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의 도시 -2- >
전리품의 반을 외계인들이 가져가기로 했다.
마무리는 미르 공격대가 했지만, 연합군은 목숨으로 굴투 시를 사수했다. 지금도 탑 아래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대해 보답하는 의미로, 수한은 약간의 양보를 했다.
그걸 눈치 챘는지 세 사령관도 고마워했다.
[고맙습니다. 준비가 되는 대로 떠나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떠나는 대로 세라프의 전당은 저희가 관리하겠습니다.]
[이를 말씀이십니까.]
미르 공격대의 몫은 중형 1마리, 소형 4마리였다.
그만큼을 한쪽에 쌓아 두었다. 외계인들은 남은 다섯 마리를 빠르게 분해했다. 서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협상한 뒤 분배를 마치고, 세라프의 전당을 통해 자기들 행성으로 보냈다.
그들이 움직이는 동안, 수한은 원정대를 한 곳으로 모았다.
지원과장 임시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계 괴수가 서른 마리나 된다니 큰일입니다. 기껏해야 스무 마리가 좀 넘을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여기 앉아서 방어만 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기계용의 기동력을 이용해서 각개격파 해야 합니다.”
“세라프의 전당을 지키는 게 문제네요.”
“그렇지요. 최악의 경우라도 퇴로는 확보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지구와 연결을 유지하고, 일이 생기면 바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수호자 연맹에게 미리 협조를 구해야겠습니다.”
미르 공격대가 회의를 하는 동안 외계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밤을 새서 세라프의 전당을 이용하자, 해가 뜰 무렵에는 사령부를 위시한 소수 인원만 남았다.
세라프의 전당 통제권을 넘겨받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관리인이 당부를 했다.
[제국에게 세라프의 전당을 넘겨줘서는 안 됩니다. 혹시 돌아가시게 되면, 시한폭탄이든 뭐든 써서 완벽하게 무너뜨리셔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이윽고 외계인들이 모두 크람 행성을 떠났다.
남은 것은 거지꼴을 한 크람 행성인과 미르 공격대 뿐.
아르텔라가 사령부 안으로 총총 들어왔다.
“기계 괴수들의 위치를 파악했어요. 용영을 하나씩 붙여 놓았으니까, 실시간으로 놈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요.”
그새 상당히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수한은 아르텔라를 치하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아르텔라가 타블릿 PC를 조작했다.
그러자 탁자 위에 떠올라 있던 굴투 주변 지도에 색색의 점이 팍팍 찍혔다.
검은색 3개, 붉은색 7개, 파란색 21개.
다행히 거대 기계 괴수는 없었다. 아직 내륙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었다.
수한은 그걸 보고 씩 웃었다.
“잡아먹기 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네요.”
기계 괴수들은 기껏해야 대여섯 마리가 몰려 다녔다. 미르 공격대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숫자였다.
그런데 아르텔라의 얼굴이 좋지가 않았다.
“그들은 크람 행성인들을 죽이고 있어요. 이쪽으로 도망쳐 오던 피난민도, 숨어 있던 이들도 모두 다요.”
과거 자신이 겪은 일이 생각났나 보다.
아르텔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수한은 밖을 내다보았다.
지원 요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밤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였다. 어제 전투로 쌓였던 피로는 진작 다 해소되었다.
그렇다면 전진해야겠지.
나중으로 미룰 수는 없지 않겠나. 언제 기계 괴수들이 굴투 시를 공격할지 모르니까.
세라프의 전당을 지킬 인원만 남기고 기계용에 올랐다.
수한은 폭탄선언을 했다.
“오늘 하루 동안, 굴투 시 인근의 기계 괴수를 모두 사냥하겠습니다.”
“예?”
“농담이시죠?”
대원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무려 서른 한 마리다.
그걸 하루 안에 모두 잡겠다고?
대원들이 농담하지 말라는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그러다 진심인 것을 깨닫고 얼굴이 핼쑥해졌다.
