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59화 (160/254)

< 첫 만남 -2- >

수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용이가 용갑으로 변형하여 수한의 몸을 감쌌다.

최대 속도로 날아올랐다.

기계 괴수가 뒤늦게 광선포를 쏘아대지만 소용없었다. 절대자의 눈으로 미리 보고 몽땅 피했다.

수한은 그냥 도망치지는 않았다.

세 개의 총을 활용해 반격했다. 온갖 속성을 다 먹여주었다. 노르헤임 행성에서 익힌 광명과 임흑 속성은 물론, 별의 별 속성을 다 조합했다.

그러던 중, 기계 괴수가 수한을 주시했다.

새처럼 빠르게 날던 수한의 몸이 덜커덕 정지했다. 어떤 기이한 힘이 수한을 결박한 것이다.

“뭐, 뭐야?”

순간 깜짝 놀랐다.

기계 괴수가 뭔가 술수를 부린 모양.

순식간에 따라잡혔다.

거대한 그림자가 수한을 뒤덮었다.

수한은 뒤를 돌아보았다.

기계 괴수가 철퇴를 하늘 높이 치켜드는 것이 수한의 두 눈 가득 맺혔다.

철퇴가 시퍼런 빛을 머금은 채 내리꽂혔다.

휘잉!

그 가공할 힘에 공간 전체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수한의 신발에서 빛이 뿜어졌다.

미루스에게 선물 받은 차원 전이의 신발.

탁한 회색 빛이 수한의 전신을 감쌌다. 수한의 몸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얇은 차원의 벽을 넘어, 수한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철퇴가 공간을 가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회피하는데 성공했다. 겉으로 보기엔 철퇴가 수한을 뭉갠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티끌만큼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더구나 수한을 속박하던 기이한 힘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새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철퇴의 길쭉한 자루 위를 질주했다.

수한의 몸이 다시 선명해졌다.

기계 괴수가 수한을 보고 멈칫했다. 급히 철퇴를 들어올 리지만, 수한은 신발을 작동시켜 이번엔 차원이 아닌 공간을 뛰어넘었다.

그렇게 해서 당도한 곳은 너덜너덜한 흉부 장갑 바로 앞.

두 손을 겨눴다.

꼬리도 구부려 아바돈의 총구를 기계 괴수에게 향했다.

충전된 총알 모두를 장갑에 꽂아 넣었다.

코앞에서 폭발이 터지지만 그런 건 무시했다. 몸에 걸친 방어구의 성능을 믿고 버텼다..

이윽고 장갑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동력핵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웅웅웅!

동력핵의 자태를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기계 괴수의 흉부가 일제히 열렸다. 소형 광선포 수십문이 나타났다. 벌써부터 수한을 조준한 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수한은 단검을 빼어들고 몸을 던졌다.

번개처럼 동력핵 주변을 난도질했다. 그 후 단검을 이용해 동력핵을 도려냈다.

기계 괴수가 한 번 크게 요동을 쳤다.

광선포가 빛을 잃었다. 손에서 놓지 않던 철퇴에서 이글거리던 청색 광채도 사라졌다.

이것으로 끝.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돌진한 끝에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수한은 동력핵을 품에 안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력핵 뒤, 상당히 널찍한 공간이 보였다.

조종실이다.

지금까지 봤던 조종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역시 심장이 멎은 상태의 제국인 시체가 놓여 있었다.

"응?"

그런데 시체가 좀 이상했다. 다른 기계 괴수 안에서는 보지 못했던 게 가슴에 박혀 있었다.

검은 못.

희미하게 진동하는 중이었다. 옅은 묵색의 파장이 시체에 계속해서 스며들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일단 레벨 업 도우미를 흡수한 후, 제국인의 시체를 짊어지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원정대가 기계 괴수 앞에 모여 있었다. 동력핵을 빼낸 것을 다들 보았으니,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한은 그들을 보며 웃었다.

동력핵을 들어 올리자 환호성이 터졌다.

“이겼다!”

“으아, 이사님 돌아가시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이사님입니다! 거기서 이렇게 역전시킬 줄은 몰랐어요!”

[너, 제법이던데?]

라오그뉴가 앞발로 수한을 툭 건드렸다.

새미가 날듯이 달려와 수한을 살폈다.

“괜찮아 오빠? 안 다쳤어?”

“응. 쌩쌩해.”

“그런데 그건 왜 들고 나왔어?”

