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비 교체 -2- >
그 결과, 레벨 업 도우미가 출력하는 장비창이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장비]
머리 : 지옥 왕관(절대).
눈 : 명왕의 눈(절대).
상체 : 세라프 의회 전투복(절대).
다리 : 세라프 의회 전투복(절대).
등 : 세계 씨앗의 망토(절대).
목 : 일만 세계의 빛(절대).
손목 : 십이지신의 축복(절대).
허리 : 심해 황제의 허리띠(절대).
신발 : 다차원 조작 신발(절대).
무기 : 종말의 선고자 아바돈(절대), 환영 군주(절대), 섬광 연타 풀고르(전설), 묵광 관통 녹스(전설).
권속 : 기계용(신화).
수한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무기뿐이다. 무기만 바꾸면 모든 장비를 SS급 이상으로 바꾸게 된다.
수한은 눈앞에 떠오른 화면을 쳐다보며 한쪽 뺨을 긁었다.
경매장에 있는 SS급 총의 수는 꽤 많았다. 검이나 창, 도끼 등 근접 무기에 비하면 택도 없지만 모든 세상의 물건이 모이는 곳이니 수십 개는 되었다. 그 중 권총은 정확히 일곱 개였다.
모두 다른 행성에서 만들어진 것.
하나같이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바돈 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대형 기계 괴수의 방어막을 뚫는 게 가능하다는 점은 같았다.
수한은 두 개를 골랐다.
팔뚝처럼 기다란 총신을 가진 시꺼먼 권총과, 뭉툭한 형태로 총신 세 개가 둥글게 묶여 있는 은백색 권총.
공허 포식자, 별빛 폭격.
공허 포식자는 권총이면서도 일격의 위력이 강력했다. 그 점에선 아바돈보다 오히려 더 나았다. 마찬가지로 별빛 폭격은 한 발의 공격력이 약한 대신 연사 능력이 훨씬 대단했다.
이것들을 그냥 쏴도 강하겠지만, 진실한 위력은 용이의 용갑 변신 상태에서 나올 것이다. 하늘을 날면서 공격을 퍼부으면, 어지간한 녀석 아닌 바에야 죽어 자빠지겠지.
수한은 이것으로 구매를 완료했다.
이제 수한이 쓸 물건이 아닌, 공격대 사원들과 다섯 이능력자를 위한 물건을 살 차례였다.
또다시 고민에 잠겼다.
공격대 사원들을 위한 물건은 이미 결정해 놓았다. 대량으로 사야 하니 양산이 가능한 물건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런 건 사실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젊음의 등불.
노화를 방지해주는 물건이었다. 완전히 생체 나이를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집에 놔두면 가족들 모두가 혜택을 받았다. 미모와 정력, 체력에 모두 영향을 미치니 상당히 인기가 높았다.
젊음의 등불은 지구로 배달해달라고 했다. 여기서 받아봐야 등불 수천 개를 다 가져가기가 힘드니까.
5명의 이능력자들을 위해 S급 장비도 샀다. 각자의 장비와 겹치지 않는 것을 사려니 골치가 아팠다.
“오빠, 많이 샀어?”
“응. 자기는?”
“진리의 보석을 살까 생각 중이야.”
“아, 자기는 그거 쓸 수 있겠구나.”
진리의 보석은 구현 계열, 의지 계열, 영혼 계열, 소환 계열이 쓰기에 좋았다. 이능을 강력하게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이능의 발현 시간이 좀 느려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새미는 상관없지만, 수한에겐 별로 좋지 않았다. 전면에서 싸우다가 능력 발현이 느려지면 큰일 나니까.
새미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비싸지 않을까?”
“비싸겠지. SSS급이잖아. 그래도 또 언제 매물 나올지 모르는데, 사고 싶으면 사.”
새미는 한참 고민하다가 구매를 선택했다.
그러자 도우미에게 문의하라는 안내문이 떴다. SS급까지는 손짓 몇 번으로 경매 참가가 가능한데, SSS급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도우미를 호출하자, 깜찍하게 생긴 서큐버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예. 진리의 보석 경매에 참가하고 싶어서요.]
[진리의 보석은 중앙 경매장에서 경매가 진행됩니다. 절 따라오세요.]
