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03화 (204/254)

< 불멸의 용이 -2- >

가브낙 행성에 무엇이 있나. 바로 왕급 기계 괴수 루비 아이가 있지 않은가.

세라프 종족들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방치해둔 왕급 기계 괴수.

기수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시기상조 아닙니까? 아직 우리 공격대의 전력이 루비 아이를 잡을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은 그렇지요. 일단 공격대를 한 번 정비한 후, 냉정하게 가능성을 따져서 가능하다면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크람 행성에서 거대 기계 괴수를 잡을 때처럼 지원군을 부르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케르베스 행성이야 모두 S급 이능력자이니 힘들지만, 다른 곳에는 SS급 이능력자가 있으니까.

특히 타이탄 공격대와 알바트로스 공격대.

타이탄 공격대의 한민종 사장은 수한이 원정을 다녀오는 사이 끝내 거력 계열 이능도 SS급으로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에 따라 거신 강림도 새롭게 익혔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 위력이 무시무시하다고 했다.

알바트로스에 약속대로 SS급 힘의 결정 다섯 개를 건넸는데, 다섯 명 중 갈태수 사장이 가장 먼저 성공했다고 했다. 나머지 넷 중 현애는 흡수는 했는데 승급에 실패했고, 셋은 흡수 단계에서 졸도하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던가.

이 둘만 끌어들여도 SS급 이능력자 다섯.

‘턱도 없겠네.’

SSS급이 다섯이 모인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고 SS급 다섯으로는 역부족이다.

어차피 서두를 생각은 없으니까.

보고를 들은 뒤, 수한은 헤븐 행성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용이의 상태에 대해서는 진작 설명을 했다. 백기수 이사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께서 결재하실 게 꽤 많습니다. 가급적이면 빨리 돌아오셨으면 합니다.”

“용이 문제만 해결하는 대로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살 것도 좀 있긴 한데, 그건 이번 매출 정산이 끝난 다음에 사는 게 좋을 테니까요.”

이번에는 수한과 일행만 헤븐 행성을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수한 혼자 갔다 와도 될 일인데 새미가 바늘 가는데 실이 안 가면 되겠냐며 따라붙었다. 라오그뉴와 아르텔라는 용이가 걱정된다고 따라왔고, 그렇게 되자 마엘른도 합류하게 된 것이다.

차원문을 통해 헤븐 행성으로 간 뒤, 학술원의 튜니에에게 면담 요청을 넣었다.

즉각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단순히 면담을 허락한 수준을 넘어서, 임시로 머물고 있던 카페에 타고 오라며 비룡 세 마리를 보내준 것이다.

원래는 아직 비행을 못하는 세라프 아기들이 타고 다니는 비룡들이었다. 그런 만큼 승차감이 좋고, 빠르기도 상당히 빨랐다.

각각 하얀색, 검은색, 회색이었는데 새미가 먼저 흰색 비룡에 탔다. 수한은 검은색 비룡에 타고, 회색 비룡이 자고 있는 용이를 입에 물었다.

[출발하겠소, 영웅들이여.]

비룡들의 태도는 정중했다.

날렵한 하늘을 펼쳐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스스로 신속 이능을 발현하여 청옥 도시를 향해 비행했다.

비행 접시보다 조금 더 빨랐다. 채 1시간이 되지 않아 청옥 도시에 도착했다.

비룡은 날갯짓을 하며 바로 학술원으로 날아들었다. 학술원 가장 높은 곳에 커다란 통로가 뚫려 있는데, 그곳을 통해 진입한 것이다.

비룡들은 셋을 적당한 곳에서 내려주었다.

도착한 곳에 세라프 몇 명이 수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용이가 무거울 거라며 부유 원반을 내밀기에, 감사하다 말하며 용이를 원반 위에 올려두었다.

세라프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용이를 보았다.

[크기가 커졌네요. 진화한 건가요?]

[진화 요건은 충족한 것 같은데 뭐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대로 활동을 못 하고 있습니다.]

