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85화 (186/254)

< 마지막 초능 -2- >

그냥 공짜로 얻을 생각은 없었다. 수한은 대가를 제시했다.

“거신 강림에 대해 알려주신다면, 저희 공격대에서 생산하는 두 번째 거력 계열 SS급 힘의 결정을 타이탄 공격대에 증여하겠습니다. 그리고 차후,  타이탄 공격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우리 공격대가 생산하는 SS급 힘의 결정을 타이탄 공격대에 시세대로 판매하겠습니다. 단, 이렇게 판 힘의 결정을 되팔면 안 된

다는 조건입니다.”

“호오……”

민종이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을 지었다.

SS급 힘의 결정은 대형 기계 괴수에게서 나온다. 가끔 중형 기계 괴수의 동력핵을 추출하면 나오기도 했지만, 그 확률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타이탄 공격대도 대형 기계 괴수를 가끔 잡곤 하지만, 그러려면 심혈을 기울여 계획을 짜서 원정을 가야 했다. 1달에 1마리를 잡아도 많이 잡는 거였다. 따라서 타이탄 공격대가 SS급 힘의 결정을 얻는 속도는 미르 공격대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재 민종의 이능은 강체 계열이 SS급, 거력 계열이 S급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거신 강림을 쓰려면 강체 계열을 일부러 좀 약하게 써야 했다. 아니면 거신 강림 없이 이능만 발휘하던가.

SS급 거력 계열 힘의 결정이 시급한데, 그 점을 수한이 제대로 찌른 것이다.

민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가르쳐 드리지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요.”

생각보다 간단했다.

두 개의 S급 이능 장비를 제작하라고 했다.

제작 과정에 참가하여 자신의 이능을 장비에 부여한다. 그 후 두 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이능을 발현한다. 그러면 장비와 이능이 어우러지게 된다.

수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보통 강한 쪽이 이능이 약한 쪽을 무시해버리지 않습니까? 탈진한 상태를 대비한 게 아니고서야, 자신의 이능과 똑같은 이능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만.”

“바로 그게 핵심입니다.”

민종이 보충 설명을 했다.

그냥 이능을 발현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장비에서 발현되는 이능도 아울러야 했다. 그것도 동류의 이능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이능으로 자극하라고 했다.

수한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연습만 하면요. 쉽진 않습니다. 저도 몇 달이나 걸려서 개발했습니다. 실전에서 쓰는 데까진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요.”

들어보니 매우 섬세한 조절이 필요했다.

가장 관건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네 개의 이능이 가진 힘을 꼬아놓는 것.

강체-거력-강체-거력 순으로 배치하고, 마지막 거력 계열의 힘이 강체 계열의 힘과 맞닿아야 했다. 그렇게 두면 동류의 이능과 합쳐지려고 힘이 커지는데, 그러다 보면 가속되고 증폭되면서 하나의 기술로 발현되는 것이다.

거신 강림.

그 위력만큼이나 익히는 것도 까다로웠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어렵지요. 게다가 등급이 올라가면 다시 익혀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장 되었지요. 저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생각해내서 익히게 되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별 말씀을요. SS급으로 올라서는데 실패해서 생각해낸 궁여지책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준비 기간이 길어지게 생겼다.

장비 제작이야 어렵지 않다. 공격대에 머물고 있는 드워프들에게 맡기면 알아서 할 것이다. 문제는 거신 강림을 익히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냐는 것.

민종이 수한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거대 기계 괴수를 잡으시려나 봅니다.”

“예. 크람 행성을 수복하려는데, 거점 1개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요. 헤븐 행성에 편지를 보냈는데, 거대 기계 괴수를 잡기 전에는 도와주지 않겠답니다.”

“흐음……”

민종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수한을 불렀다.

“이 사장님.”

“예?”

“혹시, 저희 타이탄 공격대가 크람 행성 원정에 동참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 원정에요?”

“예.”

민종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수익 배분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거대 기계 괴수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타이탄 공격대가 지금처럼 순조롭게 발전하더라도, 거대 기계 괴수를 잡는 것은 요원한 일이니까요.”

하긴 그건 그랜드 공격대나 천룡 공격대도 감히 엄두를 못 내는 일이었다.

둘이 합동 원정을 간다면 모를까, 그럴 가능성도 없었고.

“SS급 이능력자 1명과 S급 이능력자 2명이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저희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테고요.”

수한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쁜 조건은 아니다.

