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위망 붕괴 -1- >
미르 공격대가 도착한 곳은 바티오 시였다.
드라코 시에 새로운 세라프의 전당을 만들려고 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너무 가깝다 보니 아직 만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상관없었다.
기계용에 SUV와 ATV를 몽땅 싣고 날아가면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으니까.
분리시킨 기계용 부품을 세라프의 전당 밖으로 옮기는데, 한 무리의 인물들이 떠들썩하게 다가왔다.
그 중 좀 어려보이는 사람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대장님! 저 리웨르입니다! 기억하십니까?]
[뭐? 리웨르라고?]
수한은 놀라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낯이 익었다. 키가 자라고 덩치도 커졌지만, 그래도 알아보는 건 가능했다.
못 본 새 세라프 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언제 이능을 각성했는지 은은한 기파가 수한의 감각을 자극했다.
수한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예. 오신다는 소식 듣고 마중 나왔습니다.]
[정말 리웨르야? 이제 완전히 성인이 된 것 같은데?]
새미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리웨르가 새미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작년에 성인식을 했습니다.]
[그래, 정말 좋아 보인다. 이능력자는 언제 된 거야?]
[몇 달 됐습니다. 이능 적성 검사는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가문의 지원 덕에 C급 이능력자가 되는데 성공했습니다. 더 이상은 힘들겠지만 이것만으로도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C급만 되도 훌륭하지. 변이체들을 맞상대할 수가 있잖아? 축하해.]
[감사합니다.]
마엘른과 아르텔라도 가까이 다가왔다.
둘 다 리웨르와 안면이 있었다. 마엘른은 특유의 건조한 어조로 인사를 했고, 아르텔라를 대할 때는 리웨르가 껄끄러운 태도를 보였다. 아무래도 원수지간인 크롱 제국 출신에, 크롱 제국에서 성행하는 종교의 무녀여서 그런 것 같았다.
인사를 나눈 뒤, 리웨르가 활기찬 어조로 말했다.
[저희 가문으로 가시죠! 환영 연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환영하는 것은 고맙지만, 우린 바로 드라코 시로 떠나야 돼. 오랫동안 이 행성에 머물 수는 없거든.]
[끄응, 세 공작 가문이 모두 모이기로 했는데요?]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원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부탁할게. 최전선은 지금도 난리라며?]
[그렇긴 합니다. 그럼 나중에라도 꼭 방문해 주셔야 합니다. 꼭이요.]
[그래, 그렇게 할게. 만나서 반가웠다. 우린 당분간 드라코 시에서 활동할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기별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인사를 나누는 사이, 기계용의 조립이 끝났다.
SUV와 ATV들이 기계용의 배 안으로 줄줄이 들어갔다. 공중 수송을 위해 복부만 좀 변형시킨 터라 기계용이 꼭 배가 나온 기사처럼 보였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전투복의 날개를 펼쳤다.
[그럼 다음에 보자!]
모두 탑승을 완료했다.
기계용이 날개를 펼쳤다.
추진 장치가 빛을 뿜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몸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도시로부터 충분히 거리를 벌린 후, 폭발하듯 가속하기 시작했다.
바티오 시민들이 놀라 기계용을 올려다보았다.
손가락질도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을 무시하고 까마득한 상공까지 올라갔다. 잠시 선 자세로 자세를 안정시키며, 내부의 물건을 고정시키기를 기다렸다.
인간형이다 보니 엎드린 자세로 날아야 제 속력을 낼 수 있는데, 아까는 선 자세로 SUV와 ATV를 받아들여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준비 완료했습니다!]
[좋습니다. 갑니다!]
시규의 전언을 듣고, 수한은 기계용의 자세를 바꿨다.
선 자세에서 엎드린 자세로.
추진 장치가 극도로 가동되었다. 누가 밀어내기라도 한 듯 기계용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폭탄 터진 것처럼 연달아 났다.
기계용이 빠르게 허공을 질주했다.