[질라 행성에서 용신의 심장을 흡수하셨다고 하셨죠? 그럼 그럴 만도 해요. 먼저 충분히 몸을 만든 다음에 흡수시켰어야 했는데……]

그러게 말이다.

튜니에와 사전에 상의를 해봤어야 했는데 괜히 서둘렀다.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곤란한 지경에 빠지지도 않았을 텐데.

복도를 빠르게 질주했다.

튜니에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중이었다. 도착 즉시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말을 해두어서, 바로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수한과 새미, 용이가 들어오자 튜니에가 가장 먼저 용이의 상태부터 살폈다.

[상태가 좋지는 않네요.]

[설마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요?]

[늦게 왔다면 모를까, 그럴 일은 없습니다. 안심하세요.]

[휴, 감사합니다.]

튜니에의 확언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수한은 가볍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행들도 잘 됐다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튜니에가 부유 원반에게 손짓을 했다.

부유 원반이 좀 더 높이 떠오르더니 사무실 한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수정으로 된 커다란 원통형 관이 있었는데, 부유 원반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자연히 용이도 원통형 관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튜니에가 다시 손짓을 하자, 관이 닫히고 청명한 빛이 관 안에 그윽하니 번졌다.

용이의 체내에 힘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임시방편. 관 안에서 빠져나오면 보충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결국은 용이를 완전한 불멸 등급으로 만들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튜니에가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수한 일행도 잠시 머뭇거리다 튜니에의 앞에 주르륵 자리를 잡았다.

튜니에가 수한을 보며 말했다.

[편지에 써두신 내용은 봤습니다. 용이가 질라 행성의 용신을 흡수했다고 했지요?]

[예. 정확히는 용신 자체는 아니고, 그 화신 중 하나를 흡수한 것 같습니다. 용신의 심장과 함께요.]

[신이라…… 우주는 넓고, 온갖 신기한 존재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질라 행성에 가서 용신을 만나보고 싶네요.]

[꼭 그렇게 될 겁니다.]

인사차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한 뒤, 수한은 튜니에에게 클로아를 통해 입수한 내용을 털어놓았다.

튜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들었다고 했다.

라엘라가 정식으로 보고를 한 모양이었다. 클로아와 대화할 때 동석했던 쥘베르도 추가 보고를 했다.

튜니에는 눈썹을 찌푸렸다.

[미래의 제가 질라 행성의 용신을 만들었다고 했지요?]

[클로아에게 들은 내용대로라면 그렇습니다.]

[시공간 분열에 의한 새로운 차원 생성이라니……]

튜니에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수한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한 것은 용이가 알고 있을 겁니다. 저는 클로아에게 들은 게 전부지만, 용이는 클로아의 기억을 모두 이어 받았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렇겠지요. 일단 진화부터 마무리해야겠네요.]

튜니에도 수한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할 수가 없었다. 조금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원은 충분히 모아두었지만, 그걸 학술원에서 가지고 있진 않기 때문이다.

약 3일 후.

용이를 진화시키기로 했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데 최소한 그 시간은 걸린다는 것이다.

수한은 학술원에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3일 동안 헤븐 행성 관광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용이가 걱정되어 계속 그 생각만 났다. 새미와 함께 청옥 도시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완성된 진리의 보석을 받았다.

질라 행성 원정 전 튜니에에게 제작 주문을 했던 SSS급 장비.

마엘른은 경매장에서 세계검을 샀다. 금액은 일행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치렀고, 나중에 정산에서 제하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3일이 훌쩍 달아나고 용이를 진화시키기로 한 날이 되었다.

장소는 청옥 도시에서 꽤 떨어진 신록 도시.

신록 도시의 주요 시설이라면 생산국을 꼽는다. 세라프 종족의 기술이 적용된 주요 물건들을 만드는 곳인데, 자연히 온갖 물자들이 신록 도시에 모이게 되었다.

비룡을 타고 신록 도시로 이동했다.

세라프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적어도 1백은 될 것 같았다. 특히 가운데에 서 있는 세라프 두 명이 유독 강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 명은 백색 날개, 한 명은 잿빛 날개.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튜니에와 비슷했다. 아마도 이들 또한 세라프 종족의 최고 의원인 모양이었다.

