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57화 (158/254)

< 텔마 행성인 -3- >

확인해 봐야겠다.

수한은 강렬한 경고를 날렸다.

[좋다. 너희의 도전을 받아들이마. 장담하건대, 너희들 중 단 한 명도 고향 행성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푸하하! 해볼 테면 해보아라. 기계 괴수를 좀 잡았다고 자신감이 붙은 모양인데, 우리 고귀한 텔마르이언들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정신 연결을 끊었다.

텔마 행성 군대의 군기가 삼엄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들의 정신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대화를 하면서 느낀 거지만, 텔마 행성 이능력자도 수한과 비슷한 종류의 이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텔마 행성 군대는 타이탄 공격대가 그랬던 것처럼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수한은 군대를 노려보았다.

확실히 위협적인 집단이다. 그러나 대처할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라오그뉴와 정신을 연결했다.

[일단 물러나지요.]

[뭐?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자고?]

[애초에 정면으로 붙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기습을 할 겁니다. 그러려면 숨어서 접근하는 게 좋지요.]

[흠, 넌 똑똑하니까 네 말을 따르는 게 좋겠지. 좋아, 네 말대로 하자.]

라오그뉴를 타고 물러났다.

집요한 시선이 수한을 뒤따르고 있었다.

AA급 투시 계열 이능력자.

하지만 거리를 벌린 후 단검의 능력을 활성화하자 곧 시선이 사라져버렸다. 수한을 놓친 뒤 라오그뉴를 추적했지만, 그마저도 라오그뉴가 존재감을 죽이자 소실되었다.

빙 반원을 그리며 군대의 옆구리로 접근했다.

수한은 작전을 설명했다.

두 갈래로 갈라져서 움직이자는 것.

수한이 먼저 저격을 시작한다. 그러면 군대가 흔들리며 파탄이 생길 것이다. 그 틈을 노려 라오그뉴가 잠입한 뒤 난장을 피운다. 이후 수한이 저격을 통해 라오그뉴의 탈출을 돕는다.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돌아가세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습니다.]

[걱정 마. 나도 눈치는 있어. 정 안 되면 뭐, 한 번 부활하면 되고.]

죽을 때 겪는 고통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부활 능력에 너무 의존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최후의 보험이라고 생각하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 몸을 보존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

[치잇, 알았어.]

라오그뉴가 몸을 작게 만들어 먼저 출발했다. 신호가 오면 수한도 저격을 시작할 것이다.

적당한 곳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바위 사이, 수풀로 살짝 가려진 곳.

날개 전투복의 색도 녹색으로 변형시켰다. 단검의 은신 능력도 활성화시켰으니, 여간해서는 위치를 알아내기 힘들 것이다.

아바돈을 슬쩍 내밀었다.

회색 우중충한 몸체가 도움이 되었다. 태양광을 반사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제 방아쇠만 당길 일만 남았다.

라오그뉴가 수한의 정신에 속삭였다.

[난 준비 됐어.]

[좋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수한은 아바돈을 정조준했다.

노리는 것은 다름 아닌 정신 계열 이능력자.

그 자가 텔마 행성 군대의 머리였다. 그 자를 죽이는데 성공하면, 군대의 전투력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

수한의 손에서 붉은색과 보라색 빛이 번갈아 일어났다.

심호흡을 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피융!

회색 광선이 허공에 그어졌다.

예측했다는 듯, 방어막이 겹겹이 일어났다. 회색 광선을 가로막으며 장렬하게 산화했다.

회색 광선은 방어막 수십 겹을 단 번에 뚫었다. 대신 그만큼 힘이 약해졌다. 때문에 인근에 있단 강체 계열 이능력자가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제법이다.

하지만 수한의 진가는 이제부터 발휘되었다.

반동도 거의 없는 총이라, 목표를 겨냥한 채 방아쇠를 연거푸 당겼다.

일거에 수십 번의 공격이 퍼부어졌다.

강체 계열 이능력자는 전신에 구멍이 뚫렸다. 방어막을 생성시킨 의지 계열 이능력자가 피를 토했다. 정신 계열 이능력자가 질겁하여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예상대로 대처가 굉장히 빨랐다.

게다가 군대 한쪽에서 힘이 하나로 모였다. 3명의 S급 이능력자 중 구현 계열 이능력자가 있는 방향이었다.

