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70화 (171/254)

< 평정 -3- >

[예. 스피쿠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거칠기로 유명한 플루오라 족이 지배하는 도시인데, 방어 태세가 튼튼해서 잿빛 학살자의 공격을 몇 차례 방어한 적이 있지요. 잿빛 학살자가 얼음의 대지에 묶여 있었던 것도 그들의 공이 큽니다.]

[스피쿠로 가는 게 좋겠네요. 할리온님이 다리를 놔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움직이기 전, 하룻밤을 얼음의 대지에서 보냈다.

변이체 몇 마리가 접근했지만 라오그뉴가 혼자 처리했다. 별미라며 사냥한 뒤 뜯어먹은 것이다. 덕분에 수한은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용이도 깨어나자 잿빛 학살자를 융합시켰다.

덕분에 비행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잿빛 학살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였다.

그래도 덩치가 덩치인 까닭에 낼 수 있는 속도는 상당했다. 스피쿠까지 이틀이면 도착할 거라고 했다.

전속력으로 달렸다.

이제 수한과 용이 모두 기계용 조종에는 이골이 났다. 덕분에 기계용이 쿵쾅거리며 달려도 그걸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큰 건물 안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쪽으로 계속 움직였다.

중간에 바다도 한 번 건넜다. 기게용이 푹 잠기는 깊이였지만, 방수는 기본이니 무시하고 지나쳤다.

해안가에는 경계 초소가 줄지어 서 있었다. 기계용을 본 감시 초소에서 하늘에 대고 신호용 폭죽을 마구 쏘아댔다.

경비병들이 순록을 닮은 동물에 올랐다.

할리온이 기계용에서 내렸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뭐라고 소리치며 다가가자, 경비병들이 멈칫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할리온을 쳐다보더니, 급히 몇 마디를 더 지껄였다.

수한과 새미,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내렸다.

경비병들은 귀신을 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수한은 그들의 정신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저희는 종족 연합에 소속된 지구 출신 공격대입니다. 케르베스 행성에 있는 기계 괴수들을 잡기 위해 원정을 왔습니다.]

[지구인이라고?]

[예. 벌써 하늘 대왕과 잿빛 학살자를 잡았습니다.]

[뭐? 믿을 수 없다!]

통신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세계라, 여기까진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나 보다.

기계용 곳곳을 보여준 다음에야 수한의 말을 믿었다.

그들을 보며, 한 가지 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주변에 있는 기계 괴수는 진작 모조리 다 잡았습니다. 앞으로는 이 경비 초소가 필요 없어질 겁니다.]

[에이, 설마요.]

경비병들이 믿건 말건 스피쿠에 소식을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또 소란을 피우는 걸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

순록을 탄 경비병이 먼저 출발했다. 스피쿠까진 지척이니, 잠시 쉬었다가 또 길을 나섰다.

쿠웅, 쿠웅.

기계용이 땅을 울리며 나아갔다.

뒤에서 경비병들이 질린 얼굴로 기계용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대략 두 시간 뒤, 스피쿠에 도착했다.

커다란 강을 낀 제법 규모 있는 도시였다. 날씨는 이곳도 싸늘하지만, 그런대로 작물이 자랐다. 인근에 큰 숲과 목장이 있어 수렵과 목축이 발달했다.

소식을 들은 스피쿠의 수뇌부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눈동자에 박힌 파란색 점이 특징인 플루오라 종족이다. 개체에 따라 다르지만, 순간 가속 능력이 있다던가.

스피쿠 수뇌부는 입을 벌리고 기계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완전히 방심하지는 않았는지, 주위에 이능력자와 군대가 포진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스피쿠의 영주는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원정대가 기계용에게서 내려갔다.

수한이 앞으로 나서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지구 출신, 미르 공격대의 공격대장인 S급 이능력자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넋을 잃고 기계용을 보던 스피쿠의 수뇌부가 수한의 말에 반응했다.

조그마한 고양이 아가씨가 한 발짝 다가왔다.

[잿빛 학살자를 잡으셨다고요?]

[예. 세라프의 전당을 이용해서 지구에 보내려고 합니다.]

[믿어지지가 않네요.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우리 도시로 어떻게 들어오실 거죠? 성문에 통과는 못 하실 텐데요.]

[하늘로 날아서 들어가겠습니다.]

[네?]

수한은 즉석에서 기계용을 변형시켰다.

잿빛 학살자의 몸 부분은 먼저 절반만 챙겼다. 하늘 대왕의 몸만 변형시킨 기계용으로 잿빛 학살자의 몸 중 절반을 먼저 운반했다. 세라프의 전당 옆 공터에 내려다 놓은 후, 지원 요원들에게 지키게 하고 성문으로 돌아왔다.

