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66화 (167/254)

< 첫 원정 -1- >

사실 수한은 그 동안 고민을 꽤 했다.

뭘 선택해야 할지 선뜻 고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중복되지 않는 계열은 겨우 6개.

거력, 강체, 감각, 영혼, 외능, 소환.

평소처럼 거력과 강체, 외능과 소환은 젖혀 두려고 했다. 이제 와서 근접전을 벌일 것도 아니고, 자칫 외계의 존재에게 오염당하는 것도 싫었으니까.

그러다 생각을 달리 했다.

수한이 접근전을 안 하던가?

아니다.

기계용을 탔을 때로 국한하면, 원거리 지원 공격과 근접전을 50 대 50 정도로 하는 것 같았다. 덩치와 무게는 라오그뉴를 압도하니, 여차하면 전장에 뛰어들어 기계 괴수를 때려잡곤 했으니까.

앞으로 있을 케르베스 행성 원정에선 접근전의 비율이 더 커질 지도 몰랐다.

결정을 내렸다.

강체 계열을 고르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마지막 초능은 거력 계열로 미리 골라 두었다. 거력과 강체 계열 모두를 S급으로 올리고 기계용을 통해 발현하면, 과연 누가 당해낼까 싶었다.

타이탄 공격대의 한민종 사장처럼, 거신 강림을 익히기라도 하면 더 바랄 나위가 없고.

손가락을 놀려 강체 계열 중 초능 하나를 골랐다.

[신체 강화]

설명 : 본인의 신체를 강화시킨다. 모든 종류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올라가며, 특히 물리적인 타격에 대한 방어력이 높아진다. 본인의 의지로 활성화와 비활성화가 가능하며, 레벨이 오를수록 강화되는 정도가 커진다. 부수적인 효과로, 신체의 전반적인 기능이 향상된다.

능력 : 본인의 신체 강화.

제한 : 50 레벨까지 육성 가능.

계열 : 강철 육체.

레벨 : 1.

진화 : 철갑 신체, 강화의 빛, 강철의 벽, 급속 재생.

아까 경매장에서 흡수 보조제를 사면서 강체 계열 힘의 결정도 E급부터 AA급까지 싹 구매를 했다. 이제 흡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일단 AA급 초능 성좌와 우레 일격을 S급으로 상승시켰다.

이제 S급 힘의 결정을 흡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연달아서 흡수에 성공했다.

성좌는 칠채 성좌로, 우레 일격은 우레 포격으로 승급했다.

이어서 강체 계열.

계속해서 진화를 시키자 철갑 신체, 합금 신체, 불괴, 금강, 금강불괴라는 초능으로 진화했다.

이제 일곱 개의 S급 초능을 가지게 된 셈이다.

지구를 떠난 지 하루 만에 이뤄낸 쾌거.

수한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체크아웃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흡수 보조제를 몽땅 사용했는데도 몸이 피로해서, 한 숨 늘어지게 잠을 잤다.

지구로 돌아왔는데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텔라가 AA급 이능력자가 된 것이다.

소환 계열은 AA급, 외능 계열도 A급.

이만하면 기계 괴수를 상대할 때도 도움이 될 터였다. 지금까지는 보조적인 역할만 수행했지만, 앞으로는 직접적인 공격에도 가담을 하겠지.

[훌륭합니다. 앞으로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르텔라가 서툰 한국어로 대답했다.

수한은 피식 웃었다.

원정 준비는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첫 원정을 떠나기 며칠 전, 수한은 주말을 이용해 개마고원에서 복무하는 명한에게 면회를 갔다.

오랜만에 동생을 보니 참 반가웠다.

여름이라 그런지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수한에게 날렵하게 경례를 하는데, 그 모습이 참 늠름했다.

수한은 피식 웃었다.

철없이 굴던 게 엊그제 같은데, 고생을 좀 하더니 철이 든 모양이었다.

“잘 지냈지.”

“군 생활이 그렇지 뭐. 그나저나 형 공격대 엄청 유명하던데? 요즘 뉴스에 심심찮게 나와.”

“뉴스를 본다고? 걸그룹이 아니라?”

“어휴, 형!”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서울로 돌아가려면 무려 6시간이 걸릴 테니까.

즐거운 시간을 뒤로 하고 서울로 내려왔다. 미르 공격대의 첫 원정이 수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럭저럭 시간이 빠르게도 흘렀다.

벌써 8월 1일.

모든 준비가 끝났다.

세라프 종족의 지원 품목을 다 받았다. 대부분은 서울 근교에 임대한 창고에 봉인했지만, 원정에 가져가는 것도 꽤 되었다. 추출 장치는 아예 사무실에 설치해 놓았다.

