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198화 (199/254)

< 용신의 성지 -1- >

이것으로 당초 목표의 반은 이뤘다.

이 근방에 있는 대형 기계 괴수들을 다 잡아버리면 정말로 끝.

귀환해도 좋고, 아니면 세라프들과 함께 대륙으로 진군해도 좋을 것이다.

반면 모든 것이 다 좋지는 않았다.

거대 기계 괴수 내부에서 제국인 시체가 하나씩 발견되었는데, 그것들의 레벨 업 도우미를 흡수해도 레벨은 역시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능력치가 오르고 초능 점수를 얻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전투 중 근력과 체력, 민첩이 1씩 오르고, 탑승과 기갑 격투가 1씩 오른 것도 위안거리였다. 더불어 영관에서 정체되었던 계급이 사령관으로 진급했다.

새미가 수한에게 다가왔다.

“오빠, 안 다쳤어?”

“응. 휴, 거대 기계 괴수가 세긴 세다. 정면으로 붙으니까 상대하기 힘드네.”

“어떻게 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하하, 그렇게 쉽게 당할 내가 아니잖아. 걱정 안 해도 돼.”

수한은 새미를 안심시켰다.

세라프들이 기계 괴수의 동력핵을 수거했다. 그들의 얼굴이 뿌듯한 만족감이 어려 있었다.

라엘라가 수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수고했다. 요 근래 이것들 때문에 발이 묶여 있었는데, 그대들 덕분에 쉽게 해치운 것 같구나.]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드라코 시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지구로 귀환할 생각이냐?]

[아니요. 지금 얻은 것만 지구로 먼저 보낼 생각입니다. 기계용을 수리해야 하니, 수리가 끝난 후 다시 사냥을 시작해야지요.]

[알았다. 우리도 잠시 쉬어야겠구나. 대륙의 기계 괴수들을 공격할 생각인데, 함께할 뜻이 있느냐?]

[기꺼이 합류하겠습니다.]

기계 괴수의 시체부터 확보했다.

용이를 용기사와 융합시켰다. 조종석만 대충 수리하고, 기계 괴수들을 용기사에 합체시키는 방식을 썼다.

기계 괴수 세 마리가 하체, 용기사가 상체.

그러자 꼭 거대한 개미에 탄 사람 같은 형체가 만들어졌다. 무게가 엄청난 탓에 속도가 매우 느리지만, 그래도 시속 50킬로미터 정도는 나왔다.

원정대를 모두 거대 용기사에 태웠다. 세라프들도 신기해하며 거대 용기사 안으로 들어왔다.

라엘라가 용기사 안을 살피더니 말했다.

[진리의 빛께서 대단한 녀석을 만들었구나. 기계용 군단 계획에 대해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정도는 되어야 제국에 반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대의 말이 맞다.]

속도가 느려서, 드라코 시에 돌아가는 것은 내일 아침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굳이 서둘 필요는 없었다. 드라코 시에 문제가 생기면 세라프들이 당장 날아갈 테니까. 용기사 내부의 부품을 변형시킨 취사 기구로 밥을 지어 먹었다.

지구에서는 흔한 삼겹살과 김치, 된장찌개 같은 음식.

미르 공격대에서는 처음 원정에 참가한 사람들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원정이 이렇게 편한 거였습니까?”

“외계 행성 나가면 1달 내내 전투 식량만 먹었는데, 아주 진수성찬이네요.”

세라프들도 끼어들어 맛을 보았다.

그들도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나중에는 아예 날개를 접은 채 둘러앉아 상추쌈을 몇 번이나 집어먹었다.

새미가 수한에게 속삭였다.

“이제 위험한 건 없겠지?”

“이 근방에 대형 기계 괴수가 좀 많긴 한데, 그것도 금방 정리할 수 있어. 방심하지만 않으면 돼.”

식사를 끝내자 졸음이 솔솔 밀려왔다.

용기사 내부에는 작은 방이 많았다.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 변형시켰기 때문이었다. 방 중 하나를 잡고 새미와 함께 쉬려고 하는데, 눈치 없게도 아르텔라가 면담을 요청했다.

“무슨 일입니까?”

흥이 깨졌지만, 작은 탁자를 사이에 놓고 아르텔라와 마주 앉았다.

아르텔라가 고요한 얼굴로 수한을 쳐다보았다.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방금 전, 클로아님께서 제게 계시를 내리셨습니다.”

“계시라고요?”

