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옥 건설 >
공격대 전체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원정을 준비한다고 바쁘고, 사원을 새로 뽑는다고 바빴다.
그 와중에 새미와 데이트도 해야 하고, 심심하다고 끙끙 대는 라오그뉴도 진정시켜야 했다. 마엘른과 아르텔라가 있는 듯 없는 듯해서 다행이지, 이들까지 합세했으면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랐을 터였다.
수한은 미현과 함께 사옥을 건설할 자리를 구하러 나왔다.
“기왕이면 세라프의 전당에서 가까운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세라프의 전당 근처면 상위 공격대들이 이미 다 차지하고 있어서요.”
“그야 그렇지요.”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세라프의 전당과 바로 연결된 8차선 도로변에 공격대 사옥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항간에는 그곳에 입주하지 못하면 상위 공격대가 아니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수한은 타이탄 공격대와 백호 공격대, 해모수 공격대와 알바트로스 공격대들이 입주해 있는 거리에 눈독을 들였다.
빈 공간은 없다.
그렇다면 저들 중 1곳의 사옥을 구입할 방도가 없을까?
미현에게 그걸 묻자, 한 번 알아보겠다고 했다.
“장담은 못 해요. 지금 상위 공격대들이 다 호황이거든요. 여의도의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망해가는 공격대가 아니고서야 쉽게 내놓으려고 하지는 않겠죠.”
“그러게 말입니다.”
뜻밖에도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S급 이능력자라곤 한 명밖에 남지 않은 백호 공격대.
사태를 반전시키기 위해 소형 기계 괴수를 잡다가 사냥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3번 연속 실패.
치명타였다.
원정에 참가했던 AA급 이능력자들이 모두 죽은 게 컸다.
보험에는 다 들어져 있지만, 공격대 차원에서도 천문학적인 보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쌓아두었던 유보금을 몽땅 털어 넣어야 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미현이 그 소문을 듣자마자 수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호 공격대 사옥을 구입하자는 것.
수한으로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승낙했다.
안경미 사장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서, 금방 약속을 잡고 만났다.
경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꼴이 우습게 됐네요.”
“그런 말씀 마세요. 지금은 좀 곤궁한 처지시지만, 금방 털어내고 재기할 거라고 믿습니다.”
다시 만난 경미는 얼굴이 완전히 반쪽이 되어 있었다.
수한이 위로하자, 경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힘들 거예요. 예전에 공격대를 갓 만들었을 때보다 경쟁이 더 심하거든요. 게다가 사원들이 사직서를 내고 빠져나가고 있어요. 이능력자들의 재계약은 다 놓쳤고, 위약금 내고 계약 파기를 하는 사람도 많아요. 하긴, 저 같아도 목숨이 위험한데 우리 공격대에 더 붙어 있고 싶진 않을 것 같아요.”
백호 공격대가 침몰하고 있었다.
1번 실패했을 때 모험을 할 게 아니라 안전하게 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질 못하고 모험을 했다가 실패 했으니, 위협을 느낀 이능력자들이 대거 빠져나오는 것이다.
원정 실패는 곧 본인의 목숨과 직결되니까.
경미가 쓸쓸한 기색으로 말했다.
“저도 SS급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네요.”
“사장님은 꼭 재기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호호, 말이라도 고마워요.”
경미는 머지않아 백호 공격대를 해체할 거라고 밝혔다.
그 말에 수한은 깜짝 놀랐다.
“아니, 소규모라도 다시 시작하시지 않고요?”
“그러기에는 제 악명이 너무 높아서요. 적어도 수십 명이 제 판단 실수로 죽었어요. 제가 다시 공격대를 만든다고 해도 찾아올 사람은 없을 거예요.”
수한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공격대를 만들지 않는다면, 경미도 김주철 이사처럼 일자리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경미를 미르 공격대로 영입하면 어떨까?
S급 구현 계열 이능력자. 게다가 풍부한 공격대 경영 경험까지 있다. 최근에는 실패를 겪었지만, 패배는 병가지상사 아닌가.
수한은 조심스럽게 영입 의사를 타진했다.
“사장님, 가실 곳을 정하지 않았으면 저희 미르 공격대는 어떻습니까?”
“미르 공격대요?”
