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62화 (163/254)

< 독립 >

총 13마리.

원정대가 한 달 동안 사냥한 기계 괴수의 숫자였다.

질도 충실했다.

대형 1마리에 중형 3마리, 소형이 9마리였다.

일찍 왔으면 더 많이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세라프 종족과 종족 연합 지원군이 진군을 시작하면서 기계 괴수가 많이 잡힌 바람에 13마리에서 그쳤다.

여기에 처음 기요테 행성에 왔을 때 잡았던 소형 기계 괴수 여섯 마리도 있다.

이 중 소형 1마리는 전투에서 소실되었으니 시체를 건진 것은 총 18마리. 요새에서 잡았던 대형 기계 괴수는 세라프의 전당이 되었지만, 이걸 매출로 따지면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최소 25조, 어쩌면 30조나 40조가 될 줄도 몰랐다.

이 중 5%는 수한의 몫이다. 라오그뉴도 수한의 공격대에 자기 몫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러니 3조에서 4조 가량의 자본금을 가지고 공격대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충분했다.

여의도에 괜찮은 사옥을 지을 수도 있고, 기타 기반 시설을 건설하여 사원들을 대규모로 모집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레벨도 많이 올랐다.

430레벨.

슬슬 느려지고 있긴 하지만, 레벨 업 도우미의 초능창에 표기된 500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이제 지구로 돌아가서 공격대 설립을 위해 뛰어다니다 보면 일곱 번째 초능도 개발이 끝날 터.

뭘 선택할지 또 한 번 즐거운 고민을 시작해야겠다.

능력치는 지능과 직감이 1씩 올랐다. 다름 아닌 제국인과 처음 마주했을 때 오른 거였다. 그 외에 탑승 기술은 2레벨, 전투 지휘와 작전 계획, 무리 통솔이 1레벨씩 올랐다. 이것도 수한에겐 기꺼운 소식이었다.

원정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다.

타이탄 공격대는 난리가 난 상태였다.

가브낙 행성에 공격대 전원이 건너가서 거뒀던 매출이 30조였다. 그런데 고작 80명이 원정을 가서 잡아온 기계 괴수를 따져보자, 최소 25조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가브낙 행성에서는 전리품을 변이체들과 나눠야 했지만 이번엔 독차지 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백 명 이하 소규모 원정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

대한민국, 아니 지구 전체에서도 이런 전례가 없었다. 그랜드 공격대든, 천룡 공격대도 그러했다.

그래서였을까.

세라프의 전당에 한민종 사장은 물론이고 최 이사, 기타 다른 임원진이 총출동해서 원정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80명이서 1천명 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어요!”

한민종 사장이 수한을 꽉 껴안았다.

수한이 웃자, 민종이 농담을 했다.

“아쉽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A급 이능력자일 때 콱 노예 계약을 해서 붙들어 놓는 건데?”

“뭐라고요?”

“하하하, 농담, 농담입니다!”

민종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병원으로 이동했다. 대부분의 원정대는 입원해서 정밀 검사를 받지만, 수한 일행은 기본적인 검사로 충분했다. 수한 일행은 모두 감염 방지 장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벌써 5월 말.

이제부터 특별 휴가가 주어지니 사실상 타이탄 공격대와의 계약이 종료된 것이다.

민종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일종의 송별회.

타이탄 공격대의 주요 간부들과, 수한 일행만 참석하는 자리였다. 간부라고는 해도 대부분 젊은 나이라 분위기가 시끌시끌했다.

민종이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이 이사님. 그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자, 한 잔 합시다!”

수한은 기분 좋게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새미도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반면 라오그뉴와 마엘른, 아르텔라는 자기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석구가 수한의 옆에 다가왔다.

“이사님! 한 잔 하시죠.”

“감사합니다, 김 팀장님. 팀장님도 고생 하셨습니다.”

“어이구, 뭘요. 저야 이사님 따라다니면서 잡일만 좀 했는데요. 어휴, 이제 이사님 떠나시고 나면 많이 아쉬울 것 같습니다.”

두 번이나 조 단위로 매출을 올렸는데, 앞으론 그게 힘들 테니 아쉬운 모양이었다.

석구는 주절주절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최 이사도 수한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부럽습니다, 이 이사님. 그래, 사옥은 어디에 지으실 겁니까?”

“글쎄요. 여의도를 생각하고 있는데 땅값이 비싸서 고민 중입니다. 일단 처음에는 조촐하게 시작하려고요.”

“그것도 좋지요. 참, 드워프들이 와 있다면서요?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정말 멋진 사옥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이름은 정하셨습니까?”

“아직입니다.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요.”

