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94화 (195/254)

< 고향으로 >

다음 원정은 어디가 좋을까?

1년짜리 장기 원정은 돈은 많이 버는데 너무 힘들었다. 수한에는 한두 달 정도의 원정을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예전의 가브낙 행성이나 질라 행성처럼 세라프 종족과 제국이 치열하게 싸우는 곳이 좋겠다.

정보부에서 그런 행성들의 목록을 싹 뽑았다.

제법 많았다. 지구인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의 행성으로만 목록을 작성했는데도 적어도 백 개는 넘었다.

그 중 거대 기계 괴수가 있는 곳만 추려보았다. 그러자 예닐곱 개 정도가 나온다.

수한은 그 목록을 허공에 띄워놓고 고민에 잠겼다.

슬슬 특별 휴가가 끝나고 다들 복귀하는 상황.

이 달 말까지는 행선지를 정해서 2월 1일에는 출발해야 할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쉬는 것도 좋지는 않으니까.

수집한 정보들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아르텔라가 사장실로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르텔라는 지금껏 먼저 수한을 찾아온 적이 없었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며 원정에 따라오기만 했다.

수한은 한쪽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어서오세요. 무슨 일입니까?”

아르텔라는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책상 위를 쳐다보더니, 여러 행성 이름이 나열된 홀로그램을 보고 묻는다.

“다음 원정은 어느 행성으로 가나요?”

“글쎄요. 생각 중입니다. 조건에 맞는 곳은 꽤 많아서요.”

그 말을 들은 아르텔라가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그럼 질라 행성으로 가면 안 될까요?”

“질라 행성이요?”

뜻밖의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행성 목록 중에서 질라 행성의 이름을 본 기억이 났다.

수한은 허공에 대고 손짓을 했다.

책상 위에 있던 홀로그램이 둘의 눈앞으로 옮겨 왔다.

최종 고민을 하던 목록에는 없었다. 수한은 검색 조건을 변화시켰다. 기계 괴수와 세라프 종족의 세력이 비등비등한 곳이 아닌, 기계 괴수가 더 강한 쪽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러자 질라 행성의 이름이 나왔다.

하긴 대륙은 완전히 불타 폐허만 남았고, 그나마 느주브 반도만 온전했다. 지금도 세 개의 요새 도시와 드라코 협회가 힘을 합쳐 기계 괴수와 변이체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질라 행성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 거대 기계 괴수는 셋.

수한이 가브낙 행성에서 활동할 때는 그것들이 느주브 반도 반대편에 있었다. 그래서 마주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는 동안 느주브 반도 근처로 이동했다고 했다.

현재는 소강상태.

세라프 종족이 증원되어서 그들을 막아내고 중이었다.

여기에 미르 공격대가 더해진다면 거대 기계 괴수들을 잡고 대륙 수복이 가능할 것이다.

“어째서 질라 행성입니까?”

수한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에 고향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리워하는 기색을 내비치지도 않았고.

아르텔라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클로아님께서 절 부르고 계세요.”

“질라 행성의 용신 말씀이십니까?”

“네, 맞아요. 희미하긴 하지만, 클로아님께서 절 부르고 계시는 게 분명해요.”

질라 행성의 용신, 클로아.

실존하는 존재인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여러 상황을 비교해볼 때, 클로아가 실재한다는 것에 무게가 쏠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쥘베르도 그러지 않았나. 크로시아에서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의 기척을 느꼈고, 아르텔라의 이능은 그 존재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튜니에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용이를 진화시키려면 중심이 될 보물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지.

세계수의 정수, 용암 내핵, 신의 심장……

신의 심장?

혹시 질라 행성에 용신 클로아의 심장이 남아 있을까? 형체는 이미 잃은 듯한데, 그 유해라도.

수한은 잠깐 생각을 하다 말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타이탄 공격대에 있을 때 쌓아놓은 기반도 있으니, 다른 행성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르텔라의 얼굴이 밝아졌다.

