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출 >
세라프들과 동행한 것은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이능력자 중 S급 이상의 이능력자들 전부였다. 최악의 경우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세라프들이 정중히 동행을 요청한 것이다.
거절한 사람은 없었다.
직접 원정을 다니는 S급 이능력자 중 모험심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헤븐 행성이 공격당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세라프들과 함께 가는 거여서 먼저 일정을 조율하고 어쩌고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직행으로 헤븐 행성에 도착했다.
[하아!]
도착 즉시,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헤븐 행성은 온전했다.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누군가 차원 이동을 하면 날개 요새를 통과하는데, 평소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늦지 않게 도착한 모양이다.
페이니아가 수한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했을 겁니다.]
[과찬이십니다.]
[절 따라오세요. 칼날 아성으로 가야겠습니다.]
페이니아가 이능력자들을 이끌었다.
지금 수한을 비롯한 이능력자들이 와 있는 곳은 헤븐 행성의 관문 역할을 하는 날개 요새.
외계 행성의 모든 세라프의 전당과 닿아 있는 곳이었다. 즉, 제국이 헤븐 행성으로 잠입하려고 한다면 이곳을 거쳐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 날개 요새를 관리하는 게 칼날 아성.
칼날처럼 생긴 성을 향해 날아갔다. 허공에 떠 있는 성이어서, 이능력자 중 몇몇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경비병들이 가로막자, 페이니아가 정신 계열 이능으로 상황을 빠르게 설명했다.
다급하다는 것을 깨달은 경비병들이 즉각 비상을 울렸다. 그러는 한편, 성문을 열고 페이니아와 이능력자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페이니아와 알르아, 닉시는 요새 사령관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다른 이능력자들은 대기실에서 좀 기다리기로 했다.
이능력자들을 안내해 준 앳된 세라프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영웅 분들께서는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상당히 넓은 대기실이었다. 앉거나 누울 수 있게 소파가 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또 한쪽 벽에는 책장이 있어 소일거리 삼아 책을 읽는 것도 좋아 보였다.
[알겠습니다. 기다리지요.]
대기실은 한쪽 면 전체가 창문으로 되어 있었다. 별로 답답하지 않아서, 모두들 그러겠다고 승낙했다.
수한은 창가의 소파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새미가 자연스럽게 그 옆에 앉고, 둘 사이에 용이가 하품을 하며 끼어들었다.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날개 요새는 평화로웠다.
온갖 희귀한 동물들이 한가롭게 길을 거닐었다. 갖가지 외계 종족들이 즐겁게 떠들었다. 그런가 하면 세라프들이 날개를 펼치고 유유자적 날아다녔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라프 종족들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늘 위를 떠다니는 건물로 들어가는가 하면, 어디론가 날아가 모습을 감춘 것이다.
다른 종족들은 별 생각 없이 근방을 돌아다녔다. 개중에는 세라프 종족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러려니 하는 듯했다.
쿠구구궁.
갑자기 한쪽에서 뭔가가 크게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날개 요새 중앙에 있는 세라프의 전당.
그 건물 전체가 짐승이 울부짖듯 격렬하게 떨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수한의 어깨에 기대고 앉아 있던 새미가 깜짝 놀랐다.
진동은 금방 멎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싶어 몸을 긴장시키는데, 갑자기 칼날 아성에서 황금빛 물결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빛이 너울거리며 지상의 날개 요새 전역을 감쌌다.
수한은 그 빛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강력한 투시 계열 이능이었다.
더구나 하늘 저 멀리에서도 황금색 빛이 출렁이는 게, 비단 날개 요새만이 아닌 다른 곳도 살피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제국인들이 텔마 행성을 통해 스며들었다면, 이미 헤븐 행성 전역으로 퍼졌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게다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늘 아성에서 세라프들이 편대를 이루며 날아올랐다. 날개를 몇 번 펄럭이자, 그들이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한은 그 중 한 무리를 주시했다.
세라프들이 화살처럼 날개 요새 외곽에 있는 한 호텔로 돌진하고 있었다. 주변을 겹겹이 감싸더니, 유독 돋보이는 세라프 몇 명만 안으로 들어갔다.
새미가 수한에게 속삭였다.
“의원들인가 봐.”
“그러게.”
SSS급 이능을 가진 세라프들.
수한은 그들이 쥐고 있던 화려한 검과 보석, 장비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호텔에 들어간 세라프 의원들이 뭘 하는 것일까?
궁금함에 창 쪽으로 다가가려고 할 때, 갑자기 호텔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꽈아앙!
맹렬한 폭음이 터졌다.
그 여파가 칼날 아성이 있는 곳까지 미쳤다. 창문이 덜컹거리자, 수한은 무의식적으로 새미를 끌어안았다.
