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78화 (179/254)

< 최후의 도시 -1- >

몇 번이나 언급했듯, 크람 행성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행성 곳곳에 건설했던 세라프의 전당은 거의 파괴당했다. 원주민의 90%는 몰살당했고, 심지어 파견 왔던 세라프 종족은 몽땅 철수했다. 종족 연합의 지원군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크람 행성에서 세라프의 전당이 남아 있는 도시라고는 딱 하나에 불과했다.

굴투 시.

가히 최후의 도시라고 할 만 했다. 이곳까지 파괴당하면,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쾅! 쾅쾅!

크람 행성에 도착했는데,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발밑으로 은은한 진동이 느껴졌다.

새미가 수한을 돌아보았다.

“전투 중인 것 같은데?”

“일단 가세하자. 상황을 봐야겠어.”

용이에게는 기계용을 세라프의 전당 밖으로 꺼내라고 얘기를 해두었다.

기계용 뱃속에 실어두었던 SUV를 먼저 꺼냈다. 거기에 나눠 타고 세라프의 전당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밖에 나가자,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굴투 시는 바다를 끼고 발전한 거대한 항구 도시.

내륙에서 기계 괴수들이 10마리나 몰려왔다. 다행히 대형 기계 괴수는 없지만, 중형 기계 괴수가 2마리나 있었다.

세 종족의 연합군이 그들을 막는 중이었다.

새의 날개와 머리를 가진 쥬류크 행성인, 몸이 투명해서 내장이 들여다보이는 튀멜 행성인, 사족보행을 하는 암석 늑대 스투바키아 행성인.

수가 굉장히 많았다. 적어도 수만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기계 괴수를 당해내지 못하고 점차 밀렸다.

성벽 위에 늘어서 있던 대형 병기는 몽땅 파괴당한지 오래.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성벽이 함락 당하게 생겼다.

[어흥!]

라오그뉴가 크게 울부짖었다.

본체로 돌아가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내자, 연합군이 사태를 파악하고 고함을 질렀다.

“#$%#&%@#!”

“&^&^*$%^@!”

라오그뉴가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막 성벽 위에 발을 들여놓던 소형 기계 괴수의 다리를 후려쳤다. 오랜 전투로 방어막이 이미 소실된 상태라, 얇은 다리가 단번에 부러졌다.

[죽여주마!]

SS급 장비로 무장한 라오그뉴의 움직임은 예전보다 훨씬 더 박력이 넘쳤다.

쏟아지는 광선포를 무시하고 기계 괴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연타를 수십 번이나 먹여 금속 장갑을 으스러뜨린 후, 앞발을 집어넣어 동력핵을 꺼냈다.

“우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라오그뉴가 활약하는 동안, 수한은 인근의 높은 탑 위에 올라갔다.

기계 괴수 중 가슴 부위 금속 장갑이 좀 헐거워 보이는 녀석을 선택했다. 아바돈의 총구를 신중하게 겨눈 뒤 잠깐 심호흡을 했다.

수한의 손이 짙은 적색, 투명한 선홍색, 탁한 보라색으로 순서대로 빛났다.

파멸 속성 중첩에 천공 속성 조합.

속성 중첩에 칠채 성좌를 건 상태였다. 거기다 시계 바늘도 섬광 강타에 맞췄다. 타격 순간, 강렬한 빛의 힘이 타격 부위를 강타할 것이다.

수한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

방아쇠를 당겼다.

오묘하게 빛나는 광선이 뻗어나갔다.

세상을 관통하여 기계 괴수의 가슴에 직격했다.

천공 속성이 금속 장갑을 뚫었다. 중첩된 파멸 속성이 으르렁대며 동력핵 주변으로 스며들었다.

어둠이 태어났다.

암흑이 주위의 모든 것을 살라먹었다.

사악한 마수가 있어 게걸스럽게 기계 괴수를 잡아먹는 것만 같은 광경.

기계 괴수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렸다.

탄탄하던 금속 장갑은 이제 없다.

동력핵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피웅! 피웅!

몇 번 더 쏘았다.

이번에는 마비 속성에 중화 속성만 조합해서 쏘았다.

기계 괴수가 방어막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바돈에서 쏘아진 광선이 가볍게 방어막을 돌파하며 동력핵에 틀어박혔다.