주변에서 언제 신입 사원을 뽑을 거냐느니, 정족수는 다 채웠냐느니 질문을 퍼부었다.

다들 잔뜩 몸이 달아 있었다.

수한이 만들 새로운 공격대의 미래가 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백호 공격대 수준이 아니라, 타이탄 공격대를 금방 추월하고 그랜드 공격대나 천룡 공격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터였다. 이번 원정에서 그건 이미 증명되었다.

초기 인원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자기들의 미래도 보장될 게 뻔했다. 그러니 수한에게 이리 친근하게 구는 것이다.

민종은 소수 측근만 거느리고 술을 들이켰다.

입맛이 썼다.

타이탄 공격대가 모인 자리인데도,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원보다 수한에게 몰려간 이들이 훨씬 많았다.

대세는 이제 타이탄 공격대의 사장인 본인이 아니라, 수한에게 있다는 뜻이겠지.

아직은 대한민국 이능력자 중 자신이 최강의 이능력자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데 만약, 수한이 SS급 이능력자로 승급하는데 성공한다면?

그때는 완전히 흐름이 넘어가겠지.

민종은 푸념처럼 한 마디를 했다.

“술이 답니다.”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십시오. 몸이 상하실까 두렵습니다.”

“하하, 전 SS급 강체 계열 이능력자입니다. 술이 아니라 알코올 원액을 마셔도 아무렇지 않을 겁니다.”

측근들은 민종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가 내려와야 하는 처지에 놓이니 비감이 드는 것.

그걸 막자고 남을 음해하는 성품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를 축하해주는 대범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한편으로 씁쓸함이 드는 것을 어쩌기는 힘들었다.

이런저런 사연을 간직한 채, 송별회의 밤이 지나갔다.

수한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공격대가 처음으로 둥지를 틀 사무실을 찾았다.

“이곳이에요.”

미현이 수한을 안내했다.

세라프의 전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물은 최신식이고, 한강에 바로 접하고 있어 경관이 퍽 보기 좋았다.

미현이 임대한 것은 최고층 전체.

기껏해야 2층이나 3층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수한으로선 상당히 기쁜 일이었다.

“최고층이네요?”

“무리를 좀 했어요. 이번에도 대박을 치실 거라고 예측했거든요. 결과적으로 성공했으니 된 거죠. 뭐, 정 뭐하면 아주버님 이름으로 대출 받으면 그만이고요.”

“그건 그러네요.”

수한은 새미와 함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이미 주요 사무실은 다 꾸며놓은 뒤였다. 사장실과 부사장실, 이사 사무실, 각종 부서의 사무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여기가 내 방이야?]

라오그뉴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당연히 라오그뉴와 마엘른에겐 개인 사무실이 주어졌다. 이사 직급으로 대우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둘 다 사무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긴 너무 좁아! 내가 마음 편히 누울 수는 있어야지!]

“너무 삭막하오. 식물이 좀 있었으면 좋겠소.”

마엘른의 사무실에는 난초니 뭐니 해서 화분을 들여놓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어쩔 수 없었다.

공격대 사옥을 만들 때 설계에 반영하는 수밖에.

“어차피 임시로 1, 2년 있는 곳입니다. 사옥 완성되면 바로 옮겨갈 겁니다. 그때까지만 참아주세요.”

[그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는 거다?]

“본인도 부탁드리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라오그뉴를 위한 작은 신전과 마엘른을 위한 정원을 사옥에 추가해야겠다.

돈이 좀 들겠지만 둘 다 그만한 몫은 하지 않나.

셋 중 아르텔라만 별 말이 없었다.

오히려 자기 사무실 한쪽에 설치된 작은 용 신상을 보며 경건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정말 용이를 닮았네……’

수한은 신상을 보고 생각했다.

원정을 떠나기 전 아르텔라가 드워프들에게 신상 제작을 부탁했다. 드워프들은 흔쾌히 그것을 수락했고, 1달 사이 뚝뚝 만들어낸 것이다.

청동을 녹여 만들었는데, 묘하게 기계와 생체가 섞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용이를 모델로 만들면 저런 모습이 될 법도 한데, 실은 전래되는 클로아의 모습을 아르텔라의 기억 속에서 꺼낸 뒤 드워프들이 작업한 거였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괜히 신경이 쓰였다.

[우리는 여길 쓰면 된다는 거지?]

[좀 좁은데? 나중에 증축 좀 해야겠어!]

드워프들이 연구부 사무실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었다.

지금은 둘 다 연구부에 있지만, 생산부가 생기면 그곳도 관여하게 될 것이다. 아마 한 명은 연구부에 남고, 다른 한 명이 옮겨가는 식이 되겠지.