새미가 제국인 시체를 보고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겉보기에는 아무 외상도 없지만, 시체는 시체 아닌가.

수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려놓자, 지원 요원들이 다가와 시체를 추슬렀다. 제국 장비를 취하고 시체는 불사른 것이다.

“그 못은 혹시 모르니까 잘 보관해두세요. 밀봉하시고요.”

“예, 이사님.”

지원 요원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한편, 레벨 업 도우미를 흡수해서 얻은 것 말고도 변동 사항이 있었다.

민첩, 재주, 감각이 1씩 올랐다. 탑승 기술도 1이 상승했고, 레벨이 별도로 3이 더 높아진 상태였다.

거기다 대형 기계 괴수는 온전히 타이탄 공격대가 잡았으니 페이니아나 다른 외계 종족에게 나눠줄 필요도 없다.

매출 5%는 수한의 몫. 말을 잘 하면 라오그뉴에게 투자도 받을 수 있지 않겠나.

수한의 마음이 저절로 푸근해졌다.

“여기 동력핵이 있습니다!”

지원 요원들이 기계용의 잔해를 헤쳐 동력핵을 찾아냈다.

불길에 휩싸이고도 동력핵은 무사했던 모양이었다.

동력핵은 따로 챙기고, 용이를 기계 괴수와 융합시켰다. 예전에는 대형 기계 괴수는 조종하지 못했는데, 또 진화를 한 까닭에 충분히 가능했다.

재료가 재료인 탓에, 제법 괜찮은 놈이 나왔다.

비행도 가능하고, 근접전과 원거리 지원 모두 잘 하는 기계용이 탄생한 것이다.

이때쯤 페이니아가 하늘을 날아 원정대에게 접근했다.

페이니아는 전장을 내려다보더니 깜짝 놀랐다.

[대형 기계 괴수를 잡으신 겁니까?]

[예. 운이 좋았지요.]

[대단하십니다. 이시테님이 왜 그대에게 기계용을 맡겼는지 알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페이니아는 텔마 행성 군대와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요새의 성벽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상당히 까다로웠다.

S급 이능력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수한이 AA급 이능력자들을 제거했다고 해도 2만 명이 하나로 힘을 모으니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텔마 행성 군대가 갑자기 퇴각을 했다. 그들을 쫓다가 잠깐 몸을 뺀 것이다.

수한은 그걸 듣고 걱정을 했다.

[질서를 유지한 채 후퇴하는 겁니까? 그럼 섣불리 추격하다가 도리어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온 거예요. 여러분이 합류하면 충분히 성과를 거둘 수 있으니까요.]

페이니아가 기계용을 한 번 쳐다보았다.

하긴 기계용을 타고 하늘 위에서 광선포 폭격만 가해도 충분할 것이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합류하지요.]

원정대 전원이 다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지원 요원들은 뒷수습을 하게 남겼다. A급 이상의 고위 이능력자들만 기계용에 태워서 텔마 행성 군대를 향해 날아갔다.

후퇴를 시작한지 꽤 되었지만 금방 따라잡았다. 여전히 지독하게 느렸기 때문이다.

텔마 행성 군대는 네모반듯하게 진형을 유지한 채 후퇴하고 있었다. 다른 종족들이 산발적으로 공격을 가하지만, 모조리 방어막에 막히거나 반격을 당해 스러졌다.

수한은 그들 위를 날며 포격을 개시했다.

강력한 광선 공격이 무차별적으로 내리꽂혔다.

라오그뉴와 단둘이서 습격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보호막 따위 중화시켜 버리며 맹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는 한편 미사일로 융단 폭격을 가했다. 중화 속성과 분열 속성을 날리자 텔마 행성 군대의 방어막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한편, 초월 의식으로 이능력자를 한데 묶었다.

이능력자들이 움찔했지만 페이니아가 개입하자 사태를 알아차렸다. 수한이 인도하는 대로 텔마 행성 군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제 아무리 대단한 텔마 행성인이라고 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

진형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하나로 묶여 있던 염력조차 흩어지며, 각자 살 길을 찾아 무질서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전과 확대뿐.

수한은 기계용의 고도를 낮췄다. 더욱 가열차게 공세를 퍼부었다. 다른 이능력자들도 눈에 불을 켜고 텔마 행성인들을 공격했다. 페이니아가 특히 불벼락을 비처럼 쏟아부어서, 텔마 행성인들이 불꽃에 타오르며 비명을 질렀다.

요새에서 아르프 시는 상당히 가깝다.