수한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질라 행성에 원정 오게 된 계기가 뭐였나. 바로 아르텔라의 건의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수한은 눈을 번뜩였다.

“클로아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악한 자들이 당신의 성지를 침탈하고 있으니, 그 자들을 격퇴하고 성지를 회복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악한 자들?

수한은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아르텔라가 눈을 감았다.

지금도 연결된 무한 의식을 통해, 어떤 영상을 전달했다.

수한은 그 영상에 집중했다.

거대한 신전이 보였다.

엎드린 용 모양의 산 위에 세워진 신전이었다. 기계 괴수들에게 공격을 당했는지 진작 폐허가 되어, 지붕은 사라지고 기둥만 몇 개 남아 있었다.

그 신전에 사람 그림자 몇이 얼쩡거렸다.

은색의 보호복을 입고, 하얀 가면을 쓴 무리.

수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제국인이었다.

기계 괴수 안에서 발견되는 복색과 똑같았다.

반면 기요테 행성에서 세라프의 전당을 점거하고 수한과 페이니아를 비웃던 자들과는 좀 달랐다.

칼라트라 파벌의 제국인들.

그들이 신전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왔다를 반복했다.

꼭 뭔가를 찾으려는 듯한 태도.

환상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없다.]

산처럼 장중하여 위엄이 넘치면서도, 묘하게 여성적인 느낌이 묻어나왔다.

[사악한 무리가 내 성지를 침탈하고 있다.]

수한은 목소리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서둘러라.]

용신 클로아.

그 존재가 속삭이는 것이다.

[늦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지니……]

영상이 끝났다.

수한은 입이 바싹 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기계 괴수는 제국의 무인 병기였다. 설령 그 안에 제국인이 타고 있어도 가사 상태여서 일종의 초능력 전지 역할만 수행했다.

그런데 제국인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

수한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들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지만, 수한 자신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흔치 않은 8익급 레벨 업 도우미를 성장 한계까지 키웠으니까. 라엘라를 비롯한 세라프 종족이 합류하면 더욱 그렇고.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진군 계획을 서둘러야겠네요.”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수한은 라엘라와 바로 의논을 했다.

라엘라의 얼굴이 신중해졌다.

[제국인들이 용신의 성지에 있다고요?]

[아르텔라님이 받은 계시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여간해서는 나타나지 않는 자들인데, 무슨 일로 거기에 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분명한 것은, 수한이 본 게 제국인이 맞는다면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세라프들이 아르텔라를 직접 면담했다.

각자의 이능을 동원해서 아르텔라를 살피더니, 수한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00% 확신할 수는 없어도, 제국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렇게 되면 기계 괴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즉각 그들을 공격할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드라코 시를 방어할 병력만 남기고, 용신의 성지부터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라엘라의 말에 수한도 찬성했다.

[저희 공격대 인원만 남겨도 드라코 시 방어는 충분할 겁니다. 제국인들이 얼마나 강할지 모르니, SS급 이상만 가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S급 이능력자들은 드라코 시에 남는 겁니까?]

[예. 성벽을 보강해 놓고 갈 테니 기계 괴수 몇 마리 정도는 방어가 가능다고 봅니다.]

[하긴 S급 이능력자만 11명이나 되니까요.]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소형이나 중형이라면 모를까, 대형 기계 괴수가 쳐들어오면 결국 뚫리고 말 겁니다.]

논의 끝에 세라프 1명은 남기기로 했다.

다재다능한 황금색 날개의 세라프, 쥘베르.

거기에 더해 수한이 기계 괴수 시체를 이용해 드라코 시의 방어 능력을 보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정도 방어 태세라면 충분했다.

그런데 여기에 아르텔라가 끼어들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감히 신성한 대지를 침탈한 자들을 놔둘 수는 없어요. 클로아님의 신전 근처에서는 제 능력도 더 강해지니까 도움이 될 거예요.]

[좋습니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엘라가 수한을 쳐다보았다.

[속도를 더 올릴 수 없겠습니까? 저희도 돕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으로 올리겠습니다.]

수한은 조종석에 착석 후 성좌와 극초음속을 발현했다.

세라프들이 도왔다.

거대 용기사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가 하면, 구동부에 자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동력핵에도 힘을 더해 출력을 강화시켰다.

덕분에 거대 용기사가 걷는 속도가 거의 3배로 빨라졌다.

이동 시간이 단축되었다.

오후 늦게, 드라코 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뻥! 뻥뻥!

용기사에 새겨진 미르 공격대 문양을 확인한 드라코 시에서 환영의 의미로 폭죽을 터뜨렸다.