동력핵과 기계 괴수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기계 괴수가 기동을 멈추고 침묵했다.

쿠르르르릉, 콰콰쾅!

게다가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미의 광역 공격.

수한은 이미 소형 기계 괴수 하나에게 유도 속성을 걸어놓은 뒤였다. 번개 수천 개가 그 기계 괴수를 무지막지하게 때렸다.

이런 식으로 단일 공격력을 퍼부울 때 새미의 공격력은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다. 유도 속성이 꽂힌 가슴 부위 금속 장갑이 당장 떨어져 나가고, 동력핵이 나타났다.

“하!”

마엘른이 어느새 접근해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돌진했다. 기계 괴수의 동력핵이 드러난 순간 카일룸을 찔러 넣었다.

가볍게 손목을 돌리자 동력핵이 뽑혀 나왔다.

수한이 정지시킨 기계 괴수에게는 투명한 용 한 마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아르텔라의 소환수.

입을 크게 벌리더니 동력핵을 꺼냈다. 입에 문 채 아르텔라에게 돌아가자, 아르텔라가 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떠냐!]

라오그뉴가 입을 벌리고 포효했다.

수한 일행끼리만 기계 괴수 세 마리를 정리한 것이다.

기계 괴수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들의 눈이 수한과 라오그뉴를 뚜렷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덕분에 연합군도 한숨을 돌렸다.

수한은 그들의 지휘관과 초월 의식을 연결했다.

[지구 출신, 미르 공격대의 공격대장 SS급 이능력자 이수한입니다. 잠시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마침 위험하던 참이었소. 도와주어 고맙소.]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지구 출신이라고요? 놀랍네요. 13년 전에 제가 지원 갔을 때는 이능 불모지였는데 그 사이에 이렇게 강한 분들이 태어나다니……]

대장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미르 공격대가 전개를 완료했다.

라오그뉴가 성벽 중앙에 서서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냈다. 새미는 하늘에 먹구름을 가득 띄워놓은 채 기계 괴수들을 노려보았다. 마엘른은 새미를 호위하고, 아르텔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환수만 부렸다. 그 인근에 새로 합류한 이들도 우뚝 버티고 섰다.

잠시 대치 구도가 이어졌다.

연합군은 기계 괴수들과 싸우기엔 너무 지쳤다. 기계 괴수들은 새로 등장한 미르 공격대를 경계하고 있었다. 자연히 양측 모두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서로를 보기만 했다.

균형은 세라프의 전당에서 나타난 한 존재에 의해 깨졌다.

기계용.

분리된 모든 부위가 세라프의 전당 밖으로 나온 것이다.

[다 됐어!]

[좋아! 날아올라!]

추진 장치가 일제히 빛을 뿜었다.

날개를 펼친 기계용이 단번에 하늘로 뛰어올랐다. 날개를 펼치자 굴투 시의 건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성벽 쪽으로 날아갔다.

수한도 몸을 날렸다.

기계용의 이마가 열렸다.

수한의 몸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마가 닫히고, 수한이 기계용을 직접 조종하기 시작했다.

입을 벌렸다.

청염의 마룡에게 얻은 주포가 그곳에 내장되어 있었다.

맑은 청색의 빛이 포구에서 소용돌이쳤다. 이내 태양과도 같이 맹렬하게 빛나더니, 수한의 속성 부여에 영향을 받고 오묘한 색깔로 변했다.

쭈앙!

괴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빛줄기가 중형 기계 괴수에게 날아갔다.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방어막도 전투의 여파로 몽땅 소실되어 있었다.

광선이 기계 괴수의 가슴에 박혔다.

시꺼먼 마수들이 또 태어났다. 기계 괴수의 가슴에 구멍을 뻥 뚫어놓았다.

동력핵의 빛이 구멍 사이로 새어나왔다.

주포를 발사한 직후, 수한은 초음속을 써서 번개처럼 기계 괴수에게 내리꽂혔다. 머리를 들이밀어 동력핵을 문 뒤, 힘을 주며 뽑아냈다.

그러면서 초월 의식으로 미르 원정대와 연합군 전체에게 호통을 쳤다.

[돌격!]

