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84화 (185/254)

< 마지막 초능 -1- >

굴투 시에서 거대 기계 괴수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대륙을 횡단해야 한다.

한때는 크람 행성에서 가장 번성하던 곳.

오턍.

지금은 폐허밖에 없었다.

굴투 시 인근보다 더 심각했다. 절대자의 눈으로 살펴보았는데, 생명 반응이 아예 없었다. 기껏해야 식물 종류와 작은 크기의 동물들만 존재했다.

수한은 까마득한 상공을 날며 오턍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이곳에 있었다.

워낙 큰 덩치를 자랑하는 터라 금방 눈에 띄었다.

언뜻 보면 게처럼 생겼다. 그런데 머리가 셋이나 되고, 집게발은 여섯 개, 그냥 발도 열두 개나 되었다. 덕분에 360도 전 방향의 공격을 모두 대처할 수 있었다.

기계용이 공중에 정지했다.

여기까지 날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수한의 속성 부여가 얼마나 통할지 보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인 중화 탄두는 10개를 써야 1개 정도가 유효하다.

그렇다면 중화 속성을 중첩해서 쏘면 어떨까?

거기에 더하여 관통이나 천공 속성을 조합한다면?

기계 괴수가 기계용의 접근을 알아차렸다. 세 개의 머리를 들더니, 푸른빛을 내뿜어 하늘을 샅샅이 훑었다.

머리 사이에서 삐죽 커다란 주포가 드러났다.

주포가 기계용을 겨누었다.

수한은 긴장하여 그 주포를 노려보았다.

방심할 순 없었다.

거대 기계 괴수가 뿜어내는 출력은 무시무시했다. 저 주포에 정통으로 맞는다면, 방어막에 힘을 집중해봤자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가볍게 광선포를 날렸다.

힘 자체는 약했다. 하지만 중화 속성이 중첩되고, 천공 속성까지 조합되어 있었다.

광선이 쭈욱 날아가 거대 기계 괴수를 직격했다.

방어막이 뚫렸다.

더구나 맞은 곳 주위의 방어막이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중화 속성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수한은 수십 번이나 광선포를 연사했다.

성공 확률은 대략 7할 정도.

방어막이 강하긴 강했다. 아무리 속성을 중첩시켰어도 3할은 막아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모든 기계 괴수가 그러질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했다.

“뿌우웁!”

기계 괴수가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충전이 끝났는지 주포를 발사했다.

수한이 피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힘이 기계용을 얽어맸다.

기계 괴수 안에 타고 있을 제국인.

그 자가 능력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가사 상태라고 해도 이능을 아예 못 쓰지는 않으니까.

그냥 당하지 않았다. 이미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계용의 신체에서 황동색 빛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S급 강체 계열 초능, 금강불괴.

비단 물리적인 방어력만이 아니라, 이능 공격에도 방어력을 제공하는 능력이었다.

사방에 벼락불을 쏘자, 속박하던 힘이 단박에 깨졌다.

그 순간 초음속을 극도로 발휘했다.

기계용이 하늘 위로 쭉 떠올랐다.

시퍼런 광선 다발이 기계용이 있던 자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조금만 늦었어도 주포에 얻어맞았을 것이다.

수한은 기계용을 선회시키며 기계 괴수를 내려다보았다.

기계 괴수가 각종 원거리 무기를 꺼내는 게 보였다.

아직은 대적할 때가 아니다.

멀찍이서 여러 가지 실험만 좀 해보았다.

중화 속성만 부여해서 쏴보고, 천공 속성을 중첩해서도 쏴보고……

그냥 쏴서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일반적인 중화 탄두와 비슷하게, 10발을 쏘면 1발만 효과를 발휘했다. 천공 속성이나 관통 속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중첩시켜서 쏘면 중화 속성이 통한다는 얘기니까.

이것으로 만족하고, 기계용의 머리를 돌렸다.

12시간을 날아 굴투 시에 돌아왔다. 왕복으로 따지면 24시간이 걸린 것이다.

새미가 안도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빠 다친 데는 없지?”

“그럼. 하늘에서 광선포만 쏘고 도망쳤는 걸.”

“기계용이 하늘을 날지 못했으면 절대 안 보냈을 거야.”

수한은 중화 속성이 충분히 통한다는 사실을 원정대에게 알렸다.

성공 확률 7할이면 충분했다.

문제는 원정대의 전력이 거대 기계 괴수를 사냥할 정도겠느냐는 거였다.

[충분하지 않을까?]

라오그뉴가 꼬리를 살랑거렸다.

