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58화 (159/254)

< 첫 만남 -1- >

앞에는 대형 기계 괴수. 뒤에는 텔마 행성 군대.

동시에 접근해 온다.

막을 수 있을까?

페이니아가 앞과 뒤를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수한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대의 짐작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대에게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세요.]

[지금까지 본 그대 공격대의 능력이라면 대형 기계 괴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오래 시간을 끌어주시겠습니까? 그 동안 저는 요새의 기존 전력을 이끌고 배신자들을 처단하겠습니다.]

부서져도 되는 기계용. 부활 능력이 있는 라오그뉴.

수한은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텔마 행성인들은 아주 강합니다. 페이니아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다른 종족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아니, 그들을 믿을 수는 있을까요? 텔마 행성인들에게 붙을 지도 모르는데요.]

[그대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잘 압니다. 그들이 신의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적당한 이권을 주면 절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음, 제가 주제넘은 참견을 한 것 같습니다.]

[아뇨. 그대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더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수한은 사령탑에서 바로 뛰어내렸다.

안 그래도 대형 기계 괴수와 텔마 행성 군대의 움직임은 모두들 감지하고 있었다. 전투 준비를 하고 있다가 수한이 가까이 오자 일제히 수한을 쳐다보았다.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할 것도 없었다. 페이니아와 협의한 내용을 초월 의식으로 모두에게 알렸다.

상황이 다급하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번개처럼 전투 준비를 끝냈다. 전리품을 지킬 최소한의 인원만 제외하고, 대형 기계 괴수가 온다는 방향을 향해 달렸다.

수한은 용이를 변형시켰다.

원거리 화력 지원형. 뒤에 있으면서 라오그뉴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기계 괴수를 확인했다.

하체는 늑대 형태에, 상체는 인간 형태였다. 커다란 철퇴를 들고 있는데, 그 끝에서 뭉클뭉클한 파장이 쉬지 않고 뿜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부하를 대동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페이니아가 근처의 다른 기계 괴수는 모두 씨를 말린 까닭에, 혼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쿠웅, 쿠웅!

육중한 무게에 대지가 흔들렸다.

기계 괴수가 철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철퇴가 언뜻 땅의 풀을 스쳤는데, 그 순간 푸른 광채가 일어나 모든 것을 짓뭉개 버렸다.

라오그뉴에게 주의를 주었다.

[조심하세요. 철퇴에 맞으면 세라프들도 못 견딥니다.]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수한은 기계용에서 다른 사람들을 내려주었다.

기계 괴수가 도착하기 전 포진을 끝마쳤다.

멀찍이서 기계 괴수가 광선포를 몇 번 가볍게 날렸다. 어렵지 않게 막았지만, 수한은 그 안에 제국인이 들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기계 괴수가 다가오는 속도가 느려졌다. 철퇴를 땅에 질질 끄는데, 청색 광채가 더욱 거세게 일어나며 계속해서 중첩되었다.

라오그뉴가 조용히 말했다.

[저거 심상치가 않아. 빨리 공격해야 할 것 같은데?]

[좋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전술은 똑같았다.

수한이 어깨의 광선포를 기계 괴수에게 겨눴다.

적보라색 광선이 튀어나갔다.

기계 괴수가 철퇴를 내밀었다. 철퇴가 푸르게 물들더니, 수한의 공격을 하늘로 튕겨 버렸다.

“허!”

수한은 혀를 찼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

소형 기계 괴수는 곧잘 침묵시키던 공격이 이 녀석에겐 통하지 않았다.

하긴 쉽게 갈 거라 생각도 안 했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페이니아가 텔마 행성 군대를 처리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거였으니까.

미사일을 수백 발이나 발사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들자, 기계 괴수는 방어막을 전개했다. 그걸로 막으려나 보다.

또 광선포를 발사하자, 이번에도 철퇴로 막았다.

하지만 그건 연막.

미사일 중에 진짜 공격이 섞여 있었다.

콰콰쾅!

방어막이 중화되면서, 분리된 탄두가 기계 괴수를 두드렸다. 금속 장갑을 파고들며 폭발을 일으키자, 견고하던 금속 장갑에 큼직한 균열이 생겼다.

기계 괴수의 눈에서 푸른빛이 토해졌다.

“부웅웅웅!”

기묘한 소리를 한 번 토하더니, 늑대 다리를 놀려 달려오기 시작했다.

공격은 제대로 들어갔지만, 오히려 성질만 돋은 상황.

