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비 교체 -3- >
수한은 튜니에에게 질문을 했다.
[얘들이 전부는 아니지요? 저번에 백만 기계용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부화장이 여러 곳에 있어요. 이곳은 제가 몇 마리만 뽑아서 보살피는 곳이에요. 수는 얼마 안 되지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수한은 본론을 꺼냈다.
[실은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저번에 우리 용이를 성장시켜 주신다고 했었는데, 얼마나 진척됐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 그거요?]
튜니에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화에 필요한 자원은 확보했어요. 그런데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실패할 가능성이 99%가 넘게 나왔어요.]
[예? 99%요?]
[네. 그래서 미처 연락을 못 드렸어요. 방법을 찾은 다음에 연락하려고 했지요.]
수한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 정도라면 말이 없었을 만도 하다. 괜히 시도했다가 자원만 날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원인이 뭡니까?]
[Ex 등급과 SSS 등급은 차이가 커요. 그건 아시죠?]
[예, 압니다.]
[SSS 등급이 필멸자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라면, Ex 등급부터는 필멸자를 벗어난다고 볼 수 있어요. 거의 준신이라고 봐야죠. 우리 세라프 종족은 기본적으로 수명이 긴데, 저를 비롯한 최고 의원들은 아예 수명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수한은 튜니에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튜니에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결정적이고 초월적인 재료가 하나 필요해요. 그래야 우리가 용이를 위해 준비한 자원들을 응집시키면서 Ex 등급으로 진화시킬 수 있어요.]
[그게 뭡니까?]
[세계수의 정수, 용암 심장, 심해의 원석, 신의 심장, 선악과 같은 거요.]
[농담이시죠?]
수한은 어이가 없어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나같이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세계수의 정수를 예로 들어볼까?
현재 세계수가 있다고 알려진 행성은 미드가르드를 포함하여 기껏 서넛에 불과하다. 세계수의 정수는 세계수의 뿌리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걸 파내면 그 즉시 세계수가 말라죽는다.
해당 행성과 원수 사이가 될 게 아니면 획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용암 심장도 마찬가지. 화산 드워프들이 신성시하는 용암 태양에 깃든 물건이었다. 심해의 원석은 인어들이 사는 행성에 있다고 하고, 선악과는 소문만 무성하지 어디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신의 심장도 똑같았다. 쥬페르 행성 같은 동물신들의 심장으로는 안 된다. 그들보다는 더 격이 높아야 했다. 한 행성의 창조신이나, 그 분신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튜니에가 면목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있나 찾고 있습니다. 너무 실망하진 마세요.]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저도 한 번 구할 수 있는 게 없는지 생각해봐야겠네요.]
[그러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대로 소득 없이 돌아가야 하나?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났다.
차원 경매장에서 결국 구입하지 못한 진리의 보석. 그걸 튜니에를 통해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
진리의 보석에 대해 묻자, 튜니에가 뜻밖이라는 얼굴을 했다.
[그 물건은 제가 만드는 거예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만들곤 했는데, 경매장에 나온 줄은 몰랐네요.]
이거 잘 됐다.
수한이 진리의 보석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자, 튜니에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재료만 준비해주세요.]
재료가 만만치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결정들.
각 계열 별로 SS급 힘의 결정 1개씩이 필요했다. 다른 것들이야 차원 경매장이나 지구의 차원 백화점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다소 시무룩하던 새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수한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지구에 돌아가는 대로 필요한 재료를 보내겠습니다.]
[진리의 보석을 만드는데 1달 정도가 걸려요. 완성되면 렌느를 통해 보내도록 할게요.]
[예, 감사합니다.]
SS급 힘의 결정은 공격대 창고에 충분히 있었다.
다른 이능력자들에게 흡수하라고 주면 좋겠지만, 다들 겁을 내고 있으니 일단 보류.
인사를 하고 물러나왔다.
비록 용이의 진화는 까마득했지만, 그래도 얻은 것은 있었다. 새미의 공격력이 몇 배로 강해질 테니, 앞으로 원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호텔로 돌아온 뒤, 차원을 넘을 준비를 서둘렀다.