[대장 너 혼자서도 대형 기계 괴수를 때려잡잖아. 내가 도와주고 다른 대원들도 가세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반면 다른 대원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김주철 이사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무모한 것 아닐까요? 지금 우리 공격대의 구성을 보면 사장님과 부사장님, 라오그뉴 이사님이 핵심인데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SS급이 한두 명만 더 있어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니면 S급 이능력자가 최소 10명은 더 있어야 승리를 장담할 수가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방어막은 그나마 중화할 수 있으니 다행인데, 놈의 장비를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시선을 끌어줄 사람이 더 필요해요.”

마엘른은 언제나 그렇듯 중립 자세를 취했고, 아르텔라도 말을 아꼈다. 새미도 좀 위험하지 않겠냐는 태도를 보였다.

수한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사냥 찬성에 1, 반대가 6, 보휴가 3인 셈이다.

라오그뉴가 답답하다는 듯 바닥을 꼬리로 팡팡 쳤다.

[아 왜 그리 다들 이렇게 겁이 많아? 모험을 할 줄도 알아야지! 답답해 죽겠네!]

지구인 이사들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오그뉴가 모험, 그 자체를 위해 합류한 반면 지구인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합류한 거니까.

아무리 돈이 좋아도, 목숨보다는 덜 중요하지 않겠나.

수한은 머리를 굴려 보았다.

지금 당장 원정대의 전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두 가지가 있겠다.

하나는 지금까지 얻은 전리품을 가지고 여기 있는 이능력자들의 능력을 상승시키는 것.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지원을 받는 것.

“원정대 전력을 보강해야겠네요.”

수한이 그 말을 하자, 마크가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구로 돌아가서 더 확충해 오실 겁니까?”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차라리 케르베스 행성에 파병을 요청하는 게 낫지요.”

“아, 케르베스 행성!”

듣고 있던 이들이 탄성을 질렀다.

케르베스 행성에 있는 미르 동맹. 그들은 적어도 S급 이능력자 십여 명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 절반만 동원해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수한이 구상하는 것은 또 있었다.

레벨 업 도우미의 마지막 초능. 그것의 개발이 완료되는 게 코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애초 생각대로 거력 계열 초능을 고른 후, S급까지 승급시키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을까?

특히 한민종 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거신 강림을 쓴다면?

거기까지 가면 해볼 만 할 것이다.

“혹시 여기 계신 분 중 SS급 승급에 도전하실 분 계십니까?”

한 번 그런 질문을 던졌는데, 대답하는 인물은 없었다.

하긴 SS급은 S급과는 또 격이 달랐다.

얼마 전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SS급 승급에 도전하다가 죽은 사람도 나왔다. 그 뒤로는 S급은 몰라도 SS급 승급에는 거의 도전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천상 수한이 구상한 대로 실행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편지를 썼다.

케르베스 행성의 미르 동맹에게 보내는 파병 요청서.

필요한 것은 단지 S급 이능력자였다. 거대 기계 괴수의 전리품을 일부 나눠줘야 하겠지만, 핵심 부품은 미르 공격대가 가져갈 테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한은 잠시 지구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갑자기 지구는 왜?”

새미가 묻자, 수한은 여상(如常)하게 말했다.

“거력 계열 능력 각성에 도전해 보려고. 지금 내 강체 계열 능력이 S급인데, 거력 계열까지 S급 찍으면 도움이 되지 않겠어?”

“아, 옛날에 한민종 사장님처럼?”

“응.”

“대단하시네요. 8번째 이능에 도전이라니…… 전 다섯 개 찍고 더 이상은 이능 적성이 0%로 나와서 포기했습니다만.”

마크가 놀랍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굳이 지구까지 갈 필요는 없지 않아? 힘의 결정 추출 장치도 있는데, S급 힘의 결정만 지구에서 보내달라고 하면 되잖아. 다른 것들은 여기서 구할 수 있으니까.”

새미가 예리한 지적을 했다.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한민종 사장님 보고 오려고 그러는 거야.”

“아, 거신 강림 때문에?”

“응. 어떻게 해야 두 개의 S급 능력을 조합하는지 물어보려고. 그냥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는 그런 위력이 안 나오잖아.”

“그건 그렇다.”

케르베스 행성에는 새미가 다녀오기로 했다.

원래는 S급 이능력자 중에 하나를 보내려고 했는데, 그래도 안면 있는 사람이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새미가 할리온과 기리나의 아기를 보고 싶다고 하기도 했고.

남은 이들은 굴투 시를 지켰다. 문제가 될 변이체와 기계 괴수는 싹 쓸어놓았지만, 앞날은 모르는 법이니까.

