와 녹스, 아바돈이 모두 광선을 토했다. 마비 속성을 함유한 채 줄기차게 날아갔다.
풀고르와 녹스에는 천공 속성이, 아바돈에는 실명 속성이 조합되어 있었다. 그 덕에 방어막이 송송 뚫렸다.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해도 수한의 의도는 훌륭하게 관철시켰다.
기계 괴수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탐지 장치도 잠깐 제 역할을 못했다. 그 덕에 천금 같은 시간을 벌었다.
라오그뉴가 기계 괴수에게 접근했다.
수한은 계속해서 총을 쏘았다. 기계 괴수가 곧 마비 속성과 실명 속성에 적응하여 다시 기동했지만, 이미 라오그뉴의 접근을 허락한 뒤였다.
라오그뉴가 눈에서 불을 뿜었다.
[죽어!]
기계 괴수의 품 안으로 뛰어들며, 오른쪽 앞발을 날렸다.
가슴 정중앙을 때렸다.
발끝에서 무지갯빛 섬광이 터졌다. 방어막 따위 뭉개버리고 동력핵까지 단번에 뒤흔들었다.
기계 괴수가 뒤로 쿵쿵 물러났다.
집게발을 세차게 휘젓자 라오그뉴가 몸만 숙여 그걸 피했다. 다시 돌진하며 기계 괴수의 가슴에 대고 앞발로 연타를 먹였다.
가벼워 보이지만, 하나하나가 수십 톤짜리 전차도 찌그러뜨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더구나 수한이 인근을 날아다니며 지원 사격을 하니, 기계 괴수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밀렸다. 간혹 반격을 가해도 라오그뉴가 몽땅 피해 버리기 일쑤였다.
한편, 석구가 조심스럽게 SUV를 운전했다.
기계 괴수가 라오그뉴와 수한의 합동을 받는 동안, 적당한 곳에 새미와 마엘른, 아르텔라를 내려주었다.
새미는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전 아르텔라님과 여기 있을 테니, 마엘른님은 라오그뉴님을 도와주세요.”
“좋소.”
마엘른이 달리기 시작했다.
새미는 몸을 꼿꼿이 세웠다. 기계 괴수의 발에 깔린 피난민 시체들을 한 번 본 후, 두 눈에서 불을 토했다.
다들 초월 의식으로 연결된 상태.
새미의 생각이 수한과 라오그뉴에게 파고들었다.
라오그뉴가 기계 괴수의 뒤로 돌아갔다.
두 집게발을 붙잡고 늘어졌다. 두 집게발이 좌우로 벌어지며, 가슴이 무방비 상태로 활짝 열렸다.
더구나 아르텔라가 소환한 투명한 용들이 잔뜩 덤볐다. 기계 괴수가 뭘 해보려고 하면 관절에 스며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무시했을 텐데, 라오그뉴가 들러붙어 있으니 훨씬 더 곤란해졌다.
새미가 두 손을 들어올렸다.
우르르릉, 콰콰쾅!
번개가 떨어졌다.
동시에 수한이 날린 회색 광선이 기계 괴수의 가슴에 명중했다. 흉부의 금속 장갑이 하얗게 빛나자, 떨어지던 번개가 정확히 그곳에 내리꽂혔다.
새미가 전력을 퍼부었다.
순간 공격력만큼은 새미도 어디 가서 떨어지지 않는다.
금속 장갑이 흔들리다가 파괴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빛나는 동력핵이 일행 앞에 여과 없이 노출되었다.
기계 괴수가 몸을 뒤틀지만, 라오그뉴가 등 뒤에서 팔을 조르고 있어 벗어나기 힘들었다.
마엘른이 돌진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기계 괴수의 다리를 박차고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미사일이 지근거리에서 터졌지만 모조리 쳐냈다. 한번은 광선포가 전신을 뒤덮었지만 몸에서 푸른 광채를 뿜어 막아냈다.
가슴에 도달했다.
검을 들어 종횡무진 긋자, 동력핵과 기계 괴수를 연결하던 선들이 몽땅 잘렸다. 기계 괴수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하며, 스르륵 뒤로 넘어갔다.
수한은 날개를 접었다. 몸이 깃털처럼 천천히 낙하하다가, 쓰러진 기계 괴수의 몸 위에 내려앉았다.
이것으로 끝.
지구에서 수한이 예측했던 대로, 수한 일행만으로도 기계 괴수 사냥이 가능했던 것이다.
뒤에서 구경만 한 석구가 혀를 내둘렀다.
“기계 괴수가 이렇게 쉽게 잡힐 줄이야……”
언뜻 그 소리를 들은 수한이 피식 웃었다.
사실 수한도 이 정도일 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방을 더 벌여야 잡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쉬웠던 것이다.
라오그뉴가 투덜거리며 기계 괴수 아래를 비집고 나왔다.
[어휴, 무거워. 엘프 너 일부러 그랬지?]
“아닙니다. 라오그뉴님께서 잡아당기셔서 뒤로 넘어진 겁니다.”
[말은 잘 한다니까.]
