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75화 (176/254)

< 학술원 [7권 끝] >

학술원이라면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세라프 종족의 최신 기술은 모두 그곳에서 나왔다. 제국의 문물을 연구하여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에도 앞장을 섰다. 다만 무척 폐쇄적인 곳이라, 세라프 종족이 아니면 출입이 거의 불가능했다.

허공을 노닐던 문자들이 수한의 손등에 내려앉았다. 수한의 이름 세 글자가 세라프 문자로 오른쪽 손등에 새겨졌다.

편지가 불타오르고, 문자가 날아다니는 광경은 일행 모두 목격했다.

새미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오빠, 저게 뭐야? 세라프 문자 같은데?”

[약속? 학술원? 기계용? 저게 뭔 소리지?]

세라프 문자를 알아본 라오그뉴가 고개를 갸웃했다.

수한은 간단히 설명을 했다.

“예전에 여기 왔을 때 마니엘라님과 약속을 한 게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학술원에 오라는 것 같습니다.”

새미가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저번에?”

“응, 그렇지. 나중에 알려줄게. 아직은 비밀이어서,”

굳이 다 몰려갈 것 없이 수한만 학술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용이만 데리고 호텔을 나섰다.

이젠 덩치가 커져서 더 이상 품에 들어오질 못했다. 어깨에 앉기도 힘들었다. 날개를 접은 채 강아지처럼 수한을 쫄래쫄래 따라왔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비행 접시를 이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술원에 도착했다.

정거장에 내리자 저 멀리 학술원이라 써진 건물이 하나 보였다.

구형에 가까운, 수없이 많은 각이 진 건물.

허공에서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지상 부분이 아예 없어서, 하늘을 날지 못하면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까 편지를 전달했던 새와 비슷하게 생긴 새들이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새들에게서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게, 유사시 방어도 맡는 듯했다.

수한이 정거장에 서서 학술원 건물을 보고 있자, 세라프 한 명이 날개를 펼치고 수한에게 다가왔다.

푸른 날개가 아름답고, 얇은 지팡이를 쥔 세라프.

세라프가 수한에게 살포시 미소를 보냈다.

[지구 출신의 이수한 공격대장님이죠?]

수한도 가볍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예, 맞습니다. 마니엘라님과의 약속 때문에 왔습니다.]

[들어오세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세라프가 날개를 펼쳤다. 가볍게 땅을 박차며 날아오르자, 수한도 전투복의 날개를 이용하여 세라프의 뒤를 따라갔다.

새들이 쫙 갈라져 길을 내주었다.

학술원 안은 벌집 구조였다.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리고 중심부가 비워진 채 커다란 공동을 형성하고 있었다.

세라프는 수한을 바로 그 중앙 공동으로 데려갔다.

벌써 수백 명의 세라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수한이 공동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의 눈동자가 온통 집중되었다.

용이가 흥분하여 날갯짓을 했다.

[우와, 세라프들이 많아!]

세라프들이 용이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 중 한 명이 자연스럽게 수한의 초월 의식에 끼어들었다.

[원형 기계용이구나. 이름을 용이라고 지었다지? 반갑다. 잘 지냈니?]

[날 알아?]

[그럼, 알다마다. 내가 널 만들었는 걸.]

말을 하는 세라프는 공동 중앙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무 장식도 없이 단출한데,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의자.

다른 세라프들과 다르게 얼굴에 주름살이 몇 개 있었다. 옷은 그냥 백색이고, 길쭉한 상앗빛 지팡이를 들었다. 희한하게도 머리 뒤쪽에서 푸른 빛 무리 같은 게 일렁였다.

마니엘라는 그 뒤에 조용히 시립하고 있었다. 보랏빛 장막이라는 별칭이 붙은 만큼 상당한 고위직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 세라프의 직위가 더 높은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데려온 세라프가 조용히 속삭였다.

[아홉 최고 의원 중 한 분이신 진리의 빛, 학술원장 튜니에님이십니다.]

최고 의원!

수한의 눈이 커졌다.

최고 의원이라면 세라프 종족, 아니 종족 연합을 통틀어서 최고최강을 다투는 이들이다.

무려 Ex 등급.

홀로 행성 하나는 가뿐히 멸망시키는 강력한 존재.