물론 공짜로 부려먹기는 좀 그렇다. 전리품을 어느 정도는 나눠줘야 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타이탄 공격대가 미르 공격대에게 얹혀가는 모양새니 비율을 줄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타이탄 공격대가 완전히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비록 금전적인 부분에선 기회비용이 발생하겠지만, 공격대의 이력에 한 줄을 추가할 수 있으니까.

미르 공격대와 함께 크람 행성 원정에 참가하여 거대 기계 괴수를 잡았다고.

수한은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그럼 4분만 참가하시는 겁니까?”

“괜찮으시다면 지원부와 정보부에서 참관 형식으로 몇 명을 데려가고 싶습니다.”

“좋지요. 전리품도 적당하게 나눠드리겠습니다.”

“아, 그럴 필요까지는……”

“아닙니다. 타이탄 공격대도 분명 기여하는 게 있는데 입을 씻을 수는 없지요.”

이런 식으로 한 수 배우는 식으로 원정에 참여하면 대개 배분을 제대로 못 받기 일쑤였다. 오히려 자기들이 돈을 내고 참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수한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봤다.

돈은 썩어나니까.

오히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다른 원정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나.

예를 들자면 가브낙 행성에서 루비 아이를 잡을 때라거나.

거기다가 지금까지 민종에게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은 점도 있고.

이야기를 끝내고 헤어졌다.

당장 드빌과 뉴팩에게 쳐들어갔다.

거신 강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드워프들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 신기한 기술이군. 하긴 나도 몇 번 들어본 것 같아.]

[별로 효율적이진 않겠는데? 차라리 그 시간에 힘의 결정으로 승급을 시도하는 게 낫겠어.]

[그런데 거력 계열이랑 강체 계열만 합쳐보려고? 자네 이능이 여덟 개나 된다며. 그럼 그걸 각자 합쳐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그러려면 이능 장비가 8개나 필요해서요.]

[그건 우리가 해결하지. 8개 같은 1개의 장비를 만들면 되는 거니까.]

[가능하겠습니까?]

[당연하지! 우리가 누구야? 노르헤임의 드워프들이라고!]

드워프들이 호언장담을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수한도 더 바랄 게 없다. 잘 부탁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다.

물건이 완성되는 대로 크람 행성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타이탄 공격대의 이능력자들은 이틀 후 합류할 예정이었다.

여기까지 일이 진행되자, 수한은 S급 이능력자들을 더 데려갈까 생각을 해보았다.

마침 친분이 있는 이능력자들이 있지 않나.

알바트로스 공격대의 다섯 임원진.

지금은 모두 S급 이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들의 도움을 얻는다면 거대 기계 괴수 공략이 더 쉬워질 것이다.

슬쩍 운을 떼보았다.

그러자 알바트로스에서 덥석 반응을 보였다.

참관을 허락해준다면, 다섯 임원진이 무료 봉사라고 해도 원정에 참가할 용의가 있다는 것.

그래도 공짜로 부려먹을 수는 없지.

적절한 수준에서 전리품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며칠이 지났다.

드워프들이 검은색 두툼한 장갑 하나를 가져왔다.

무심코 받아들었는데, 금속성의 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차갑지는 않고 묘하게 따뜻한 것이, 금속 자체가 뭔가 힘을 담고 있는 듯했다.

드워프들이 작은 상자를 같이 주었다.

상자를 열자, 여덟 개의 보석이 드러났다.

각기 노란색, 갈색, 붉은색, 푸른색, 녹색, 보라색, 흰색, 검은색을 띤 보석들.

드워프들이 보석들을 가리켰다.

[여기에 자네의 힘을 주입하면 되네. 빨리 만드느라 좀 조악하긴 하지만, 계속 충전해가면서 쓰면 서너 번 정도는 쓸 수 있을 거야.]

[우리가 만들어놓고도 좀 부끄러운 물건이어서,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드는 중이라네. 아마 몇 달은 지나야 완성될 테니까, 일단은 잊어버리고 있게나.]

[감사합니다.]

수한은 장갑을 자세히 살폈다.

손등 부분에, 양쪽에 보석이 들어갈 구멍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보석에 힘을 주입했다.

용이를 처음 깨울 때와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 수한의 8가지 초능 중 1개씩만 선택해서 주입해야 한다는 것 정도.

모든 보석에 힘을 주입했다.

