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의 도시 -3- >
상관없다. 마비 속성을 중첩시킨 총알은 많으니까.
땅에 떨어지기 직전 결박을 풀었다. 힘껏 다리를 내쳐 늑대인간을 패대기쳤다.
꽈앙!
낙하하던 속도에 육중한 무게까지 더해졌다.
땅이 우르릉 진동을 일으켰다. 흙더미가 폭발하듯 솟구치며 시야를 가렸다.
기계용이 추진 장치를 역으로 분사했다.
몸을 급격히 기울이며 날개를 휘저었다. 궤도가 자연스럽게 꺾이더니, 지상을 스치듯 비행하여 늑대인간에게서 멀어졌다.
늑대인간이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계용이 입을 벌리고 주포를 조준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맹렬한 빛줄기가 터져 나왔다.
상공에서 낙하한 충격이 잔존해 있는 시점.
이번에는 피하지 못했다.
대신 팔을 교차하여 막았다. 시꺼먼 방어막이 겹겹이 쳐지더니, 그것들을 그것들까진 돌파했는데 두 팔을 뚫지 못하고 막혔다.
역시 쉽지 않다.
기계용이 공세를 퍼부었다.
미사일을 뿌리고, 광선포를 꺼내 폭격하듯 쏘아붙였다. 하나하나에 속성 중첩과 조합을 몽땅 쓴 터라, 늑대인간은 감히 경시하질 못했다.
일일이 쳐내거나 피했다. 검은 방어막으로 막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기계용을 향해 다가왔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가속하며 돌진했다.
기계용은 추진 장치를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칠채 성좌와 초음속이 보조하니 늑대인간에 비교해서도 그렇게 느리지 않았다. 속성 부여로 마비시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라오그뉴와 싸울 때와 비슷한 형국이었다.
그때도 라오그뉴는 수한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수한은 어떻게든 물러나면서 유효한 타격을 자꾸 꽂아 넣었고.
똑같이 했다.
기계용의 무게 때문에 늑대인간을 따돌리는 것은 어려웠다. 수한은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기계용을 조종했다. 몇 번이나 위기를 넘겨가며 늑대인간을 때리고 또 때렸다.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다른 이들을 보았는데,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소형 기계 괴수 중 하나는 쓰러뜨린 상태.
라오그뉴가 두 마리의 중형 기계 괴수와 싸우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몇 군데 부상을 입어서 피를 줄줄 흘렸다.
다섯 개의 SS급 장비가 아니었으면, 그리고 이능력자들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진작 부활 능력을 썼어야 했을 것이다.
아르텔라가 초조한 듯 초월 의식을 통해 말했다.
[기계 괴수들이 접근하고 있어요. 잠시 후면 도착할 거예요.]
승부수를 던져야겠다.
수한은 냉정한 눈으로 늑대인간을 살폈다.
방어막은 모두 소멸된 상태.
가슴 장갑은 꽤 흔들렸다. 수한이 직접 유도 속성을 걸고 원거리 공격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수한은 원정대와 기계 괴수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늑대인간을 유인했다.
변경된 작전이 원정대의 머리에 주입되었다.
기계용이 땅을 스치듯 날며 라오그뉴에게 돌진했다.
꼭 충돌할 것만 같은 순간, 라오그뉴가 재주를 넘으며 기계용의 머리를 타고 넘었다.
기계용이 중형 기계 괴수를 들이받았다.
대형 기계 괴수를 기반으로 만든 기계용.
무게가 훨씬 더 무거웠다. 중형 기계 괴수가 금세 나동그라졌다.
기계용으로 중형 기계 괴수를 깔아뭉갰다.
다른 기계 괴수들이 돌진했지만 방어막과 금강불괴를 믿고 견뎠다. 입을 들이대어 가슴 부위의 금속 장갑을 뜯어냈다. 희끗한 그림자가 비치더니, 마엘른이 달려와 카일룸을 꽂았다.
한편, 라오그뉴가 늑대인간의 가슴에 마구 연타를 먹였다.
늑대인간이 팔을 휘둘렀지만, 라오그뉴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몸을 축소시키며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갔다. 등 위로 뛰어올라 크기를 키운 후, 미친 듯이 늑대인간을 때렸다.