수한은 놀란 눈으로 튜니에를 보다가 황급히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지구 출신 SS급 이능력자,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원형 기계용을 훌륭하게 성장시켰네요. 우리는 무슨 수를 써도 1번의 진화도 할 수가 없었는데…… 역시 제국의 무기가 꼭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보니 용이에 대해서도 용건이 있는 모양이다.

설마 연구해 본다며 빼앗아 가지는 않겠지?

튜니에가 부드러운 눈으로 수한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무기를 강화시키고 싶다고 하셨지요?]

[예. 성장 한계에 부딪쳐서요.]

[그래요? 일단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네요. 제국의 무기에 걸린 보안 때문에 저희도 아는 게 많지는 않거든요.]

[알겠습니다.]

튜니에의 뒤에 시립한 마니엘라가 수한에게 손짓을 했다. 가까이 오라는 거였다.

앞으로 나아갔다.

마니엘라가 청색의 작은 지팡이를 들고 다가왔다.

[여기 눕게.]

마니엘라가 공동 중앙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하얗게 빛나는 곳이 있었다. 직경은 2미터 정도에, 기둥처럼 길게 세워져 있었다.

수한은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몸이 저절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흡사 무중력 공간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니엘라가 지팡이로 수한의 몸 곳곳을 찔렀다.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한 번 몸이 간질간질해지더니 금방 그 느낌이 사라졌다.

저번에는 약식으로 했었던 신체 검사.

마니엘라가 수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다 끝났네. 일어나도록 하게.]

[예, 마니엘라님.]

수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어지럽긴 했지만 신체에 별 문제는 없었다. 수한은 머리를 한 번 휘젓고 용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마니엘라가 이번에는 용이에게 손짓을 했다.

용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도?]

[그래. 이리 오렴.]

용이는 수한을 한 번 쳐다보고 빛나는 곳 안으로 들어갔다.

마니엘라가 청색 지팡이를 용이의 몸 곳곳에 찔렀다. 그게 간지러웠는지, 용이가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졌다.

[오오!]

[완벽하네요!]

[처음 계획했던 그대로입니다!]

[드디어 성공했네요!]

영문은 모르겠지만, 세라프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수한도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용이가 빛나는 곳에서 빠져 나왔다. 그러더니 날갯짓을 해서 튜니에에게 다가갔다. 스스럼없이 튜니에의 품에 안기더니, 코를 벌름거려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익숙한 냄새가 나.]

[그럴 거다. 네 몸 구석구석,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니까.]

튜니에가 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용이가 기분 좋은 듯 두 눈을 감았다.

튜니에가 허공에 손짓을 했다. 홀로그램 수천 개가 일어나자, 튜니에의 푸른 눈이 그 홀로그램들을 한 번에 훑었다.

[그대의 도움이 컸습니다. 곧 기계용들을 양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산이요?]

[예. 그대에게 얻은 자료를 이용하면 제국의 무기에 걸린 보안도 어느 정도는 풀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기계 괴수 해킹이 가능해지겠지요. 1년 안으로, 백만 기계용 군단을 만들 것으로 예측합니다.]

[백만 기계용 군단이요? 맙소사!]

수한은 깜짝 놀랐다.

그 정도 전력이면 지금의 불리한 전세를 순식간에 뒤집는 게 가능했다.

각 행성에 기계용 1천 마리만 보낸다고 생각해 보라. 일거에 그 행성을 수복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게 문제.

제국의 본성을 직접 공격하지 않는 한 사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튜니에가 수한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말했다.

[자원은 충분했습니다. 부족한 것은 보안을 뚫을 열쇠였지요. 이번에 그대를 통해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번의 검사를 통해 뭔가를 얻은 모양이다.

수한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세라프 종족을 위해 뭘 한 적은 없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돈을 벌고, 승급하는데 골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찬을 들으니, 좀 어색했다.

튜이네가 허공에 홀로그램을 몇 개 띄웠다.

그걸 천천히 살펴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벨과 능력치 중 1개가 한계에 도달했네요. 나머지는 아직 멀었고요.]

[맞습니다.]

[계급이 위관…… 아직 멀었네요. 계급부터 올려야 할 거예요.]

[계급을요?]

[예. 저희가 축적한 자료에 따르면, 일단 계급이 뒷받침되어야 더 높은 등급의 무기를 받을 수가 있다고 해요. 저희가 추슬렀던 8익급 제국인은 최소 사령관 계급 이상이었으니, 아직 그대는 갈 길이 멀어요.]

