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 기계 괴수 -1- >
기계용에 모두 탑승했다.
수가 늘었다.
총 60명.
실제 전투에 나설 사람은 24명이었다. 나머지 36명은 비전투요원이었다.
파앙!
기계용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공기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도착 예정 시간은 12시간 후.
적당히 거리가 먼 곳에서 SUV 십여 대와 함께 다른 이능력자들을 내려줄 것이다. 수한이 기계용과 함께 먼저 강습하면, 이들이 거의 동시에 뛰어들며 전투를 시작할 터였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구도 그렇고 케르베스 행성도 그렇고, 거대 기계 괴수의 공략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이번 사냥에 성공하면 행성 역사에 남을 위업을 달성하는 셈이었다.
“쉬고 계세요. 12시간이 긴 것 같아도 금방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예, 사장님.”
“휴, 저도 원정 꽤나 다녀봤지만 오늘처럼 긴장되기는 또 처음이네요.”
민종이 고개를 흔들었다.
태수가 황금빛 장갑을 낀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한 사장님은 경험이 많으시잖습니까? 전 기계 괴수 잡아본 건 딱 세 번이 단데, 삽질하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들을 태우고, 기계용이 빠르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12시간 후, 거대 기계 괴수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능력자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시무시했다. 특히 네 개의 무기를 주의해야 했다. 거기 걸리면 기계용이나 라오그뉴도 큰 피해를 입을 테니까.
수한은 초월 의식을 발현했다.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땅에 먼저 내려주었다. 그들과 보조를 맞추며, 기계 괴수에게 서서히 접근했다.
가까워지자 기계 괴수도 원정대의 접근을 알아차렸다.
눈에서 푸른 섬광을 번쩍 뿜더니, 지상과 하늘 위를 한 번 쭈욱 훑었다.
그러더니 기계용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한 차례 격돌한 적이 있는 존재.
접근하는 적 중 가장 위협적이었다. 당장 응전 태세를 갖추었다.
저번에는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수한은 가볍게 광선포를 날려 보냈다.
중화 속성을 중첩시키고 분화 속성을 조합한 상태였다. 방어막을 부수며 들어가 금속 장갑을 두들겼다. 기계 괴수가 열이 뻗치는지 묘한 소리를 질렀다.
“뿌웁!”
전신을 열어 광선포를 쏘고, 머리 사이의 주포를 꺼내 기계용을 겨누었다.
광선포를 잘못 맞았다간 방어막이 몽땅 스러진다. 주포는 일격에 기계용을 반파시킬 수도 있었다.
수한은 절대자의 눈과 초음속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기계 괴수의 공격이 그릴 궤적을 예지하는 한편, 그 사이로 몸을 날렸다. 결과적으로 비처럼 죽죽 그어지는 파괴 광선을 모두 회피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계 괴수도 만만치 않았다.
광선포를 무제한적으로 쏘아댔다.
기계용이 곡예비행을 하며 그걸 피했다. 광선포 만으로는 기계용을 어떻게 하기 힘들 것 같았다.
기계 괴수가 팔을 하나 뒤로 젖혔다.
몸을 살짝 뒤로 젖히고, 머리를 들어 기계용을 노려보았다. 팔에 들린 거대한 창이 광선을 뿜어내며 시퍼렇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장면이다.
질라 행성에서 저런 광선창에 의해 두 세라프가 피보라가 되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회피는 힘들다. 공중에서 방향을 꺾어 쫓아올 테니까.
막아야 한다.
금강불괴를 사용했다.
기계용의 전신에서 황동색 빛이 뿜어졌다. 금속 장갑을 강화하고, 방어막과 결합하여 더욱 강한 방어력을 보장했다.
이윽고 기계 괴수가 팔을 세차게 떨쳤다.
쿠아앙!
대기가 갈라지며, 푸른 섬광이 하늘을 관통했다.
“합!”
수한은 기합을 질렀다.
눈을 부릅뜨고 광선창을 주시했다.
청색 혜성처럼 공간을 질주하여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몸을 쭉 폈다.
날개를 접었다.
앞발 둘을 내밀었다.
광선창이 기계용의 방어막을 부순 순간, 몸을 뒤집으며 광선창을 흘려보냈다.
끄그그그!
아슬아슬하게 기계용의 배를 스쳤다.
금강불괴로 보호받고 있지만 깊은 흔적이 났다. 흡사 밭고랑을 보는 듯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주포가 빛줄기를 토해냈다.
기계용이 급히 방향을 꺾었다. 최대한으로 가속하여 몸을 날리자, 빛이 기계용의 꽁무니를 살짝 부수고 지나갔다.
