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격대 구성 -2- >
“이수정씨, 김명경씨, 박준호씨, 임시규씨, 장군주씨?”
마지막 날 오후, 84번으로 들어온 임시규.
처음 봤을 때는 그냥 평범한 지원 요원인 줄 알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존재감이 더 옅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차돌처럼 옹골찬 힘이 느껴졌다.
수한은 시규의 경력을 확인했다.
화려했다.
대전쟁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공격대에 몸담고 있었다. 원정을 다녀온 행성 수로 따지면 지원자 중 최고였고, 근래에는 그랜드 공격대의 특수 원정팀장을 지냈다.
유일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나이와 부상.
벌써 30대 후반, 슬슬 체력이 떨어질 때가 되었다. 더구나 최근에 그랜드 공격대의 원정에 참가했다가 왼쪽 팔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그랜드 공격대에서 치료를 해주고, 보상도 적잖이 해줬지만 업무 능력 저하를 이유로 계약을 파기한 모양이었다.
수한은 사무적인 어투로 그것을 지적했다.
“임시규씨는 최근에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있네요.”
일부러 언급해 보았지만, 시규는 특별히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예. 하지만 재활은 이미 끝났고, 제 몸 상태는 부상 당하기 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어느 공격대를 가든 폐를 끼치지는 않을 거라고 자부합니다.”
“아, 트집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과거의 부상 사실이 면접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감사합니다.”
두 가지 약점만 빼면 탐나는 인재였다.
경험이 아주 풍부하다는 게 컸다. 원정이면 원정, 조직 관리면 조직 관리, 경험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수한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체력? 부상?
까짓 거 지원 요원이 몸을 써서 싸울 일이 얼마나 된다고?
나중에는 지원부장, 지원 이사까지 써먹을 수 있는 인재였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했다.
마지막 날에는 간부급의 면접을 보았다.
다들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지원을 했다. 그래서 뽑기가 어려웠는데, 개중 전문경영인으로 지원한 이 중 수한이 아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백호 공격대에 계셨다고요?”
“예. 창립 때부터 함께 했지요. 기왕이면 한곳에서 쭉 있었으면 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백호 공격대의 백기수 이사.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백호 공격대가 타이탄 공격대에 비해 밀리는 전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등하게 성장하게 했던 장본인이었다.
경영의 왕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격대 경영에는 도가 텄다던가.
같이 면접에 참가한 지원자들이 기수를 보고 경계하는 얼굴을 했다. 그들의 경력도 화려하지만, 백기수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주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한은 임시규에 이어 백기수도 낙점을 했다.
이윽고 모든 면접이 끝났다.
무려 12일.
수한은 다른 10명의 면접 위원들에게서 점수를 취합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도 수고하셨어요.”
“오빠, 고생했어.”
“사장님, 회식하죠! 회식!”
“하하, 좋습니다.”
점심은 오랜만에 푸짐하게 먹었다.
최근 배달 음식만 먹다가 고급 음식을 먹으니 맛이 각별했다. 같은 공격대 사람들끼리만 모여 있어서 그런지 더 그랬다. 수한은 오랜만에 허리띠를 풀고 먹고 마셨다.
다음날부터는 공격대 전원에게 휴가를 주었다.
사무실로 출근한 사람은 수한 일행 뿐.
새미는 혼자 놀기 싫다며 출근했고, 외계 종족들도 집에만 있기 싫다고 사무실에서 놀았다. 특히 라오그뉴와 용이는 사무실 전체를 다섯 살배기 꼬맹이처럼 뛰어다녔다.
수한은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면접을 본 9천명을 점수화해서 주르륵 나열했다.
새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기준이 다 제각각인 것 같지 않아? 다 자기 좋을 대로 점수 줬네.”
“그러라고 면접보라고 앉혀 놓은 거니까. 내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고를 거면 나 혼자 면접하고 말지.”
사전에 회의를 하고 들어간 까닭에, 지구인 여섯이 준 점수는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외계 종족들은 달랐다.
저마다 기준에 따라 점수를 다르게 주었다.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각자가 준 점수를 정리해 놓고 보니 그게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일단 외계 종족 중에 누군가 점수를 너무 낮게 준 사람이 있으면 피하자. 우리 공격대는 앞으로 외계 종족과 관계가 강화될 것 같은데, 지구인끼리만 결속이 강해지면 곤란해.”
“하긴 내가 보기에도 좀 이상한 사람은 있더라. 지구인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도 있던데?”