수한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고생스럽긴 할 겁니다. 하지만 기계 괴수들을 놔두면 놔둘수록 우리가 위험해집니다. 내륙에 있는 기계 괴수들이 이쪽으로 몰려올 거 아닙니까? 잘못하면 아까 외계인들처럼 지구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이곳에 묶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도 하루만에는 좀……”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목표는 그렇게 잡겠습니다. 그래야 며칠 동안 전리품을 추려서 지구로 보내지요. 케르베스 행성에서는 1마리만 지구로 보내는 것도 며칠씩 걸리지 않았습니까? 한 번 싹 쓸고 정리하고, 또 한 번 싹 쓸고 정리해야 할 겁니다.”
수한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결국 수한의 뜻대로 되었다.
기계용이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르텔라가 대형 1마리, 소형 5마리가 있다고 지목한 곳으로 비행했다.
기본적인 전략은 다를 게 없었다.
수한은 하늘 위에서 먼저 입 안의 주포를 쏘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라오그뉴도 먼저 내려서 은신해서 다가간 후 소형 기계 괴수 1마리를 끝장내놓고 시작했다.
실질적인 전력은 대형 1마리와 소형 3마리가 전부.
수한은 기계용을 이용해 직접 대형 기계 괴수와 들러붙었다. 케르베스 행성의 네 마리 대형 기계 괴수의 장점만 취해 만든 기계용이었다. 수한이 금강불괴와 성좌, 시계를 총동원하면 1대 1로도 밀리지 않았다.
“부우웅!”
곰을 닮은 대형 기계 괴수가 기계용을 후려쳤다.
수한은 황동색 빛을 뿌리며 곰의 공격을 막았다. 방어막은 으스러졌지만, 금강불괴가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금속 장갑은 잘 견뎌냈다.
연이어 입을 들이댔다. 목 부분을 힘껏 깨문 뒤, 으스러진 금속 장갑 사이로 번개를 뿌렸다.
주포만큼은 못해도, 상당히 강력한 공격이었다. 대형 기계 괴수의 전신에서 파다닥 전깃불이 튀었다.
곰의 몸에서 광선포 수십 문이 드러났다. 그것들이 일제히 빛줄기를 쏘아댔지만, 그것도 금강불괴로 견뎠다. 그러면서 본인도 광선포를 쏘았다. 속성 중첩과 조합이 합쳐진 까닭에, 명중한 부위에서 폭발이 수십 번이나 일어났다.
가끔은 가슴을 열어 강렬한 빛을 뿌리곤 했다.
대형 기계 괴수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최종 병기였다. 그것만은 주의했다. 그러자 위험할 때마다 거짓으로 가슴을 열어 위기를 회피하기에, 엎어치기로 바닥에 내리꽂아 버렸다.
대형 기계 괴수는 수한이 밀어붙이고 있다. 시간만 지나면 충분히 이길 것 같았다.
라오그뉴가 불평하면서도 몸을 날렸다.
[쟤가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라오그뉴가 앞에서 공격을 받아내니 다른 이능력자들이 대처하기 쉬웠다. 지원 요원들도 휴대용 미사일 발사기를 이용하여 온갖 특수 탄두를 날렸다.
결국 무난하게 기계 괴수들을 처리하는데 성공했다.
전투 시간은 약 1시간.
그래도 쉽지는 않았다. 모두들 땀에 흠뻑 젖었다. 특히 체력 소모가 큰 새미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자, 모두 기계용에 다시 타세요. 전리품은 나중에 챙기겠습니다!”
수한은 시계의 바늘을 체력 재생에 맞췄다. 칠채 성좌도 부여하니, 저절로 인근 사람들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기계용이 날아올랐다.
그 안에서, 수한은 체력 회복용 물약까지 나누어주었다. 새미가 앓는 소리를 내더니 조금이라도 쉬어야겠다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금방 고롱고롱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르텔라가 수한에게 말했다.
“기계 괴수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어요.”
“지도에 표시를 해주시겠습니까?”
아르텔라가 실시간으로 지도를 조작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미르 공격대가 기계 괴수들을 요격한 쪽으로 다른 기계 괴수들도 움직이고 있었다.
수한은 방금 사냥했던 대형 기계 괴수를 생각했다.
약했다. 동력핵만 보였지, 제국인이 들어 있지도 않았다.
수한은 본능적으로 기계 괴수들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제국인을 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은 두 대형 기계 괴수 중 하나에 제국인이 있을 터.
“아르텔라님. 눈을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네, 그래요.”
양해를 구한 뒤 군체 의식을 연결했다.
평소보다 더 깊이 들어갔다.