그러면서 8익급만으로도 SSS급까지는 승급이 가능할 거라고 했다. 세라프 종족이 마주했던 8익급 제국인 모두 SSS급 이능을 발현하곤 했으니까.

[그럼 10익급, 12익급도 있습니까?]

[각 파벌의 지배 계급은 10익급을 소지하고 있어요. 12익급은 제국의 황실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확인해 본 적은 없고요.]

한 가지 말을 덧붙였다.

10익급은 Ex급까지 승급이 가능할 거라고.

말이 안 나왔다.

그렇다는 것은 곧, 10개의 Ex급 초능을 가진 존재들이 각 파벌마다 존재한다는 것 아닌가.

그 1명만 헤븐 행성에 침입해도 엄청난 재난이 될 터.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튜이네가 수한을 위로했다.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우리 종족도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기계용 군단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 암울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겁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제가 괜히 걱정부터 한 것 같습니다.]

수한은 힘을 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다.

이대로 축사 안의 돼지처럼 무력하게 죽어줄 수는 없지 않겠나.

튜니에가 따스한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뭔가 바라는 것은 없습니까? 우리 종족이 얻은 것이 크니,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자, 수한의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애초에 헤븐 행성을 방문한 목적은 다 이뤘다. 지금 튜니에가 물어본 것은 일종의 보너스였다.

분위기를 보니 SSS급 힘의 결정을 달라고 해도 줄 것 같았다. 아니면 SSS급 장비나, SS급 힘의 결정 여러 개도 좋고.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돈만 많이 싸들고 오면 구할 수 있지 않겠나. 경매장에서는 SSS급이 희귀하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아니면 VIP 전용 비밀 경매장을 개방해 달라고 해도 되고.

무려 최고 의원이 보답을 해주겠다고 나선 마당이었다. 기회가 왔을 때 아예 뽕을 뽑아야 했다.

SSS급이 아니라 그 위 단계, 즉 Ex 급 물건을 받을 방도가 없을까?

힘의 결정은 논외. 받아봤자 승급하기 힘드니까.

Ex급 장비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무턱대고 달라고 했다가는 거절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달라고 하더라도 설득력 있게 달라고 해야지.

수한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지금 수한에게 가장 중요한 장비가 뭐냐?

당연히 용이다. 용이가 기계 괴수와 융합해서 만드는 기계용이 미르 공격대 전력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용이는 이미 진화 한계에 도달한 상태.

더 진화시킬 수는 없는 걸까?

그러면 Ex급이 될 테고, 대형 기계 괴수를 넘어 더 강한 기계 괴수와도 융합이 가능해질 텐데.

수한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용이를 더 진화시킬 수는 없겠습니까?]

[이 아이를 말인가요?]

[예. 지금 SSS급으로 알고 있는데, Ex급까지 진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겐 그게 가장 절실합니다.]

[호오……]

튜이네가 눈을 번뜩였다.

수한과 용이를 한 번씩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도전이 되겠습니다. 자원을 많이 소모하긴 하겠지만, 해볼 만하겠네요. 그렇게 하지요. 대신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용이는 저희 공격대의 핵심 전력이라서 오래 빠지면 곤란합니다.]

[준비가 끝나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 준비만 몇 달은 걸릴 테니까, 그냥 잊어버리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용이가 수한에게 돌아왔다.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튜이네에게 좀 더 안겨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용이를 달랬다.

[다음에 또 올 기회가 있을 거야. 그때 한 번 찾아오자. 알았지?]

[응……]

[언제든지 환영하겠습니다. 자주 놀러 오세요. 저도 용이가 보고 싶을 겁니다.]

튜이네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인사를 하고 물러나왔다.

용이는 조금 침울한 기색이었지만 금방 원래 분위기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비행 접시 속에서, 까불거리며 헤븐 행성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

호텔에 도착하자 벌써 하루가 훌쩍 지나 있었다.

새미가 마중을 나왔다.

“일은 잘 됐어?”

“응. 잘 됐어. 어쩌면 용이가 한 번 더 진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진화? 지금 용이가 SSS급 아니었어?”

“맞아. 잘 하면 Ex급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우와!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새미가 반색을 했다.

헤븐 행성에서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다음날, 약속한 시간이 되자 세라프의 전당을 이용했다.

지구로 귀환했다.

이제 다음 원정을 준비할 차례였다.

[7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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