“예. SS급 3명에, S급 6명이 있는 강력한 공격대입니다. 조만간 1년 단위 원정을 떠날 생각인데요, 사장님께서 합류하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1년? 어딜 가시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요?”
“크람 행성입니다.”
수한은 크람 행성 원정 계획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경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들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미안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당분간은 좀 쉬고 싶어서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지금 생각 같아선 죽을 때까지 유유자적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고 싶긴 한데, 제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기가 힘드네요.”
수한은 가볍게 웃었다.
이능력자들은 돈을 많이 벌고도 쉽사리 은퇴하질 못했다.
외계 행성 원정을 다니면서 느끼는 긴장감과 쾌감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세계를 방문하면서 얻는 설렘, 변이체나 기계 괴수와의 사투, 그 와중에 얻는 여러 인연들……
기껏 은퇴했다가도 공격대를 기웃거리기 일쑤였다.
안경미 사장도 이제 겨우 30대.
아직 한참 혈기방장할 나이였다.
수한은 1년이 지나기 전에 경미가 미르 공격대의 문을 두드릴 거라고 확신했다.
“인사과장에게 얘기를 해놓겠습니다. 사장님 자리를 미리 만들어 놓을 테니까, 언제든 오시기만 하세요.”
“어머? 벌써 김칫국부터 마시시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매매 계약서를 작성했다.
시세보다 좀 더 얹어주기로 했다. 급하기는 경미 쪽이 더 급했지만, 백호 공격대 사옥이 위치한 자리는 매물이 없으면 돈을 줘도 못 구하는 지점이었다.
대신 사옥 안의 각종 컴퓨터나 사무용품을 모두 넘기기로 했다. 보통은 자료를 파기하곤 하는데, 백호 공격대가 지금까지 축적한 자료와 노하우를 몽땅 받는 것이다.
“사옥은 다시 지으실 건가요? 아니면 기존 건물을 쓰실 건가요?”
“드워프들도 있으니 아예 새로 지으려고 합니다. 그들의 손길이 닿으면 걸작이 하나 탄생하겠지요.”
“드워프들이 만드는 사옥이라…… 정말 꿈의 사옥이네요.”
경미가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옥은 1달 안으로 비워주기로 했다. 공격대 해체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최소 그 정도는 필요했던 것이다.
수한은 드빌과 뉴팩을 데리고 실사를 갔다.
드빌이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백호 공격대 사옥을 쳐다보았다.
[이걸 해체하고 사옥을 만들자, 이거지?]
[예. 기왕이면 옆의 타이탄 공격대 사옥이나 해모수 공격대 사옥보다 더 멋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걱정 말게. 우린 노르헤임 행성 출신이야! 지구인들이 만든 건물보다 멋진 건물을 못 만들면 도끼날에 목매달고 죽어야지!]
드워프들이 타블릿 PC를 이용하여 홀로그램을 보여주었다.
완전히 성장한 용이를 길게 늘인 듯한 형상.
디자인으로만 따지면 확 눈에 띄었다.
문제는 이대로 건설할 수 있겠냐는 것.
수한이 그걸 걱정하자, 드워프들이 큰 소리를 땅땅 쳤다.
[우리 노르헤임 출신이야! 걱정 하질 말라고! 원정에서 돌아오면 멋진 사옥이 떡 하니 서 있을 거야!]
[하하, 알겠습니다. 두 분을 믿겠습니다.]
미르 공격대가 백호 공격대 사옥을 사들인 것은 금방 언론에 알려졌다.
명암이 엇갈린 두 공격대에 대해 언론들이 자극적인 기사를 마구 쏟아냈다. 한 번은 수한과 안경미 사장의 결혼설까지 돌아서, 수한은 진지하게 고소하는 것을 고민하기까지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원정 계획을 착착 진행시켰다.
무려 1년 단위다.
지금까지 어떤 공격대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초장기 원정이었다.
주축은 10명의 전투 인원과 20명의 기존 지원 요원들.
이들은 모두 생존 기능이 있는 장비를 구비하고 있었다. 신입 지원 요원들은 그렇지 못하니 2개 조 정도로 교대하며 지구와 크람 행성을 오가게 될 것이다.
원정 시작일은 12월 1일.
케르베스 행성에서 돌아온 후 정확히 2달만이었다.
기한이 그걸 듣고 서운한 얼굴을 했다.
