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표 발표 >
수한이 케르베스 행성에서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약 2달.
잡은 기계 괴수가 대형 4마리, 소형 27마리니까 거의 이틀에 1마리 꼴로 기계 괴수를 잡은 셈이다. 덕분에 대한민국 여의도에 위치한 세라프의 전당에서 계속해서 기계 괴수 부품이 쏟아져 나왔다.
대한민국 공격대들이 외계 행성 원정에 나선 이래,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게 가브낙 행성 파병 때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오히려 성과가 더 컸다.
굳이 감추지도 않았고, 감출 수도 없었으니 미르 공격대의 첫 원정이 대박을 거둔 것은 널리 알려졌다.
추정 매출은 최소 100조.
언론들이 미르 공격대의 첫 원정에 대해 아주 대서특필을 했다.
미르 공격대가 두 달 간 케르베스 행성에서 이뤄낸 성과들이 상세히 보도가 되었다. 사냥한 기계 괴수의 수와 이름, 등급은 물론 미르 동맹의 존재까지 알려졌다.
자연히 미르 공격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안 그래도 출범 당시부터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던 미르 공격대였다. 100조라는 구체적인 금액이 수면 위로 부상하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놀라 미르 공격대가 뭐하는 공격대인가 싶어 눈을 치켜떴다.
수한 일행이 귀환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병원에 가서 간단한 검사만 받고 바로 공격대 사무실로 갔다. 공격대 사원들이 수한을 열렬히 환영했다.
“사장님! 무사 귀환을 축하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저희만 고생했겠습니까. 여기 있는 우리 미르 공격대 구성원 모두 고생했지요. 우리 공격대 첫 원정이 잘 마무리 되어 다행입니다.”
수한은 사원들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모두 지친 얼굴이었다.
기계 괴수를 워낙 많이 잡은 까닭에, 그 뒤처리를 하는 게 힘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일이 다 끝난 것도 아니어서, 앞으로 몇 달은 잔업을 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들의 눈만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미르 공격대가 이러한 위업을 달성한데 대하여, 무한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수한은 그걸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소규모로 시작한 신생 공격대지만, 사원들이 저런 눈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앞날이 밝았다.
간부들과 함께 원정 마무리 회의에 들어갔다.
경영 담당 백기수 이사가 말문을 열었다.
“사장님께서 처음에 지시하신 대로, 기계 괴수의 시체는 기업들에게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대형 기계 괴수 시체는 놔두셨죠?”
“예. 동력핵을 제외한 소형 기계 괴수 시체 27개만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 판매 대금만 거의 30조가 넘어갑니다.”
“30조요? 제 생각보다 좀 더 많네요. 동력핵을 제거했으니까 20조 이하일 줄 알았는데요.”
“이번이 첫 원정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원정도 있을 테니 앞으로 정기적으로 기계 괴수 시체를 공급받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니까 알아서 가격을 잘 쳐줬습니다. 또, 우리나라 기업에만 판 것도 아니었고요.”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대한민국으로 국한 지으면 기계 괴수 시체를 통째로 살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정부, 몇 개의 대기업, 그리고 상위 공격대 정도.
얘기를 들어 보니 바다 건너까지 소문을 낸 모양이었다. 그런 다음 경쟁을 붙여 가격을 높이 받은 듯했다. 실제로 외국 기업에 판 숫자도 꽤 되고.
수한이 웃음을 짓자, 백기수 이사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대형 기계 괴수의 시체를 구매하길 원하는 곳이 많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창고는 좀 어떻습니까?”
“거의 꽉 찼습니다. 대형 기계 괴수가 너무 커서, 두 마리만 넣어도 다른 걸 넣기가 힘듭니다. 그나마 임시로 창고 몇 개를 빌리긴 했습니다만, 대여료가 너무 비싸니 적당히 처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한은 지훈과 두 드워프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기계 괴수를 연구하여 새로운 기술을 얻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연구부의 인원도 적으니, 가장 필요한 것 몇 개만 빼고 팔아버려도 무방할 것이다.
“정 과장님.”
“예?”