“무리한 말씀을 드리는 것 같았는데,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인데요. 조만간 회의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아르텔라가 정중히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수한은 질라 행성의 상황을 면밀히 살폈다.

원정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 빼고는 모든 조건이 딱 맞았다. 세라프도 많고, 우호적인 현지 종족도 있고, 거점으로 삼을 곳도 있었다.

수한은 발상을 전환했다.

‘굳이 대륙 수복까지 다 할 필요는 없겠지?’

느주브 반도 인근에 몰려 있는 거대 기계 괴수와 인근에 있는 대형 기계 괴수만 잡고 빠져도 될 일이었다.

그러면 짧고 굵게 원정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나머지는 세라프 종족이 알아서 기계 괴수를 때려잡겠지. 여건이 좋으면 대륙 수복 끝까지 함께 해도 좋고.

수한은 결정을 내렸다.

며칠 뒤, 부장급 이상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를 열었다.

그들을 보며 말을 꺼냈다.

“다음 원정은 질라 행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라 행성이요?”

다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구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르텔라를 향했다.

아르텔라의 얼굴은 담담했다. 자신이 건의한 게 맞는다는 듯, 사람들을 향해 머리를 살짝 숙였다.

새미가 자료를 보더니 말했다.

“다른 행성보다는 나을 것 같아요. 우리가 가는 행성은 대부분 수호자 연맹 파견대가 없어서 자력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잖아요? 질라 행성도 파견대는 없지만, 드라코 협회도 있고 바티오 시도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부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질라 행성도 괜찮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 좋은 생각이라고 찬성했다.

기계 괴수가 행성의 80% 이상을 점령한 것은 악조건이지만, 그보다 더한 악조건에서도 원정을 성공시킨 적이 있지 않나. 크람 행성과 비교하면 훨씬 더 조건이 좋다고 봐야 했다.

의논 끝에 질라 행성 원정이 결정되었다.

목표 기간은 2달.

다른 것보다도, 거대 기계 괴수와 대형 기계 괴수를 최대한 많이 잡는 게 목적이었다.

“이번엔 몇 명이나 데려가실 겁니까?”

지원부장으로 승격한 시규가 물었다.

전투부를 확충했으니, 그들을 데려갈 거냐고 묻는 것이다.

수한은 선을 그었다.

“AA급 이상의 이능력자만 데려가겠습니다. AA급은 기계 괴수 상대로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A급은 그게 힘드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참가하게 되는 이능력자를 정리해 보았다.

SS급 3명, S급 11명, AA급 25명.

지원부에서는 시규를 비롯하여 최고의 요원들만 참가한다. 그 수만 100명이었다. 이능력자까지 다 합치면 139명이 질라 행성 원정을 떠나는 셈이다.

미르 공격대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편, 원정이 결정되자 수한은 사원들을 강당에 불러놓고 크람 행성 원정에 따른 특별 포상을 발표했다.

재직 기간 1달 기준으로 상여금 1만 %.

크람 행성 원정 중 재직했던 이들 모두에게 젊음의 등불 증정.

자연히 사원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우와, 역시 우리 사장님!”

“대박이다!”

“감사합니다! 이 한 몸 공격대를 위해 바치겠습니다!”

1년 내내 재직하고 있던 이들은 무려 12만 %의 상여금을 받았다.

대부분 부장급이나 과장급이니, 이 한 번으로 수억 원씩 벌어들인 셈이다. 더구나 젊음의 등불까지 받았으니, 평생 놀고  먹는 것도 가능했다.

수한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선심을 썼다.

“그리고 원정이 끝난 후 우리 공격대 가족이 된 분들께도 5백 %의 상여금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공격대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의미에서 드리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상여금을 엄청나게 뿌리긴 했지만, 크람 행성에서 번 돈이 워낙 많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지급하는 상여금을 다 합쳐도 5천억 원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수한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 원정도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2달짜리 원정이니 크람 행성 원정만큼 많이 벌진 못하겠지만, 짧고 굵게 다녀올 생각이니 시간 당 벌이로 보면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잘 됐네요!”

