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능 조합 >
힘의 결정을 흡수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죽을 것 같다.
정말로 죽는 사람도 있었다.
“허억, 허억.”
수한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겨우 SS급 힘의 결정 하나를 흡수했는데, 벌써 진이 다 빠졌다.
두 번째라 조금은 더 쉬웠다. 하지만 여전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온갖 흡수 보조제를 사용하는데도, 힘의 결정을 흡수하는 순간은 사선을 넘어야 했다.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수한은 밀실 밖으로 나왔다.
“형, 괜찮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명한이 걱정하는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전역하고 계속 놀아서일까. 이젠 제법 군살이 붙었다. 머리도 꽤 길었고, 각이 졌던 얼굴도 동그래졌다.
수한은 씩 웃었다.
“걱정 마.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웠으니까.”
“어? 아, 1개는 흡수한 거야?”
“그렇지. 이제 6개 남았어. 나머지는 내일부터 다시 시도해봐야겠다.”
“쉬엄쉬엄해, 형. 걱정 된다.”
“걱정 안 해도 돼. 나도 앞뒤 다 재보고 하는 거니까.”
예전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였는데, 군대를 다녀와서 그런지 좀 철이 든 것 같았다.
수한은 빙긋 웃었다.
그 후 1주일에 걸쳐 힘의 결정을 흡수했다. 하나씩 힘의 결정을 흡수할 때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열두 천사의 축복을 이용해 회복하지 않았으면 소요한 시간이 몇 배는 늘어났을 것이다.
능력 모두가 SS급이 된 사실은 일단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알렸다.
축하인사가 쏟아졌다.
“오빠, 축하해!”
“축하하오. 종족 연합의 엘프들을 다 뒤져도 그대처럼 SS급 이능을 여덟 개나 가진 이는 없을 거요.”
“정말 대단하세요.”
“역시 아바돈을 들고 다닐 자격이 있어!”
“자네 검을 쓸 생각 없나? 얼마 있으면 혼돈검이 완성된다고 연락이 왔는데.”
“형 진짜 대단하다. SS급이 하나만 있어도 역대급이라고 하던데, 진짜 우리 형 맞아? 어디 외계인이 껍질 뒤집어 쓴 거 아니지?”
“뭐? 하하하.”
수한은 그저 웃어 넘겼다.
웃고 떠들면서, 한편으로는 8개의 초능을 살폈다.
[초능]
++++++ 속성 중첩 : 발사체 300.
++++++ 운명의 눈 200.
++++++ 극초음속 120.
++++++ 고리 은하 100.
++++++ 무한 의식 150.
++++++ 우레미르 100.
++++++ 화신 150.
++++++ 천지개벽 150.
여유 점수 : 50
많은 점에서 변화했다.
운명의 눈은 이름처럼 상대의 운명까지 꿰뚫어볼 수가 있었다. 지금까지 정체 파악 쪽에 치중되어 있었는데, 다른 방면이 훨씬 더 강해진 것이다.
고리 은하는 칠채 성좌처럼 여럿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한 가지 장점은, 그렇게 강화된 이들이 가까이 있으면 거기에 영향을 받아 능력이 더 강해진다는 점이다.
우레미르는 뇌룡이라는 이름대로 번개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한다. 기계용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진화시킨 거였다.
극초음속, 화신, 천지개벽은 초음속, 금강불괴, 천번지복과 비슷했다. 그 위력만 강해졌다. 그리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수한의 성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SSS급으로 승급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지만, 수한은 여기서 더 강해질 여지가 있었다.
두 개의 장갑.
거력 계열과 강체 계열을 함께 쓰면 거신 강림이 된다. 그럼 다른 것들을 조합하면 어떻게 될까?
집에서 실험하긴 힘들다.
어디 안전한 곳이 필요했다.
수한은 미현을 통해 강원도 한적한 산골에 별장을 하나 구했다. 휴가 겸 실험 겸해서, 새미와 단 둘이서만 별장에 갔다.
“우와, 여기 진짜 좋다!”
새미가 감탄을 터뜨렸다.
별장은 계곡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 있었다.
졸졸졸.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에 내린 눈이 소담하게 쌓였다. 흰 눈과 회색 바위가 어우러져 묘한 흥취를 자아냈다.
여름에 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겨울 산도 충분히 멋졌다.
수한은 원정 내내 유지했던 긴장이 스르륵 녹아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눈이다!]