도둑맞을 염려는 없었다. 지원 받은 인공지능 방범 인형들이 지키고 있으니까. 그것으로도 모자라 이중삼중으로 안전 장치를 해두었고.

현재 미르 공격대의 규모는 간부들까지 합쳐 총 85명.

대한민국 유수의 공격대들에 비교하면 그 규모가 훨씬 작았다. 전형적인 첫 출범 공격대라고 할 만 했다.

그런데 다른 공격대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관심이 집중되는 정도가 천지차이였다.

수한이 공고를 냈을 때부터 기삿거리가 되어 인터넷 신문에 실리고 있었다. 최소한의 구색을 맞춘 지금은 각종 일간지와 TV 뉴스에 언급이 되곤 했다.

기자들이 자꾸 전화를 하고, 찾아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수한은 그들을 모두 물리쳤다.

첫 원정을 시작하는데 공격대원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원정 전날, 수한은 직접 준비 상태를 점검했다.

“SUV 수배는 다 끝났습니까?”

“예!”

“지원 화기는요? 각종 탄두랑 폭탄은 어떻죠? 전투 식량은요?”

“모두 확인했습니다, 사장님!”

“이제 출발만 하면 됩니다!”

수한은 큰 소리로 선언했다.

“좋습니다. 내일 아침 9시! 케르베스 행성으로 원정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원정 시작 15분 전까지 사무실로 출근하시기 바랍니다.”

“예, 사장님!”

서류 작업, 예방 접종 모두 끝냈다.

이제는 준비한 SUV를 끌고 세라프의 전당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트럭이나 ATV는 쓰지 않기로 했다.

짐을 옮기는 것은 세라프 종족에게 지원 받은 소형 비행 접시로 충분했다. 만약 짐이 아주 많거나 무거우면 기계용을 이용하면 되고.

하룻밤은 금방 지나갔다.

수한이 말한 시간이 되자, 공격대 모든 사원이 사무실에 도열했다.

지금까지 거쳤던 두 공격대처럼 멋들어진 강당은 없지만, 주차장에 단상을 설치하고 짧은 격려는 할 수 있었다.

수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공격대원들의 얼굴에 옅은 흥분감과 긴장감이 엿보였다.

대기가 뜨겁게 달구어져 있지만, 이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한을 쳐다보았다.

수한은 배에 힘을 주고 말했다.

“오늘은 우리 공격대가 설립되고 처음 원정을 떠나는 날입니다.”

그렇게 운을 떼자, 사원들의 시선이 온통 집중되었다.

참 기분이 좋았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순간.

수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목적지는 케르베스 행성. 제국의 대규모 공격이 가해진 곳입니다. 그만큼 위험하지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자, 출발합시다!”

기이이잉!

때를 맞추어, SUV들이 일제히 엔진 소리를 냈다.

원정에 나서는 것은 정확히 25명.

수한 일행과 지원과 20명 전원이었다.

5인승 SUV 6대가 여의도 도로를 가로질렀다.

시민들이 이들을 보고 쑥덕거렸다.

“미르 공격대다!”

“미르 공격대?”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공격대잖아.”

“아, 나도 들어봤어. 그 타이탄 공격대 이사하던 사람이 만들었다며?”

“이력 보니까 화려하더라고. 조만간 타이탄 공격대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던데?”

“에이, 설마.”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세라프의 전당에 도착했다.

차원문을 넘어 도착한 곳은 쿠시아르.

밖으로 나오자, 익숙한 광경이 수한을 반겼다.

변한 게 없었다.

지저 도시.

커다란 공동에 개미굴처럼 작은 동굴이 무수히 뚫려 있었다. 인공 조명이 공동 전체에 깔려 있어 보는데 시야에 제한은 없었다.

세라프의 전당 가까운 곳에는 시청이 있다.

여기서 떨어진 수호자 연맹 파견대를 가는 것보다, 시청으로 가는 게 훨씬 나았다. 미리 차원문을 이용해 편지도 보내 놓았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시청 앞에 가자, 수한과 새미를 알아본 시청 경비병이 호들갑을 떨었다.

“$&%^%[email protected]#%%!”

호들갑을 떨며 뭐라고 하더니, 같이 경비하던 동료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수한은 가만히 경비병과 정신을 연결했다.

경비병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사태를 알아차렸다. 얌전히 수한의 접촉을 받아들였다.

[절 아십니까?]

그렇게 묻자 배부른 고양이처럼 활짝 웃는다.

[당연히 알지요! 저번 기계 괴수 공격 때 저도 참가했었습니다. 도둑놈들 잡는데도 한 팔 보탰는걸요? 그나저나 두 분이 함께 오신 것을 보면, 2세는 아직이신가 봅니다.]

