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르 동맹 >
케르베스 행성에 평화가 찾아왔다.
물론 기계 괴수가 죽으면서 내뿜은 X-0 때문에 앞으로 몇 년은 고위 변이체들에게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변이체 정도는 기계 괴수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기계 괴수가 없다.
이제는 하루하루 마음을 졸일 필요도 없고, 정든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난가야 할 일도 존재하지 않았다.
축제가 열렸다.
행성 전체가 들썩였다.
귀족들과 부자들이 곳간을 풀었다.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주민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음식을 즐겼다. 서로의 털을 핥아주고, 꼬리를 살랑이며 광란의 축제를 즐겼다.
[미르 공격대의 이계인 영웅들과, 미르 동맹들의 영웅을 위하여 건배!]
[건배!]
어딜 가든 자기 종족 언어로 이렇게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이번 일로, 미르 공격대라는 단어는 케르베스 행성인 전체의 머리에 화인처럼 박혔다. 덩달아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던 네 개 도시의 동맹 이름도 정해졌다.
미르 동맹.
쿠시아르, 스피쿠, 골가, 러블리안, 이렇게 네 개의 도시가 뭉쳤다. 앞으로 미르 공격대와 전폭적으로 협력하면서 무역을 하는 한편, 자기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네 개의 도시를 지배하는 이들이 쿠시아르로 모였다.
쿠시아르가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도시 중 가장 크고, 옛날에는 왕국이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네 도시 가운데에 위치했다는 점도 컸고.
세라프의 전당을 이용했기 때문에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수한이 기계 괴수를 잡고, 지구로 보낸 다음 쿠시아르로 돌아왔을 때에는 다들 모여 있었다.
기나리아는 물론 다른 지배자들이 쿠시아르가 위치한 공동 밖, 지상까지 마중을 나왔다.
펑펑! 펑!
폭죽이 화려하게 하늘을 수놓았다.
공동 앞에 도열해 있던 군악대가 일제히 음악을 연주했다.
그들 사이에서 네 도시의 지배자들이 앞으로 나왔다.
수한도 기계용에서 내렸다. 다른 이들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군악대가 더 크게 음악을 연주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세계를 구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얻을 게 있어서 그런 건데요.]
한 차례 공치사를 나눈 후 기계용의 위로 올라갔다.
안이 아니라 등 위에 탄 후, 용이에게 기계용을 천천히 움직이게 했다. 기계용이 느릿하게 다리를 놀려 공동 안으로 들어갔다.
공동 안으로 접어들자, 이번에는 예쁜 고양이 아가씨들이 양쪽에서 꽃을 뿌렸다.
수한과 원정대는 기계용 밖으로 나왔다. 기계용의 등 위에 늘어선 채, 양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걈샤햡니댜!”
“영융님들, 교먀워요!”
어설픈 한국어로 감사인사를 하는데, 그게 귀여워 수한은 웃고 말았다.
쿠시아르로 접어들자 시민들이 몽땅 몰려나온 것이 보였다. 그들이 꽃잎을 뿌리며 환호를 질렀다. 몇몇은 희한하게 생긴 악기를 들고 나와 연주하기도 했다.
가끔은 아예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주민도 보였다. 목 놓아 울음을 토하다가 실신하여 실려 나가기까지 했다.
예전, 불시에 기습한 기계 괴수를 잡고 귀환했을 때보다 더한 환영.
당연하다.
당시에는 1마리만 잡은 거였고, 그나마 주역은 어디까지나 쿠시아르의 군대였다. 지금은 관계가 역전되었다. 쿠시아르도 그것을 굳이 감추려고 하진 않아서, 시민들은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계용이 대로를 따라 쭉 행군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시민들이 더욱 열렬히 환영했다. 가까이 다가와서 기계용의 발에 입을 맞추는 시민도 있었다.
기나리아가 군대에게 시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자칫 다치는 사람이 나올까봐 걱정이 된 것이다.
시청에 도착했다.
기계용은 세라프의 전당 앞에 세워 두었다. 사람들만 내린 뒤 시청에 마련된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연회는 예전에 겪었던 것과 똑같은 형식이었다.
새미와 함께 한 의자에 앉아 즐겼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시종들이 음식을 떠먹여 주었다.
다른 사람들 모두 케르베스 식 연회에 금방 적응했는데, 그렇지 않은 이도 하나 있었다.
[난 그냥 내가 집어먹을 테니까 저리 비켜!]
라오그뉴였다.
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음식에만 골몰했다.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몽땅 먹어치우니, 시종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채웠다.
수한은 내심 이상하다 생각하며 라오그뉴에게 말을 걸었다.