그 사이 수한은 다른 이능력자들과 함께 남은 기계 괴수를 차례로 처리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크기와 무게는 그것만으로도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
기계 괴수들을 그냥 깔아뭉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면 동료들이 다가와 끝장을 냈다. 그 과정에서 기계용이 좀 상한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나중에 수리하면 될 일이었다.
[끄아아악!]
대신 라오그뉴에게 문제가 생겼다.
잽싸게 움직이며 늑대인간의 공격을 피하다가, 늑대인간이 뻗은 팔의 손톱 끝에 걸려 뒷다리 하나가 잘린 것이다.
라오그뉴는 고통을 참으면서 늑대인간에게 매달렸다. 복부를 강타당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어쨌든 살아 있었다.
수한이 기계용을 조종하여 늑대인간을 덮친 것은 바로 그때.
간발의 차이였다.
라오그뉴가 낑낑 대며 겨우 벗어났다. 한쪽 구석에 숨어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했다.
그 사이, 수한은 이능력자들과 힘을 합쳐 늑대인간 기계 괴수를 공략했다.
피해를 입는 것은 감수했다.
속전속결을 했다.
늑대인간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서 기계용 곳곳에 상처가 났다. 그래도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기계용의 앞발이 늑대인간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동력핵을 뽑아냈다.
그 뒤에 빈 공간이 보였다.
기요테 행성에서 봤던 것과 같았다.
제국인으로 추정되는 시체 하나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절대자의 눈으로 살펴보니 심장은 진작 멎은 상태였다.
수한은 그 안으로 총알 한 발을 발사했다.
총알이 맹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동시에 화염이 공간 안을 휩쓸었다. 시체가 폭발과 화염에 휩쓸려 가루가 되었다.
글자들이 날아올랐다.
레벨 업 도우미.
수한은 기계용의 머리 안에서 왼손을 내밀었다. 글자들이 거기 이끌려 수한의 왼쪽 손목에 흡수되었다.
예전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모든 능력치가 오르고, 초능 점수가 생겼다. 계급은 위관에서 변화가 없었다.
[모두 타세요!]
부상을 입은 라오그뉴를 포함하여, 대원들 모두를 기계용에 태웠다.
최대한 빠르게 이륙했다.
그 자리를 떠나자마자 기계 괴수들이 모여들었다. 전장을 확인하고, 주위를 탐색하지만 기계용은 이미 멀리 떠난 상태였다.
“모두 괜찮아요? 라오그뉴님, 상처는 좀 어떠세요?”
[좀 쉬어야겠다. 그러면 괜찮아질 거다.]
라오그뉴가 상처를 문질렀다.
잘린 다리를 재생하는 중이었다. 수한이 보기에도 시간이 좀 필요했다. 아직 재생이 덜 끝난 것으로 봐선, 늑대인간에 타고 있던 제국인이 상처 훼손 같은 이능이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이능력자들의 상태도 살폈다.
몇 명은 탈진 직전이었다. 기계용도 수리를 해야 하니, 오늘 안에 다 끝내는 것은 물 건너 간 것이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아르텔라님, 기계 괴수들을 계속 감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도시 근처로 날아가 휴식을 취했다.
기계 괴수들은 별 움직임이 없었다. 한동안 늑대인간 기계 괴수가 쓰러진 자리를 서성이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수한은 기계 괴수들이 함께 모여 공격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처음 수한이 왔을 때처럼 대여섯씩 짝을 지어 피난민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정 규모 이상으로는 모이지 않게 제한이라도 걸려 있는 걸까?
원정대에겐 잘 된 일.
당장 사냥에 나섰다.
대형 기계 괴수가 있는 무리부터 사냥을 했다.
방법은 동일했다.
라오그뉴가 대형 기계 괴수를 붙잡고 있는 사이, 수한이 기계용을 이용해 다른 기계 괴수들을 죽였다. 그 다음 라오그뉴와 합류하여 대형 기계 괴수를 끝장냈다.
3마리의 대형 기계 괴수를 사냥한 다음부터는 쉬웠다.
떠올랐던 해가 지기 전, 굴투 시 인근의 기계 괴수를 모두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목표했던 하루 안에는 못 잡았어도 이틀 만에 31 마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새미가 헥헥대며 주저앉았다.
“으아아, 더 이상은 못 해!”
“휴, 수고했어.”