수한도 동행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자기 장비를 고르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방에 있으라고 놔두고, 수한과 새미만 도우미의 뒤를 따라갔다.
중앙 경매장은 이름처럼 경매장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지구의 국회의사당처럼 둥근 구조인데, 중앙에 단상이 있고 그 주위로 푹신한 소파가 겹겹이 배치되었다.
소파 주변에는 투명한 역장이 흘렀다. 덕택에 안에 누가 앉아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누가 있다는 것만 아는 게 고작이었다.
중앙 경매장은 거의 가득 차 있었다. 세 개의 SSS급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인 듯했다.
도우미가 둘을 한쪽 소파로 안내했다.
[이곳에서 경매에 참가하시면 됩니다.]
지금은 세계검의 경매가 한참이었다. 단상 위에 황홀한 빛을 뿌리는 검이 한 자루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소파 앞에 떠 있는 홀로그램에 현재 입찰 금액이 보였다.
마법 백금화 271개.
수한이 갖고 있는 마법 백금화가 200개 정도 되고, 새미는 130개 정도 되었다. 원래는 그보다 2배는 더 환전했지만, SS급 장비를 사면서 돈을 쓴 까닭이었다.
새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 비싸다. 백금화 271개면 거의 100조 정도 되는 거 아냐?”
“그 정도면 싼 거지. 세라프 종족 말고는 SSS급 장비 만드는 종족이 거의 없잖아? 나한테 백금화 200개가 남아 있으니까 둘이 합치면 충분히 살 것 같아.”
“그거 공금 아니지?”
“그럼. 내 개인 배당금이야. 공금 썼다가 횡령 소리 듣게?”
“271개는 너무 비싼데……”
새미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당연했다.
SS급 장비 같은 경우 백금화 20개에서 30개 정도면 사기 때문이다. 가격이 거의 10배 가까이 뛰는 셈.
어차피 세계검을 살 생각은 없었다. 백금화 298개에 팔리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보았다.
세계검 다음에는 천공 방벽이 올라왔다.
커다란 방패였다. 빛을 뿜어 일정 지역을 다 방어하는데, 대형 기계 괴수의 주포도 막아낼 수 있다고 했다. 시선이 가긴 했지만, 백금화 400개를 넘어가는 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다음 진리의 보석 차례가 되었다.
경쟁이 붙었다.
처음부터 백금화 200개를 선언했는데, 누군가 바로 250개를 불렀다. 280개까진 따라갔는데, 300개를 넘고 400개를 넘어가자 포기했다.
400개면 둘이 가진 것을 다 합쳐도 모자라다.
새미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포기해야겠네.”
“끙, 어쩔 수 없지.”
진리의 보석은 411개에 낙찰되었다.
처음에 세계검이 298개에 팔린 게 싸게 팔린 거였다. 다음에 올라온 세계검은 387개에 팔렸다.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SSS급 장비는 사려면 백금화 500개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화로 따지면 160조 이상, 수한이 이번 원정에서 개인적으로 배당받은 금액과 비등비등했다. 공격대 지분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건 논외로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수한은 새미를 위로했다.
“다음에 와서 사자. 또 기회가 있을 거야.”
“응. 이번에는 그냥 SS급 장비 산 걸로 만족할래.”
“그래, 잘 생각했어.”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대부분 장비 구입을 끝내놓고 있었다.
거의 전신을 S급으로 도배했다. 무기나 기타 중요한 몇 가지는 SS급을 샀다. 덕분에 도우미들이 카트에 각종 장비를 싣고 쉬지 않고 들락날락했다.
시간이 꽤 지난 다음에야 정리가 끝났다.
“더 사실 건 없지요?”
혹시나 싶어 묻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예, 살 건 다 샀습니다.”
“모든 세상의 모든 물건이 다 모인다더니 그게 정말이네요. 뉴욕에 있는 차원 백화점도 물건이 꽤 많은 편인데, 이곳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에이, 지구는 종족 연합에서 변방이잖아요. 물건이 적은 게 당연하죠.”
다들 호텔로 이동했다.
수한은 다녀올 곳이 있다고 호텔을 나섰다. 용이의 진화 문제 때문이었다.
새미가 따라왔다. 용이가 그 옆에서 꼬리를 쫄랑쫄랑 흔들었다.