고양이 아가씨가 수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저것들을 지구로 보내시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영주성에서 머무시는 게 어떠세요? 저희 영주님께서는 영웅들을 대접하시는 것을 아주 좋아하신답니다.]

[좋습니다.]

스피쿠에는 수호자 연맹 파견대도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야영을 하느니, 앞으로 일도 의논할 겸 영주성에서 머무르는 게 좋을 것이다.

잿빛 학살자의 몸을 마저 세라프의 전당 옆으로 옮겼다. 지원 요원들은 그걸 지구로 가져가기로 하고, 수한 일행은 스피쿠의 영주성으로 갔다.

[어서 오십시오. 잿빛 학살자를 잡으셨다고요?]

스피쿠의 영주가 일행을 환대했다.

이때쯤에는 이들도 상황을 모두 파악한 뒤였다. 얼음의 대지에 상시 파견해 놓은 정찰병이 보낸 소식도 당도한 것이다.

영주는 성대하게 연회를 열어주었다.

잿빛 학살자는 수백 년 전부터 스피쿠의 골칫거리였다. 그나마 예전에는 얼음의 대지에 있는 도시들이 완충 지대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없이 잿빛 학살자의 활동 영역과 직접 맞닿았다.

그런 만큼 스피쿠의 주민들이 느끼는 위협은 엄청났다. 아예 피난을 가는 이도 많았다. 그렇게 골치를 앓던 차에 낭보가 전해졌으니, 영주는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얼굴로 일행을 보았다.

연회가 적당히 무르익었을 때, 영주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질문했다.

[헌데, 쿠시아르도 이번 사냥에 참가하신 겁니까?]

일행 중에 할리온이 끼어 있어 그러나 보다.

수한은 한쪽 뺨을 긁적였다.

[사냥에 참가한 것은 아니지만, 쿠시아르의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케르베스 행성의 기계 괴수 사냥이 끝난 다음에도, 미르 공격대와 쿠시아르는 함께할 겁니다.]

할리온이 히죽 웃었다.

수한의 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 유형의 이익을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에 얻을 무형의 이익은 엄청 났다. 케르베스 행성 내에서 쿠시아르의 영향력을 재고함은 물론, 기계 괴수쯤은 가볍게 사냥하는 미르 공격대와 확고한 관계를 맺는 거니까.

영주가 경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까? 쿠시아르 왕국이 부활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희도 미르 공격대에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도움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희도 S급 이능력자를 지원하겠습니다. 아울러 필요한 보급품과, 세라프의 전당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겠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쿠시아르와 비슷한 조건이다.

영주가 한쪽으로 손짓을 했다.

처음 미르 공격대를 맞이하러 나왔던 작은 고양이 아가씨가 가까이 다가왔다.

겉보기에는 귀엽기만 하지만 실은 S급 구현 계열 이능력자.

할리온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기껏 지금까지 고생을 해가며 미르 공격대에 쿠시아르의 존재에 대해 어필을 했는데, 이제 와서 끼어들려고 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수한은 잠시 속으로 주판을 튕겼다.

미르 공격대 입장에서는 당연히 스피쿠도 끌어들이는 게 좋다.

그렇다면 쿠시아르 쪽에서는 어떨까?

단순히 생각하면 미르 공격대와의 독점적인 지위를 잃으니 손해일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수한은 그 점을 할리온에게 설명했다.

[할리온님. 받아들이는 게 좋겠습니다.]

[으음, 우리야 얹혀서 이득을 보는 입장이니 우리 뜻이 뭐가 중요하겠소? 뜻대로 하시오.]

[그런 게 아닙니다. 할리온님, 쿠시아르의 목표는 예전 영토를 회복하고 다시 왕국을 건설하는 거지요?]

[그렇소.]

[그렇다면 스피쿠의 참가가 도움이 될 겁니다. 어차피 스피쿠와 쿠시아르는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경쟁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요. 쿠시아르의 목표가 대륙 정복은 아니지 않습니까? 차라리 이번 일을 계기로 동맹을 맺으면 두 도시 모두에게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두 분은 어

떻게 생각하십니까?]

수한의 구상은 간단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기계 괴수 사냥에 가담하고자 하는 도시가 있을 것이다.

그들을 하나의 동맹으로 묶는다.

동맹은 케르베스 행성에서의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수한의 미르 공격대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럼 차원 무역을 통해 미르 공격대가 급격히 성장할 것이다.

문제는 현재 미르 공격대가 행성 규모의 차원 무역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점인데, 최대한 빨리 성장시키거나 다른 대기업을 끼워 넣어 해결해야 하겠지.

할리온이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소. 확실히 그런 점이 있구려. 그렇게 하십시다.]