“이것들을 이틀 만에 다 잡을 줄은 몰랐어.”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으으으, 죽겠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졌다.
체면 불구하고 다들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활개를 펴고 누운 채, 끙끙거렸다.
수한은 흐뭇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사냥했던 기계 괴수 네 마리의 시체가 보였다. 손상된 곳은 거의 없이, 동력핵을 깔끔하게 도려낸 터라 높은 가격을 받을 것 같았다.
그냥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언제 새로운 기계 괴수들이 진군해 올지 몰랐다. 수한은 기계용을 움직여 늑대인간 기계 괴수를 잡았던 곳으로 이동했다.
“아, 다들 쉬고 계세요. 어차피 이제부턴 제가 용이랑 작업하면 됩니다.”
“사장님은 쌩쌩하시네요?”
“전 체력 빼면 시체니까요.”
아직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은 까닭에, 기계 괴수의 시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들을 모아 하나로 변형시켰다.
일렬로 쭉 이었더니, 멀리서 보기엔 거대한 지네나 다리가 수십 개 달린 동양의 용처럼 변했다.
기계용을 끌고 굴투 시로 이동했다.
비행해서 갔으면 1시간이면 족했을 거리인데, 이 큰 몸을 이끌고 가려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해가 다 질 때쯤 굴투 시에 도착했다.
굴투 시를 지키던 지원 요원들이 마중을 나왔다.
시규가 활짝 웃으며 수한을 맞이했다.
“이게 대체 몇 마리입니까? 어마어마하네요! 정말로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용이의 역할이 컸죠. 세라프의 전당 옆 공터에 기계 괴수들을 놔둘 테니까, 임 과장님이 책임지고 지구로 보내 주세요.”
“예, 사장님. 걱정 마십시오. 부품 하나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수한은 기계용에서 기계 괴수들을 차곡차곡 분리했다. 세라프의 전당으로 들어가기 쉽게 적당한 크기로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원 요원들이 SUV를 이용해 그것들을 옮겼다.
이능력자들은 좀 쉬겠다고 사령부 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직 수한은 쉴 수가 없었다. 도시 근처에 널브러진 기계 괴수 시체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기계용을 비행 형태로 변형시켜 또 도시 밖으로 나갔다. 기계 괴수들과 합체 시켜 도시까지 끌고 왔다. 그것을 삼일 밤낮을 반복했더니, 31마리 전부를 세라프의 전당 옆 공터에 쌓아놓을 수 있었다.
지원 요원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걸 언제 다 지구로 옮기죠?”
“아주 산이네요, 산.”
“저번에 케르베스 행성에서 잡았던 게 이 정도 아니었어요?”
“그랬죠.”
“햐, 두 달 동안 잡았던 걸 이틀 만에 끝냈네요.”
“내륙으로 들어가면 기계 괴수들이 더 많을 겁니다. 적어도 수백 개체 이상은 있을 거예요. 그것들을 다 잡으면 이번 원정으로 1천조 매출도 가능합니다.”
“1천조! 상상이 안 되네요.”
저번 원정에서 지원 요원들도 배당금을 40억을 넘게 받았다. 이번에는 S급 이능력자들이 좀 늘었다고 하지만, 버는 돈의 단위가 뛴 만큼 이번에도 기대해 봄직 했다.
지원 요원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작업을 했다.
밤낮 없이 작업해야 하겠지만 그들의 얼굴은 매우 밝았다.
수한은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내륙의 기계 괴수들이 도시까지 진군해 올 때까지는 마음 편히 잘 생각이었는데, 결론부터 얘기해서 수한의 생각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숙면을 취하고 있던 수한의 의식이, 뭔가에 이끌리는 것처럼 천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비몽사몽 중인데, 수한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
정확히 말하면 목소리가 들린 게 아니었다.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수한의 감각을 자극한 거였다.
공포와 절망, 그리고 비탄.
지금은 잊었으나, 한때는 너무나 익숙했던 감정이었다.
하루 24시간을 항상 그 감정에 휩싸여 살았더랬지. 칼날처럼 가슴에 박힌 채, 도저히 들어낼 수가 없었다.
그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높은 탑 위에서 잠든 수한이 느낄 정도로 강렬하게, 하늘을 찌를 듯 용솟음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수한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