“라오그뉴님. 시중드는 것은 익숙하지 않으세요? 쥬페르 행성에서 많이 겪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공물이야 많이 받았지만, 입에 넣어주진 않아. 내가 집어먹어야 했다고. 우리 엄마도 내가 새끼일 때 사냥감을 던져주기만 했지 결국 내가 싸워서 잡아먹어야 했는 걸? 으으, 입에 먹이를 넣어주다니, 등의 털이 다 곤두서는 것 같아.]
“하하, 그렇습니까?”
즐거운 연회가 끝나고, 회의실에 둘러앉았다.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자기들끼리는 이미 경제 협력은 물론 군사 협력까지 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거리가 멀어 대규모 파병까지는 힘들어도, 유사시 고위 이능력자만 보내도 좋을 터였다.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미르 공격대는 저희 동맹과 군사 협력을 할 생각이 없으십니까?]
[군사 협력이요?]
케르베스 인들의 제안에, 수한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군사 협력은 이야기가 또 다르다.
제국의 공격에 대처하는 것이야 종족 연합 전체의 문제니 상관없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들 주변 도시와 전쟁을 벌이면서 도와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기 수출도 문제였다. 예전 타이누 행성의 회색 송곳니 부족은 어차피 주위에 변이체밖에 없으니 무기를 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여기선 수출한 무기가 케르베스 인을 향할 가능성도 간과하면 안 된다.
이제 막 출범한 신생 공격대인데, 굳이 욕을 얻어먹을 이유는 없지 않나.
스피쿠의 영주가 부연설명을 했다.
[아, 군사 협력이라고 해도 그 대상은 제국으로만 한정할 생각입니다. 저희 행성의 일까지 여러분의 힘을 빌릴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차원문이 추가로 열리면서 행성 전체가 횡액을 앓은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세라프 종족과 종족 연합에게 지원군을 얻지도 못했다.
언제 또 그런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행성 평정 급 전력이 증명된 미르 공격대와 협약을 맺어놓으려는 것이다.
고민 끝에 케르베스 인들의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4개 도시를 다 합치면 S급 이능력자가 10명이 넘는다. 수한도 유사시 그들의 전력을 쓸 수 있었다. 미르 동맹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그들이 지배하는 도시가 많아지면 그 이능력자의 수도 더 많아질 테고.
이후에는 통상적인 경제 협력에 대해 의논을 했다.
차원 무역은 쌍방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미르 공격대가 준비가 되는 대로, 여러 방면에서 거래를 시작하기로 했다.
미르 공격대도, 미르 동맹도 만족스러운 회의가 끝났다.
수한은 포만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새미가 수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고생했어, 오빠. 이번 원정은 정말 잘 된 것 같아.”
“그러게.”
“우리 얼마나 벌었을까?”
“한 100조 정도? 정확한 건 자세히 계산해 봐야 알겠지만, 아마 그 정도일 것 같아.”
“100조…… 엄청나다.”
수한이 개인적으로 얻을 돈도 엄청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기계 괴수의 동력핵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점이다.
헤븐 행성제 힘의 결정 추출기도 받아왔으니, 그걸로 돌리면 1달 내에 힘의 결정 추출이 모두 끝난다. SS급 힘의 결정 4개와 S급 힘의 결정 27개가 생기는 것이다.
아니, 기계용을 그냥 놔둔다고 하면 SS급은 3개다. 그 중 하나를 사용하면, 수한도 SS급 이능력자가 된다.
“난 이번에 변조 계열 힘의 결정 있으면 SS급에 도전할 거야. 자기는 어때?”
“SS급?”
“응. 지금은 대형 기계 괴수는 좀 어렵게 잡는 것 같은데, SS급이 되면 쉬울 것 같아서.”
“너무 서두르는 거 아냐?”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이번에도 헤븐 행성 가서 흡수 보조제는 몽땅 사용할 거야. SS급은 보조제 써도 힘들다곤 하던데 최소한 죽지는 않겠지.”
새미가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S급 몇 개 흡수한 다음에 도전해야겠어. 그 정도 배당은 나오겠지?”
“그럴 걸? 모자라면 내가 보태줄게.”
“호호, 됐어.”
하긴 힘의 결정이 원하는 계열이 나와야 가능한 일이다.
엉뚱하게 거력이나 강체 계열이 나오면 헛물만 켜는 거다. 이번에 미르 공격대가 추출하는 SS급 힘의 결정은 딱 3개에 불과하니까.
듣고 있던 마엘른이 갑자기 심각한 얼굴을 했다.
“마엘른님. 어째 얼굴이 안 좋으십니다.”
“지옥 공포와의 전투를 생각하고 있었소.”
“지옥 공포요?”
“그렇소. 중간에 지옥 공포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는데, 내게도 이능이 있었다면 회피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었소.”
