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55화 (156/254)

< 텔마 행성인 -1- >

수한의 눈이 시퍼런 빛을 뿌렸다.

라오그뉴가 느낀 고통이 직접적으로 전달된 까닭이었다. 척추를 관통하는 강렬한 통증에, 잠깐 정신을 놓칠 뻔 했다.

그나마 다른 사람에게는 그 고통이 전달되지 않아 다행.

피가 뿌려졌다.

둘로 잘린 라오그뉴의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기계 괴수들이 시퍼런 눈을 들어 기계용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광선포와 미사일을 연거푸 발사했다.

신중하게 대처했다.

절대자의 눈으로 놈들의 공격을 꿰뚫어 보았다. 방어막에 문제가 될 공격만 피하거나 요격하고, 나머지는 그냥 방어막으로 때웠다.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정면에서 맞서기는 어려웠으니까. 다른 원정대원들도 수한의 지휘에 따라 후퇴한 뒤였다.

그러는 한편 라오그뉴의 시체를 살폈다.

은은한 무지갯빛이 어린 상태.

어느 순간 그 빛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폭풍처럼 거세게 휘몰아쳤다.

빛이 잦아들었다.

온전한 상태의 라오그뉴가 모습을 드러냈다.

라오그뉴가 분노하여 울부짖었다.

[다 죽인다!]

방심했다가 죽어서 열이 뻗쳤나 보다.

가까이 있던 기계 괴수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몸을 격하게 흔들자 머리가 단번에 뜯겨 나왔다.

이내 몸을 날려 가슴을 타격했다. 연거푸 때린 후 동력핵을 뜯어내자, 기계 괴수가 움직임을 정지했다.

라오그뉴가 날뛰는 사이, 수한도 광선포를 발사했다.

1마리의 흉부 금속 장갑을 부수는데 성공했다. 마엘른이 날렵하게 접근하여 동력핵에 연결된 선을 잘라냈다.

벌써 기계 괴수 3마리가 기능을 잃은 것이다.

이렇게까지 일이 진행된 이상 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코앞에서는 라오그뉴가 몰아붙이고, 멀리서는 수한이 속성을 부여한 광선포를 날리고.

어디 그 뿐인가.

이능력자들도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새미가 번개를 계속해서 날렸다. 마엘른이 기계 괴수의 관절을 마구 끊었다. 아르텔라는 다리를 붙잡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계 괴수의 인공지능을 교란했다.

그 밖에도 AA급 이능력자들이 자기 특기를 발휘해 기계 괴수를 공격했다.

처음에 라오그뉴가 한 번 당한 것을 빼곤 모두 순조로웠다. 집중된 공격을 얻어맞은 기계 괴수들이 하나하나 쓰러졌다.

전투가 시작되고 약 2시간.

마침내 마지막 기계 괴수를 쓰러뜨렸다.

쿠웅!

땅이 울렸다.

흙먼지가 폴폴 휘날렸다.

“후!”

수한은 기계용 안에서 짧게 한숨을 쉬었다.

무려 다섯 마리.

쉽지는 않았다.

기계용 곳곳에 상처가 났다. 관절이 삐걱대며 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왼쪽 어깨의 광선포는 공격을 받아 폭발했고, 날개 한쪽도 뜯겨나갔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이것으로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한 것이다.

돌산 근방에는 이 다섯 마리를 끝으로 더 이상의 기계 괴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수천 킬로미터는 달려가야 다른 기계 괴수들이 나타날 터였다.

더구나 레벨도 올랐다.

400레벨.

일단 일곱 번째 초능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전투 지휘와 탑승 기술이 1씩 상승했고, 직감과 위엄도 1씩 올라서 수한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일곱 번째 초능을 선택하는 것은 두 달이 지난 뒤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무척 기꺼웠다.

“라오그뉴님,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

“부활 능력 있다고 방심하진 마세요. 앞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모르는 거 아닙니까?”

[알았어. 끙, 기계 괴수는 세긴 세다. 실수 한 번 했다고 바로 목숨이 날아가네. 1대 1로 싸우는 거랑 다수랑 싸우는 거랑도 좀 다른 것 같아.]

“이런 경험이 처음입니까?”

[최소한 나랑 대등한 존재랑 단체전을 벌인 적은 없었어.]

그래서 그랬나 보다.

수한은 앞으로 조심하라고 하는 수준에서 끝냈다.