한편 가공부 사무실에는 벌써 힘의 결정 추출 장치를 설치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세라프 종족에게 구매 권리만 받으면 즉각 사올 생각이었다.

공격대 법인 설립 신청은 미현이 도맡았다.

신청 날짜는 7월 1일.

타이탄 공격대와의 계약 만료가 정확히 6월 30일이니 그때로 잡은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넉넉하지만도 않았다. 실 전투 인원 다섯으로 시작하는데도 준비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이름부터 정했다.

이름을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수한은 이젠 제법 커진 용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공격대 이름은 미르라고 할 생각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용을 뜻하는 우리나라의 옛말입니다.”

“아, 용이를 공격대 상징으로 하게?”

“응.”

[내가 아니고 왜 이 조그만 놈이냐? 내가 훨씬 더 강하고, 훨씬 더 멋있는데?]

라오그뉴가 항의를 했다.

용이가 보란 듯이 턱을 치켜들었다. 라오그뉴가 채찍처럼 꼬리로 용이를 때리자, 용이가 잽싸게 라오그뉴의 꼬리에 매달렸다.

[어어?]

라오그뉴가 당황한 소리를 냈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당하기만 하던 용이여서, 반격을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용이가 라오그뉴의 목을 감고 의기양양한 기색을 보였다.

[흥, 내가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 줄 알았어?]

[조그만 게 까분다. 맞고 싶어?]

[어디 한 번 때려 봐!]

수한은 둘을 겨우 말렸다.

둘을 보고 있으면 초등학생들이 다투는 걸 보는 것 같았다. 그나마 기요테 행성에는 그러지 않더니,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매일 같이 이 난리를 쳤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마엘른과 아르텔라는 아무래도 좋다고 했다. 미현은 어감이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싶어 합류하기로 한 옛 동기들에게도 연락을 취했는데 다들 찬성했다.

이름은 미르 공격대, 소재지는 대한민국 여의도.

실력 있는 디자이너에게 미르 공격대를 상징하는 문양도 받았다. 용이의 사진을 다각도로 찍어 보내자, 수한의 마음에 쏙 드는 문양을 만들어 보내온 것이다.

인원도 모집하기로 했다.

시작은 일반 사원 50명 규모로.

전투 인원은 적어도 사냥 목표가 기계 괴수였다. 사실 50명도 적었다. 백 명 넘게 뽑으려다가, 최소한 원정을 한 번 성공시키고 더 모집하자는 의견에 이 정도로 줄인 것이다.

“지원 요원도 뽑아야 하지 않아? 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할 수는 없잖아.”

“자기 말이 맞아. 그러려면 지원부장부터 영입해야 되는데,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네.”

“알바트로스의 서 팀장님이나 타이탄의 김 팀장님 어때? 두 분 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어. 저번 송별회 때 보니까 김 팀장님은 우리 공격대에 오고 싶은 눈치였고.”

“그냥 공개 채용할 생각이야. 옛날 상사를 내 부하로 부리는 것도 좀 그렇고, 그냥 인맥으로만 데려오다가 인재를 놓칠 수도 있잖아?”

“하긴 그렇다. 오빠가 알아서 해.”

드디어 2017년 6월 30일이 되었다.

타이탄 공격대와 작별하는 날.

수한은 새미와 함께 타이탄 공격대 사옥으로 향했다.

1년 동안 고락을 함께 했으니, 작별 인사라도 하려는 것.

그 동안 안면 있는 사람들을 한 번씩 찾아갔다.

특수 원정 1팀, 3팀, 인사부장, 최 이사와 페롱 이사. 그리고 한민종 사장까지.

두 손을 무겁게 하고 찾아간 참이었다. 고급 와인이며 홍삼 엑기스를 내밀자, 사람들이 반갑게 선물을 받아들었다.

“어이쿠, 뭐 이런 걸 다 가져오시고 그러십니까?”

“그 동안 감사했다는 의미로 드리는 겁니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민종에게는 특별히 신경을 썼다.

차원 백화점에서 구입한 엘프 차 세트를 선물한 것이다.

민종은 기껍게 선물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오늘이라고 했지요?”

“예. 오늘을 끝으로, 제 공격대를 한 번 이끌어보려고 합니다.”

“내일부터는 경쟁자가 되겠네요. 후후, 저도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대한민국 최고 이능력자 자리를 도박으로 딴 건 아니어서요.”

민종이 수한을 보며 호승심을 불태웠다.

수한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루가 지나갔다.

2017년 7월 1일의 날이 밝았다.

수한은 발코니에 서서 감회어린 눈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개마고원에서 레벨 업 도우미를 획득하고 약 2년 3개월.

드디어 꿈을 이뤘다.

이제 곧, 공격대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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