그 정도의 권한은 있는 모양.

영주도 수한의 구상을 듣더니 찬성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저희 스피쿠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언뜻, 영주의 눈에 야망의 불길이 번졌다.

이 근방에는 고만고만한 도시들이 산재해 있다.

누구 하나 왕을 칭하지 못하고 영주니 군주니 하며 스스로를 높이는 상황.

그 와중에 세라프의 전당을 유치하여 몇 발짝 앞서 나가던 참이다. 이렇게 기계 괴수 사냥에 참가하고, 다른 유력자와 동맹을 맺으면 왕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스피쿠에서 며칠 머물며 피로를 풀었다.

기계용을 타고 날아올랐을 때, 전투 인원이 여섯에서 일곱으로 늘어났다.

그 덕에 대형 기계 괴수들을 잡는 게 더 쉬워졌다.

다음으로는 청염의 마룡을 공략했는데,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동력핵을 뽑아 버린 것이다.

얼음과 바람을 다루는 구현 계열 이능력자, 피키가 놀라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청염의 마룡을 이렇게 쉽게 잡죠? 세라프 종족들도 고전하다가 결국 잡지 못했었는데?]

[이 정도야 쉽죠.]

청염의 마룡을 근처 세라프의 전당으로 가져가자, 그 도시에서도 깜짝 놀라 미르 공격대를 환대했다.

그들도 할리온과 피키를 보고 자기들도 동참시켜줄 것을 원했다. 도시를 동맹에 넣는 한편, S급 이능력자를 데리고 나왔다.

마지막은 지옥 공포.

가장 전투가 힘들 것으로 예상되었다. 잿빛 학살자와 비슷하게 중장갑 형태이면서, 근접전이 장기인 기계 괴수였기 때문이다. 특히 네 개의 팔에 달린 광선 칼날은 과거 세라프 종족을 여럿 죽여 버렸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이번에는 근처의 도시를 먼저 찾아갔다.

이때쯤에는 미르 공격대가 케르베스 행성의 기계 괴수를 사냥하고 있다는 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잡은 기계 괴수가 28마리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제 지옥 공포와 소형 기계 괴수 2마리만 남았으니, 미르 공격대에 대하여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방문을 받은 도시의 의회 의장이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어서 오십시오! S급 이능력자가 필요하시다고요? 당연히 내어 드려야죠! 제가 직접 종군하겠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합류하는 만큼 나중에 동맹에서의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강수를 두는 것이다.

지옥 공포는 강했다. 게다가 영리했다.

몇 번이나 위기를 넘겼다.

라오그뉴는 한 번 죽었다가 부활 능력으로 살아났다.

수한이 조종하는 기계용은 지옥 공포에게 잡혀 네 다리와 두 날개가 모조리 뽑혔다. 금강불괴와 방어막을 최대한으로 써도 그러했다.

심지어 마엘른의 허리가 동강이 나기도 했다. 할리온이 목숨을 걸고 구출해 온 뒤, 새미가 급히 세계수의 열매를 먹여 되살리는데 성공했다.

피를 말리는 격전 끝에 지옥 공포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했다.

아르텔라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A급인 외능 계열 이능은 다름 아닌 용신의 저주.

본인의 손을 하나 제물로 바치며 지옥 공포에게 저주를 걸었다. 그러자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던 지옥 공포가 덜그럭 멈추고 말았다.

방어막은 몽땅 소멸되었고, 구동부도 거의 박살이 난 상태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르텔라가 자신의 뇌와 심장을 제물로 썼어도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 틈을 타 새미가 번개를 날렸다. 흉갑이 완전히 박살났다. 즉시 기계용이 동력핵을 깨물고 그대로 뽑아냈다.

그것으로 끝.

동력핵에 피가 묻어 있었다. 다른 대형 기계 괴수들과 달리, 지옥 공포에는 제국인이 탑승해 있던 것이다.

어쩐지 강하다 했다.

글자들이 무리지어 수한에게 날아왔다.

계급이 올랐다. 이제 수한은 사관이 아니라 위관이 되었다.

다른 보상은 별 차이가 없었다. 모든 능력치 1, 10 레벨, 초능 점수 10점을 얻었다.

그외에도 연속된 전투가 누적된 결과, 전투 지휘 기술과 탑승 기술이 2씩 올라갔다. 하도 오래 싸워서 그런지 체력과 의지도 1씩 추가로 상승했다.

어디 그것뿐이겠나.

케르베스 행성의 모든 기계 괴수를 소탕했을 때, 수한은 마침내 500 레벨에 도달했다.

여덟 번째 초능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수한이 가진 것은 초능 개발이 8개까지 가능한 8익(翼)급 레벨 업 도우미.

슬슬 성장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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