시커먼 구름이 일어났다. 강력한 독으로 이루어진 안개였다. 수한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날아오자, 수한은 은신한 상태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 와중에도 총을 몇 번 더 쏘았다. 노렸던 정신 계열 이능력자는 못 맞췄지만, 그를 보호하던 AA급 이능력자 둘을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군세가 삼엄하게 일어났다.

이능력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게 느껴졌다. 텔마 행성인 특유의 힘 집중 때문에, 수한의 위치가 드러나는 것도 시간문제 같았다.

라오그뉴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 때.

[크아앙!]

크게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무지갯빛 폭풍이 사방을 강타했다.

라오그뉴 또한 체고(體高) 십 미터가 넘어가는 괴수였다. 수한에게 모든 투시 계열 이능력자가 집중되었던 터라 라오그뉴의 접근을 인지하지 못했다. 덕분에 군대가 일순 혼란에 빠졌다.

미친 듯이 날뛰며 앞발을 날렸다. 급히 방어막을 전개해 보지만, 가뿐히 으스러뜨리며 병사들의 몸을 터뜨렸다.

그 사이 수한은 안전하게 몸을 피했다.

독의 안개는 미련을 못 버린 듯 아까 수한이 숨어 있던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수풀이 순식간에 부패하여 썩어 들어가고, 심지어 무기체인 바위가 녹아 물처럼 흘렀다.

수한은 시계를 조작해 체력 재생을 선택한 뒤 휴식을 취했다.

라오그뉴는 잘 하고 있었다.

하지만 텔마 행성 군대도 점차 냉정을 되찾는 게 보였다. 그들이 장기를 발휘하여 압박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라오그뉴라도 당해내지 못한다.

수한은 자리를 또 옮겼다.

독의 안개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라오그뉴 주변에 검은 기운이 피어났다. 그런가 하면 강력한 방어막이 족쇄처럼 라오그뉴를 압박하고 있었다.

[구경만 할 거냐?]

라오그뉴가 항의할 때, 수한이 목표를 정하고 광선 세례를 퍼부었다.

수한의 존재를 의식해서인지 S급 이능력자 셋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강력한 방어막이 그들을 감쌌다.

방어막?

중화 속성을 조합하는 것으로 무시해 버렸다.

회색 광선이 무차별적으로 세 이능력자 사이에 내리꽂혔다. 폭발이 연속으로 일어나며, 땅거죽을 뒤엎고 이능력자들을 공격했다.

그래도 S급은 S급.

쉽게 당해주지는 않았다.

자기들이 가진 이능과 장비를 총동원하여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더구나 AA급 이능력자들이 수한을 잡겠다고 달려왔다.

“흥!”

수한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들만 데리고 뭘 어쩌겠다고?

수한은 AA급 이능력자들에게 총을 쏘았다. 그들이 똘똘 뭉쳐 대응했다. 선두에 선 강체 계열 이능력자가 황동색 빛을 뿜는 방패로 공격을 막았다.

8명이 힘을 합치니, 수한의 공격도 막히는 것이다.

수한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분히 속성만 바꿨다. 충격에 폭발을 더한 후, 살짝 각도를 비껴 쏘았다.

퍼퍼펑!

파괴력으로 따지면 별 거 아니지만, 진형 파괴에는 탁월한 효과가 있는 조합이었다.

충격 속성은 상대를 멀찍이 밀쳐내는 효과가 있으니까.

선두의 강체 계열 이능력자가 나뭇잎처럼 훨훨 날아갔다.

다른 이능력자들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쳤다.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의 머리에 대고 총을 미친듯이 갈겼다. 회색 광선이 그들의 머리를 헤집으며, 한 명 당 두 개씩 도합 열네 개의 머리를 폭발시켰다.

[이놈!]

이능력자들이 더 몰려들지만, 수한은 신발을 발동시켜 빠져나갔다.

단거리 도약.

이어서 단검의 은신 기능.

어렵지 않게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 라오그뉴도 염력 증폭 장치를 몇 개나 때려 부순 뒤 도망쳤다.

수한은 초월 의식을 통해 라오그뉴에게 말했다.

[성과는 거둔 것 같습니다. 일단 후퇴하죠.]

[좋아! 신나게 놀았으니 좀 쉬었다가 놀아야지. 어디로 갈까?]

