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68화 (169/254)

< 평정 -1- >

[요 잠자리 녀석!]

라오그뉴가 하늘 대왕에게 앞발을 소나기처럼 꽂았다. 화려한 섬광이 펑펑 터지며 방어막이 깨지고 금속 장갑에 구멍이 뚫렸다.

수한은 주포를 겨눴다.

충전이 끝나자 라오그뉴가 잽싸게 뛰어내렸다. 동시에, 적자색 굵은 빛줄기가 하늘을 갈랐다.

하늘 대왕이 몸을 뒤틀었다.

광선이 방어막을 부수고 하늘 대왕의 가슴을 때렸다. 동력핵을 보호하던 금속 장갑 일부가 부서져 후두둑 떨어졌다.

하늘 대왕이 자기 둥지에 거칠게 쑤셔 박혔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대지 전체가 울렸다. 흙먼지가 폴폴 일어나며 둥지를 가렸다.

그 까짓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수한은 초월 의식으로 원정대를 하나로 연결하고, 절대자의 눈으로 먼지 구름을 꿰뚫어 보았다.

할리온까지 합쳐서 총 26명.

그들의 의식에, 하늘 대왕이 둥지 안에서 발버둥 치며 일어나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수한이 짧은 외침을 토했다.

그 지휘에 따라, 25명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분노한 바다처럼 들썩이며 하늘 대왕을 밀어붙였다.

미사일이 날아갔다.

무반동총이 쉬지 않고 탄환을 토했다.

박격포가 불을 뿜고, 유탄 발사기가 퉁퉁 소리를 냈다.

가장 먼저 당도한 것은 쌍두기계용이 날린 미사일 무더기.

미사일이 분열했다. 수십 갈래로 갈라져 하늘 대왕을 덮쳤다. 그 끝에서 번뜩이는 빛에 방어막들이 중화되어 사라졌다.

그 위를 광선포가 덮쳤다. 지원 요원들이 가한 공격도 꽂혔다. 하늘 위에서 번개가 번쩍이며 몇 번이나 하늘 대왕을 강타했다. 빛을 뿌리는 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늘 대왕의 요소요소를 직격했다.

마엘른이 몸을 날려 하늘 대왕의 광선포를 침묵시키고, 할리온은 두 눈에 폭탄을 부착시키더니 단번에 날려 버렸다.

하늘 대왕이 무서운 것은 하늘 위에 있을 때.

이미 지상으로 내려온 다음에야, 대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그래도 그냥 쉽게 당해주지는 않았다.

별안간 전신에서 붉은 바람을 내뿜었다. 마엘른과 할리온이 급히 몸을 뺐다.

잠깐 들이쉬기만 해도 전신의 장기가 녹아내리는 극악한 독가스.

하지만 라오그뉴는 신경 쓰지 않고 덤벼들었다. 전신에서 무지갯빛을 뿜어내며 하늘 대왕을 후려쳤다.

수한은 주포를 하늘 대왕에게 정조준 했다.

출력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꽈아앙!

빛줄기가 하늘 대왕의 가슴을 박살냈다.

하늘 대왕의 육중한 몸이 뒤로 넘어갔다.

동력핵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 대왕이 반격을 하려고 하지만 라오그뉴에게 막혔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등 뒤에서 몸통을 끌어안고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무리는 마엘른의 차지.

푸른 검이 동력핵 주변을 갈랐다.

하늘 대왕의 몸이 크게 한 번 진동을 일으켰다.

그것으로 끝.

금방 축 늘어지며 활동을 정지했다.

“이겼다!”

지원 요원들이 만세를 불렀다.

그들을 보며, 수한은 싱긋 웃었다.

공격대장으로 나선 첫 원정.

그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꿰맨 것이다.

워낙 무난하게 전투를 성공시킨 터라 수한이 접근전을 할 것도 없었다. 원거리 지원만으로 충분했다.

현재 케르베스 행성에 분포하고 있는 기계 괴수는 약 30 개체.

사냥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용이에게 하늘 대왕의 시체를 추스르게 했다.

신화 등급, 즉 SSS급이 되고 난 후 용이는 대형 기계 괴수 1마리는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그러나 2마리 이상 끌고 다니면 기동만 가능하지, 전투를 치르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상관없었다.

일단은 3마리의 기계 괴수를 모두 합치게 했다.

[하늘을 날 수도 있어. 대신 속도는 육상으로 이동하는 거랑 차이가 없을 거야.]

[그래도 날아가는 게 좋겠다. 일단 쿠시아르로 기계 괴수 시체를 끌고 가자. 지구로 소형 기계 괴수 시체를 보낸 다음에 하늘 대왕만 변형시켜서 출발할 거야.]

[응! 알았어!]

용이가 기계 괴수를 변형시키는 동안 휴식을 취했다.

기계 괴수 변형이 끝난 것은 해가 떠오른 직후.