역시 거대 기계 괴수는 달랐다.
근거리 접전에 더 특화되어 있는데도, 원거리 공격으로 기계용을 오히려 압도하고 있지 않나.
기계용이 광선포를 쏘았다.
이번에는 실명 속성을 조합했다.
그러자 일순 기계 괴수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모든 탐지 장치가 정지하면서, 기계용의 위치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수한은 그 천금 같은 시간을 유용하게 썼다.
정신을 집중했다.
기계용에게 자신을 투영시켰다.
왼손 장갑에 박아놓은 보석에 봉인된 힘을 풀어놓았다.
네 개의 힘이 주르륵 늘어섰다. 끝부분이 닿고, DNA처럼 나선형으로 비비 꼬였다. 힘이 가속하며 증폭되더니, 이내 기계용의 전신을 뒤덮었다.
강렬한 황금빛이 뿜어졌다.
기계용이 커졌다. 마구 증식했다.
급기야 원래 크기의 2배를 넘어갔다. 거의 지상의 기계 괴수와 맞먹는 크기였다.
[가자!]
“크아앙!”
기계용이 괴성을 지르며 날아들었다.
전신의 체중을 실어, 단번에 기계 괴수를 내리찍었다.
꽈앙!
폭음이 터졌다.
강렬한 충격파가 사방을 덮쳤다.
흙먼지가 폭발하듯 비산하고, 주변의 땅거죽이 일제히 뒤집어졌다.
수한은 머리가 웅웅 울리는 것을 참아냈다.
성좌로 자신의 모든 초능을 강화한 뒤, 앞발로 묵직한 일격을 날렸다.
기계용의 앞발이 기계 괴수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뻐억!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기계 괴수도 언제까지 당해주지만은 않았다.
팔을 휘둘렀다.
온갖 종류의 무기들이 기계용을 두드렸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광선검과 파멸의 철퇴.
광선검으로 한 번 긋자 기계용의 몸이 썽둥 잘렸다. 철퇴에 격중당하니 전신이 진동하며 수한이 피를 토했다.
방어막, 금속 장갑, 거신 강림, 금강불괴로 겹겹이 두르고 있어도 막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기계 괴수가 몸을 일으켰다. 돌아온 광선창을 비롯하여, 도합 열두 가지의 무기를 들었다.
덩치로는 밀리지 않지만, 내용물을 따지면 차이가 크다.
수한은 기계 괴수를 경계했다.
기계 괴수가 땅을 박찼다.
그 큰 몸이 순식간에 확대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를 가득 채웠다.
회피하지 않았다.
정면에서 맞붙었다.
미사일을 난사하고, 광선포를 마구 쏘았다. 번개를 뿌리고, 초음속으로 가속하여 들이받았다. 앞발로 후려치고, 꼬리로 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밀렸다.
다른 것은 맞아줄 만 한데 네 개의 무기가 문제였다.
광선검, 광선창, 파멸의 철퇴, 주포.
그 무기에 제대로 맞았다간 기계용이 박살날 수도 있었다. 결국 피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손발이 엉키면서 점점 수세에 몰렸다.
미르 공격대의 다른 인원들이 도착한 것은 바로 이때.
라오그뉴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왔다!]
우렁차게 소리치며 기계 괴수의 등 위로 뛰어올랐다.
체급 차이가 컸다. 그래도 라오그뉴는 SS급 이능에 해당하는 능력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연타를 먹이자 무지갯빛 섬광이 펑펑 터지며 방어막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황금색 거인까지 나타나 기계 괴수를 덮쳤다. 민종이 출력을 줄이더라도 거신 강림을 쓴 채, 시선을 분산하러 나선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 새미가 힘을 모으는 중이었다. 언제든 수한의 유도 속성이 꽂히기만 하면, 단번에 전력을 발휘할 터였다.
S급 이능력자들도 공격을 시작했다. 새까맣게 몰려가 기계 괴수를 공격하고, 원거리에서 지원을 했다.
수한은 초월 의식으로 모든 이들을 연결했다.
덕분에 24명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밀물처럼 밀려가 공격하고, 기계 괴수가 반격하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덕분에 수한도 숨을 돌렸다.
기계 괴수의 주의가 분산된 탓이 컸다. 그 전까지는 수한에게 공격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이젠 360도 전 방향을 몰아쳐야 했기 때문이다.
대신 몸 여기저기에 설치된 광선포니 미사일이니 하는 것을 마구 쏘아댔다.
수한 입장에서는 그게 나았다. 그냥 맞아줘도 될 일이니까.
