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56화 (157/254)

< 텔마 행성인 -2- >

수한은 원정대를 돌아보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오빠, 조심해서 다녀와.”

“그래. 걱정하지 마.”

용이가 용갑 형태로 변해 수한의 전신을 감쌌다.

라오그뉴가 따라오고 싶어 했지만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작은 고양이로 변하면 데려갈 수 있겠지만, 뒤에 남을 원정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라오그뉴님은 우리 원정대를 지켜주세요. 제가 가는데 라오그뉴님까지 안 계시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수가 없습니다.”

[끄응,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재미있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냥 얘기만 하고 올 거라서요. 진짜 재미있는 일 벌어질 것 같으면 꼭 데려가겠습니다.”

[진짜지? 거짓말 아니지?]

“진짭니다. 약속할게요.”

[좋아! 여긴 나한테 맡겨!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해주겠어!]

라오그뉴가 팔랑팔랑 뛰어 돌산 위로 올라갔다. 본체로 돌아가더니, 사뭇 위엄 있는 모습으로 사방을 굽어보았다.

수한은 그걸 보고 픽 웃어 버렸다.

용이가 심통을 부렸다.

[쳇, 덩치도 큰 주제에 귀여운 척 하기는!]

[하하, 이제 출발하자.]

[알았어.]

수한은 날개를 펼쳤다.

몸이 살짝 들렸다.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날아올랐다.

원정대 진지가 급격히 멀어졌다.

이내 손바닥에 쏙 들어갈 만큼 작아졌다.

수한은 용이에게 속삭였다.

[전속력으로 가자.]

수한은 스스로에게 성좌를 사용해 초음속의 효과를 높였다.

어마어마하게 가속도가 붙었다.

누군가 수한을 앞으로 쑤욱 미는 것 같았다.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 거의 음속을 넘나드는 속도로 날아가자, 대기가 찢어지며 파공성이 울렸다.

날아가다 보니 도시 상공을 지나쳤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워낙 높은 곳을 날고 있어서였다. 기계용을 끌고 왔다면 모를까 용갑 상태이니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얼마간 날다 보니 작은 요새가 눈에 띄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돌산들이 병풍처럼 요새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돌산 위마다 망루가 세워져 있고, 대형 병기도 몇 개 설치된 상태였다. 요새를 공략하려면 돌산 망루부터 제압해야 하는데, 그건 아주 힘들 것 같았다.

수한은 천천히 요새를 향해 접근했다.

눈치 채라고 일부러 느리게 움직이는 참이었다. 요새의 병사들이 수한을 발견했는지 부산하게 움직였다.

푸른 빛이 한 가닥 솟구쳤다.

날개를 가진 사람.

세라프 종족이었다.

수한은 허공에 정지했다. 그 상태에서 세라프 종족이 당도하길 기다렸다.

용이는 그새를 못 참고 정신 감응을 날렸다.

[안녕! 안녕!]

그러자 돌진해 오던 세라프 종족이 움찔했다.

멀리서 수한을 찬찬히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이쪽의 정신에 접촉해 왔다.

[한 명이 아니군요. 당신들은 누굽니까?]

수한도 초월 의식 초능으로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지구 출신 이능력자 이수한입니다. 이 녀석은 용이라고 하는데, 가브낙 행성에서 이시테님께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 지구의 이수한! 누군지 알겠습니다. 이름은 몇 번 들어보았습니다. 질라 행성에서도 쥘베르님을 도와주셨다고 했고요. 맞지요?]

[맞습니다. 제 얘깁니다.]

[기요테 행성에 오신 줄은 몰랐습니다. 절 따라오도록 하세요. 제 이름은 페이니아입니다.]

수한은 페이니아를 따라 요새로 하강했다.

요새의 군사들이 전투 준비를 하다가 페이니아를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페이니아가 아군이라고 하자 잘 됐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이 보기에도 하늘을 날아서 온 수한이 예사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기요테 행성인은 없었다. 외계의 종족들로 이루어졌다.

대략 다섯 종족.

모두 처음 보는 종족들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S급 이능력자도 몇 명 있고, AA급 이능력자나 A급 이능력자도 군데군데 끼어 있었다.

이윽고 요새에 도착했다.

페이니아는 수한을 요새 중앙 사령탑으로 데려갔다.

[어려운 시기에 잘 오셨습니다. 마침 지원이 필요하던 참입니다.]

이거 분위기가 묘하다.