무척 뚱뚱했다. 날개도 제법 두툼했다. 두 쌍이 나란히 달렸는데, 소형 추진 장치가 빼곡하게 달려 있었다.

수한은 지원 요원들에게 지시했다.

“SUV는 기계용에 넣고, 쿠시아르에 갔다 옵시다.”

“6대를 다 넣을 수 있을까요?”

“충분합니다.”

애초에 그걸 염두에 두고 변형시킨 거니까.

기계용이 배를 열었다. SUV 6대가 그 안으로 줄을 지어 들어갔다. 화물선을 응용한 구조여서, 2층에 3대씩 수납이 완료되었다.

원정대 모두 탑승을 완료하자, 기계용이 날개를 최대한으로 펼쳤다.

추진 장치가 빛을 뿜었다.

그 거대한 몸이 슬쩍 공중에 들렸다. 이내 급격히 가속하여 쿠시아르 방향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속도로만 따지면 여기까지 오던 때와 비슷하다. 대신 지형을 무시할 수가 있었다. 덕분에 한 나절 뒤 쿠시아르에 도착했다.

기계용이 접근하자, 쿠시아르를 방어하는 돌산 요새에서 빛이 번뜩였다.

숨겨 두었던 기계 괴수 대응 장비를 가동하는 것이다.

할리온이 나섰다.

품에서 작은 수정구를 꺼내더니, 거기다 대고 소리쳤다.

[이봐! 자네들이 보고 있는 거 기계 괴수 아냐! 지구인들이 끌고 다니는 거라고!]

[아니, 할리온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들어! 내 건 크기가 작아서 자세하게 말을 해주기가 힘들어!]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할리온님 본인을 확인시켜 주십시오. 그냥은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이거 원 깐깐한 사람 같으니……]

수한은 할리온을 기계용의 몸통 위에 잠깐 내보냈다.

혹시나 떨어질까 싶어 기계용을 수평으로 잘 맞춘 뒤였다. 할리온은 날렵하게 기계용의 몸통을 기어올라 당당히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얘기가 잘 되었는지 기계용 안으로 돌아왔다. 돌산 요새에서 번쩍이던 빛도 사라졌다.

[이제 가도 됩니까?]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가 다른 요새에도 미리 연락을 취하리다.]

[알겠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기계용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접근한 뒤, 거대한 구멍을 통해 쿠시아르로 들어갔다. 그때는 날개를 접고 두터운 다리를 사용했다.

병사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기계용을 호위해서 세라프의 전당으로 데려갔다. 왜 그러나 했더니, 시민들이 놀랄까 봐 그러는 거였다.

[이 기계용은 아군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거기 꼬마야! 울지 마! 기계 괴수가 아니다!]

병사들이 흘리는 상념에, 수한은 살짝 쓴웃음을 머금었다.

대로를 가로질러, 세라프의 전당으로 접근했다. 언제 소문이 퍼졌는지, 쿠시아르 시민들이 몰려와 기계용을 구경했다.

하긴 언제 이 정도 크기의 쇳덩이를 마음 놓고 볼 수가 있겠나. 가까이 온다는 소리만 들어도 도망부터 치고 봐야지.

움직이면서, 지원 요원들을 2개 조로 나누었다.

“1조가 먼저 수고해 주세요. SUV에다 기계 괴수 부품 싣고 회사 창고로 옮기세요. 그런 다음 기다리시면, 다음 사냥이 끝나고 2조를 통해 합류 지점을 알리겠습니다.”

“예, 사장님.”

기계용에게서 두 마리의 소형 기계 괴수를 분리시켰다.

수한은 직접 기계용을 움직였다. 부품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자른 뒤, 세라프의 전당 옆 공터에 늘어놓았다.

운반은 운송용 소형 비행 접시로 했다.

다름 아닌 세라프 종족에게 지원 받은 품목이었다. SUV 보다 훨씬 많은 전리품을 실을 수 있었다. 1명에 여러 개를 조종할 수 있으니, 수송에는 지구의 어떤 물건보다 좋았다.

쿠시아르 시민들이 신기한 눈으로 원정대를 쳐다보았다.

기계 괴수 분리가 끝나자, 바로 비행 접시를 세라프의 전당으로 들여보냈다. 쿠시아르 측에서 전적으로 협력해준 덕에, 전리품을 빠르게 지구로 보낼 수 있었다.

[대단하네요.]

기나리아가 경탄어린 표정을 지었다.

품에 아기를 안고 기계용을 보고 있었다.

군살을 덜어낸 기계용은 날렵하면서도 위엄이 넘쳤다. 신화 속 군주를 보는 것 같았다.

아기가 두 손을 내밀었다.

[꺄앙!]

기계용이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할리온이 수한에게 물었다.

[다음은 어디로 가시겠소?]

[서두를 것 없이, 이 근방에 있는 기계 괴수들을 잡으려고 합니다. 다 잡을 때까지는 지구에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허어, 정말이오? 대단하오. 헌데 예방 접종 때문에 1달 이상은 체류하기 힘들다고 하지 않았소?]