이젠 용이가 힘을 쓸 차례였다.
용갑 상태이던 용이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날개를 퍼덕여 기계 괴수의 머리로 들어갔다.
기계 괴수가 변형되기 시작했다.
이때, 수한은 한 가지 조치를 취했다.
그 동안 쓸 일이 없어 20에 머물러 있던 기계용 제작을 50까지 올린 것이다.
그러자 용이가 기계 괴수와 융합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겨우 두 시간 만에 변형이 끝났다.
완성된 기계용은 하나의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
날렵한 몸이 인상적이었다. 양쪽 어깨에 커다란 광선포가 1문씩 달리고, 등에는 미사일 발사대가 빼곡했다. 언제든 체내로 집어넣을 수 있을뿐더러, 비행도 충분히 가능했다.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돌아가죠. 본격적인 사냥은 내일 해야 되겠습니다.”
“예, 이사님.”
기계용에 SUV를 태우고 날아올랐다. 수십 대라면 모를까, 몇 대 정도는 태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늘을 날아가자 진지로 복귀하는 것은 순식간.
진지에 남아 있던 원정대원들이 수한 일행을 맞이했다.
“성공하셨네요!”
“저게 기계용인가요? 정말 멋있습니다!”
“기계 괴수쯤은 간단히 이기겠는데요?”
“진지에는 별 일 없었지요?”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습니다.”
“이상한 거라니요?”
“기계 괴수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희가 볼 때는 우리 진지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수한은 얼른 돌산 위의 초소로 올라갔다.
절대자의 눈을 끌어올려 기계 괴수들이 있는 쪽을 살폈다.
대원들이 말한 대로였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기계 괴수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일 아침 무렵에는 도착할 것 같았다.
무려 다섯 마리.
다행히 소형밖에 없긴 하지만, 지금 원정대의 전력과 비교하면 분명히 우위에 있었다.
두 마리, 세 마리까지는 어떻게 해봄직한데……
“이사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결국 결정은 수한의 몫이었다.
원정대 간부들의 시선이 수한에게 몰렸다.
수한은 고민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놈들을 잡겠습니다.”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걱정 마세요. 제 능력은 기계용에 탔을 때 가장 강한 위력을 발휘하니까요.”
“네?”
수한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
기계용에 타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처음에는 다들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질라 행성에서 총을 변형시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석구가 혹시나 하는 얼굴을 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거, 설마 기계 괴수의 광선포와 미사일로 속성 부여가 가능하시는 얘깁니까?”
“맞습니다.”
“허! 그럼 정말 잡을 수 있겠는데요?”
그냥 총으로 쏘는 것과, 기계 괴수의 무기를 이용하는 것은 그 파괴력에 큰 차이가 난다.
바로 요격 준비에 들어갔다.
원정대의 전력을 총동원했다.
전장은 돌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
기계용을 탄 수한이 대놓고 먼저 자리를 잡았다. 라오그뉴는 존재감을 죽인 채 작은 고양이 형태로 인근에 숨어 있었다. 가장 결정적일 때 튀어나와 기계 괴수들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오빠, 괜찮겠어?]
[안 괜찮아도 해야지. 벌써 귀환할 수는 없잖아. 너무 걱정하지는 마. 비상 탈출 준비는 해놨으니까. 여기 있는 사람 중 오히려 내가 가장 안전할 걸?]
수한은 절대자의 눈을 사용했다.
기계용의 눈에 금색 광채가 어렸다.
저 멀리서 기계 괴수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게 한 마리, 새우 두 마리, 가재 두 마리.
게는 그렇다 치고, 새우와 가재가 접근하면서 땅이 뒤집어졌다. 위아래로 크게 몸을 휘저으며 이동하는 까닭이었다.
수한은 놈들을 향해 어깨의 광선포를 겨누었다.
인사차 한 번 가볍게 발사했다.
슈웅!
공기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청색 광선이 허공을 갈랐다.
기계 괴수들이 방어막을 전개하여 막아냈다. 그것들도 광선포를 쏘아대며 접근했다.
주포라면 모를까, 이렇게 먼 거리에선 광선포로는 방어막을 뚫기가 힘들었다. 결국은 접근해서 육탄전을 벌이든 특수 탄두를 날리든 방어막을 걷어낸 다음에야 결판을 낼 수 있었다.
그 순간 수한의 두 손이 빛을 뿜었다.
붉은색, 그리고 다시 보라색.
가장 앞서서 움직이는 게 기계 괴수를 정조준했다.
게도 그것을 감지했지만 두 눈만 번뜩일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전면의 방어막만 강화했다.
인공지능은 최선의 선택을 한 거지만, 수한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광선포를 쏘았다.
적자색 광선이 예리한 칼날처럼 날아갔다.
두 개의 빛줄기가 정확히 게 기계 괴수를 직격했다. 방어막이 움찔댔지만, 그 정도는 가볍게 찢어 버렸다.
꽝!
폭음이 울렸다.
금속 장갑이 벌어지며 폭발이 수십 번이나 일어났다. 이 일격으로, 게 기계 괴수의 흉부에 거미줄과 같은 금이 갔다.