“연구과에서 먼저 대형 기계 괴수 부품 중 연구하고 싶은 것을 추려주세요. 남은 것은 기계용을 만들 것만 빼놓고 모두 팔겠습니다.”
“아, 다음 원정에는 기계용을 아예 가져가시려는 겁니까?”
“그래야지요. 위험하게 기계 괴수를 잡고 시작하는 것보다, 돈이 좀 들더라도 기계용을 가져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건 그렇습니다.”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먼저 보냈던 세 대형 기계 괴수 중 두 마리의 동력핵 추출이 끝났다는 것이다.
가공과장인 권준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잿빛 학살자와 청염의 마룡에게서 뽑아낸 동력핵을 추출한 결과, SS급 변조 계열 힘의 결정과 SS급 구현 계열 힘의 결정을 얻었습니다.”
“변조 계열이랑 구현 계열이요?”
“이야, 잘 됐네요!”
추출 장치에서 어떤 계열 힘의 결정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12가지 계열 중 아무 거나 무작위로 튀어나왔다.
그래서 수한도 예전에 S급 힘의 결정을 헤븐 행성까지 가서 구해 온 적이 있지 않나.
좌중의 시선이 온통 수한과 새미에게 몰렸다.
지원과장 임시규가 눈을 빛냈다.
“그것들은 팔지 말고 놔두는 게 좋겠습니다. 나중에 사장님과 부사장님이 쓰실 지도 모르잖습니까?”
“그게 좋겠습니다.”
“아,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수한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 원정을 시작하기 전, 저는 SS급 힘의 결정을 흡수할 생각입니다. 저번에 했던 이능 인증에서 변조 계열에 별표가 찍혀 있었으니, 흡수 보조제를 사용하면 승급 확률이 적어도 80%는 될 겁니다.”
그 말에 분위기가 크게 술렁였다.
수한이 S급에 머물러 있는데도 이렇게 대박을 터뜨리는데 성공했다. 그것을 넘어 SS급에 도달하면 다음 원정에선 어떤 결과를 낼지 몰랐다.
시규가 침을 삼켰다.
“꼭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공격대가 단번에 우리나라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의 공격대로 우뚝 설 겁니다.”
“일단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가능성이 100%는 아니니까, 다른 곳에 얘기하지는 말고요. 성공하기도 전에 김칫국부터 마셨다는 얘긴 듣기 싫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S급 힘의 결정은 지금까지 15개가 모였다.
헤븐 행성제와 노르헤임 행성제로 추출하다 보니 추출이 빨리 끝난 것이다.
강체, 감각, 구현, 소환 계열은 2개씩을 얻었다. 거력 계열은 얻지 못했지만, 어차피 수한이 갖고 있는 게 있었다. 기요테 행성 원정 직후, 세 세라프에게 받은 물건을 쓰지 않았으니까.
인사과장인 성하나가 손을 들었다.
“공격대 규모를 더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능력자와 지원 요원이야 사장님께서 결정하실 문제지만, 일반 사원의 수가 너무 부족해요. 업무가 과중합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성 과장님이 신입 사원 채용 계획 짜서 저한테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검토해보고 바로 결재하겠습니다.”
“네, 사장님.”
이것으로 중요한 안건은 다 끝났다.
이만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전화기 울리는 소리가 났다.
경리가 받았는지 금방 끊어졌는데,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누군가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경비실에서 전화 왔는데, 기자들이 사장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기자들이 왜요?”
“아, 사장님. 실은 1달 전부터 인터뷰 요청이 계속 있었습니다. 원정 가셔서 안 계신다고 해도 몇 번이나 찾아오더니, 오늘 사장님이 귀환하신 것을 알아냈나 봅니다.”
백기수 이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수한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2달이나 원정을 다녀와서 피곤한데, 모레 정도에 약속을 잡는 게 어떻겠습니까? 쿠시아르에 머물면서 쉬다 온 것도 아닌데, 질문 세례를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모레로 이야기할까요?”
“그러지요. 오전 9시 정도가 좋겠습니다. 내일은 저도 좀 쉬고, 모레부터 출근하지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수한은 고생한 지원 요원들에게 1달 휴가를 주었다.
하루를 푹 쉬고 사무실에 출근하자, 기자들이 수십 명이나 몰려와 있었다.