평소 같았으면 웃고 즐겼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수한은 성벽 가까이 용기사를 댔다. 기계 괴수를 차례차례 분리시킨 후, 금속 장갑을 성벽에 덧대고 광선포와 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트라이벌과 크롱 제국 황손, 밀루의 영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성벽은 왜 보강하시는 겁니까?]

간단히 사정을 설명했다.

제국인들이 직접 왔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셋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인 병기인 기계 괴수도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현재 드라코 시의 전력으로는 변이체들을 막아내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그런데 제국인들이라고?

[무슨 일인지 알겠습니다. 저희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힘들겠지만 기계 괴수 부품을 사용하면 방어는 가능할 겁니다.]

광선포와 미사일 발사대의 조작 방법을 알려주었다.

용이가 없어도 수동 조작은 가능했다. 그것을 위해 세라프 종족이 수거한 동력핵을 연결했다. 드라코 시민들이 몇 번 조작해 보더니, 금방 익숙해졌다.

날이 밝는 대로 길을 떠났다.

용신의 성지로 가는 것은 정확히 11명.

체력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모두 기계용에 탔다. 수한은 최대한으로 속도를 올려 용신의 성지를 향해 날아갔다.

용신의 성지는 대륙 중앙에 위치했다. 예전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 크롱 제국의 수도 크로시아에서 서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 했다.

그래도 하늘을 날아가면 몇 시간이면 충분했다. 기계용은 음속을 돌파한지 오래니까.

기계용 안에서, 11명이 머리를 맞댔다.

라엘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국인과 싸우는 것은 기계 괴수와의 전투와 양상이 다를 것이다. 미리 고민을 해봐야겠다.]

[무엇보다도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뛰어들었다가 당하면 끝장입니다.]

수한의 말에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미가 손을 들었다.

[제국인의 전력도 파악하고, 그들의 퇴로도 차단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전에 기요테 행성처럼 도망쳐 버리면 곤란하잖아요.]

[내가 알기로, 용신의 성지 인근에 있는 도시인 케루아 시에 세라프의 전당이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겠지. 내 생각에도 그곳을 먼저 장악하거나, 최악의 경우 부수는 게 좋다고 본다.]

일단은 케루아 시를 향해 가기로 했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겨우 다섯 시간 후, 케루아 시의 상공에 도달했다.

수한은 용이의 은신 능력을 이용해 기계용을 감췄다. 구름 속에 숨은 뒤 케루아 시를 내려다보았다.

운명의 눈으로 보는 케루아 시의 광경을 무한 의식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공유했다.

완전히 폐허가 된 상태.

그 와중에 세라프의 전당만 온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개조가 되어 있었다. 은색 금속 재질이 표면을 덮고 있고, 원래는 없던 길쭉한 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세라프의 전당 주변에 기계 괴수들이 돌아다녔다. 주변을 향해 쉬지 않고 탐지 장치를 가동시키는 게, 세라프의 전당을 지키는 것 같았다.

대형 기계 괴수 세 마리.

지금 모인 11명이서 충분히 분쇄할 수 있는 숫자였다.

문제는 그렇게 할 경우 성지에 있을 제국인들이 바로 알아차릴 거라는 점.

[제국인들은 안 보입니까?]

[모르겠습니다. 제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다면 모를까, 그 전에는 파악이 힘듭니다. 그렇다고 능력을 최대한으로 쓰면 제국인들이 우리가 접근했다는 것을 눈치챌 거고요.]

[곤란하네요.]

이러기도 저러기도 힘들었다.

수한은 고민 끝에 한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상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건드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의 정보를 수집한 후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성지까지는 멀지 않았다.

그곳을 확인한 후 계획을 짜기로 했다.

기계용을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은밀함에 최대한 초점을 맞췄다. 다소 속도가 떨어지더라도 감수했다.

케루아 시에서 용신의 성지는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아르텔라가 보여줬던 모습 그대로였다.

웅크린 용의 형상을 한 산 위에, 흰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 기계 괴수들의 습격을 받았는지 폐허가 된지 오래였고, 인근에 은색 구조물들이 네 개 보였다.

수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은색 구조물?

구 형태였다. 아래쪽을 지지하는 것도 없는데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완전히 매끈한 형태로, 외부에 어떤 요철이나 장치도 관측할 수 없었다.

제국인들이 쓰는 장비인 모양이다.

그것을 목격한 이들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옆에 앉아 있던 새미도 수한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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