기세 좋게 달려오던 기계 괴수들이 주춤했다.
단 일격인데, 벌써부터 심대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수한은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소모되는 힘이 상당했다. 딱 한 번 공격에 체력의 10%는 빠진 것 같았다. 이걸 총 다루듯이 난사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것까지는 안 되나 보다.
잠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선택권은 수한에게 있었다. 숨을 좀 돌린 후 다시 광선포를 쏘았다. 아까 맞춘 게 기계 괴수가 아니라 그 옆의 새우 기계 괴수를 맞추자, 새우 기계 괴수가 주춤주춤 물러났다.
라오그뉴가 수한의 정신에 대고 속삭였다.
[시선 좀 끌어 봐. 내가 저놈들 틈에 들어가서 변신할게.]
[좋습니다.]
수한은 기계용 등에 설치된 미사일을 발사했다.
수십 발의 미사일이 하늘을 날아 기계 괴수들을 공격했다.
이미 광선포 공격에서 쓴맛을 본 뒤라 기계 괴수들도 감히 경시하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방어막으로 막았을 텐데, 그걸 일일이 다 광선포를 쏘아 격추시켰다.
수한은 기계용을 천천히 전진시켰다.
대기하고 있던 이능력자들에게 좀 더 접근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이 긴장하며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멈췄던 기계 괴수들도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자기들끼리 멀찍이 퍼지면서 몸을 부르르 떠는 게, 무슨 의도인지 뻔히 들여다보였다.
수한은 내심 긴장하면서 광선포를 조준했다.
광선포를 쏘아붙였다.
적보라색.
게 기계 괴수의 흉부가 박살났다. 부서진 금속 장갑 사이로 언뜻 찬란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계 괴수들이 돌진했다.
광선포를 쏘고 난 다음에 생기는 약간의 충전 시간. 그 사이를 노린 것이다.
거리가 꽤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기계 괴수들이 전력으로 질주하자 금방 좁혀졌다. 충전이 끝나 공격이 가능해진 시점에는 벌써 절반 넘게 거리를 단축한 뒤였다.
쭈앙!
광선포가 기계 괴수 한 마리의 가슴을 후려쳤다.
기계 괴수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달렸다. 한두 번 정도는 견딜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이 있지.
수한은 눈앞이 노래지는 것을 감수하며 속성을 부여했다. 등에 장착된 미사일을 한꺼번에 발사했다.
아까는 미사일을 일일이 격추했던 기계 괴수들.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모든 동력을 구동부에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대신 방어막을 강화하고, 소형 광선포로 탄막을 형성하며 달렸다.
미사일 중 절반이 넘는 수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나머지는 그대로 기계 괴수들에게 꽂혔고,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왔다.
중화, 그리고 분열 조합.
탄두 하나가 수십 개로 분열되었다. 그렇게 비처럼 쏟아졌다. 일단 방어막에 꽂히면 그 분위부터 일정 반경을 몽땅 녹여버리며 제 기능을 못하게 만들었다.
수한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지금!]
원정대가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다.
가져온 휴대용 미사일을 몽땅 발사했다. 원거리 이능 공격도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근접 공격도 가했다.
일시적으로 방어막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모조리 유효타로 들어갔다. 특히 하늘에서 벼락을 떨어뜨리는 새미의 활약이 돋보였다.
수한도 광선포를 마구 쏘아댔다. 속성을 부여하지 않았지만 효과가 상당했다. 기계 괴수들의 부품이 당장에 떨어져 나갔다.
아르텔라는 소환수들을 불러 기계 괴수의 다리를 붙잡았다. 고작 A급 이능력자인데도, 소환 계열 이능이라 그런지 잘 통하고 있었다.
[크앙!]
라오그뉴도 합세했다.
새우 기계 괴수의 가슴을 짧은 순간 수십 번이나 후려쳤다. 금속 장갑이 작살나자, 앞발을 가슴에 넣더니 동력핵을 쑤욱 꺼냈다.
라오그뉴가 흥흥거렸다.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위험합니다!]
수한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강력한 경고가 라오그뉴의 정신을 때렸다.
라오그뉴가 급히 몸을 움직였지만, 이미 늦은 다음이었다.
거대한 집게발이 라오그뉴를 잡아챘다. 라오그뉴를 높이 들어 올리더니, 다른 집게발로 마저 잡는다.
[으헉!]
라오그뉴가 기겁을 했다.
앞발을 휘둘러 수십 번이나 집게발을 연타했다. 그 서슬에 집게발이 퍽퍽 부서졌다.
막강한 위력이지만 탈출하기에는 모자랐다. 크기를 줄여 탈출하려고 해도, 집게발에 의해 전신의 힘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변화하는 게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
결국 뭘 어떻게 해보기도 전 결판이 났다.
기계 괴수가 집게발을 강하게 오므렸다. 집게발 내에 설치된 광선포가 일제히 빛을 뿜으며, 파멸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라오그뉴의 몸이 두 동강 났다.
“크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