사장실에서 인터뷰를 하려고 했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결국 가장 큰 사무실의 책상을 치우고 기자 회견처럼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많은 질문이 나왔고, 수한은 적당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다 누군가 손을 들었다.
“다음 원정은 어느 행성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글쎄요. 아직은 결정한 것이 없지만, 새로 발견된 행성 중 하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공격대원들과 상의를 해봐야지요.”
“공격대가 낸 성과에 비해 규모가 너무 작은 것 같은데요, 혹시 인원 충원하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조만간 모집 공고가 나갈 겁니다. 지원 요원과 일반 사원 모집에 대한 결재를 이미 했으니까요. 다음 주 정도면 각종 일간지와 구인 사이트에서 공고가 실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능력자 모집은 생각하지 않고 계십니까? 미르 공격대의 이능력자는 현재 다섯 명밖에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요.”
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수한은 턱을 살짝 쓰다듬었다.
“예. 아직은 이능력자 모집 생각이 없습니다. 모집한다 해도 S급 이상의 고위 이능력자만 모집할 거고, 일반적인 이능력자를 모집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 공격대가 기반을 잡은 다음 시행할 예정입니다.”
“S급 이상이요?”
기자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수가 늘었다곤 하지만, 대한민국의 S급 이능력자를 다 합쳐도 겨우 열 명에 불과하던 시절이 있었다.
S급 이상만 받아가지고는 전투 인원이 열 명 이상을 넘기 힘들다. 외국의 이능력자들을 영입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과하다는 생각이 기자들의 뇌리를 스쳤다.
수한은 가볍게 웃었다.
“아, 전 지구에서만 공격대원을 모집할 생각이 없습니다. 외계 행성에서 저와 인연이 닿은 이들도 데려올 겁니다. 그래서 S급 이상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면 지구까지 초빙해 올 필요가 없거든요. 그렇게 해서 SS급 5명, S급 20명 규모의 공격대를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세상에!”
“허, 마음만 먹으면 나라도 뒤집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강한 공격대를 만드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라…… 간단합니다.”
수한은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저희 미르 공격대의 첫 번째 목표가, 가브낙 행성의 왕급 기계 괴수 루비 아이를 사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한의 선언에 기자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지금 당장 잡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빠르면 1년, 길어도 3년 이내에 루비 아이를 잡는 게 목표입니다. 비록 지금은 전투 인원 5명의 소규모 공격대에 불과하지만, 꾸준히 인원을 보강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들이 분주히 수한의 말을 옮겨 적었다.
허공에 손짓을 하는 게 자기들 본사에 벌써 기사를 송고한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하고, 수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2달이나 외계 행성에 있다가 왔더니 무척 피곤합니다.”
“아, 사장님! 질문 하나만 더……”
“사장님! 사장님!”
수한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떠났다.
기자들이 급히 다가왔지만 미르 공격대 지원 요원들이 제지했다. 이미 충분히 시간을 준 다음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수한의 포부를 담은 기사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루비 아이 사냥 선언.
지구의 모든 전력이 달려들어도 잡기 힘들 거라고 알려진 루비 아이였다. 누군가는 너무 무모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응원하며 잘 되기를 빌었다.
특히 군대와 군인 가족들이 보인 반응이 컸다.
가브낙 행성 파병 이후 벌써 1년.
대한민국 국군이 여전히 가브낙 행성의 가리오 대륙 해안 도시에 주둔하고 있었다. 소강 상태에 접어들어 전투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으나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말 미르 공격대가 루비 아이를 잡을 수 있을까요?]
[꼭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형이 가브낙 행성에 파병 나가 있거든요.]
[미르 공격대 파이팅!]
가브낙 행성에 파병을 한 것은 대한민국만이 아니었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의 여러 선진국들.
지구 전역에서 온갖 말이 쏟아졌다. 회의와 응원, 기원의 목소리가 혼란스럽게 각종 매스컴과 인터넷, 오프라인을 떠돌았다.
그렇게 지구가 미르 공격대 건으로 들끓고 있을 때, 수한은 이미 지구에 없었다.
헤븐 행성을 방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