용이가 좋다고 뛰어다녔다. 눈을 파헤치는가 하면 이리저리 흩뿌리고,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눈 쌓인 계곡을 돌아다녔다.
새미가 깔깔 웃다가 눈뭉치를 용이에게 던졌다.
눈뭉치를 얻어맞은 용이가 기겁을 했다.
[으악, 차가워!]
“하하하.”
수한은 둘이 노는 것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아예 동참했다.
신나게 눈뭉치를 던졌다. 용이한테도 날리고 새미에게도 날리자, 둘이 편을 먹고 수한에게 눈을 쏟아 부었다. 심지어 용이 녀석이 눈을 크게 뭉쳐다 수한의 머리에 떨어뜨렸다.
“읏, 차거!”
한참 즐겁게 놀다 보니 해가 졌다.
마당에 불을 피우고 돼지 목살을 구어 먹었다. 겨울이라 좀 춥긴 했지만 둘 다 이능 장비를 착용한 상태라 견딜 만 했다. 오히려 특유의 흥취를 즐길 수 있었다.
늦은 밤.
새미를 재워놓고 수한은 밖으로 나왔다.
용이가 뒤를 따라왔다.
[뭐 해?]
[응. 연습 좀 하려고.]
장갑을 낀 상태였다.
한 마리 강아지처럼 바닥에 엎드린 용이를 관객 삼아, 초능의 조합을 시작했다.
초능이 8개니까 경우의 수는 28개가 나온다.
거신 강림을 제외하고, 새로운 27개의 기술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장 먼저 조합해 본 것은 속성 중첩과 우레미르.
요령은 거신 강림을 사용할 때와 같았다. 두 능력을 발현하면서, 장갑의 능력도 발현시켰다. 일렬로 배치한 후 끝을 연결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비비 꼬았다.
네 개의 기운이 가속되었다. 서로를 자극하며 증폭되다가, 마침내 하나로 섞였다.
번쩍!
빛이 터졌다.
번개의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승천했다.
하늘이 찢어졌다.
대기가 울부짖으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강렬한 기파가 산장 주위를 후려쳤다.
[우왓!]
용이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자고 있던 새미가 놀라 뛰쳐나왔다.
수한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놀랬어? 능력 조합해 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강한 게 튀어나왔어.”
“에이, 깜짝 놀랐잖아. 뭐랑 뭘 조합한 거야? 언뜻 느끼기에는 기계 괴수들 주포 정도로 강한 공격 같은데.”
“속성 중첩이랑 우레미르를 조합했어. 우레미르가 제곱으로 강해진 것 같아.”
“SS급 이능을 제곱으로 강화시켰다고? 장난 아닌데?”
몇 가지를 더 실험해 보았다.
두 초능을 조합한 뒤, 녹스를 통해 쏘았다.
속성 중첩에 발사체라는 단서가 있으니, 두 초능의 조합도 발사 공격에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과연 그러했다.
세상을 뒤엎는 번개의 용이 묵색 광선을 타고 뻗어나갔다.
“좋았어!”
수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녹스로 발사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기계용의 주포로도 발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거대 기계 괴수의 주포에 더하여, SS급 초능 2개가 조합된 공격이 쏘아지면 어떤 위력을 발휘할까?
바야흐로 궁극의 무기를 얻은 셈.
수한은 이 조합법에 뇌룡 숨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이후로는 재미를 못 봤다.
남은 여섯 가지 계열과 속성 중첩을 모두 조합시켜 봤지만, 하나같이 힘만 소모할 뿐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새미가 옆에 앉아 있다가 지적했다.
“오빠 이능은 발사체여야 발현이 된다며. 그래서 그런 거 아냐?”
“그럴 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 넘어갔다.
운명의 눈과 반응하는 초능은 없었다. 그저 겉돌기만 했다.
하긴 투시 계열과 조합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감각 계열 초능이 있다면 가능했을까?
극초음속 초능은 반응하는 게 두 가지 있었다.
우레미르와 천지개벽.
극초음속과 우레미르를 조합하자 수한의 몸이 번개로 변했다. 그 상태에서 움직이자 공기 저항을 무시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자연히 속도가 몇 배는 빨라졌다.