수한은 말을 아꼈다.
마엘른이 약한 것이 아니라 지옥 공포가 너무 강했다.
하늘 대왕과 싸울 때를 생각해 보라.
장기인 파멸 광구를 가뿐히 튕겨내지 않았나. 그것도 3번 연속이나.
반면 지옥 공포의 광선 칼날은 그게 불가능했다. 카일룸으로 막았지만 결국 놓쳐 버렸고, 그대로 허리를 양단당했다.
마엘른이 말하는 것은 간단했다.
스스로에게 S급 신속 이능이 있으면 어떻겠느냐는 것.
그렇다면 지옥 공포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회피하면서 품으로 파고들어 치명적인 상처까지 입혔겠지.
수한은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엘른님은 본인이 이능 없이 강해진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능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공격대에 도움이 되고 있는데요.”
“지금은 그럴 거요. 하지만 현재 공격대의 상황을 보면 소형 기계 괴수보다는 대형, 거대, 왕급 기계 괴수가 주요 목표가 될 것 같소. 헌데 내가 이 상태로 머물러 있으면 자리나 차지하고 말겠지. 결국 루비 아이를 잡는데 도움이 안 되지 않겠소?”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마엘른의 목표는 세계수 의회에서 인정할 만한 업적을 세우고 미드가르드 행성으로 돌아가는 것.
“확실히 신속 계열 이능만 하나 더해져도 마엘른님의 무력은 몇 배로 강해질 겁니다. 이번에 할리온님이 움직이는 거 보셨지요? 마엘른님의 공격력에 할리온님의 속도가 빨라지면 어지간한 S급 이능력자 서너 명 몫은 거뜬히 할 겁니다.”
“으음.”
“결정은 마엘른님의 몫입니다. 제가 이러쿵저러쿵 할 수는 없지요. 무슨 선택을 하든 존중하겠습니다. 충분히 고민해보고 결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소.”
[저도 S급 승급에 도전해볼 거예요.]
아르텔라가 말했다.
한국어에 빠르게 익숙해져서, 요즘엔 듣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말하는 것은 아직 서툴러서, 초월 의식의 도움을 받았다.
새미가 걱정을 했다.
“몸도 성치 않은데, 괜찮겠어요?”
[전 괜찮습니다.]
아르텔라는 오른손으로 자기 왼손을 쓰다듬었다.
지옥 공포와의 싸움에서 희생시켰던 왼손은 진작 재생시킨 뒤였다.
라오그뉴가 도움을 주었다.
자신도 죽었다 살아난 참이라 상태가 좋지 않은데, 아르텔라의 왼손이 날아간 것을 보고 자신의 힘으로 회복시킨 것이다.
칠채 옥좌의 정기를 타고나서일까.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이도 회복시킬 수가 있었다. 단지 외상만이 아니라 각종 질병과 독, 저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쪽에 누워 있던 라오그뉴가 꼬리를 살랑살랑 쳤다.
[그래, 너희 둘은 너무 약골이어서 뭐라도 먹고 얼른 강해지는 게 좋겠다! 그나저나 이번에 헤븐 행성에 갈 때는 나도 따라가도 되는 거지?]
“물론이지요. 라오그뉴님께 드릴 돈이 많으니 여러 가지 보물을 사셔도 충분할 겁니다.
[그런데 나한테 맞을 물건이 있을까?]
“종족 연합에는 사족 보행을 하는 종족이 꽤 됩니다. 라오그뉴님처럼 크기 변환이 자유로운 종족도 존재하고요.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 위주로 살펴보시면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좋아, 기대되는데?]
어느덧 지구로 귀환하는 날이 다가왔다.
케르베스 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시청을 나섰다.
귀환 소식을 들었는지 쿠시아르 시민들이 몰려나왔다. 가지 말라고 앞을 가로막는가 하면, 엉엉 울부짖으며 매달렸다.
겨우 그들에게서 벗어났다.
새미가 농담을 했다.
“오빠 여기에서 종교 하나 만들어도 되겠다.”
“하하하.”
수한은 그저 웃어 넘겼다.
기나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고양이 인간이 손을 흔들었다.
“꺄앙! 꺄앙!”
그래도 며칠 같이 있었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귀요미야, 잘 있어! 나중에 또 보자!”
새미가 옆에서 소리쳤다.
기계용은 이미 지구로 보낸 상태.
케르베스 행성에 남아 있던 미르 공격대 모두가 세라프의 전당 안으로 들어갔다.
전당 안에 적색 빛이 넘실거렸다.
그것으로 차원의 벽을 넘어 지구로 돌아갔다.
그 시각.
소식을 들은 대한민국은 물론, 지구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