하지만 아르프 시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 살아남은 텔마 행성인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S급의 고위 이능력자들과 몇몇 부관들만 남아 도망치고 있었다. 그나마 페이니아와 기계용에게 포착되어, 풍전등화와도 같은 형국이었다.

그러나 수한은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지 못했다.

아르프 시에 위치한 세라프의 전당.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게 뭐야?”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내뱉었다.

원래는 돔 형식이어야 할 세라프의 전당.

어느새 바뀌었다.

커다란 탑처럼 은빛 기둥이 높이 세워졌다. 아래는 두텁고 위는 얇은데, 그 끝에서 청색 빛 무리가 어려 있었다. 빛 무리는 점점이 주변으로 떨어지며 우산처럼 일정 반경을 감싸 안았다.

더구나 아르프 시에 진을 치고 있던 텔마 행성인들은 어딜 갔는지 몽땅 사라졌다. 기계 괴수와 변이체 전리품도 없어지고, 천막을 쳤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페이니아가 침중한 기색으로 속삭였다.

[제국의 차원문 생성기입니다.]

수한의 두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차원문 생성기가 세워졌다는 말은, 제국이 실질적으로 침략해 온다는 뜻 아닌가.

어쩌면 제국인들이 근처에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수한은 절대자의 눈으로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제국인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없는 것인지, 아니면 수한의 능력이 부족해서 찾을 수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텔마 행성 생존자들이 아르프 시 안으로 도망쳤다.

기다렸다는 듯 은빛 기둥 끄트머리에서 청색 빛이 짙어졌다. 한 줄기 광선이 쏘아지더니 기둥으로 향하는 도로에 지면과 직각으로 커다란 빛의 원을 그렸다.

차원문.

시퍼런 원이 소용돌이쳤다. 직경이 10미터에 달해서, 몇 만 명이든 금방 통과할 것 같았다.

저거라도 부숴야겠다.

수한은 기계용의 입을 벌렸다.

입 안에 설치된 광선포가 드러났다. 속성을 부여하고 막 쏘려는데, 날카로운 전언이 하나 수한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벌써 수확을 시작한 것이냐?]

누구지?

수한은 옅은 존재감이 느껴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빛 기둥의 바로 옆이었다. 누군가 은신한 채 수한이 탄 기계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절대자의 눈으로 보자, 언뜻 사람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검은색 옷을 입고 사선이 그어진 흰색 가면을 쓴 자.

어디서 많이 보던 복색이면서도 약간은 달랐다.

기계 괴수 안에 있던 제국인 시체의 복색과 비슷했다. 그런데 색깔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더구나 옷만 입은 게 아니라, 군데군데 금속 장식을 붙여 놓았다.

그 자가 페이니아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게 느껴졌다.

[아쉽구나. 하나 더 사냥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제국인이구나!]

옆에 있던 페이니아가 노호성을 질렀다.

쥐고 다니던 지팡이를 겨누자, 지옥의 것과 같은 맹렬한 화염이 이글이글 일어났다. 페이니아의 손짓에 따라, 불꽃의 파도가 제국인을 향해 해일처럼 날아갔다.

제국인이 몸을 일으켰다.

옷에 부착된 금속 장식에서 흰 빛이 첩첩이 일어났다. 방어막을 수십 수백 겹이나 형성하더니, 페이니아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 버렸다.

제국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칼라트라의 애송이 사관아,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내가 우리 잉트리그의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면, 네 애완 세라프는 진작 내 전리품이 되었을 것이다.]

칼라트라? 잉트리그?

처음 듣는 이름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제국인은 페이니아에게 한 번 시선을 던지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바람처럼 차원문을 통과했다.

곧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오직 허무한 바람만 한 줄기 불어왔다.

차원문이 저절로 움직였다. 회전하며 앞으로 날아가더니 텔마 행성인들을 집어삼켰다. 고작해야 수십 명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기요테 행성을 벗어난 것이다.

쿠쿠쿠쿵!

별안간 폭음이 울렸다.

뭔가 해서 보니 은빛 기둥 전체가 폭주하고 있었다. 내부에서 힘이 치솟으며, 맹렬한 폭음이 울렸다.

순식간이었다.

차원문 생성기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폭파를 했는지 몽땅 가루가 되어 버리고 부품 하나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깊고 넓은 구덩이 하나 뿐.

수한은 암담한 눈으로 차원문 생성기, 곧 세라프의 전당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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