[아까 오면서 보니까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모이지요.]

[알았어.]

수한은 초음속까지 발현해 빠르게 전장을 벗어났다.

처음에는 텔마 행성인들이 수한의 뒤를 쫓았다. 그러자 수한은 역으로 매복하여 몇 번 꼬리를 잘라냈다. 그것을 반복했더니 몇 시간 뒤에는 아무도 추격해오지 않았다.

연못에 도착하자 라오그뉴가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 둘 손발이 딱딱 맞는데?]

[몇 번 더 반복하지요. 텔마 행성인들은 게릴라 전술에는 약한 것 같습니다. 염력 증폭기만 모두 부숴도 우릴 공격하지 못할 겁니다.]

[좋아. 본때를 보여주자!]

둘은 집요하게 텔마 행성인들을 괴롭혔다.

수한이 라오그뉴에 탄 채 멀리서 공격한 뒤 도망치고, 라오그뉴만 스며들어 증폭기를 부수고 달아나고, 함께 대놓고 습격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텔마 행성인들의 움직임이 매우 느려졌다.

기습을 피하려고 일일이 모든 것을 다 확인하고 지나갔다. 흩어지면 약해지고, 뭉치면 강해지는 종족 특성 상 그렇게 하자 피해를 극도로 줄일 수 있었다. 그 덕에 처음 기습처럼 재미를 보긴 힘들었다.

대신 천금 같은 시간을 벌었다.

사흘.

예정보다 하루를 더 지체시킨 것이다.

더구나 이대로는 힘들겠다고 생각한 텔마 행성 군대가 더 합류하면서 일이 쉬워졌다. 도시를 빙 둘러가던 원정대가 더 안전해졌으니까.

원정대를 맡은 새미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오빠! 페이니아님이 계신 요새에 거의 도착했어! 이제 그만 돌아와도 될 것 같아!]

[좋아. 지금 돌아갈게.]

라오그뉴가 본체로 돌아갔다.

수한을 태우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성좌를 건 초음속 초능까지 사용하자 거침이 없었다. 원정대는 며칠에 걸쳐 이동한 거리를, 겨우 다섯 시간 만에 주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오빠!”

새미가 팔랑거리며 달려왔다.

“잘 있었어?”

수한은 미소를 지으며 새미를 안아들었다.

사흘 만에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뭉클한 감촉과 함께, 기분 좋은 체취가 수한의 코로 파고들었다.

새미가 수한의 얼굴을 더듬었다.

“얼굴이 반쪽이 된 것 좀 봐. 혼자서만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결국 다 잘 됐잖아? 이제 대형 기계 괴수만 잡으면 돼. 그러면 페이니아님의 도움을 받아서 지구로 전리품을 가져갈 수 있어.”

“얼른 지구에 돌아가고 싶다.”

“나도 그래.”

요새 밖에 따로 진지를 꾸렸다. 기계 괴수 전리품이 너무나 많아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텔마 행성인들이 요새 근처까지 쫓아왔다.

사자를 보내어 수한과 라오그뉴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오히려 페이니아가 지금 당장 요새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거기에 압도되어 뒤로 물러나긴 했는데, 그래봐야 텔마 행성 군대 기준으로 1시간 거리였다.

당장 공격할 것 같은 태도.

기가 막혔다.

요새 근처에 대형 기계 괴수가 존재하는데 저렇게 대놓고 싸움을 걸 줄이야?

수한은 페이니아를 찾아갔다.

페이니아는 사령탑 꼭대기에 선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페이니아님,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요?]

[텔마 행성인들 말입니다.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게, 아무래도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요. 무엇 때문일 것 같습니까?]

페이니아가 반문하자, 수한은 잠시 말을 아꼈다.

[제 억측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국과 선이 닿은 게 아닐까요?]

상상하기 힘든 사태.

제국에게 있어 종족 연합은 하나의 거대한 목장에 불과하다. 그들이 과연 텔마 행성인들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싶었다. 종족 연합 내에서 끗발 날리지, 제국이 보기에는 죄다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더구나 둘이 손을 잡았다고 보기엔, 텔마 행성인들이 너무나 태연하게 기계 괴수를 잡고 있었고.

페이니아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대형 기계 괴수가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조그만 입술을 달싹이자, 흐릿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놈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반대편에 위치한 텔마 행성 군대.

그들이 진군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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