고작 30분.
세 요새 도시를 지나 드라코 시에 도착했다.
상공에서 다시 자세를 바꿨다.
새미가 한 마디를 했다.
“나중에는 용 형태랑 인간 형태를 변신하는 것 좀 생각해 봐. 자세 바꾸니까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아.”
“그래야겠다. 사실 근접전 할 때 빼곤 용 형태가 나으니까. 미처 생각을 못 했네.”
소수의 사람들만 타고 있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SUV와 ATV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자세 변환이 끝나자 선 자세로 천천히 낙하했다.
드라코 시의 이능력자들이 마중을 나왔다.
진작 어떤 식으로 방문할 거라고 알린 뒤였다. 그 때문에 혼란은 없었다. 오히려 환영의 뜻으로 각종 깃발이 화려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기계용이 드라코 시 앞, 커다란 공터에 내려앉았다.
배가 열리며 SUV와 ATV들이 줄줄이 나왔다. 이윽고 수한과 새미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드라코 시에서도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나왔다.
익숙한 얼굴들이다.
수한이 직접 지도했던 트라이벌을 비롯하여 크롱 제국의 황손, 느주브 반도의 귀족들도 보였다.
트라이벌이 함박 웃음을 지었다.
[사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트라이벌님도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사자라고 부르실 겁니까?]
[아니, 그럼 사자님을 사자님이라고 불러야지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아, 무녀님도 오셨네요. 얼굴이 좋아 보입니다.]
트라이벌이 수한이 가져온 기계용을 보며 의뭉을 떨었다. 그러다 아르텔라를 보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크롱 제국의 황손이 거만한 태도로 말을 붙였다.
[오랜만에 뵙소. 그래, 기계 괴수들을 잡으러 오셨다고?]
예의를 차리는 것 같으면서도 무시하는 듯한, 참 기묘한 태도였다.
수한은 굳이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느주브 반도의 귀족들도 미르 공격대에게 다가왔다. 개중 밀루의 영주가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영주는 수한의 손을 붙잡고 강하게 흔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가끔 오셔서 얼굴이라도 비춰주시지 그러셨습니까?]
[하하. 저도 좀 바빠서요. 영주님도 이능력자가 되셨네요?]
[운이 좋았습니다.]
세 명 모두 A급 이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수한이 질라 행성을 다녀온 지 벌써 2년이 가까워지니 그럴 만도 했다.
다들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수한은 마음 편히 미소를 지었다.
새미도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수한의 옆에 와서 서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상황이 괜찮은 모양이야. 모두 얼굴이 좋네.”
“그러게. 트라이벌 얼굴 봤어? 덩치가 좋아졌던데.”
“강체 계열 이능력자라 그런 거 아냐?”
“아무래도 그렇겠지. 보니까 영양 보충을 잘 한 것 같아. 예전에는 비쩍 말라 있었잖아?”
“맞아, 그랬어.”
셋은 미르 공격대를 안내하여 드라코 시로 들어갔다.
이젠 도시라고 해도 아쉽지 않았다.
인구는 수십만으로 불어났다. 크롱 제국의 피난민들이 몰려든 까닭이었다. 더구나 지속적으로 확장하여 그 규모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온통 목재로 만든 건물뿐이었는데, 지금은 석재로 탈바꿈했다. 중심이 되는 협회 건물과 인근은 몽땅 석재 건물이고, 도시 전체를 두터운 성벽이 보호하고 있었다.
성벽 위에 각종 병기가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더구나 성벽 자체에 은은한 빛이 어린 게, 뭔가 이능이 부여된 것 같았다.
드라코 협회에서 환영 연회가 열렸다.
수한도 이것은 거부하지 않았다. 당분간은 드라코 시에 머물러야 하니, 사이를 돈독히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연회 도중,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황금빛 날개의 세라프.
쥘베르였다.
[쥘베르님! 잘 계셨습니까?]