[예전에 빈곤하던 때 얘기지요. 저희 공격대 이능력자들은 생존 기능 장비가 있어서 관련이 없습니다. 지원 요원들은 번갈아서 지구에 다녀오니까, 예방 접종을 다시 하면 그만이고요.]

[아하, 그러면 되겠소.]

그 날부터, 수한은 분주하게 기계 괴수들을 사냥했다.

대충 이틀에 1마리 꼴로 잡는 것 같았다. 가끔은 2마리, 3마리를 잡는 날도 있었다.

지원 요원들은 쉬지 않고 전리품을 지구로 보냈다. 비행 접시는 물론 SUV도 수송에 동원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대형 트럭을 몇 대 구입했다.

세라프의 전당 밖에서 수한이 사냥한 기계 괴수를 잘라 트럭 짐칸에 올려주면, 지구로 돌아가 창고에 쌓는 것이다.

그렇게 기계 괴수를 쓸어 담는 탓에 레벨이 부쩍 올랐다. 원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수한은 435레벨이었는데, 지금은 465레벨이 되었다.

계획대로 케르베스 행성의 기계 괴수를 다 잡아 족치면, 500레벨이 될지도 모르겠다.

능력치도 체력, 지능, 의지, 위엄이 1개씩 올랐다. 작전 계획과 전투 지휘, 무리 통솔도 1씩 상승했다. 힘들여 원정을 온 보람이 있는 것이다.

“사장님. 곧 잿빛 학살자의 영역에 들어섭니다.”

“그래요? 잠깐 쉽시다. 곧 전투가 벌어질 테니까요.”

수한은 기계용을 적당한 곳에 착륙시켰다.

난방이 가능한 구조로 변형시켰는데, 싸늘한 기운이 솔솔 들어왔다.

이곳은 케르베스 행성 뉴만 대륙 북쪽에 있는 얼음의 대지였다. 기계 괴수들이 케르베스 행성을 공격할 때 가장 먼저 내딛었던 곳으로, 잿빛 학살자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곳은 외곽이라 좀 나았다. 중심부로 들어가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설이 내린다고 했다.

“자, 밥부터 먹읍시다.”

기계용 안에서 식사를 했다.

주방 시설까지 만든 상태였다. 지원 요원들이 지구를 계속 다녀와서 먹거리도 풍부했다. 원정 나오면 1달 내내 전투 식량만 먹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이번 원정은 달랐다.

삼겹살을 굽고, 싱싱한 상추에 파절임과 함께 쌈을 싸먹었다. 얼음을 동동 띄운 콩나물국과 시원한 콜라도 있었다.

새미가 삼겹살을 집어먹으며 웃었다.

“이번 원정은 정말 편하게 하는 것 같아. 원정 나와서 삼겹살을 먹을 줄은 몰랐어.”

“하늘 대왕을 잡은 게 컸지. 사실, 비행형은 땅으로 끌어내리기만 하면 동급 기계 괴수에 비해 약하니까 더 쉽게 잡을 수가 있어.”

“잿빛 학살자는 얼마나 세?”

“청염의 마룡보다는 까다롭고, 지옥 공포랑은 비슷할 거야. 청염의 마룡은 원거리 포격형이라서 주포만 조심하면 되지만, 잿빛 학살자는 광선 폭격이랑 회색 안개를 다 주의해야 하니까. 그래도 근원의 섬광을 몇 개 가져왔으니까 해볼 만 해.”

“잘 됐으면 좋겠다.”

“잘 되도록 해야지.”

원래 얼음의 대지에도 상당한 규모의 도시가 있었고, 세라프의 전당도 설치되어 있었다. 과거 전쟁이 벌어졌던 지역이라, X-0가 많이 살포되었고 변이체도 많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도시는 저번 제국의 공격 때 박살이 났다. 쿠시아르보다 더 강한 도시였지만, 잿빛 학살자를 어쩔 수는 없었으니까.

따라서 잿빛 학살자는 원정대가 알아서 찾아야 했다. 도움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수한은 하늘 높은 곳에서 잿빛 학살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금방 찾아냈다.

불가사리를 닮은 형태의 기계 괴수.

작은 마을을 하나 공격하고 있었다. 급조한 목조 건물들이 불에 타고, 케르베스 인들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잿빛 학살자.

기계용을 접근시켰다.

그러자 잿빛 학살자가 기계용의 접근을 감지했다. 공격을 중지하고 몸통 위쪽의 탐지 장치를 가동하더니, 기계용을 포착한 것이다.

아군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불문곡직 광선포를 날렸다.

“쯧!”

수한은 혀를 찼다.

방어막으로 가볍게 공격을 막았다.

다른 행성의 기계 괴수들은 광선포가 막힐 것 같으면 공격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케르베스 행성에서 오래 있었던 기계 괴수는 막히든 말든 공격부터 하고 봤다.

수한도 답례로 광선포를 날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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