극초음속과 천지개벽을 조합하면 강력한 돌진 기술이 되었다. 마치 대포알처럼 달려들 수가 있었다. 발산되는 천지개벽의 힘이 금세 사그라지니 오래 지속할 수는 없지만, 순간 돌파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수한은 각각 뇌룡 질주, 천지돌파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고리 은하는 속성 중첩을 제외한 모든 초능에 반응했다. 그러나 쓸모가 없었다.
상대 초능을 강화시키긴 하는데, 굳이 장갑을 이용해 조합할 필요 없이 그냥 거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힘을 더 소모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결과물이 그 모양이니 없는 게 더 나았다.
마지막으로 찾은 조합법은 우레미르와 천지개벽이었다.
뇌룡 숨결이 장거리 공격이라면, 이번 조합은 근거리 공격이었다. 조합 즉시 강렬한 번개가 일어나며 세상을 찢어발겼다. 수한이 느끼기에 신체 말단이나 무기를 이용해 발현하는 게 가능했다.
수한은 마지막 조합법을 뇌룡 일격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렇게 네 가지.
뇌룡 숨결, 뇌룡 질주, 천지돌파, 뇌룡 일격.
기존의 거신 강림까지 더하면 총 5개의 조합 기술을 갖게 된 셈.
수한은 보석 중 몇 개에서 힘을 빼냈다.
운명의 눈, 고리 은하, 무한 의식 이 세 가지는 조합에 필요가 없다. 그럼 이것들을 없앤 뒤 다른 종류의 초능을 넣는 것이 더 나았다.
극초음속, 우레미르, 천지개벽의 힘을 주입했다.
수한의 목표는 조합 기술은 사용한 상태로 다른 조합 기술을 또 사용하는 것.
기계용을 타고, 거신 강림 상태에서 뇌룡 숨결과 뇌룡 일격을 날린다고 생각해 보라. 그 얼마나 무시무시하겠나.
실험을 해보았다.
황금빛 거인으로 변한 상태에서, 뇌룡 숨결과 뇌룡 일격을 발현했다.
가능했다.
단, 장갑에 낀 보석의 수를 잘 계산해야 했다. 가령 우레미르가 담긴 보석이 두 개인데, 3개의 뇌룡 시리즈를 한꺼번에 발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여덟 개의 초능을 이리저리 조합해보느라 밤을 샜다.
“으아암.”
수한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새미는 진작 들어갔다. 뇌룡 숨결 이후엔 소음이 그래도 적은 기술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잘 잔 모양이었다.
[이제 끝났어?]
옆에 엎드려 있던 용이가 고개를 들었다.
수한은 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끝났어. 이제 기계 괴수를 잡기가 더 쉬울 거야.]
당초 목표는 달성했다.
수한은 며칠 편히 쉬기로 했다.
공격대에는 수한이 결정해야 할 일이 쌓여 있었다. 백기수 이사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지 않겠나. 어디까지나 미르 공격대는 수한과 새미의 개인 회사니까.
“오빠, 아침 먹자!”
“그래!”
아침은 구수한 된장찌개였다.
원래 새미는 요리를 잘 하지 못했는데, 수한과 사귀면서 몇 가지 요리를 배운 것이다. 비록 수한처럼 화려한 요리는 못해도, 아침은 이런 식으로 곧잘 만들곤 했다.
식사를 한 뒤, 계곡 안을 돌아다녔다.
“오빠 눈 좀 붙여야 하지 않아?”
새미의 말에, 수한은 빙긋 웃어 보였다.
“괜찮아. 하룻밤 새는 것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
“밤새 이능을 발현했잖아.”
“하하, 원정 나갔을 때는 어젯밤보다 더 힘든 상황도 많았는데 뭐.”
단 둘이서 보내는 꿈같은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3박 4일을 예정으로 산장에 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떠날 날이 다가온 것이다.
새미가 아쉬운 표정으로 산장을 둘러보았다.
“나중에는 이런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외계 행성으로 계속 원정 다녀서 그런지, 이제 도시는 지긋지긋해.”
“은퇴하면 그렇게 하자. 이 산장은 내 이름 앞으로 되어 있으니까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어.”
“응, 좋아!”
둘은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저 공격대 소속 이능력자였다면 최소 2달은 특별 휴가를 받았을 것이다. 아주 탱자탱자 놀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처지가 달랐다. 다른 이능력자들이 놀고 있을 때라도, 둘은 각자의 일을 처리해야 했다.
서류 지옥이 둘을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