“우아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라오그뉴가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그밖에 고위 이능력자들도 돌진했다. 엉거주춤 물러나는 기계 괴수들을 사냥하여 동력핵을 모조리 뽑았다.

수한은 마음껏 기계용을 움직였다.

주포는 충전해야 하지만, 배와 어깨에 광선포가 내장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미친 듯이 쏘았다. 방어막을 최대한으로 가동시킨 채, 기계 괴수들을 때리고 또 때렸다.

덕분에 기계용도 좀 망가지긴 했지만 우세를 점할 수가 있었다.

기계 괴수 하나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자폭하려는 것.

수한은 즉시 기계 괴수를 껴안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 적당히 떨어진 곳에 던져 버리자, 기계 괴수가 폭발하며 땅이 한 번 크게 울렸다.

전투가 끝났다.

폭풍처럼 몰아친 전투였다. 연합군이 어느 정도 타격을 입혀 놓아서 이렇게 빨리 끝냈지, 그게 아니었으면 이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한은 기계용을 성문 앞에 세워두었다. 이마를 열고 하늘을 날아 도시로 돌아오자, 연합군 병사들이 경의에 찬 눈으로 수한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고생했어.”

“자기도. 번개 공격이 진짜 무시무시하던데? 일격에 기계 괴수 하나를 끝장낼 줄은 몰랐어.”

“에이, 오빠 유도 속성이 걸려 있어서 그런 거지. 안 그랬으면 어림도 없었어. 오히려 오빠가 대단하던데? 총 쏴서 소형을 잡고, 대포 쏴서 중형 잡았잖아.”

“하하, 연합군이 공격을 많이 해둬서 그랬던 거지. 생생한 상태에서는 어림도 없어.”

미르 공격대가 한 곳으로 모였다.

다들 잔뜩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라오그뉴가 방방 뛰었다.

[최고였어! 역시 내가 선택한 공격대다워!]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이번 원정도 초대박의 기운이 풍기네요!”

한동안 흥분에 겨워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합군에서도 몇 명이 다가왔다.

복색이 확연히 다르고, 화려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각 종족의 사령관이거나, 그에 준하는 인물인 듯했다.

그들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잠시 의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요.]

사령부는 성벽 인근에 마련되어 있었다.

높은 탑 위였다.

굴투 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중앙에는 탁자가 있고, 홀로그램 지도가 맴돌았다. 외부에서 관측하기도 쉬운 만큼, 방어막으로 겹겹이 싸놓았다.

미르 공격대 인원들이 입장하자, 앉아 있던 외계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르 공격대를 맞이했다.

[지구의 미르 공격대시라고요?]

[방금 전 활약은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정말 굉장하셨습니다!]

[새로운 영웅이 출현했네요.]

[저 기계용은 지구에서 개발한 겁니까?]

[제가 봤던 집단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 같습니다.]

외계인들이 대단하다, 훌륭하다를 연발했다.

하도 추켜세워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연합군에게서 현재 상황에 대해 들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더 나빴다.

굴투 시 근처에 몰려 있는 기계 괴수의 수가 거의 서른이 넘는다고 했다. 방금 힘을 합쳐 처리한 기계 괴수들을 제외하고도 그러했다.

[저희는 이만 철수할 생각입니다.]

쥬류크 행성 사령관이 그렇게 말을 했다.

크람 행성에 매달려 있던 시간이 벌써 1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 동안 쏟아 부은 물자도 엄청났고, 덧없이 스러진 병사들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쥬류크 행성인만이 아닌, 다른 행성인들도 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애초부터 퇴각하려다가 발목을 붙잡힌 참이었다. 다른 기계 괴수들이 공격해 오기 전에 몸을 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르 공격대 80명만 굴투 시에 남게 된다.

수한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외계인들이 수한에게 조언을 했다.

[여러분이 강한 것은 알지만, 기계 괴수가 너무 많습니다. 귀환을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당장 우리가 전멸 당하게 생겼는데요.]

외계인들은 수한의 눈치를 살폈다.

왜 그러나 했더니, 잡은 기계 괴수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전부는 아니고 일부.

수한도 그들이 기계 괴수를 잡는데 어느 정도는 기여했다고 인정했다. 미리 방어막을 다 깎아놓고, 타격을 입혀 놓아서 미르 공격대가 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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