[막아!]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상대는 고작 4익급이다!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정신을 집중하자, 세라프들이 외치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충천하는 화염 속에서, 까만 그림자 몇이 튀어나왔다.
머리가 둘에 다리가 일곱인 종족.
텔마 행성인들이었다.
치렁치렁한 검은 천을 두르고 있었다. 절대자의 눈으로 꿰뚫어 보니, 몸 곳곳에 금속 부품 같은 것을 박아놓은 것이 보였다.
흡사 SF 영화에서 가끔 나오는 기계와 생체의 융합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굳이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나타나자마자 세라프들이 벌 떼처럼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제국인들과 손을 잡다니!]
[모를 줄 알았더냐?]
[그대들의 행성이 멸망하도록 놔둘 것을 그랬다!]
세라프들이 발현하는 이능이 텔마 행성인들을 뒤덮었다.
텔마 행성인들이 검은 천을 벗어던졌다.
몸에 박힌 금속 부품이 일제히 환한 빛을 뿜었다. 그 빛이 중첩되며 질긴 방어막을 형성했다. 개중에는 강렬한 섬광이 되어 오히려 반격을 시도하는 자도 있었다.
상당히 강했다.
상대가 세라프 종족만 아니었어도 제법 선전했을 터.
그런 가정은 무의미했다. 텔마 행성인들은 빠르게 도망쳤지만 의미가 없었다. 폭발에 휘말렸던 세라프 의원들이 그들의 뒤를 쫓아왔기 때문이었다.
텔마 행성인들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제압당했다.
세라프들은 텔마 행성인들의 이능을 완전히 봉인했다. 혹시 자폭할까 무서워 강제로 재운 뒤,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하는 수정 감옥에 집어넣기까지 했다.
이런 일은 날개 요새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화광이 솟구쳤다.
건물들이 무너지며 시꺼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텔마 행성인들이 도망치고, 세라프들이 그들을 잡으러 날아다녔다.
대부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다 그렇지는 않았다.
꽈아아앙!
날개 요새 외곽,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칼날 아성 전체가 일순 휘청 균형을 잃을 정도로 강력한 충격파가 몰려왔다.
수한은 그쪽을 바라보았다.
작은 태양이 내려앉아 있었다.
순수한 빛 에너지로 이루어진 흰색의 태양.
그 빛은 닿는 모든 것을 증발시켰다. 각종 위락 시설과 상업 시설을 모두 날리고, 스스로 진화하여 다시 없을 파멸의 노래를 부르려고 했다.
세라프들이 급히 달려들었다. 날개 요새에 깔린 방어 마법진도 스스로 발동하여 흰색 태양을 억제했다.
덕분에 흰색 태양은 온전한 제 모습을 찾지 못했다. 초기 단계에서 진화당하여, 날개 요새 외곽만 좀 부수고 말았다.
수한은 안도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방금 터진 폭탄은 지구의 대량 살상 병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놈이었다.
지구 최강의 핵폭탄인 짜르봄바를 이곳에서 터뜨려도, 방어 마법진이 발동해서 억제하면 건물 몇 개 부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방금 전 폭탄은 날개 요새의 외곽을 한쪽 날려버린 것이다.
세라프들도 거기 휘말려 상당히 죽은 것 같았다. 그나마 빨리 대응한 게 이 정도인데, 저런 폭탄을 기습적으로 몇 개 한꺼번에 터뜨렸으면 정말 난리 났을 것이다.
[이 사악한 제국놈들!]
[영원히 저주 받을 지어다!]
주위의 세라프들이 한스런 음성을 토하는 게 들렸다.
그러더니 날개를 펼쳐 폭탄이 터진 곳으로 날아갔다. 각자의 이능을 발현하여 생존자들을 구출하기 시작했다.
수한이나 새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가서 돕겠다고 나서봐야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건물들 재질이 금속이 아니니 용이를 써먹을 수도 없고.
새미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들 안 됐다. 피해가 큰 것 같아.”
“그나마 이만 하길 다행이지. 하루 만에 저 정도 피해를 입힐 정도면, 1달 동안 우리가 발이 묶여 있었으면 큰 일 났을 거 아냐?”
“그건 그래. 그런데 어째서 저런 폭탄을 들여오는데 세라프 종족이 모르고 있었던 걸까?”
“제국이 뭔가 수작을 부렸겠지. 세라프 종족보다 기술이 훨씬 더 앞서 있잖아.”
수한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헤븐 행성에 도착한지 겨우 1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세라프들은 날개 요새에 잠입한 이들을 색출해낸 것이다.
물론 100% 다 잡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제국이 또 무슨 수를 부릴지 모르니까. 당분간은 주의하면서 철저히 감시해야겠지.
잠시 시간을 보냈다.