혹 떼러 왔는데, 도리어 혹을 붙이게 생겼다.

수한은 용건을 밝혔다.

[실은 페이니아님께 부탁드릴 게 있어 왔습니다.]

[뭔가요?]

[제가 소속된 공격대에서 기계 괴수 여섯 마리를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걸 지구로 가져가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텔마 행성인들 때문이로군요?]

페이니아는 금방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들이 저희를 공격하여 전리품을 강탈하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텔마 행성인들 입장에서는, 기계 괴수를 잡는 것보다 저희를 잡는 게 더 쉬울 테니까요.]

[합당한 우려입니다.]

[해서, 페이니아님께서 저희를 보호해주셨으면 합니다. 그에 마땅한 반대급부는 제공하겠습니다. 동력핵 하나 정도면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쉬이 허락할 줄 알았는데, 페이니아가 난색을 표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자리를 비우기가 힘듭니다.]

[그 말씀은……]

[인근에 대형 기계 괴수가 한 마리 있습니다. 제 동료를 해치운 적이 있는 강력한 놈이에요. 제가 이 요새를 떠나면 그 기계 괴수가 바로 달려들 겁니다.]

[이런.]

수한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페이니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텔마 행성인들이 사악한 마음을 먹을 경우 당할 가능성이 높다.

수한은 머리를 굴렸다.

생각해 보니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편지를 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페이니아님의 편지라면 텔마 행성인들도 무시하진 못할 텐데요.]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제가 왜 세라프의 전당이 있는 도시가 아니라, 이 요새에 와 있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말하는 투가 심상치가 않다.

텔마 행성인들과 갈등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태도.

무슨 배짱으로 세라프 종족과 갈등을 빚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밉보이면 자기들만 손해인데.

수한은 차선책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저희가 전리품을 가지고 이곳으로 오겠습니다. 그 다음 가능하면 대형 기계 괴수 사냥을 돕도록 하지요. 기계용과 사자신 라오그뉴가 같이 있으니 대형 기계 괴수라도 사냥이 가능할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저도 여러분을 돕고 싶지만, 대형 기계 괴수를 잡은 다음에야 그게 가능할 겁니다.]

얘기는 잘 되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여기까지 원정대와 기계 괴수 시체를 끌고 와야 한다는 것.

난이도가 높았다. 거리가 꽤 멀고, 텔마 행성인들이 지키는 도시를 지나쳐 와야 하니까.

수한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페이니아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음이 급했다. 최고 속력으로 날아갔다.

이번에도 중간에 아르프 시를 지나쳤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텔마 행성 군대가 출병하는 광경이 보였다.

아르프 시에 있던 군대의 딱 절반.

절대자의 눈으로 살피니, 이능력자의 수가 굉장히 많았다. S급 이능력자가 셋이나 포함되고, AA급 이능력자는 10명이 넘었다. 텔마 행성인 특유의 염력을 증폭시키는 대형 장비도 수십 대나 끌고 있었다.

결국 사단을 낼 모양.

수한은 군대의 이동 속도를 짐작해 보았다.

매우 느렸다. 돌산에서 계산했던 것보다 몇 배는 느려서, 모레 저녁은 되어야 돌산에 도착할 것 같았다.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필패겠지만, 기동성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볼 만 했다.

돌산에 도착하자마자 그 사실을 알렸다.

석구가 한숨을 쉬었다.

“결국 우리랑 한 판 할 모양입니다.”

“규모가 큽니다. 제가 볼 때는 도시를 나선 게 2만 명을 넘는 것 같았습니다.”

“2만……”

“그 정도야 가볍게 쓸어버릴 수 있지 않습니까? 기계 괴수 상대하고 남은 미사일이 꽤 되는데, 그것만 써도 그 중 절반은 죽일 수 있을 겁니다.”

“텔마 행성인들을 얕보면 안 됩니다. 가장 하급 병사도 D급 이능력자에요. 그들이 염력 증폭기를 써서 방어막을 치면, 기계 괴수의 주포도 너끈히 막아냅니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방법은 두 가지.

전투를 벌여 격퇴하거나, 아니면 후퇴하거나.

라오그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그 놈들이 그렇게 세? 너랑 나, 둘이면 2만이건 뭐건 다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수한은 쓰게 웃었다.

허리가 반 토막 나 죽은 게 바로 며칠 전인데, 아직도 조심성이 부족했다.