“나 12월 29일에 입대인데, 나 혼자 가야겠네.”
“너도 입대야?”
“응. 형이 케르베스 행성 가 있는 동안 영장 나왔어.”
“그래? 어, 그러고 보니 나 원정 갔다 오면 명한이 녀석도 나 원정 가 있는 동안 제대하겠는데?”
“그러게. 저번에 형 케르베스 행성에 가 있을 때 휴가도 나왔었어. 얼굴이 팍 삭았더라구.”
시간 참 빠르다.
명한이 영장 나왔다고 질질 짜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제대가 눈앞이라니……
입대 전에는 철이 없어서 수한의 속을 썩일 때가 많았는데, 과연 어떻게 변했을지 기대가 되었다.
시간이 확확 지나갔다.
어느새 날씨가 차가워지더니, 11월 말에는 첫눈이 내렸다.
수한은 새미와 함께 명동 거리를 돌아다녔다.
가끔 시민들이 둘을 알아보았다. 스스럼없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수첩이나 연습장을 내밀어 사인을 요청했다.
이젠 이것도 익숙했다. 수한은 미소를 지으며 일일이 사인을 해주었다.
“사장님, 곧 원정 가신다면서요?”
“미르 공격대 파이팅!”
“이번에도 대박 터지시길!”
미르 공격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좋았다.
아직 소규모인데도 성과를 내고 있어서였다. 지금도 이런데, 나중에 규모가 커지면 대한민국의 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할 게 분명했다. 더구나 가브낙 행성 건도 있고.
그렇게 시민들과 어울려 짧은 휴식을 취했다.
마침내 운명의 날이 왔다.
2017년 12월 1일.
야심차게 기획한 1년 원정.
미르 공격대가 세계 최고의 공격대로 올라설지, 아니면 한때의 돌풍으로 끝날지는 1년 원정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아침 일찍, 새미와 함께 공격대 소유의 창고로 출근했다.
저번에는 사무실에서 출발했지만, 이젠 기계용을 가져가야 하니 창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른 시간. 원정을 시작하려면 1시간은 넘게 남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모두 출근해 있었다.
[이제 다 온 것 같은데? 얼른 시작하자!]
라오그뉴가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했다. 잔뜩 흥분한 탓에 두 눈이 무지개색 빛을 뿜었다.
마엘른은 흰 천으로 카일룸을 닦고 있었다. 카일룸이 원정이 다가온 것을 알았는지 웅웅 울음을 토했다.
아르텔라는 용신 클로아에게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새로 합류한 이능력자들도 저마다 긴장감을 풀고 있었다.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기도 하고, 괜히 자기 사무실에서 골프대를 몇 번이나 휘두르기도 했다.
시간이 되었다.
수한은 원정대원을 한 곳으로 불러모았다.
총 80명.
전투 인원 10명에, 지원 요원 70명이었다.
수한은 그들을 둘러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이 느껴졌다.
“두 번째 원정입니다.”
그렇게 운을 뗐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무려 1년짜리 초장기 원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절대 무리하지 않고,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건너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시다!”
“파이팅!”
“이번에도 대박을 터뜨립시다!”
출발했다.
기계용에 SUV와 각종 보급품을 실어놓은 뒤였다. 기계용만 가져가면 됐다.
날개를 펼쳤다.
추진 장치를 가동했다.
기계용이 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국군과 행정부, 수호자 연맹에 이미 비행하겠다고 연통을 넣은 상태.
미르 공격대 문양을 선명하게 박아넣은 기계용이 서울의 하늘을 가로질렀다.
시민들이 그걸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미르 공격대다!”
“기계용이야!”
“진짜 멋있어!”
기계용이 세라프의 전당에 내려앉았다.
덩치가 워낙 커서 그냥 들어가기는 불가능했다.
만들 때 설계한 대로 십여 개로 분리시켰다. 핵심 구동부를 옮겨가며 안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는 데만 30분이 걸렸는데, 기자들이 그걸 다 촬영하고 있었다.
이동 완료.
이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세라프의 전당 밖으로 나갔다.
붉은 빛이 세라프의 전당 안을 가득 매웠다.
차원문이 열렸다.
차원과 차원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며, 기계용과 80인의 미르 원정대가 아득히 먼 세상으로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