“저거 타고 가는 거야?”
“응. 지구 비행기보다 몇 배는 빠르더라. 승차감도 아주 좋아.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도착할 거야.”
“꼭 UFO처럼 생겼다.”
“나도 그 생각 했었어.”
비행접시를 타고 예전에 갔던 진청 도시로 향했다.
학술원을 방문하려는 것이다.
사전에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넣은 상태. 서면으로 문의할 수도 있지만 기왕 헤븐 행성에 온 김에 가보려는 의도였다.
1시간 뒤, 학술원 앞에 도착했다.
학술원을 보자 용이가 흥분해서 꼬리를 쳤다.
[나 여기 좋아!]
이곳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수한은 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들어가자.”
수한은 가볍게 몸을 날렸다.
새로 구입한 세라프 의회 전투복에서 빛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새미도 신발에 걸린 비행 기능을 발현했다. 둘이 사이 좋게 하늘로 치솟자, 용이도 부리나케 쫓아왔다.
학술원 안으로 들어가자, 세라프 한 명이 수한과 새미를 맞이했다.
낯이 익다.
저번에 한 번 보았던 렌느였다.
렌느가 둘을 보고 살포시 미소 지었다.
[정확하게 오셨네요. 옆에 분은 누구신가요?]
[오랜만입니다, 렌느님. 이쪽은 제 여자친구인 윤새미입니다. 새미도 SS급 이능력자입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뵈어요. 잘 부탁드려요.]
[두 분이 나란히 SS급이라고요? 대단하네요. 반가워요. 전 렌느라고 해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렌느는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한이야 그렇다 쳐도, 새미까지 SS급이라고 하니 의외였던 것이다.
몇 마디 더 나눈 뒤,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절 따라오세요. 튜니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렌느가 날개를 펼치고 복도를 질주했다.
수한과 새미, 용이 모두 그 뒤를 어렵지 않게 쫓아갔다.
튜니에의 사무실은 학술원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큰 복도를 따라가다가 직각으로 땅을 향해 몇 번 꺾은 뒤 지하로 수십 층이나 내려간 다음 도착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저절로 문이 열렸다.
[아, 어서 와요.]
홀로그램을 띄워놓고 뭔가 작업을 하던 튜니에가 고개를 들었다.
사무실은 상당히 넓었다. 대학교 강의실 두 개 정도 크기는 되는 듯했다. 빛나는 수정 기둥들이 사방을 떠받치고 있었다. 바닥은 까만데, 그 중심을 은하수가 도도히 흘러갔다.
수한은 튜니에를 보고 눈을 빛냈다.
튜니에 주위에 작은 기계용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대부분은 수한의 손바닥 크기 정도인데, 개중 몇몇은 수한의 팔뚝과 비슷한 크기였다.
어디선가 본 형태의 기계용.
바로 용이의 옛 모습과 판박이였다.
기계용들이 둘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인간이 여기엔 어쩐 일이지?]
[익숙한 냄새가 나.]
[저길 봐! 원형 기계용이야!]
기계용들이 일제히 용이를 쳐다보았다.
경계하면서도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기들보다 확연히 덩치가 큰 용이의 냄새도 맡아보고, 툭툭 건드려 보았다.
용이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기계용들을 보았다.
[너희는 뭐야?]
[용이 네 동생들 같은데?]
[내 동생?]
용이가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한테 모여든 기계용들을 한 번 보더니, 조심스럽게 앞발을 뻗었다.
기계용들은 용이가 자기들을 만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며 용이의 몸에 자기들 몸을 마찰시켰다. 금속끼리 부딪치는데도 금속 마찰음은커녕 부드럽게 솜털 비비는 소리가 났다.
수한은 기계용들을 눈여겨보며 말했다.
[기계용들을 진화시키는데 성공하셨나 봅니다.]
튜니에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대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직 SSS급으로 진화시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것도 곧 성공할 것 같습니다.]
튜니에는 자기 앞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둘이 자리를 잡고 앉자, 작은 기계용들이 저마다 머리를 들이밀었다. 낯선 방문자가 꽤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녀석들을 쓰다듬어주자, 기계용들이 눈을 감고 수한의 손길을 즐겼다. 새미도 물 만난 고기처럼 이 녀석 저 녀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