숨어있던 라오그뉴가 튀어나왔다.

[크앙!]

다리를 물고 늘어지나 싶더니, 기계 괴수의 등으로 올라가 뒷머리에 연타를 먹인다.

필생의 혼을 담은 공격이었다.

무지갯빛 폭발이 일어나며 기계 괴수의 머리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사람이었다면 정신이 없었겠지만, 냉정하게 대처했다.

철퇴를 짧게 휘둘러 라오그뉴를 후려쳤다. 라오그뉴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충격이 컸는지 바닥을 뒹굴며 고통스러워했다.

기계 괴수가 끝장을 보려고 몸을 돌리는데, 수한이 화력을 총동원하여 기계 괴수를 공격했다.

광선포, 미사일, 그리고 우레 일격 초능.

우레 일격에는 못해도, 광선포와 미사일에는 모두 속성을 부여한 상태였다.

무시무시한 화력이 기계 괴수의 전신을 뒤덮었다.

기계 괴수가 급히 방어막을 강화했다.

소용없었다.

그럴 줄 알고 중화 속성을 조합해 놓았으니까. 방어막이 스르륵 사라지면서 수한의 공격이 정통으로 기계 괴수를 타격했다.

세상이 으스러질 듯 굉음이 터졌다.

[아직 공격하지 마세요!]

다른 이능력자들이 접근하려 하자 급히 말렸다.

수한의 가공할 화력을 뒤집어쓰고도, 기계 괴수가 멀쩡한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몸의 금속 장갑이 조금 벗겨진 게 전부.

라오그뉴가 타격했던 뒷머리도 그러했다. 내부가 좀 들여다보이긴 하지만, 그리 큰 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죽어!]

라오그뉴가 다시 덤벼들었다.

종횡무진으로 날뛰며 앞발을 날렸다. 기회가 생기면 물어뜯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한은 아예 전술을 바꿨다.

마비 속성과 실명 속성으로 라오그뉴를 지원했다. 그러자 기계 괴수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져서, 라오그뉴가 더 쉽게 기계 괴수를 공략할 수 있었다.

[잘 하면 우리끼리 잡을 수도 있겠습니다.]

석구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수한은 그게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제 공격이 기계 괴수에게 잘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놈이 연기를 하고 있어요.]

[예?]

[라오그뉴님. 조심하세요. 놈의 움직임에 적응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경직시키는 것보다 일부러 더 느리게 움직이고 있어요.]

[정말? 이 교활한 녀석 같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 괴수가 본색을 드러냈다.

언제 마비에 걸렸냐는 듯 민첩하게 라오그뉴를 한손으로 껴안은 것이다.

미리 대비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라오그뉴가 재주를 넘으며 빠져나왔다. 중간에 크기를 작은 고양이까지 줄였다가 본체로 돌아가는 임기응변을 보였다. 그게 아니었으면 한 번의 목숨을 헌납해야 했을 것이다.

“후!”

전투가 시작된지 겨우 30여 분.

수한은 전신에서 진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큰 공격은 자제했지만 벌써 체력을 상당히 소모했다. 한두 시간만 더 지나도 전투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기계 괴수가 쉬지 않고 라오그뉴를 몰아붙였다.

라오그뉴도 점차 한계에 도달하는 게 보였다. 벌써 몇 군데가 불에 그을려 까맣게 탔다. 기계 괴수가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움직임도 점점 둔해지고 있었다.

[용아, 변형하자!]

[응!]

공격 대상을 분산시켜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미리 준비해 놓은 대로, 용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쿵! 쿵!

양 어깨에 올려놓았던 광선포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육중한 소리가 나자 기계 괴수가 기계용을 돌아보았다.

실시간으로 변형이 이루어졌다.

굵고 짧던 다리가 조금 길어졌다. 두텁던 몸통 곳곳에서 방어막 생성기가 밖으로 나왔다. 머리에는 커다란 뿔이 달리고, 날개는 완전히 사라지며 몸 전체에 날카로운 칼날이 생겼다.

조종석은 이마 부위에서 뒷목으로 이동했다. 근접전을 상정한 변형이었다.

기계 괴수가 기계용을 주시했다. 위협을 느낀 듯 철퇴를 높이 들어 올리더니 이쪽으로 돌진했다.

수한은 기계용의 몸을 낮췄다.

타격 당하기 직전, 성좌와 초음속을 동시에 발현하며 기계 괴수의 발밑으로 파고들었다.