장갑에 하나하나 꽂아 넣자, 그때마다 장갑에서 위이잉 하는 소리가 울렸다.

보석이 8개이니, 각각 다른 초능의 힘을 집어넣으면 될 것이다. 나중에는 거신 강림 말고도 다른 기술도 개발할 수가 있겠지.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수한은 드워프들에게 사의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께는 항상 받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다 얻는 게 있으니까 하는 일이지. 이왕 지구에 온 김에 총알이나 만들어 줘.]

[하하, 알겠습니다.]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장갑을 끼고 세라프의 전당으로 향했다.

두 공격대의 인물들이 수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서로가 이번 원정에 참가한다는 것은 들었다. 몇 번 손을 합쳐본 적이 있다 보니,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사장님들. 이제 가지요.”

“예. 알바트로스 공격대까지 합류했으니, 총 SS급 이능력자 4명과 S급 이능력자 12명이 참가하는 겁니까?”

“더 늘어날 겁니다. 케르베스 행성의 미르 동맹에도 파병을 요청했거든요.”

“그럼 S급 이능력자 20명 가까이 되겠습니다. 거대 기계 괴수도 무난하게 잡겠는데요?”

“저도 그럴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차원문을 넘었다.

미르 공격대의 원정대원들은 물론, 한 무리의 고양이 인간들이 수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 할리온이 손을 하나 들어 인사했다.

[오랜만이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지요? 쥬온은 잘 크고 있습니까?]

[하하, 무럭무럭 크고 있소이다. 언제 한 번 들려주셨으면 하오. 기리나가 대장을 보고 싶어 하오이다.]

[그렇게 하지요.]

새미와도 격한 포옹을 나눴다.

고작 며칠 떨어져 있었는데 흡사 천년은 넘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로의 입술을 더듬기 시작하자, 보고 있던 민종이 험험 헛기침을 했다.

알바트로스의 갈태수 사장이 한숨을 쉬었다.

“한참 뜨거운 것은 좋은데, 나중에 하면 안 됩니까?”

“흠흠!”

그제야 수한과 새미가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수한은 두 공격대에게 손짓을 했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작전을 짠 뒤, 바로 기계 괴수를 잡으러 가겠습니다.”

“긴장이 되네요.”

“거대 기계 괴수라니, 지구에서는 처음 아닙니까?”

“그렇지요. 지금까지 지구의 공격대 중에선 거대 기계 괴수를 잡은 공격대가 없습니다. 있다 해도 세라프들이 잡는 것에 고위 이능력자 한두 명이 거들어 준 것 정도고, 그나마 본체를 직접 타격한 적은 없어요.”

수한은 고양이 인간들의 수를 세보았다.

시종과 자질구레한 일을 하러 따라온 전사들을 제외한 S급 이능력자의 수는 정확히 8명.

얘기를 들어보니 각 도시에서 정확히 2명씩을 보냈다고 했다. 자기들 능력으로는 모자라서, 인근 동맹 도시의 협조를 구한 곳도 있었다.

이들까지 합치면 SS급 이능력자가 넷에, S급 이능력자가 스무 명이 되는 셈이다.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거대 기계 괴수에 대해 수집한 정보를 풀고, 어떻게 공략할지 의논을 했다.

수한은 거기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거신 강림을 연구하고 있었다.

S급 거력 계열 초능 천번지복과 S급 강체 계열 초능 금강불괴의 조합.

어려웠다.

까다로웠다.

하지만 수한은 단 하룻밤 만에 거신 강림을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당연하다.

수한은 여러 가지 초능을 섞어 사용하는데 이미 익숙했다. 민종과는 다르게, 다양한 상황에 다양한 초능을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용이에게 힘을 주입하면서, 기운을 조절하는데 능숙해졌다.

왼손을 쭉 뻗었다.

장갑에 박힌 보석 중 노란색과 붉은색 보석이 번쩍 빛났다.

수한의 몸 안에서 두 가지 힘이 솟구쳤다.

두 종류, 쌍쌍이 네 개의 힘이 한데 어우러졌다.

찬연한 황금색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한의 몸이 불어나더니, 황금빛 거인이 되어 우뚝 섰다.

시간이 없어 다른 초능 조합 기술을 개발하진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민종이 질린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거신 강림에 대해 알려준 게 얼마 전이라고 벌써 거신 강림을 완성했단 말인가?

수한은 빙긋 웃었다.

이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실제로 기계 괴수를 잡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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