“그러다 속박 당해서 붙잡히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텔마 행성인의 물량 공세는 종족 연합에서도 유명합니다.”

[그래?]

의논 끝에 돌산에서 후퇴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아무리 진지를 요새화시켰다고 해도 텔마 행성 군대와 맞서 싸우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을 해체했다. 기계용을 다시 기계 괴수들과 연결시켰다. 수한이 없으면 속도가 매우 느려지지만, 어쨌든 움직이는 건 가능했다. 원정대가 가져온 각종 차량과 짐도 거대 기계용에 실었다.

문제는 군대를 피해간다 해도 속도가 너무 느려 결국은 따라잡힐 거라는 점.

수한과 라오그뉴만 나서기로 했다.

문제가 생겨도 둘만 있으면 어떻게든 몸을 뺄 수 있었다. 군대를 요격하여, 추격을 막기로 한 것이다.

“오빠, 조심해.”

“자기도 조심해. 내가 없는 동안은 자기가 이 원정대 대장이야. 길은 기억하고 있지?”

“응. 얘기한 대로 움직일 테니까, 꼭 돌아와야 돼.”

“걱정 마.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났어.”

라오그뉴가 본체로 변하여 수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한이 그 위에 타자, 짐짓 으르렁거렸다.

[내가 태어나고 누군가를 태운 건 이번이 처음이야. 영광인 줄 알아.]

“하하, 가문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흥!]

라오그뉴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빨랐다.

주변의 나무들이 뒤로 휙휙 지나갔다.

수한은 초음속을 발현했다. 그러자 라오그뉴의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며 더욱 빨라졌다. 지구의 유명 스포츠카를 가볍게 따라잡는 속도였다.

라오그뉴가 신이 나서 한 마디를 부르짖는다.

[야호!]

수한은 라오그뉴의 갈기를 잡고 납작 엎드렸다. 라오그뉴가 워낙 빨리 뛰는 탓에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찰병들을 발견했다.

정찰병들이 라오그뉴를 보고 허둥댔다. 그 정체는 몰랐지만, 품에서 작은 구슬 같은 것을 꺼내 하늘로 던졌다.

펑펑펑!

붉은 폭죽이 터졌다.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것.

그 정도는 무시했다. 더 빠르게 달렸다.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텔마 행성인들의 본대를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라오그뉴가 혀를 내밀어 자기 입술을 닦았다.

[제법 많은데?]

“S급 이능력자가 세 명이 있는데, 정신 계열과 의지 계열, 구현 계열입니다. 느낌이 좋지 않네요.”

[왜?]

“텔마 행성인은 자기들 염력을 한데 모아서 증폭시키는 게 장기에요. 2만 명의 힘을 모아 불꽃만 날려도 무시무시할 겁니다.”

[엑, 그거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수한은 라오그뉴와 함께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거리가 멀지만 라오그뉴의 덩치 덕에 텔마 행성인들도 둘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 즉시 대형 증폭기들을 전진 배치한다, 방어막을 구현한다, 부산을 떨었다.

수한은 그들 중 정신 계열 이능력자를 주시했다.

이능력자가 시선을 느꼈는지 좌우를 돌아보는 게 보였다. 그 자에게 정신 감응을 보냈다.

[반갑습니다. 종족 연합의 동맹 여러분. 이쪽 방향은 저희 타이탄 공격대가 맡기로 했는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시는 겁니까?]

[타이탄 공격대라고? 아하, 그 지구인들 말이군.]

수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연결된 이능력자의 정신에서, 짙은 탐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쾌해하는 것을 느꼈는지, 이능력자가 으스대며 말했다.

[비루한 지구인들이 운 좋게 기계 괴수를 잡은 모양인데, 좋은 말로 할 때 기계 괴수를 내려놓고 썩 꺼지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럼 목숨만은 빼앗지 않으마.]

[동맹을 공격하려고 하다니, 종족 연합에서 퇴출되는 게 두렵지 않으신가 봅니다.]

[종족 연합? 으하하! 그 따위 거 퇴출되어도 상관없다. 세라프 종족도 두려울 게 없는데, 퇴출되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태도.

거침없는 말에, 수한은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아무리 텔마 행성인들이 강해도 세라프 종족을 경시할 수는 없었다. 당장 세라프 의원들만 몇 달려와도 앞에 보이는 군대 정도는 가볍게 쓸어버릴 테니까.

그런데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뭐겠나.

최악의 가정이 수한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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