슬슬 페이니아가 돌아올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역시나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많이 기다리셨죠? 절 따라오세요.]
페이니아는 이능력자들을 데리고 아성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칼날 아성의 정중앙.
이곳의 사령관이 머무는 곳이었다.
사령관은 이능력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그대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소. 우리 종족을 위해 애써주어서 고맙소. 헤븐 행성의 세라프 종족 전체를 대표하여 감사하는 바이외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사령관에게는 날개 요새의 혼란을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통성명을 한 것으로 만족했다.
특히 수한을 눈 여겨 보는 것이 느껴졌다.
사령관, 바이르가 수한에게 말했다.
[나중에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뜻깊은 대화를 나눌 날이 올 거요. 그때를 기대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지금 뭔가를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어수선했다. 수한도 사령관도 다음을 기약했다.
세 세라프는 헤븐 행성에 남겠다고 했다. 수한을 비롯한 이능력자들은 기요테 행성으로 되돌아갔다. 그곳에서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세라프의 전당을 넘기 전, 페이니아가 수한을 찾아왔다.
[기요테 행성으로 돌아가신다고 했지요?]
[예. 어차피 여기선 저희가 할 게 없으니까요.]
[여러분이 우리 종족에게 주신 도움은 문서화하여 최고 평의회까지 올라갈 겁니다. 사령관님께서 보고서에 명시하겠다고 하셨어요.]
[하하, 공을 세우려고 한 건 아닌데요.]
[그렇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 종족에 대해선 잘 아시잖습니까?]
하긴 세라프 종족은 은원을 확실히 갚는 종족이었다. 수한도 지금껏 그 덕에 용이나 시계, 목걸이 같은 걸 받지 않았나.
페이니아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뭔가 바라는 게 있습니까? 저한테 말씀하시면,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거?
수한은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솔직히 가장 원하는 건 SS급 힘의 결정이다. SS급이 되면 또 얼마나 강해질지 두려울 지경이니까.
SS급 힘의 결정은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지구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헤븐 행성의 차원 경매장에서는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것을 택해야겠지.
SSS급 힘의 결정을 달라고 할까?
아니다. 그걸 사용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일 텐데, 벌써부터 확보해 놓을 필요는 없다.
순간, 어떤 생각이 번뜩였다.
기요테 행성 원정을 떠나기 전, 가공과 권준이 그랬었지. 힘의 결정 추출 장치는 헤븐 행성 제품이 제일이라고.
추출 장치는 세라프 종족이 엄격하게 관리하지만, 이 정도 공을 세웠는데 달라면 주지 않을까?
수한은 궁리 끝에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럼 힘의 결정 추출 장치를 구매할 권리를 주십시오.]
[힘의 결정 추출 장치요?]
[예. 저번에 질라 행성에서 알게 되었는데 헤븐 행성제 힘의 결정 추출 장치는 구매할 수 있는 자가 별로 없더군요. 그 권리를 얻고 싶습니다.]
[그것 말고는 없나요?]
[글쎄요.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그거 하나뿐입니다.]
[원래는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구매 권리를 부여하곤 해요. 그런데 이건 제 생각이지만, 아마 그 정도는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승인이 떨어질 것 같아요. 제가 일단 심사 청구를 넣을 테니까, 나중에 지원국에서 소환하면 한 번 방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수한 개인에게 귀속되는 권리.
권리를 받는데 성공하면 수한의 새로운 공격대는 날개를 달 것이다.
수한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때쯤이면 의원님들께서 그대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실 거예요. 지금은 그럴 처지가 아니지만요. 참,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선물이에요.]
페이니아가 고마웠다며 커다란 꾸러미를 내밀었다.
뭔가 해서 보니 힘의 결정이 정확히 12개가 들어 있었다.
하나 같이 S급 힘의 결정.
그것도 각 계열 별로 하나씩.
수한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입을 쩍 벌렸다.
페이니아가 살포시 웃었다.
[저랑 알르아, 닉시가 같이 마련한 겁니다. 지구에서는 S급 힘의 결정이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서요?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드리는 거니까, 유용하게 쓰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수한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S급 힘의 결정 하나를 사려면 수천억은 너끈히 든다. 그런 걸 무려 12개나 주다니 통이 크긴 컸다.
세 세라프와 작별 인사를 했다.
세라프의 전당을 넘어 기요테 행성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부터는 타이탄 공격대의 독무대.
세라프의 전당을 보강하여 온전한 상태로 만드는 한편, 기계용을 타고 기요테 행성을 종횡무진 휩쓸었다.
실질적인 전투 인원은 수한 일행이 전부.
하지만 그 전투력은 무시무시했다.
기요테 행성에서 체류한 약 한 달 동안.
아주 대박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