기계 괴수도 멍하니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앞다리를 쿵 하고 내리찍었다.

옆으로 몸을 굴러 간신히 피했다. 그 큰 기계용이 바닥을 구르자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가 울음을 토했다.

기계 괴수가 철퇴를 몇 번이나 후려쳤다.

몇 번은 맞았다. 그때마다 수한은 꼬리로 공격을 막았다. 아니, 막은 게 아니라 꼬리의 맞은 부분을 잘라내며 견뎠다. 길던 꼬리가 뭉툭해졌지만, 효과적인 방어 방법이라고 할 만 했다.

그 동안 라오그뉴가 잠깐 숨을 돌렸다. 몇 번 몸을 털자, 화상을 입은 자리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공격!]

수한은 원정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둘의 분전으로 방어막은 모두 파훼한 다음이었다. 방어막 생성기까지 모조리 박살내 놓았다. 이제부터는 원정대의 공격도 충분히 통한다.

수한은 기계 괴수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입을 벌려 한 번 번개를 토했다. 그 번개가 기계 괴수의 가슴을 직격하자, 동력핵을 보호하는 금속 장갑이 하얗게 물들었다.

라오그뉴도 달려들었다. 연달아 앞발을 날려 섬광을 터뜨렸다. 그때마다 기계 괴수가 제법 타격을 입었다.

철저히 원거리 공격으로 공략했다.

수한과 라오그뉴가 번갈아서 시선을 뺏었다. 기계 괴수가 수한을 쫓아오면 라오그뉴가 뒤에서 연타를 먹이고, 라오그뉴를 쫓아가면 수한이 입으로 번개를 뿜는 식이었다.

하늘에서는 번개가 계속 떨어졌다. 마엘른이 몇 번 기계 괴수의 가슴에 검격을 먹였다. 용 모양 소환수들이 기계 괴수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어찌 보면 유리해 보이는 상황.

기계 괴수가 철퇴를 높이 쳐들었다.

라오그뉴는 잽싸게 몸을 뺐지만, 수한은 조금 늦었다. 아무래도 충격이 누적된 탓에 기계용이 처음처럼 영활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꾸앙!

철퇴가 땅을 치자, 범종 울리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푸른 빛이 들불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기계용이 그 빛에 휩싸였다. 그러자 가공스럽게도, 빛이 방어막을 무시하고 기계용 안쪽으로 투과되었다. 대부분은 상쇄되었지만, 여파가 조종석까지 미쳤다. 수한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이를 악물며 참았다.

역으로 기계 괴수에게 달려들었다.

빛 무리에 당하고도 공격해올 줄은 생각도 못했나 보다. 기계 괴수는 기계용이 근접하는 것을 허용했다.

머리의 뿔을 가슴에 꽂아 넣었다.

기계용 최후의 기능을 작동시켰다. 수한이 타고 있는 조종석이 기계용 밖으로 튀어나가며, 뿔 안에 숨겨져 있던 폭탄이 폭발했다.

콰콰쾅!

흉부 장갑이 박살났다.

뿔이 거의 끝까지 들어간 참이었다. 거의 동력핵을 건드릴 정도까지 들어갔다. 그 상태에서 폭탄이 터졌으니,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것이다.

기계 괴수가 주춤주춤 물러났다.

동력핵이 뿜어내는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저것만 뽑아내면 전투가 끝날 터였다.

[요놈, 이제 끝이다!]

라오그뉴가 달려들었다.

[조심하세요!]

수한이 급히 경고했다.

기계 괴수가 철퇴를 휘둘렀다. 철퇴가 그리는 궤적에 라오그뉴의 몸이 걸려 있었다.

초월 의식을 통해, 라오그뉴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허공을 밟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간발의 차이로 철퇴가 라오그뉴의 발끝을 스쳤다.

라오그뉴가 쾌재를 불렀다.

[그 따위 공격에 당할 줄 알고?]

다시 허공을 박차며 기계 괴수에게 덤볐다.

폭풍과도 같은 공격이 쏟아졌다. 가슴을 노리다가 여의치 않자 등 위에 올라타 뒷머리를 마구 연타했다.

무시했다.

공격당하면 당하는 대로, 자신의 방어력을 믿고 견뎠다. 그 공격을 모조리 맞아가며 원정대 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쿵쾅거리며 질주하는 그 끝에, 이제 막 지면에 착지한 수한이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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