수한은 주말 내내 최종 합격자를 가리느라 골몰했다. 중간에 드워프들이 찾아와 속성 부여 총알을 달라고 해서 거기에도 힘을 쏟았다.
간신히, 일요일 밤 늦게 합격자를 추릴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한 경리를 시켜 이메일을 보내게 했다.
출근 일자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공격대를 설립하고 딱 1달만의 일이었다.
“이제 다 끝났네. 원정만 가면 되겠다.”
새미가 고생했다며 수한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 나긋나긋한 손길에 피로가 사르륵 풀렸다. 수한은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처음 원정 갈 곳은 정했어?”
“생각하고 있는 곳이 있어.”
“어딘데?”
“케르베스 행성. 지금 우리 처지로는 맨땅에 헤딩하는 건 좀 그렇고, 익숙한 곳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아, 그 고양이들 있는 행성 말이지?”
“맞아.”
케르베스 행성에서 쿠시아르를 지키고 열린 승전 연회에서 들은 게 있지 않나.
잿빛 학살자와 청염의 마룡, 하늘 대왕, 지옥 공포가 활동을 재개했다고 했지. 더구나 기계 괴수가 행성 전역을 공격해서, 그대로 멸망해 버린 도시나 국가도 꽤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종족 연합의 지원군으로 몰아냈겠지만, 곧이어 사건들로 종족 연합은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오랜 세월 축적한 힘이 있으니 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들었다. 신생 미르 공격대가 원정 가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기계 괴수가 너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적은 것도 아니고.
새미가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들 보고 싶다. 기나리아님이랑 할리온님은 결혼을 했을까?”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했겠지. 어쩌면 두 분 아기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우와! 얼른 보고 싶다!”
하지만 수한이 알고 있는 것은 몇 달 전의 상황이었다. 그 사이 상황이 변했을 수도 있었다.
정보과장 유미에게 정보 수집을 맡겼다. 알아보겠다고 출근하자마자 외근을 나갔으니, 오늘 안으로 필요한 정보를 가져올 것이다.
수한은 어린 경리를 불렀다.
“미정씨. 합격자분들한테 적당한 시간에 전화 좀 해보세요. 혹시 합격 포기하시는 분이 있으면 다른 분을 뽑아야 하니까요.”
“네, 사장님.”
“아, 그리고 지원 요원들은 이번 주 중에 저랑 한 번 보자고 합시다. 미정씨가 약속 잡아보세요. 첫 원정 관련해서, 상의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전 시간이 아무 때나 좋으니 되도록 20명 전부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좋겠고요.”
“네, 사장님.”
경리가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걸 옆에서 보던 새미가 한 마디를 했다.
“비서가 얼른 들어와야겠다. 미정씨한테 일이 너무 집중되네.”
“그래서 이번에 비서도 뽑은 거야. 나중에 공격대 규모가 좀 커지면 자기도 비서 한 명 있어야 할 걸?”
타이탄 공격대에서 받은 제안대로 1년 동안 이사 생활을 더 할 걸 그랬을까? 그랬으면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웠을 텐데.
그래도 경리가 빠르게 움직여 주었다.
합격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전원 출근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20명과 일정을 조율해서, 수요일 저녁에 수한과 만나기로 했다.
수한은 새미와 자주 가던 고급 한정식집을 예약했다.
라오그뉴와 드워프들은 고기 요리만 퍼먹는데 정신이 없었다. 지원 요원들은 긴장해서 음식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수한은 짐짓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한 식구 아닙니까? 식사하면서, 느긋하게 얘기해 봅시다.”
“예, 사장님.”
술잔을 한 바퀴 돌렸다.
새미는 질색을 했지만, 드워프들은 오히려 반색을 했다. 독한 안동 소주가 입에 맞는지 입에 왈칵 털어넣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수한은 신변잡기만 늘어놓았다. 정치인들 욕도 좀 해주고, 축구 얘기도 좀 하고, 군대 이야기도 하며 화제를 이끌었다.
언제 어디서나 먹히는 이야깃거리였다.
남자들이 긴장을 털어버리고 왁자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한 자루 총에 의지하여 이능력자들과 외계 행성 원정을 다니는 인생. 수한과 공유하는 게 좀 있었던 것이다.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자, 수한은 슬슬 용건을 꺼냈다.
“이렇게 지원 요원분들만 먼저 만나자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공격대의 첫 번째 원정 때문입니다.”