아무리 부활한다 해도 죽음의 고통은 고스란히 겪으니, 아픈 게 싫으면 스스로 조심하겠지.

뒤처리를 하고 기계 괴수의 시체를 돌산 진지로 옮겼다.

용이의 변형 능력을 이용했다. 기계용을 거대한 트레일러처럼 활용한 것이다.

돌산은 꽤 가까운 곳에 있지만, 짐이 워낙 많아서 이동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물론 X-0 정화는 끝낸 뒤.

전투 3과 과장이 의지 계열 AA급 이능력자였다. 각종 방어 이능은 물론, X-0 정화에 일가견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것으로 첫 단추는 훌륭하게 끼웠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석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걸 지구로 보내야 되는데, 텔마 행성인들이 가만히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분명히 빼앗으려고 할 텐데……”

“몰래 들여보낼 수도 없고요.”

“동력핵만이라도 먼저 보낼까요?”

“한숨 자고 생각을 해봅시다.”

밤을 꼬박 샌 참이었다.

진지로 복귀한 다음 잠부터 청했다.

해가 하늘 높이 떠오른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마침 수한의 텐트 앞을 지나던 새미와 마주쳤다.

새미가 활짝 웃었다.

“오빠, 이제 일어났어?”

“응. 몇 시간을 잔 건지 모르겠다. 너무 피곤해서 세상 모르고 잤네.”

“그런 것 같아서 안 깨웠어. 기계용 조종하는 게 힘든 것 같더라.”

“휴, 정말 힘들었어. 광선포 한 번 쏠 때마다 온 몸의 기가 쪽쪽 빨리는 것 같았다니까?”

“고생 했어.”

진지를 한 번 쭉 돌아다녔는데 라오그뉴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갔냐고 묻자, 새미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왜 그러나 싶어 다시 물어보려고 할 때, 돌산 너머에서 쿵쿵 하며 대지가 울렸다.

라오그뉴가 달려오고 있었다.

수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라오그뉴가 뭔가를 입에 문 상태였다. 숨통이 끊어져 축 늘어져 있는데, 황소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산양을 닮은 A급 변이체.

라오그뉴가 변이체 시체를 내려놓더니 으스댔다.

[어때? 맛있어 보이지 않아?]

“이걸 드시게요?”

[못 먹을 건 뭐야?]

라오그뉴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긴 죽었다가 버젓이 살아나는 존재였다. 변이체를 먹어도 체내에 X-0가 쌓일 리가 없었다.

라오그뉴는 진지 한복판에서 변이체 시체를 뜯어먹었다.

수한은 질린 듯 그 모습을 보다 고개를 저었다.

“어휴, 마음대로 하세요. 기왕이면 심장은 남겨 주시고요.”

[심장이 제일 맛있는데……]

“라오그뉴님 혼자 잡으신 거니 드셔도 됩니다. 그냥 해본 소리에요.”

[딴 소리 하기 없기다? 쳇, 원정 오면 맛있는 거 잔뜩 먹을 줄 알았더니 이상한 포장 식품이나 먹고 말이야.]

라오그뉴는 꿍얼대며 식사를 했다.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전투 식량이 입맛에 안 맞는 모양이었다. 하긴 육식 동물인 사자에게 비빔밥은 매력적이지 않겠지.

“식사들 하세요!”

지원 요원 중 한 명이 크게 소리를 쳤다.

수한도 밥을 받아왔다. 원정 나오면 질리도록 먹는 비빔밥 형태의 전투식량이었다.

새미가 밥을 먹으며 라오그뉴를 쳐다보았다.

“식사 맛있게 하시네.”

“그러게.”

혐오스럽다면 혐오스러운 광경이다.

그 동안 원정을 다니면서 피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거대 사자가 산양 변이체를 뜯어먹는 것을 봐도 무덤덤하기만 했다. 워낙 신화적으로 커서, 현실이 아닌 영화 속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한과 새미 옆에 마엘른도 다가왔다.

마엘른은 비빔밥이 맛있는 듯했다. 지구에서도 비빔밥만 찾더니, 원정 나와서도 전투 식량을 맛있게 먹어 치웠다.

식사 후, 과장들을 불러 회의에 들어갔다.

“내일 해가 뜨면 도시로 복귀할 겁니다. 텔마 행성인들이 문젠데, 혹시 좋은 방법 있습니까?”

“어차피 몰래 세라프의 전당을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별도로 사용료를 지불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용료요?”