새로 합류한 이능력자들은 관광을 좀 하고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당장 원정을 떠날 것은 아니니, 수한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다음 목적지는 노르헤임 행성.
다른 이들은 지구로 보내려고 했는데 가봤자 할 게 없다며 수한을 따라왔다. 결국 다섯 명 모두가 드워프들을 찾아가게 되었다.
차원문을 넘고, 기차를 타고 티오르 시에 도착했다.
소식을 들은 드워프들이 반색하며 뛰쳐나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자네 공격대가 행성 하나를 아예 수복했다며? 그래, 아바돈은 쓸 만 하던가?]
[자네 덕에 요즘 살 맛 난다니까! 그 동안 총을 쓰는 고위 이능력자가 없었는데, 자네가 우리 총을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거든!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주게!]
드워프들이 수한을 툭툭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마엘른이 드워프들 옆으로 다가왔다. 그것을 발견한 드워프들이 눈을 빛냈다.
[자네도 장난 아니던데? 요새 자네 이름도 명성이 자자해! 어떤 자들은 동력핵 사냥꾼이라고 부른다니까?]
마엘른이 특유의 검기로 동력핵을 도려내는 것을 몇 번이나 했더니 그런 별명이 붙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크람 행성 원정은 종족 연합 전체에 알려진 모양이다. 헤븐 행성의 세라프들도 그렇고, 노르헤임 행성의 드워프들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수한 일행을 대접하는 문제를 놓고 토프레 가문과 막시무스 가문이 신경전을 벌였다. 수한은 그 중 토프레 가문을 선택했다. 이번엔 검이 아니라 총 때문에 온 거니까.
토프레 가문의 가주가 껄껄 웃었다.
[암암! 당연히 우리 집에 와야지! 총을 쓰는 사람이 검 만드는 드워프 집에 가서 뭘 하겠어?]
[젠장! 우리도 총을 만들든지 해야지!]
막시무스 가문의 가주가 투덜거렸다.
첫날은 드워프식 대로 술독에 빠졌다.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찾아온 용건을 볼 수 있었다.
수한을 접대하러 온 바리스가 풍성한 수염을 쓰다듬었다.
[SSS급 총을 제작하고 싶다고?]
[예. 제가 아바돈을 받고 벌써 1년이 넘었으니, 슬슬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바리스가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그렇지, 바자크 영감이랑 직접 얘기해보는 게 어떤가?]
[아바돈을 만든 분 말씀입니까?]
[그래. 그 분이 우리 일족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이거든. 난 솔직히 총기 제작에는 소질이 없어. 괜히 창 들고 설치겠어?]
바리스는 자기 옆에 놔둔 창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 말이 맞았다.
수한은 정식으로 바자크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면담은 금방 잡혔다. 아침에 요청했는데, 점심시간에 바로 약속이 잡혔다.
바자크는 자신의 개인 공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안 되고, 수한만 시종과 함께 공방에 들어가기로 했다.
수염이 거뭇하게 난 소년 드워프가 알아두라는 듯 말했다.
[바자크님이 공방에 계시면 가주님이나 최고 장로님도 함부로 못 들어가세요. 이계인 중에 바자크님 공방에 들어가는 건 당신이 처음이니까 영광으로 아세요.]
수한은 그저 웃고 말았다.
공방은 지하 깊은 곳에 있었다. 마법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이나 내려간 끝에 공방에 도달했다.
깡! 깡!
쇠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더운 기운이 확 몰려왔다.
공방은 그리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강의실 반 개 크기였다. 용광로가 중앙에 보이고, 수염이 하얗게 샌 드워프 하나가 모루에 대고 뭔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은색 찬란한 빛을 뿌리는 금속.
별철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드워프가 허리를 폈다. 망치와 집게를 내려놓더니 목을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아, 점심인가?]
[예, 바자크님. 오전에 말씀드린 지구인도 같이 왔습니다.]