각각 헤라, 베스티라고 했다.

헤라는 지원국의 국장이고, 베스티는 생산국의 국장이었다.

둘이 수한을 보고 한 마디씩 했다.

[반가워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우리 종족을 위해 한 일이 많다면서요?]

[학술원에서 추진하던 기계용 제작에는 나도 관여했소. 자칫 실패할 뻔 했는데, 도와줘서 고맙게 생각하오.]

세 명의 세라프가 중앙에 가서 섰다. 의원급 세라프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다시 단장급 세라프들이 그 주변을, 마지막으로 일반 세라프들이 외곽에 빙 둘러섰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거대한 마법진.

이번 행사를 위해 온갖 진귀한 재료는 다 썼다. 마법진의 귀퉁이만 조금 떼어다 팔아도 대한민국의 1년 예산은 충분할 것 같았다.

용이를 마법진 중앙에 위치시켰다.

세라프들이 의식을 시작했다.

의식에 참가하는 세라프가 무려 120명.

자연히 막대한 힘이 휘몰아쳤다. 지금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던 수한이지만, 이제껏 목격한 적이 없는 엄청난 규모였다.

다들 압도된 채 의식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진이 웅장한 빛을 뿜었다.

그 빛은 행성의 대기권을 넘어 우주 너머까지 뻗어나갔다. 빛에 하도 강한 힘이 담겨 있는 탓에, 공간이 왜곡되며 빛이 굴절되어 보였다.

꼬박 하루가 걸렸다.

24시간 내내 120명의 세라프들이 달라붙은 다음에야, 이 거대한 의식이 끝을 맺었다.

[하아, 하아. 이거 굉장히 힘드네요.]

[으윽, 졸업 시험 보던 때보다 더 힘든 게 세상에 존재할 줄이야.]

세라프들이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를 냈다.

수한은 조심스럽게 마법진 중앙을 확인했다.

과도하게 힘이 집중된 탓에, 공간이 왜곡되면서 시꺼먼 어둠이 중앙을 가리고 있었다. 그 정도가 어찌나 심각한지 운명의 눈을 발현해도 안쪽을 꿰뚫어보기가 힘들었다.

수한은 조심스럽게 세라프들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어둠이 천천히 걷혔다. 동시에 거뭇한 그림자 하나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묵색 광택이 흐르는 금속질의 몸.

보석처럼 영롱한 두 눈.

쭉 뻗은 날개.

강철처럼 우뚝 솟은 뿔.

바로 용이였다.

당당하게 선 용이의 자태는 골골거리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천천히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물씬 위압감이 풍겼다.

어찌 보면 라오그뉴와도 비슷했다. 덩치로 따지면 용이가 훨씬 작은데도 저러니, 과연 Ex급은 Ex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아!]

새미가 수한을 젖히고 용이를 불렀다.

용이의 귀가 쫑긋 섰다.

[나 불렀어?]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팔랑팔랑 새미를 향해 뛰어왔다.

예전에 하던 것처럼 기분 좋게 뛰어드려는 것을, 수한이 기겁하며 제지했다.

[얌마! 누구 입원시킬 일 있어?]

용이의 몸은 가벼운 편이긴 하지만 수백 킬로그램을 가뿐히 넘는다. 예전처럼 전력으로 달려들었다간 새미는 어디가 부러져도 단단히 부러질 터였다.

[치잇, 나만 미워해.]

용이가 꼬리로 바닥을 땅땅 내리쳤다.

금속으로 만든 바닥인데도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러자 용이는 자기가 때려놓고도 자기가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새미가 다가가 용이의 머리를 안아주었다.

[아휴, 우리 용이. 이제 다 컸네? 아주 늠름해졌어.]

[정말?]

[그럼, 그럼.]

수한도 용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알에서 나온 뒤 차가워졌던 용이의 몸이 도로 따뜻하게 변해 있었다. 수한의 손길을 느낀 용이가 눈을 감으며 수한에게 몸을 기대왔다.

그렇게 한동안, 셋은 서로의 체온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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