아르텔라의 시선을 통해, 그녀가 부리는 소환수들의 시선을 통해 대형 기계 괴수를 관찰했다.
호랑이를 닮은 기계 괴수와 늑대인간을 닮은 기계 괴수.
그 중 늑대 인간.
지금까지 제국인이 타고 있는 대형 기계 괴수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신체의 일부가 인간 형체라는 것.
당연하다.
제국인은 지구인과 같은 종족이고, 자신과 흡사한 형태의 기계 괴수를 움직이는 게 더 쉬웠다. 그러다 보니 상체든 팔이든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기계 괴수에 탑승해 있을 때가 많았다.
기계용을 발진시켰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늑대인간 기계 괴수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최대한 정숙하게 움직였다. 용이가 가진 고유의 은신 능력도 발현했다. 구름 사이에 숨어 움직이고 있으니, 여간해서는 탐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상당히 접근하여, 이제 조우하기까지 2분 정도 남았을 때 기계 괴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아르텔라가 경고를 발했다.
“기계 괴수들의 움직임이 빨라졌어요!”
“괜찮습니다. 이미 늦었어요. 다른 놈들이 달려와도 이미 상황이 끝난 후일 겁니다.”
수한은 눈을 번뜩였다.
초월 의식을 통해 작전을 하달했다.
늑대인간 기계 괴수는 중형 2마리와 소형 2마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을 미르 공격대가 막아주어야 했다.
과연 어떤 놈이 안에 숨어 있을까?
라오그뉴가 이능력자들을 데리고 뛰어내렸다. 이제 기계용에는 수한 혼자만 남았다.
수한은 눈을 번뜩이며 기계 괴수를 내려다보았다.
기계 괴수의 시선이 느껴졌다.
라오그뉴가 화려한 빛을 발하며 낙하하고 있지만, 거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용만 노려보고 있었다.
[크아앙!]
이능력자들을 내려준 라오그뉴가 돌진했다.
중형 기계 괴수 한 마리에게 달라붙었다. 다른 기계 괴수가 이능력자들을 공격하려 하자 그 놈에게도 돌진해서 공격했다. 종횡무진하며 네 마리 기계 괴수의 시선을 빼앗자, 이능력자들도 공격을 개시했다.
그때까지 수한은 늑대인간 기계 괴수와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수한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기계 괴수 안에 있는 제국인.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대치하고만 있는데도 상당히 강렬한 기파가 느껴졌다.
가사 상태일 텐데도 이 정도면, 어쩌면 8익급의 거물일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미르 공격대가 불리해진다.
수한이 선공을 날렸다.
기이한 색채의 광선이 늑대인간에게 날아갔다.
늑대인간의 몸이 흐려졌다. 잠깐 가속하여 옆으로 피하자, 광선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꾸앙!
늑대인간이 땅을 박찼다.
그 거대한 몸이 누가 밀기라도 한 듯 쑤욱 뛰쳐나왔다.
몸을 웅크렸다.
등 뒤에서 추진 장치가 전개되었다.
힘껏 땅을 딛고 도약하자, 추진 장치가 일제히 빛을 뿜으며 새처럼 날아올랐다.
거리가 순식간에 단축되었다.
앗 하는 순간 이미 늑대인간이 기계용의 코앞에 있었다.
시퍼렇게 빛나는 손톱이 수한의 시야를 꽉 메웠다.
냉정하게 대처했다.
기계용의 배가 이미 벌어져 있었다. 벌어진 배 사이로, 기관총들이 삐죽삐죽 모습을 드러냈다.
타타탕!
경쾌한 총소리가 울렸다.
막 기계용의 목을 따려던 늑대인간이 멈칫했다.
기계용이 움직였다.
늑대인간의 팔을 자신의 앞다리와 어깨 사이에 끼웠다. 뒷다리까지 동원해 늑대인간을 강하게 결박했다.
그 상태 그대로, 날개를 활짝 펴고 일직선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늑대인간이 몸부림을 쳤다.
지금도 배의 기관총으로 마비 속성을 먹여주고 있다. 그런데 늑대인간의 몸에서 청색 광채가 뿜어지며 거기에 대항했다. 그 때문에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마비가 풀렸다.
수한이 아직 S급 이능력자가 되지 못했을 때를 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