[아바돈을 쓰고 있다는 지구인 말이지? 잘 했다.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자, 다들 앉지.]
공방 구석에 모여 앉았다.
시종 드워프가 준비해온 먹거리를 꺼냈다. 3명이 함께 먹을 분량이라 꽤나 많았다. 대부분은 고기 종류이고, 곁들여서 먹을 독한 술도 좀 있었다.
바자크가 술병 째 들어 목을 축였다.
[캬, 좋다! 그래, SSS급 총을 만들고 싶다고?]
[예. 아바돈도 분명히 좋은 물건입니다만, 거대 기계 괴수를 상대할 때는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그럴 테지. 사실 아바돈은 자네의 도움을 받고 나서 처음 만든 물건이거든. 만들 때는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어.]
수한은 얼른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냥 쏘기만 해도 대형 기계 괴수의 방어막을 뚫는 게 아바돈이었으니까. 하지만 만든 사람이 그렇다고 하니 잠자코 듣기로 했다.
바자크가 계속해서 말했다.
[좀 심심했다고 할까? 정확하고, 강하고, 사거리가 길고, 가볍긴 한데 그 이상의 장점은 없었지. 세라프 종족의 세계검이나 막시무스 가문의 혼돈검은 저마다 특색이 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답을 찾은 모양입니다.]
[아직은 내 머릿속에만 있다네. 이제부터 구현을 해봐야지.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SSS급 총기 제작에 대해, 바자크는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다만 재료가 상당히 많이 들 거라고 했다.
SS급 힘의 결정 여러 개, 용의 심장, 빛의 보배, 어둠의 근원, 혼돈의 메아리 등등.
대충 따져보니 진리의 보석과 비슷했다. 미르 공격대에 있는 힘의 결정을 가져오고, 차원 경매장에서 다른 물건을 구입하면 되지 싶었다.
[재료가 완비되면 제작 기간에 1달 정도 걸릴 걸세.]
수고비로는 S급 힘의 결정 서너 개를 주기로 했다.
바자크는 재료만 구해주면 무료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만, 수한이 그럴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하긴 드워프들에게 받은 게 좀 많나.
아바돈, 카일룸, 풀고르, 녹스, 거기에 드빌과 뉴팩 두 드워프까지 지구에 와서 수한을 돕고 있었다.
사실 제대로 주려면 SS급 힘의 결정은 줘야 했다. 그런데 바자크가 극구 괜찮다고 해서 S급 힘의 결정 서너 개로 타협을 본 것이다.
수한이 미안해하자, 바자크가 수한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자네가 내가 만든 총으로 기계 괴수들만 쓸고 다니면 충분히 만족한다네.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아, 가기 전에 총알은 충분히 주고 가게. 새로운 총을 만들려면 정말 많은 총알이 필요하거든.]
[알겠습니다.]
수한은 공방에서 나왔다.
마엘른에게 혹시 SSS급 검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마엘른이 아직은 필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필요해지면 자신이 직접 노르헤임 행성을 방문하여 검을 구입하겠다는 것이다. 아니면 세계검 경매에 참가해도 되고. 마엘른에게는 막시무스 가문의 혼돈검보다는 세라프 종족의 세계검이 더 어울리지 않겠나.
수한은 헤븐 행성을 들러 필요한 재료를 구입했다. 그것을 노르헤임 행성으로 보낸 뒤, 지구로 돌아왔다.
SS급 힘의 결정을 헤븐 행성과 노르헤임 행성으로 보내자 귀중품 참고가 텅 비었다. 수한이 7개를 흡수하고, 알바트로스에 5개를 증여했기 때문이었다.
외계 행성에 다녀오는 동안 전리품도 꽤 많이 처리했다.
임대 했던 창고를 대부분 비웠다. 이제 1, 2주만 더 고생하면 전리품을 모두 처리할 것 같았다. 기계용으로 변형시킬 것과 앞으로 연구부에서 연구할 것만 남겼다.
수한은 때가 된 것을 깨달았다.
서서히 다음 원정을 준비해야 할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