“이번에도 대박 터졌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될 겁니다.”

1월 말이 되자, 크람 행성으로 변이체를 잡으러 떠났던 원정대가 귀환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벌이가 쏠쏠했다.

대부분 A급이나 B급 변이체를 잡아왔다. AA급 변이체를 잡는 원정대도 있었다. 그렇게 1번 원정을 다녀오면, 2천억 3천억 매출은 쉽게 올렸다.

미르 공격대가 그간 올린 성과와 비교하면 별 것 아니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오히려 원정대 구성에 비하면 버는 게 많다고 봐야 했다.

수한은 원정대가 돌아올 때마다 그들을 일일이 치하했다. 한편으로는 AA급 이능력자로의 승급을 독려했다. 언제고 AA급 이능력자가 된다면, 자신이 주관하는 원정에 참여시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AA급 이능력자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5년째 A급이라는 이능력자 하나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안 해 본 게 없다고 했다.

A급 힘의 결정을 10개나 흡수하여 성공 확률을 높이고, 차원 백화점에서 파는 흡수 보조제를 잔뜩 사다가 사용했지만 결국 승급에 실패했다던가.

수한은 명쾌하게 해법을 제시했다.

“앞으로 우리 공격대 소속 이능력자들을 대상으로 흡수 보조제를 저가에 판매할 생각입니다. 그걸 한 번 써보세요.”

“이미 사용해 봤습니다만……”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보조제는 한계가 있습니다. 죄다 등급도 낮지 않습니까? 구름 깃털, 심해의 진주, 세계수 잎 같은 건 사용해야지요.”

“그건 너무 비싸서요.”

“그렇지요. 그래서 여러모로 공격대와 여러분이 함께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흡수 보조제를 이용해 AA급 이능력자가 되면 만사가 해결된다. 나중에라도 갚게 하면 되니까.

문제는 그걸 쓰고도 승급에 실패했을 때.

따라서 이견이 많았다.

싸게 공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사람, 나중에 상여금 대신 흡수 보조제를 주자는 사람, 일정 기간 공격대와 계약하는 조건으로 증정하자는 사람 등등.

어쨌든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다.

질라 행성 원정이 바로 며칠 뒤로 다가와 있었다. 일단 이걸 성공시킨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될 터였다.

준비는 순조로웠다.

원정대 수가 많으니 SUV와 ATV를 섞어서 준비했다. 기계 괴수를 상대하는데 필요한 특수 탄두도 대규모로 준비하고, 식량을 비롯한 각종 소모품도 잔뜩 실었다.

한편, 기계용 제작에 들어갔다.

재료는 거대 기계 괴수.

크람 행성에서 써먹었던 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기본적으로 비행이 가능하고, 양손에 광선검과 파멸의 철퇴를 들었다. 꼬리에는 광선창을 달고, 입안에 주포를 숨겼다.

대신 무게를 파격적으로 줄였다. 원래는 다소 통통해 보였는데, 이제 무척 날렵해 보였다. 더구나 형태를 변화시켜 기존의 용보다는 사람에 가깝게 변화시켰다.

용이의 기본 형태보다, 용갑 형태에 가까워진 것이다.

새미가 새로운 기계용을 보고 눈을 빛냈다.

“어째 용이 아니라 사람 같은데?”

“크람 행성에서 느낀 건데, 내가 조종하려면 사람 형태가 더 나을 것 같아서. 사족보행 상태로 검이랑 철퇴 휘두르려니까 꽤 힘들더라.”

“그럼 이제 오빠 혼자서 거대 기계 괴수 막 잡고 다니는 거야?”

“에이, 설마.”

수한은 웃어 넘겼다.

그래도 내심으로는 아무리 거대 기계 괴수라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라도 자신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기계용에 탑승한 상태라면 시간을 끄는 게 가능할 것이다.

이로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

2018년 2월 1일.

미르 공격대의 원정대가 질라 행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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