[하하하.]

경비병이 수한과 새미를 번갈아 쳐다보자, 수한은 그만 웃고 말았다.

금방 안으로 들여보내라는 전갈이 왔다.

시장실로 안내를 받았는데, 푹신한 소파에 유난히 짧은 수염을 한 노란 얼굴의 고양이 인간 하나가 앉아 있었다.

수한은 그 케르베스 인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케르베스 인이 앉아 있는 소파 옆.

아기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반투명한 까만 천으로 가려놓아 보이지는 않는데, 옅은 숨소리가 고롱고롱 흘러나왔다.

기나리아가 빙긋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이게 몇 년 만이죠?]

[1년 반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때 결혼하신다고 하더니, 이거 축하드려야겠습니다.]

[기나리아님, 축하드려요!]

[호호, 감사해요. 그나저나 못 보던 얼굴이네요?]

수한은 라오그뉴와 마엘른을 소개했다. 중간에 용이도 고개를 쳐들어서, 용이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기나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직한 동반자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요. 할리온님도 조만간 도착하실 거예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까만 고양이 인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역시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야, 오랜만이오! 잘 지냈소이까?]

할리온이 반갑게 수한의 어깨를 툭툭 쳤다.

수한도 씩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살이 좀 찌셨네요?]

[하하, 결혼하고 나니 그렇게 되었소.]

잠시 한담을 나눴다.

기나리아가 아기 침대에 눕혀 놓았던 아기를 보여 주었다. 얼핏 보면 새끼 고양이와 비슷했다. 털이 보송보송하고, 노란색과 검은색, 흰색이 섞여 있었다.

아기가 기지개를 펴자, 분홍색 발바닥이 보였다. 그걸 보고 새미가 눈을 반짝였다.

“어머, 귀여워라!”

기나리아의 손길을 느낀 것일까.

아기가 삐약 대며 울었다.

[어머, 배가 고픈가 봐요.]

기나리아가 슬쩍 수한 일행에게 눈치를 주었다.

수한은 기나리아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깽이도 안녕!]

바로 옆에 있는 할리온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수한은 슬쩍 질문을 했다.

[시장 직위를 물려받은 모양입니다.]

[그렇게 됐소. 장모님이 진작 기나리아에게 시장 직위를 물려주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이겨냈소이다.]

[축하드립니다.]

[그나저나, 기계 괴수들을 잡으러 오셨다고 하셨소?]

[예. 최소한 잿빛 학살자와 청염의 마룡, 하늘 대왕, 지옥 공포는 몽땅 잡고 갈 겁니다.]

[허어……]

할리온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케르베스 행성에서 악명을 떨친 네 마리의 대형 기계 괴수.

저번에 활동을 재개한 뒤, 또 다시 학살을 감행하고 있었다. 특히 하늘 대왕은 쿠시아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아서, 시민들이 공포에 떨었다.

할리온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대가 보낸 자료는 잘 보았소. 내가 종족 연합의 다른 친구들을 통해 알아보니, 그대의 활약에 대해 아는 이들이 많더이다. 나 또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소. 그래서 말인데, 내가 쿠시아르의 대표 자격으로 그대의 원정에 참여해도 되겠소?]

[예?]

갑자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S급 이능력자가 더 참가한다면 좋은 일이다. 보다 더 안정적으로 기계 괴수를 사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배분 문제가 발생하니 여러모로 좀 복잡해지겠지만.

수한이 멀거니 쳐다보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할리온이 손 사레를 쳤다.

[오해하지 마시오. 그대의 전리품을 욕심내는 게 아니니까. 그대들이 잡는 기계 괴수나 변이체에 대한 지분을 주장하지 않겠소. 내가 원하는 것은 쿠시아르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거요.]

오해는 수한이 아니라 할리온이 한 것 같은데?

어쨌건 할리온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원래 쿠시아르는 이 근방을 지배하던 왕국의 수도였다. 그러다 기계 괴수들의 공격으로 그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일개 도시 국가로 격하되었다.

옛 영광을 되찾으려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만약 수한의 미르 공격대가 케르베스 행성의 기계 괴수를 몽땅 잡는데 성공한다면, 그 옆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이 수십 배로 커질 테니까.

그러려면 할리온이 직접 참가하는 게 좋다.

할리온 쿠시아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시장의 부군이다. 더구나 수한과 함께 기계 괴수를 유인하고, 도둑들을 잡은 적도 있었다. 다른 S급 이능력자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수한은 할리온의 제안을 승낙했다.

공짜로 부릴 수 있는 S급 이능력자가 합류하는 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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