“예. 시비가 붙어서 전부 다 빼앗기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한 5퍼센트나 10퍼센트 주고 안전을 보장 받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겁니다.”

“다른 분들 의견은 어떻습니까?”

“저도 강 과장님 의견에 찬성합니다.”

“저도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수한이 자고 있는 사이 입을 맞춰본 모양이다.

새미만 수한에게 다 맡긴다는 표정이고, 나머지는 사용료를 내자는 의견을 냈다.

세라프의 전당을 작동시키는데도 자원이 들어가니, 지구로 보내는 양이 꽤 줄어들게 생겼다.

수한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사용료를 내는 것은 좋다.

문제는 텔마 행성인들이 그걸로 만족할 거냐는 것.

기계 괴수가 무려 여섯 마리다. 겨우 80명 정도만 처리하면 몽땅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걸 그냥 10% 정도만 받고 만족할지 모르겠다.

그것을 수한이 짚자, 간부들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저희도 그게 걱정입니다.”

“첫날 사령관과 이야기했을 때 본 바로는, 그들이 그렇게 선량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저들은 수가 수만 명이나 됩니다. 그들 중 일부만 나쁜 마음을 먹어도 우리는 전멸할 위기에 몰립니다.”

“세라프 종족에게 보호를 요청하면 어떨까요?”

개중 괜찮은 의견이 나왔다.

다름 아닌 지원 4과 과장이었다.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세라프 종족이라면, 이 근처 요새에 있다는 자 말씀입니까?”

“예. 세라프 종족은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차라리 사용료를 그 세라프 종족에게 지불하지요. 그럼 안전하게 세라프의 전당을 사용하게 해줄 겁니다.”

“보나마나 동력핵을 달라고 하겠지만, 하나 정도는 써도 괜찮겠지요.”

“아깝긴 해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내일 제가 직접 요새로 가보지요.”

수한이 보기에도 괜찮은 방법 같았다.

그것으로 회의를 끝냈다. 내일 아침이 되면 바로 요새에 가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자 밤 동안 경비를 맡았던 지원 5과 과장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

“이사님. 간밤에 텔마 행성인들이 다녀갔습니다.”

“예? 아, 멀리서 보고 간 겁니까?”

“예. 숨어서 정찰을 하는 것을 저희 과 지원 요원이 발견했습니다. 아마 기계 괴수들을 확인했을 겁니다.”

“곤란하게 됐네요. 그로부터 몇 시간이나 지났습니까?”

“새벽 3시 경이었다고 하니, 4시간 전입니다.”

“4시간이라……”

수한은 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텔마 행성인들은 마법 수레를 타고 이동하곤 했다. 이동 속도도 제법 나와서, 시속 50 킬로미터는 된다.

그렇다면 점심 전에는 도시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군대가 출발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아무리 과감하게 움직여도 내일 오후에나 돌산에 도착할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좀 있다.

수한은 간부들에게 말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움직이겠습니다. 지금 당장 세라프 종족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이사님께서 직접 다녀오시려고요?”

“그래야지요. 저 혼자 움직이는 게 가장 빠르니까. 일단 그 세라프 종족과 대면한 후에는 제 초월 의식으로 의사소통도 할 수 있고요.”

“하긴 그렇습니다.”

“혹시 모르니, 기계용을 개조해서 방어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수한은 기계용을 놔둔 곳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트레일러 형태를 하고 있었다. 수한의 접근을 알아차린 용이가 불평을 했다.

[몸이 너무 무거워!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일단 그것들은 떨어뜨리자. 잠시 어디 갔다 와야 될 일이 생겼어.]

[어디 가는데?]

[세라프 종족이 있는 곳에 가려고. 그 분한테 부탁할 게 있거든.]

[우와! 나도 세라프 종족 좋아해!]

기계용이 몸을 한 번 털었다.

그러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기계 괴수 시체들이 떨어져 나왔다. 트레일러 형태에서 원래의 날렵한 용 형상으로 변한 것이다.

수한은 용이를 이용해 기계 괴수 시체들을 변형시켰다.

금속 장갑을 성벽처럼 쌓았다. 방어막 생성기를 그 안에 설치했다. 동력핵과 연결하여 방어막을 생성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광선포와 미사일 발사대까지 곳곳에 설치하자, 은색의 거성(巨城)이 완성되었다. 기계 괴수가 공격해 오더라도 한동안 견딜 것 같았다.

기계용 제작이 50에 달해서 가능한 수법.

이만하면 수한이 자리를 비워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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