[잘 있었지요. 못 본 사이에 정말 강해졌네요. 이젠 의원님들이 아니면 그대를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하기야 세라프 종족은 보통 서너 개의 이능이 SS급이고, 나머지 이능은 S급이었다. 여덟 개 전부가 SS급인 수한에 비교하면 좀 떨어진다고 봐야 했다.
수한은 쥘베르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예전에 봤을 때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느껴졌는데, 이젠 그렇지가 않았다. 운명의 눈을 쓰면 뼛속까지 다 파악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쥘베르가 수한을 살피더니 말했다.
[조만간 종족 연합 평의회에 지구인도 참석하게 될 거라는 얘기가 있어요. 거기 출마하셔도 가능성이 있겠는데요?]
[지구가 발전하긴 발전했네요. 하지만 전 제 공격대를 간수하기도 힘들어서, 평의회에 출마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요? 아쉽네요.]
지구는 지금껏 변방 취급을 받아서 평의회에 의석도 얻지 못했다. 따라서 알게 모르게 여러 불이익을 받았다.
그러던 게 최근에 지구 전체의 전력이 상승하고, 수한의 활약으로 인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의석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이능력자들이 더 늘어나고, 여러모로 활약을 한다면 각종 위원회에도 자리를 받겠지. 최고 평의회는 가능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수한의 관심 밖이었다. 지금은 오직 기계 괴수를 잡는 것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저희는 조만간 기계 괴수 사냥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혹시 주의해야 할 게 있습니까?]
그렇게 묻자, 쥘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크람 행성에서 거대 기계 괴수를 사냥하셨다면서요?]
[예. 이번 목표도 거대 기계 괴수입니다.]
[조심하시는 게 좋아요.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기계 괴수들은 셋이 연결되어 있거든요.]
[예?]
쥘베르의 얘기는 간단했다.
뭘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셋 중 하나를 공격하면 인근에 있던 다른 기계 괴수가 움직인다는 것이다.
수한은 기요테 행성에서 봤던 움직임을 상기하곤 금방 이해했다. 그때도 늑대인간처럼 생긴 기계 괴수를 공격했더니 주변 기계 괴수들이 까맣게 몰려오지 않았나.
[셋을 따라다니는 다른 기계 괴수는 없습니까?]
[연결은 셋만 유지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방어할 수 있었죠. 대형 기계 괴수 몇 마리만 합세했어도 방어망이 진작 뚫렸을 거예요.]
쥘베르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세라프 종족의 전력에 대해서도 들었다.
일반 세라프가 5명, 단장급 세라프가 2명, 의원급이 1명이라고 했다.
SSS급 1명에 SS급 7명.
지금까지 피해 없이 방어한 게 용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드라코 시가 보급기지 역할을 해서 버티는데 성공한 듯했다.
거대 기계 괴수 3마리라면 미르 공격대도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스럽게 합동 작전 얘기가 나왔다.
쥘베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대의 공격대와 우리 종족의 힘을 합치면 SSS급이 1명에 SS급이 10명입니다. 더구나 S급 이능력자가 10명이 넘게 있고, 그대와 용이를 합치면 SSS급에 필적하는 위력이 나오니 무난하게 공략을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분배는 어떻게 하지요?]
[우리 종족은 동력핵만 가져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그대의 공격대가 취하는 것으로 하지요.]
[동력핵이라…… 좋습니다.]
거대 기계 괴수의 동력핵에선 확률적으로 SSS급 힘의 결정을 추출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그 거대한 시체 전체에 비하면 가치가 떨어졌다.
결행일은 이틀 뒤로 결정이 되었다.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했다. 미르 공격대는 체력을 보존하고 있지만, 세라프들이 적잖이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미르 공격대가 앞으로 나섰다. 각종 탐지 장치를 설치해 놓고 경계를 했는데,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결행일.
여덟 세라프가 날개를 펼치고 미르 공격대가 머물러 있는 야영지로 날아왔다.
그 중 유독 돋보이는 존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