수한이 지구로 귀환했을 때, 8번째 초능의 개발도 끝났다.

백기수 이사가 수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무난했죠. 지금부터가 진짭니다. 거대 기계 괴수를 잡아야 크람 행성을 온전히 수복할 수 있어요.”

“크람 행성을 수복하면 그 가치가 엄청날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고생하고 있죠. 힘의 결정은 다 준비해 놓으셨죠?”

“예. E급부터 S급까지 준비가 끝났습니다.”

사옥은 아직 한참 건설 중이었다.

그래도 많이 진전되었다.

기반 다지는 것은 끝이 났고, 기본 골조가 높이 올라가 있었다. 아직 외형은 추측하기 힘들지만, 다른 공격대 사옥에 서 있는 것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기수도 옆에서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몇 달만 지나면 완공될 겁니다. 드워프들이 도와주니까 작업 진척도가 확연히 빠른 것 같습니다.”

“괜히 기술의 드워프라고 부르는 게 아니지요. 참, 전리품은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저번에 케르베스 행성 건으로 인연을 맺은 기업들과 거래했습니다. 아주 대호황입니다. 항간에는 인플레이션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에게도 자문을 구해보세요. 지구에서 소화가 다 안 될 것 같으면 헤븐 행성에 가져다 팔아도 됩니다. 전 차원 경매장을 언제든 출입할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갔다.

수한의 집 지하에는 작은 밀실이 하나 있었다. 드워프들이 혹시 모른다며 개조를 해놓아서,  밀실로 써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수한은 흡수 보조제 한 세트와 힘의 결정 7개를 챙기고 지하실로 들어갔다.

전부 다 거력 계열.

우선 레벨 업 도우미부터 호출했다.

12가지 항목 중 거인의 힘을 선택했다.

그러자 몇 가지 항목이 우스스 떠올랐다. 그 중 짧은 순간 힘을 크게 증가시키는 근력 강화를 골랐다.

힘의 결정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흡수, 흡수, 흡수.

그에 따라 초능이 거듭해서 진화했다.

근력 집중, 근력 폭발, 거력, 천장(天將), 천번지복.

A급 힘의 결정을 흡수할 때까진 무난했는데, AA급을 흡수하자 상당한 고통이 몰려왔다.

S급은 흡수 보조제를 사용해서 편했다. 그래도 몇 시간 동안 힘의 결정을 연달아서 흡수했더니 전신의 힘이 쭉 빠져나갔다.

“흐으으.”

수한은 뜻 모를 신음을 흘렸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쏟아놓은 오물 냄새로 코가 썩을 것 같았다. 사원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정화석을 작동시키자, 온갖 오물이 분해되며 곧 공기가 청량해졌다.

수한은 핼쑥한 얼굴로 지하실을 나섰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방에서 휴식을 취한 후,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한민종 사장과 약속을 잡아달라고 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스마트폰 너머에서, 비서가 공손이 대답했다.

약속은 금방 잡혔다.

원정 시작 후 두 달이 조금 넘었는데, 그 동안 미르 공격대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규모만 작다뿐이지, 이미 타이탄 공격대 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만약 크람 행성 원정을 성공적으로 끝낸다면, 그랜드 공격대와 천룡 공격대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다.

둘은 여의도의 한 한식집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민종이 수한을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 사장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공격대를 만들고 1년도 안 지났는데, 이 정도 성과를 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운이 좋았지요.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저한테 물어보실 게 있다고요?”

“예. 자, 그 전에 한 잔 쭉 들이키시지요.”

수한은 고급 소주를 민종에게 따라주었다.

민종은 소주를 받더니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수한이 슬슬 본론을 꺼냈다.

“좀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 사장님의 거신 강림에 대해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거신 강림을요?”

“예. 실은 제가 이번에 S급 거력 계열 능력을 각성해서요. 원래 있던 강체 계열 능력까지 해서, 기계 괴수를 잡을 때 거신 강림을 쓰려고 합니다.”

“이 사장님이 근접전을 하시게요?”

“기계용을 탄 상태에서 하려고 합니다. 라오그뉴님도 계시지만,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니까요.”

수한은 옆에 앉혀 놓은 용이를 쓰다듬었다.

민종이 그걸 보고 탄성을 질렀다.

“아, 기계용이 있네요!”

그러더니 새삼스러운 눈으로 수한을 쳐다보았다.

거신 강림은 민종을 대표하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로 대한민국 이능력자 중 최고수라는 소리를 들었다.

민종이 자기 아래턱을 슬쩍 쓰다듬었다.

“거신 강림은 제 본전입니다. 그걸 털어가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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