“소문은 들었습니다. 케르베스 행성으로 가신다면서요?”
“벌써 소문이 돌았습니까?”
“미르 공격대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사니까요. 그런데 가능하겠습니까? 새로 나타난 기계 괴수는 대부분 소형이라고 하지만, 기존의 기계 괴수는 거의 대형이라고 하던데요.”
“충분합니다. 저희 일행만으로도 대형 기계 괴수를 잡는 게 가능하거든요. 저번 원정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러시다면야……”
“혹시 저희가 해야 할 게 있습니까? 원정 계획서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
“아뇨. 개인 물품만 준비해 두세요. 초안은 제가 잡아 놓을 겁니다. 월요일부터는 그걸 다듬은 후, 최대한 빨리 원정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휴, 긴장 되네요.”
“기계 괴수 잡아본 경험도 없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실질적인 전투는 저희가 다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직분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한참 얘기를 나누는데, 눈썹이 유난히 짙은 남자가 손을 들었다.
임시규.
수한이 지원과장으로 임명할 사람이었다.
“케르베스 행성의 기계 괴수는 행성 전역에 퍼져 있다고 하던데, 어떤 지역으로 원정을 떠나실 겁니까?”
“행성 전체입니다.”
“예?”
“현지에서 기계 괴수를 사냥한 후, 기계용으로 변형시키겠습니다. 케르베스 행성에는 비행형 기계 괴수가 없지만, 몇 마리를 잡으면 그 부품을 이용해서 비행형 기계용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걸 타고 날아다니면, 거리는 문제가 안 됩니다.”
“설마 케르베스 행성의 기계 괴수를 다 잡으시려고요?”
“그게 목푭니다.”
“허어……”
수한의 포부에, 남자들이 기가 질렸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최대의 원정이라고 해봐야 기계 괴수 1마리를 잡는 것이 목표였던 이들.
그런데 서너 마리도 아니고, 수십이 넘는 기계 괴수를 잡겠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총알 좀 많이 가져가야겠습니다.”
“보급품이 많이 필요하겠는데요?”
“세라프의 전당이 있는 도시 위치를 알아둬야겠습니다. 기계 괴수 시체를 다 싣고 다닐 수가 없으니, 잡는 대로 지구로 보내야지요.”
“사원들이 고생하겠네요. 그걸 다 처리하려면요.”
어느새 동질감이 싹텄나 보다.
다음 원정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 케르베스 행성 원정 경험이 있는 이들이 자기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수한은 그들을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여기까지 하고 식사를 끝냈다.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은 남자들이 수한에게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떠났다. 한데 뭉쳐 있는 게, 자기들끼리 2차라도 갈 생각인 듯했다.
수한은 계획서 작성을 서둘렀다.
혼자 만드는 거여서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작전 계획 기술로 보정되는 탓에 어렵지는 않았다. 유미가 가져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대규모의 계획서를 꾸렸다.
거의 계획서를 완성했을 때였다.
편지가 하나 왔다.
수한이 페이니아에게 부탁했던 것.
힘의 결정 추출 장치 구매 권리에 대한 심사 청구.
조사할 게 있으니 헤븐 행성으로 출석하라는 내용이 써져 있었다.
사실 심사 청구는 명목에 불과하다.
진짜 의도는 따로 있을 터였다.
제국인들의 헤븐 행성 공격을 경고한데 대한 세라프 종족 차원에서의 보답.
그게 아니고 무엇이겠나.
“나도 따라가면 좋을 텐데.”
“공격대를 이제 막 만들었는데 사장이랑 부사장이 다 자리를 비울 수는 없잖아. 다음부터는 꼭 같이 다니자. 그때는 경영 전문 이사도 있을 테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 알았어.”
수한은 가기 전에 교통정리를 했다.
수한의 부재 시 새미가 사장의 업무를 대행한다. 새미는 단순히 이능력자라서 업무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간부들부터 일단 임명했다.
지원과장은 임시규.
경영 전문 이사는 백기수.
인사과장과 총무과장도 임명했다. 아직은 어수선하지만, 기수가 빠르게 업무를 파악하며 공격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다음에야 작별 인사를 했다.
“헤븐 행성에 다녀오겠습니다. 며칠 걸리지 않을 테니, 원정 준비를 마무리해주세요.”
“예, 사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빠, 조심히 다녀 와.”
“그래. 자기도 몸조심 하고.”
굳이 다른 사람을 대동하지 않았다.
홀가분하게 용이만 데리고 차원문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