[공격이 안 통합니다!]
누군가 초월 의식을 통해 소리쳤다.
수한은 중화 속성 중첩으로 방어막을 해소해가며 싸웠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재주를 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수한은 기계용의 전신에서 미사일 발사대와 기관총을 꺼냈다.
중화 속성을 중첩해서 마구 쏘았다. 폭발까지 조합했더니, 펑펑 폭발하면서 중화 속성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덕분에 기계 괴수의 방어막이 제 위력을 잃었다.
수한은 이를 악물었다.
소모하는 힘이 컸다.
아무리 수한이 SS급에 올랐어도 속성 중첩과 조합을 함께 쓰는 것은 힘들었다. 장기전으로 돌입한다면 결국 수한이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다.
[속전속결로 갑시다!]
[예!]
이능력자들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수한은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것보다는 기계 괴수의 시선을 끄는데 주력했다. 현재 상태에서는 라오그뉴 보다 방어 능력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한편 초월 의식을 통해 원정대를 지휘했다.
“하!”
마엘른이 경쾌한 기합을 내질렀다.
가볍게 몸을 날렸다.
광선포가 쏟아지지만, 바람과 같은 몸놀림으로 몽땅 피해 버렸다.
기계 괴수의 거대한 다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뜬 순간, 마엘른은 이미 기계 괴수의 어깨까지 올라가 있었다.
카일룸을 휘두른다.
시푸른 빛의 파도가 겹겹이 흘러나왔다.
예리하기 그지없는 검격이 팔의 관절에 스며들었다. 주요 부품이 박살나며, 기계 괴수의 팔이 축 늘어졌다.
기계 괴수가 움찔했다.
심대한 위협을 느끼고 머리 주변의 방어 체계를 발동했다. 시꺼먼 구름이 뭉클뭉클 쏟아졌다.
마엘른은 팔 하나를 무력화시킨 것에서 만족했다. 몸을 멀찌감치 뺀 뒤, 다시 기회를 엿보았다.
수한은 쾌재를 불렀다.
[훌륭합니다, 마엘른님. 새미야!]
[준비 됐어!]
기계용의 어깨에서 광선포 하나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유도 속성을 담은 광선이 방어막을 돌파하며 늘어진 팔에 꽂혔다.
고장 난 부품이 있는 자리.
바로 그곳이 하얗게 빛났다.
새미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세상을 뒤엎을 듯 쏟아져, 희게 빛나는 곳을 강타했다.
수백, 수천 발.
하나하나가 집 한 채를 무너뜨릴 정도의 위력.
그만한 공격력이 일점에 집중되는데, 아무리 거대 기계 괴수라고 해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팔이 끊어졌다.
쿠웅!
광선창과 기계 괴수의 팔이 땅에 떨어졌다.
아르텔라의 소환수들이 광선창에 들러붙었다. 기계 괴수가 다른 손으로 집어 들기 전, 얼른 광선창을 전장에서 멀리 빼돌렸다.
이것으로 가장 위협적인 4개의 무기 중 하나를 제거한 셈이다.
[다음은 파멸의 철퇴가 목표입니다.]
4개의 무기만 모두 치워버리고 나면, 공략은 종료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원정대가 수한의 말에 호응하며 더욱 강하게 기계 괴수를 밀어붙였다. 마엘른 정도로 활약하는 이는 없어도, 자기 몫은 충분히 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다섯 명.
서로 똘똘 뭉쳐 기계 괴수의 한쪽을 맡아 선전 중인 이들.
알바트로스의 임원진이었다.
“가자!”
“예, 형님!”
보훈이 선두에서 길을 열었다.
광선포와 미사일이 미친 듯이 날아왔다.
그러면 뒤따르던 태수가 가볍게 주먹질을 했다. 손에 낀 황금색 장갑이 빛을 발하자 기이한 힘의 역장이 생성되며 공격을 되돌렸다.
그들도 마엘른처럼 날렵하게 기계 괴수의 어깨까지 올라갔다. 비록 신속 계열 이능은 없지만, 그걸 대체할 수 있는 각종 이능 장비가 있었다.
검은 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현애야!”
“알고 있어!”
뒤에 서 있던 현애가 손짓을 했다.
폭죽처럼 빛이 번뜩였다.
빛은 앞장서서 달리던 셋을 감쌌다. 셋은 기다렸다는 듯 기계 괴수의 팔을 덮쳤다. 거력 계열 이능력자인 진기명이 앞으로 나서며 폭발적인 일격을 가했다.
뻐억!
금속 장갑이 거세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